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년 만에 다시 가본다.
1992년 7월 30일 이후 2025년 4월 7일에 다시 가본다.
여러 가지 감정과 머릿속 추술림으로 이제야 글자를 배설하게 됐다. 현재가 변했다는 것을 아는 것은 그때 그 장소를 기억하고 비교해서 하는 건데, 그때 그 기억이 거의 없어서 뭐가 변했다고 말할 수 없다.
까까머리의 7월은 너무 더웠고 연병장에서 보이는 부모님, 이모/이모부님, 친구 모습은 뜨거운 햇빛에 흐릿했고 목마름의 갈증은 한 뭉터기 인원이 쏟아져 들어간 목욕탕 물을 머리에 쏟아부으면서 마시는 오아시스가 돼버렸고 기관병의 욕소리에 대한 대답 소리, 아수라장였다
그때 내 기억의 밑천이 없었서 둘째 아들에게 연무 IC 근처의 벚꽃 나무들, 신병 입소대 주변 풍경들 - 훈련병 입소 물품 파는 좌판. 5월 수료식 때 지방 방문자용 펜션 예약 지라시/ 교회 지라시를 돌리는 알바 사람들. 교통정리 봉사자들/훈련소 기간병들- 을 기억하게 하려고 여기저기를 떠들어 됐다. 옆에 아내는 며칠 전부터, 아니 둘째 애가 신병 검사를 받은 후부터 점점 슬픈 분위기 상승 곡선이다. 핸드폰과 무선 이어폰을 꽂은 뒷 따르는 둘째 애는 여러 가지 사전 준비물을 담은 배낭을 둘러매고 얽히고 짬뽕된 기분일 것으로 보이고, 여하튼 사열대와 나란한 곳에 그렇게 앉았다. 핸드폰/무선 이어폰, 훈련병과 낯선 어울림에 맞물려 둘째 애는 놓친 생각이 떠오르는가 보다.
아 차 핸드폰 요금제를 군인 요금제로 바꿔야 하는데....
그래? 통신사 대리점 여기로 전화해 봐.
여보세요? 오늘 훈련병 입소인데, 요금제를 변경하려고요. 아 네. 방문해야 한다고요. 방문해야 한데.
그래? 우리가 가서 변경해 놓을게.
그리고 약간의 공지 소리들, 이후에
연병장으로 나가는 아들과 포옹하면서 울컥한 나의 울렁증, 옆에서 소리 없는 아우성과 눈물을 훔쳐 되는 아내, 엄마의 포옹으로 더 높아진 아우성과 눈물들, 당사자 둘째 애의 얼굴과 감정들은 보이지가 않았다. 내가 놓친 뭔가를 둘째 애가 알고 가지고 있기를 바라면서 연병장으로 가는 둘째 애를 바라본다.
우르르 모여든 까까머리들만 1863명. 둘째 애를 찾는 우리의 시선. 놓치지 않으려는 우리의 손 흔듬. 되돌아오는 가끔의 둘째 애 손 흔듬. 우리의 또 다른 울컥 울렁증. 아내의 더 많은 조용한 아우성과 눈물들. 같은 장소인지는 모르겠지만 33년 만에 양쪽의 경험을 받아들인다.
햇 군기든 까까머리들이 거수 경례하면서 충성을 몇 차례 하면서, 뒤돌아가면서 둘째 애가 우리와 시선이 만났다. 몸 건강 해야 한다를, 잘하지도 못하지도 중간만 하라는 얘기를 여러 번 얘기했지만 또 한 번 하려는 민간인들은 모두 나가라고 다구 친다. 한 번이라도 더 찾아보려고 해도 모두 까까머리다. 저기 어딘가에 있겠지.
33년이 지났고 아마도 더 많은 시간이 지나도 같은 게 있다.
손 흔듦. 울컥. 울렁증. 소리 없는 아우성. 눈물. 시선. 사랑.
또 있겠지, 무언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