54. 특수교사 수필집(나의 1정 연수 후기)

by 특수교사 호짠

통상적으로 5년의 근무를 하게 되면 1급 정교사 자격증을 획득할 수 있는 연수를 듣게 된다.

이 연수를 수료하기 전까지는 2급 정교사의 자격이라고 볼 수 있다.


옛날에는 이 연수는 동기들끼리 모여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누고, 수업이 끝나면 맥주도 한두 잔씩 하며 5년간 학교생활의 애환을 공유하는 기능을 하였다. 물론 훌륭한 연수를 듣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었을 것이지만..


거기에 1정 연수의 결과 점수가 차후 승진에까지 영향을 주어서 승진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주위를 둘러볼 수 없는 경주마 같은 시험기간이기도 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나의 1정 연수는 전세게를 뒤덮은 역병 코로나 시기였다.

동기와의 만남? 애환을 나누는 소통의 자리 따위는 있을 수가 없었다.


그 당시 모든 1정 연수는 화상회의로 실시하였고, 실시간 모니터링단이 상주하여 일정시 간이상 캠을 끄거나 자리에서 사라지면 연락이 왔다. 분명 변비가 있는 선생님은 한두 시간 정도 출석인정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게다가 근 몇 년 사이 1정 연수 결과가 승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바뀌게 되면서, 열정 넘치고 배움을 갈망하는 멋진 교사들은 열심히 수업을 들었겠지만 솔직히 나 같은 조무래기들은 그냥 그냥 출석하고 자리를 지키는데 급급하였다.


특히나 나는 집에 콤퓨타가 없어서, 방학 중에 매일 같이 학교로 출근하여 연수를 듣곤 하였다.


나의 소중한 방학을 훌륭한 연수로 차곡차곡 채워가던 어느 날, 사단이 나고야 말았다.

훌륭한 연수에 적합하지 않은 삐딱한 자세로 하루 종일 앉아있던 나의 허리가 말썽을 일으킨 것이다.


어느 아침처럼 영혼 없는 눈동자로 허공을 응시하며 출근하기 위해 바지를 입던 나의 허리에서 두둑 소리와 함께 움직일 수 없는 통증이 밀려왔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바지를 반쯤 입은 상태로 119에 실려 갈 수는 없다는 생각에 간신히 바지를 마저 입은 나는 곧바로 연수원에 전화해서 병가를 쓰겠다고 말했다. (혹시나 이수를 못해서 방학 동안 또 연수를 들을까 봐 두려웠다.)


이후 나는 간신히 병원으로 이동해 치료를 받았다. 심한 부상은 아니어서 며칠 만에 완치가 되었고, 나의 1정 연수는 그렇게 무야무야 어찌어찌 끝나게 된다.


사실 지나고 생각해 보면, 아쉬움이 좀 남는다. 동기들을 만나지 못해서도 그렇고, 연수가 머리에 잘 남지 않아서도 그렇고, 방학이 통째로 사라져서도 그렇다.


하지만 오랜만에 학생의 입장에서 수업을 들어보고, 온라인 수업이 얼마나 집중력을 유지하기 힘든지에 대해서 고민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지금도 가끔 그날들의 기억을 떠올리며 모니터를 보며 굽어진 허리를 의식적으로 펼쳐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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