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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WA Feb 19. 2022

야매 PO 경험기 - 1편

자존감 박살나던 시절의 기억 조각

나는 말 그대로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자)였다. 


기본적인 함수물론 루트가 들어간 문제는 단 한번도 제대로 풀어본 적 없는 그야말로 숫자와는 동떨어진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내 인생에 이과적인 모먼트는 절대로! 절 - 대로! 없을 줄 알았다.


그런 이과맹인 내가 전 회사에서 개발 오너(Product Owner) 라는 말도 안되는 직책을 맡게 되며 느낀 짧지만 강렬했던 야매 PO 경험기를 적어보고자 한다.


* 읽기전에 주의! 일반적인 회사의 PO가 아니였기 때문에 재미로만 가볍게 읽어주시길 :)


PO가_되었다고_들었을때_내_모습.jpg


먼저 가 살아온 삶이 '이과'는 제쳐두고 '개발'이라는 요소와조금의 접점도 는 걸 설명하기 위해, 나의 타임라인을 간단히 짚어보고한다.


어렸을 때 부터 난 패션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기 때문에 중학교 2학년때부터 예체능(미술)을 전공했고, 예체능 전공자들은 수학 성적이 필요 없기에 자연스레 수포자로 살게 되었다.


리고 그대로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켄조(KENZO) / 준야 와타나베 / 꼼데가르송 등의 자이너를 배출 해 낸 문화복장학원(文化服装学院)에 입학해서 졸업 한 뒤, 일본 패션 회사인 JUN GROUP 시작으로 패션에 대한 길 만을 쭉 걸어왔다.


한국에 귀국한 후로도 일본 경험을 무기로 일본 패션의 기획자 / 바이어 / 마케팅을 맡아 일해 왔는데 그냥 어느날 정말 문득, 새로울 거 없이 바쁜 이 일에 대해 심한 염증을 느꼈다.


바쁜데 한가한(?) 이상한 매너리즘에 빠 내 모습을 타파 해 보고자 '아예 패션과는 다른길을 가봐야지.' 하 충동적인 생각 일본어 말고는 나와 접점이 1도 없던 꽤 규모가 있는 스타트업의 일본 CXD(Customer Experience Developer)에 지원했고 합격했다.


그것이 모든 일의 시작이였다.



인생이란....


초반에는 너무 잘 아는 일본 시장의 CXD만 담당 하였기에 어려울 일 없이 여유로웠으나 점점 제공하고 있는 서비스의 일본어 퀄리티가 너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 원래 일을 굳이~굳이 찾아서 하는 성향도 한 몫 )


 그렇게 거슬리 서비스 상세 페이지를 다 뜯어 고치기 시작했고, 상세 페이지를 작업하다 보니 유저들이 이 페이지 더 유입 되면 좋겠다 싶어 랜딩 인덱스 배너를 작업하여 갈아끼웠다.


CRM도 그 전 회사에서 경험이 있었기에 콘텐츠 작업과 소구 메시지를 적어 유저들에게 발송했고 메시지의 클릭율을 높이기 위해 고민하다 보니 자연스레 콘텐츠에 주목하게 되어 소재 A/B테스트까지 리게 되었다.


회사에 충분한 리소스가 없어서 하게 된 것도 한 몫 했지만, 나날이 나아지는 서비스가 스스로 만족스러워 하다보니 어느순간 Paid / owned 광고까지 만들어 돌리는 마케터 역할도 하고 있었.


가만보면 스스로 무덤 파는 타입..


회사에서는 내가 하는 이런 여러 작업들로 서비스 퀄리티가 올라갔다고 판단했는지 원래 내 포지션인 CXD를 맡아서 해주는 사람을 다시 뽑았고, 나는 일본 사업 개발을 하는 BD(Business Developer)로 포지션이 바뀌게 되었다.


하지만 말이 BD지, 정말 없는 포지션 빼고 다 - 했다. ( 이 때 숨쉴 수 없이 바쁜 나를 보며 동료들은 우스갯 소리로 BD는 원래 Back에서 Da하는 '뒤에서 다하는' 사람이라고 내 어깨를 두드렸다. )



매일 야근하고 타고 가던 택시  /  회사에서 받은 뼈를 깎는 성장상 (..)


 BD를 하게 되면서 기본적으로 유저들의 유입이나 이탈을 트래킹 해야 했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대시보드와 데이터를 보기 시작했고, 보고 싶은 데이터를 자유롭게 추출하고 싶어 DA친구에게 리대시(쿼리)와 앰플리튜드를 배웠다. 


이렇게 추출되는 데이터를 보다보니 연스럽게 프로덕트 문제로 생기는 유저 이탈 해결하고자 개발팀에게 상황을 전달하게 되고 그러면서 발자들과 소통의 물꼬를 틀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가 개발자들과 소통한다고 해서 개발에 대해  아니였다. 살면서 파이썬의 '파'는 고사하고 HTML이 뭔지, 개발 언어가 몇 개인지 조차 몰랐기 때문에 수준 높은 개발 용어를 써 가며 내가 원하는 바를 설명 할 수 는 없었다.


그렇기에 문장 그대로 구구절절 하게 이 프로덕트가 수정되어야 하는 이유와 개선 되어야 하는 사항등을 노션과 슬렉에 마구잡이로 다닥다닥 적어 결해달라 들이밀었고 우리 서비스와 맞는지 아닌지도 모를 어디서 주워온 래퍼런스들 가져와 이유도 근거도 없이 무작정 '우리도 이거 해보면 어때!' 하는 식이였으니


지금 생각하면 개발자들에게 안맞은것만 해도 다행이다 (...)


그런 나와 같이 일해준 개발자 친구들아 고맙다.


어찌됐건 점점 더 개발자들과 소통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내 머리속에 있는 서비스에 대한 개선사항을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개발용어들을 공부기 시작했고 불쑥 '내가 대체 왜 이러고 있지?' 라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그 당시 회사 전체에 개발자들과 소통할 수 있는 포지션이 부족했던 것과 내가 이 포지션을 그만두면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 더 답답하고 힘들꺼라 생각했기 때문에 꾸역꾸역 일하는걸 멈추지 않았다. 


러던 어느 정말 갑작스럽게 회사로부터 PO를 맡으라는 통보(?)를 받게 되는데...



-  다음편에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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