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그러니까 내가 고3 때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프. 런. 코) 시즌1이 처음 방영되었을 때부터 매 시즌 챙겨 볼 정도로 나는 이 프로그램의 열정적인 팬이었다.
나중에는 코리아뿐만 아니라 프로젝트 런웨이 오리지널(미국) 판도 매 시즌 보며 하루 이틀 만에 옷을 뚝딱 만들어내는 디자이너들을 존경하며 보았고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의 저지 이소라가 디자이너들을 평가하기 전 꼭 하는
"진보한 디자인은 박수를 받지만, 진부한 디자인은 외면당합니다."
는 그 당시 내 인생의 디자인 모토였을 정도로 프로젝트 런웨이에 빠져있었다.
그리고 한 동안은 시즌들을 챙겨보지 못하다가 얼마 전 왓챠에 업데이트된 <프로젝트 런웨이 시즌18>을 발견하고 하루 만에 이번 시즌을 돌려 본 나는 그야말로 진보된 패션계를 보았다.
그때와 지금, 과연 무엇이 달라졌을까.
Project Runway season 18 Designer
'프로젝트 런웨이'는 옷을 좋아하고 만들 수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참가 가능하다. 참가한 디자이너들은 매 회 주어지는 독특한 미션들을 본인의 아이덴티티와 스타일을 듬뿍 넣어 정해진 재료값과 한정된 시간 안에 독창적이고 세련되지만 주제와 어울리는 옷을 만들어야 하고, 이 옷들을 모델들에게 입혀 미니 런웨이를 선보이면서 각 분야 저지들의 평가를 받아꼴등한 디자이너가 한 명씩 탈락하게 되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다.
최종 TOP 3인~4인이 되면 디자이너들은 약 10벌의 옷을 만들어 본인의 컬렉션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 컬렉션은 심사위원들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까지도 모두 초대하기 때문에 그야말로 본인의 패션쇼를 총괄하여( 런웨이 음악, 구성, 모델, 메이크업, 스타일링까지 전부! ) 선보여야 한다.
이 패션쇼로 최종 우승자를 가리게 되고 1위를 한 단 한 명의 디자이너는 나라별로 약간씩 다르지만 대부분 잡지사와의 계약과 본인 브랜드 론칭 기회 + 어마어마한 디자인 지원비 등 파격적인 베네핏을 제공받게 된다.
#1. 천재들의 브레인스토밍
일단 프로젝트 런웨이를 봐야 하는 이유 중 하나는 매 회 나오는 미션들이 정말 기상천외하기 때문에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다양한 천재들의 브레인스토밍을 거친 디자인들을 보는 재미가 있다.
지금은 복면가왕 디자이너로 일반인에게도 유명한 황재근 디자이너 또한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 우승자 출신인데, 그가 프런코 출연 당시 장난감 재료들을 이용해 만드는 룩 미션에서 공룡 뼈다귀 장난감들을 이어 붙여 만든 드레스는 아직까지도 내 기억에 남아 있을 정도로 센세이션 했던 작품 중 하나였다.
황재근 디자이너 / 장난감 재료 미션에서 선보인 공룡 장난감 조각 드레스
매번 보는 사람도 '이걸 어떻게 해!'하며 불가능에 가깝게 느껴지는 미션들을 크리에이티브한 아이디어로 마법같이 가능하게 만드는 디자이너들이 매 회 나오는데 안 볼 이유가 없다.
특히 미션마다 참가자들은 매번 앓는 소리를 하며 약한 소리를 해대는데 결국에는 하루 이틀 만에 멋들어진 의상들을 만들어 런웨이에 올리는 걸 보고 있자면 경의롭기 까지 하다.
#2. 진보하는 RUN WAY
이번 시즌을 보면서 제일 많이 든 생각은 런웨이가 더 이상 완벽한 비율의 모델들의 것이 아닌 정말 ANYBODY '누구나' 걸을 수 있는 곳이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프로젝트 런웨이의 초반-중반까지만 해도 참가자들의 옷을 입고 런웨이를 걷는 모델들은 전부 군살 하나 없이 완벽한 비율의 스키니 바디 모델들 뿐이었고 이게 보는 입장에서도 당연했다.
Project runway season 4 finale Show
나 또한 런웨이는 8등신의 길쭉 날씬한 모델들이 걷는 곳이라는 생각이 익숙하다 보니 오랜만에 본 시즌 18에서 다양한 몸매의 모델들을 보며 초반엔 매우 어색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미 완벽한 바디에는 어떤 패션을 입혀도 평타는 치는데 (괜히 패. 완. 몸이라는 말이 있는 게 아니다.) 굳이 선택받은 소수를 위한 패션을 만들 필요가 있을까?
찾아보니 이미 프로젝트 런웨이 미국에서는 중후반 시즌부터 다양한 체형의 모델들을 선보이기 시작했는데, 이 과정에서 프로젝트 런웨이가 던지는 진화된 메시지도 명확하게 보였다.
Project runway season 18 finale Show
휠체어를 타건, 사이즈가 크건, 의족을 했건 어떤 몸을 가지고 있어도 그것이 스타일리시한 옷을 입는 데에 대한 허들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진짜 잘 만든 옷이란내 몸을 있는 그 자체로 빛날 수 있게 하여 내가 나의 있는 그대로를 사랑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프로젝트 런웨이에서는 참가자들의 옷을 입고 걷는 모델들을 통해 아직 "진부한" 패션 사고를 가진 사람들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Love your self :)
#3. A to Z 디자이너들
누구나 런웨이에 설 수 있게 만든 만큼 참가자들 또한 더욱더 다양하게 구성되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시즌 18에서는 서툰 영어로 띄엄띄엄 말하는 다국적 디자이너들이 눈에 띄었다.
한국인 다영 / 무슬림 아즈마 / 몰도바 빅토리아
*일부 스포 주의*
특히 유일한 아시아인이자 나와 같은 한국인인 다영이 눈에 띄였는데, 항상 웃고 있는 스마일 페이스에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 참가자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디자이너였다. ( 다영은 경쟁 내내 건강문제로 여러 번 옷을 미완성할 뻔했는데, 그럴 때마다 참가자들이 나서서 다영을 도와주는 걸 보면 정말 두루두루 잘 지냈던 것 같다. )
다영은 여러 번 우승 후보까지 올라갈 정도로 실력이 있었지만 건강 문제로 중도 하차하게 되어 매우 아쉬웠다. 하지만 오로지 실력으로 글로벌리 하게 진출한 모습은 정말, 너무 멋있었다..♥
무슬림인 아즈마는 본인의 교리가 있어 노출이 있는 옷을 절대 만들지 않지만, 노출이 없어도 화려하고 특색 있는 옷을 잘 만들어왔던 것 같다. 시즌에서는 매우 빨리 탈락하게 되어 그녀의 실력을 제대로 보긴 힘들었지만 짧은 영상에서도 무슬림 여성인 본인 그대로의 개성을 드러내는 모습이 좋았다.
마지막으로 몰도바 출신 빅토리아는 개인적으로 보는 내내 정말 여성들이 입고 싶은 옷을 잘 만드는 디자이너라고 생각했다. 영어를 잘하지 못해서 "쉬어원단(비치는 시스루 원단)"미션에서 이해를 못 하고 멘탈이 한번 터지지만, 특유의 세련된 감각과 본인의 확고한 디자인을 잘 녹여 결국 TOP4까지 진출하여 본인의 패션쇼까지 선보이게 되는, 계속 응원하게 되는 디자이너였다.
이렇듯 영어를 잘하지 못해도 어떤 교리를 가지고 있어도 인종이 무엇이라도 누구든 참가하여 옷을 만들 수 있고 , 우승에 대해 꿈꿀 수 있게 하는 걸 보면서 나는 이 패션계가 정말 진보되어 간다고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