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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WA Apr 05. 2022

야매 PO 경험기 - 2편

실패한 사람의 이모조모 변명기!


<전편 읽으러 가기 →https://brunch.co.kr/@8288dae7ee4a4b2/3>

줄거리 : 패션 외길만 걷던 인생에서 여차자차 스타트업으로 흘러들어가 PO 통보를 받게 되는데..







PO얘기를 듣자마자 당연히 거절했다.


그 당시 BO(Business Owner)를 거쳐 PM을 이미 하고 있는 상태였고, 이 직책으로도 충분히 고통받고 있었다. 여기서 더 개발을 뎁스있게 알아갈 자신도 없었고 무엇보다 관리자 역할이 너무 안맞았다. 나는 업무를 할 때 동시다발적으로 공격적이게 진행하는 걸 좋아하는데 이런 업무 스타일 계획적이고 효율적이게 분담을 해야 하는 관리자의 역할 지 않았다.


하지만 내 의사와 상관없이 팀 리더와 PO리더, 다른 글로벌 PO가 모여 이미 얘기(확정)가 된 사실이라며 팀을 위해서 꼭 해줘야한다고 나를 설득했고 그 당시 회사에서 여러 도움을 얻고 있던 전략 리드와도 여러번 티타임 하면서 용기를 얻어 그래 해보자, 싶어서 결국엔 승낙하게 되었다.



#문제파악

본격적으로 PO를 맡은 후 개발자 친구들과 일을 하게 되면서 현재 우리가 가진 기술적인 문제가 뭔지 제대로 파고 들어보았는데, 그 당시 외부 솔루션을 이용하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던게 가장 큰 문제라는 결론을 내렸다. 


실제로 솔루션 안에서 모든것을 제공하려 하다보니 애초에 개발자 친구들이 컨트롤 할 수 있는 필드 자체가 좁았고 이로 인해 유저에게 불편한 경험을 제공하게 되어도 솔루션의 유료 써드파티로 풀어내거나 그저 차선책으로 최소한의 개발을 들여 적당히 수정해 놓을 수 밖에 없었기에 당연히 기술부채(Technical Debt)가 쌓여가는 악순환의 연속이였다.


장기적인 사업모델을 생각할때도 독립적인 어드민을 가지는것이 답이 라는 생각이 들었기에 독자적인 어드민으로 서비스 이전을 계획하였고, 나는 또 전회사에서 한번 사이트를 이전 시킨 경험이 있어서 자신이 있었다. 한 치 앞도 모르고...ㅎㅎ


미친...


한치 앞도 몰랐던 문제.1

일단 회원가입으로 받아놓았던 유저 데이터를 독립된 DB에 가져가는 것부터 난관이였다. 사실 이때 솔루션 사용으로 불편한것 뿐만 아니라 메인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일본사이트에서 한국사이트로 랜딩해서 이용해야 하는 또 다른 크리티컬한 문제가 있었다.


유저는 실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랜딩된 새로운 사이트에서 또 한번의 회원가입이 필요했고 (...) 이런 문제들로 쌓인 일본 사이트와 한국 사이트 각각에 쌓이는 유저 데이터를 합치는 통합 작업 부터 해야하는 동시에 여기서 발생할 수 있는 해외법인 개인정보정책까지 고려해야했다.


한치 앞도 몰랐던 문제. 2

독립 어드민 + 한&일 통합 사이트를 만드려면 일본 유저들이 이용할 수 있는 커머스(결제수단 방법)를 따로 붙여야 하는데 이게 정말 내 발목을 계속 잡았다. 모든 경우의 수의 스펙을 생각해도 답이 없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런식이다

한&일 통합된 사이트에 일본 결제 수단 추가 → 국가별 결제 수단 노출로 인한 유저 혼란이 있을수 있으므로 국가 IP로 보여지는 화면을 다르게 해야함 → 그렇다면 제 3의 IP로 잡히는 경우는? ( 예: 일본유저가 미국에서 서비스 결제를 하려고 하면? ) → 뭐 어찌저찌 다르게 IP를 구분해서 인입되었다 해도 일본 커머스 수단을 한국 사이트에 붙이는데 여러 공수가 발생 (법인 설립/법인 계좌/정책 전면 수정) → 그럼 결제수단만 솔루션을 사용하는건? → 그건 독립몰이 아니자나 그럼.. + 그 외 여러 변수


당시의 로직들을 세세히 전부 다 밝힐 순 없지만 대충 저러한 상황들이 반복 되다보니 미칠 지경이였다. 경험이 풍부했던 시니어 테크리더와 거의 매일 미팅을 하며 논의했지만 데이터를 보존하는 동시에 커머스까지 가져갈 수 있는 마땅한 답이 도저히 나오질 않았다. (심지어 이 글을 쓰면서 혹시 지금은 해결했나 싶어 들어가보니 여전했다....)


정해진 듀데이가 다가왔지만 결국 뚜렷하게 사이트를 도려내지 못했고 반쪽짜리 이전만 겨우 완성시켜 QA를 하며 끝냈는데, 들인 리소스와 마음고생에 비해 매우 허접한 결과를 낳아 정말 자괴감이 많이 들었다.


매일밤_내모습.jpg


#몸이 그만하래

그러던 어느 날 일어나자마자 머리가 깨질 정도의 이명이 발생해 숨을 못쉴 정도로 괴로웠다. 이제껏 일을 하다보면 고막을 잠깐 맞은것 처럼 삐-익 하는 이명은 자주 있었지만 이렇게 호흡까지 멈출 정도의 심한 이명은 난생 처음이였다. 그때서야 겁이나 찾아간 이비인후과에서는 여기가 아닌 정신심리센터를 가라는 조언을 해주었고 그렇게 태어나 처음으로 심리상담을 받아보게 되었다.


심리상담을 받고 병원을 나오면서 알 수 없는 큰 허탈감을 느꼈지만 어떻게든 버텨보겠다고 몇일동안 휴가를 썼다. (회사에서도 정말 많은 양해를 해주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쉬는게 쉬는게 아니였다. 계속해서 슬렉(Slack)을 들락날락 거리고 혹시라도 무슨 문제라도 있을까봐 사이트를 계속 모니터링 하고 대쉬보드를 병적으로 확인하는 날 보고 진짜 크리티컬 한 문제는 사이트가 아니라, 지금 내 모습이라는 걸 깨달았다.


결국 몸과 정신이 지쳐 도피하듯 회사를 그만 두게 되었고, 그렇게 내 짧은 야매 PO경험도 시시하게 막을 내리게 되었다.






 Product Owver 책

#짧은 회고

PO를 달기 전 <Product Owner>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이 책에서 말하는 PO는 조직을 성공으로 이끄는 미니CEO, 혁신적이여야하고 유저와 회사 사이를 조율해야하며 양립해야되는 중심적인 직책이라고 설명한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런 PO가 되기 위해서는 개발에 대한 지식과 사업적인 두뇌도 분명 필요할테지만 가장 중요한 건 <경험>이라는 무기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현실은 지독하다. 책 처럼 1-2-3 의 순서대로 흘러가지 않고 쌩뚱맞은 1-8-5 등 스스로도 알 수 없는 순서들로 흘러간다.


그리고 이러한 여러 변수들과 조직들에서 생기는 갈등들은 책에 있는 지식이 아닌 경험에서 온 몸으로 맞아 생기는 지식을 기반으로 풀어 낼 수 있. 



PO를 맡게 되면서 내가 제일 많이 했던 일도 시니어들의 경험을 공유 받는 일이 였다. 전략팀 리더, 같은 글로벌 PO, 다른 팀 PO등 처음 보는 친구들한테도 티타임을 요청하며 그들의 흘러 온 시간들을 듣고자 하였지만 아무리 들어도 내가 겪어보지 못했기에 공감은 해도 이해는 하지 못했다.

 

그래서 구차하지만 나는 결국 이런 경험의 부재로 인해 야매 PO를 실패로 끝내지 않았나하고 생각해 본다. 누군가들은 이 글을 읽으며 직책에 대한 '실패'가 어디있냐고 의아해할수도 있을 것 같지만, 내가 스스로 실패라고 생각한 이유는 명확하다. 단 한번도 팀원에게 확실한 가이드를 제시 하지 못했고 내가 하는 모든말을 스스로 신뢰하지 못했다. 이유 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다만 실패로 인해 나는 내가 next level 넘어가기 위해 지금 나에게 필요한 부분들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정말 과분한, 지금으로써는 정말 감사한 경험이였다.






#그렇지만,

지금 또 이러한 기회가 온다면 과감히 넥스트로 미뤄버릴 것 같다. 아직도 나는 경험이 가진 데이터가 부족하기에.



그리고 나는 이번 경험으로 빠르고 높이 올라간다고 해서 꼭 자존감이 같이 올라가는 건 아니라는 것도 배웠다. 그렇기에 조급해 하지 않을 것이다.


내 스피드대로 시간이라는 귀중한 데이터를 양분 삼으며 언젠가 내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을 스스로 신뢰하며 팀원들에게 납득 시킬수 있는 그런 리더가 되도록 차근차근 가야지!



- 야매PO 경험기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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