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초들을 주목했던 MBC의 프로그램들을 찾아서
감초, 어디에서 빠져서는 안 되고 꼭 있어야 하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예로부터 전수되는 감초의 효능이란, 본디 작품의 맛을 더하고 시청자의 오감을 사로잡으며 건강한 웃음과 감동으로 기력을 보충해주는 것이다. 감초는 그 생명력이 강해 약육강식의 정글 같은 예능에서도, 인간의 삶이 잔뜩 묻어난 드라마에서도, 매 순간이 긴장의 연속인 방송 생활에서도 잘 살아남는다. 아니, 살아남는 수준을 넘어 뿌리를 내리고 그 영역을 접수해간다. 어디에나 있어 상대적으로 주목도, 인정도 받기 어렵지만, 반드시 있어야 하고 결국에는 그것만의 결실과 매력을 싹 틔우는 것. 이것이 바로 감초렷다.
그러나 더 이상 ‘감초’라는 표현이 무의미해지고, 감초가 주인공이 되는 세상이 도래하고 있다. 우리는 만년 2등, 조연, 감초라고 하면 어쩐지 주인공에 가려져 그림자가 길게 늘어진 존재 혹은 항상 시기 질투와 불안, 경쟁심에 사로잡힌 대상을 떠올린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었고, 위와 같은 부가 설명은 구식의 말이 되었다. 영원한 1등은 존재하지 않듯이 이제는 영원한 주인공 혹은 영원한 감초는 없다. 감초의 영향력과 매력이 한층 짙어지면서 조연과 주연 구분 자체가 모호해졌고, 하나의 작품에서 강렬한 인식을 남기고 많은 팬을 확보하는 것은 오히려 조연의 몫이 되었다. 서러움의 대상이던 감초들이 주인공이 되는, 감초들의 반란과 도발이 시작된 것이다.
우아한 백조의 유영 아래로는 힘차고 절실하게 물장구치는 발이 있다. 이처럼 빛나는 스타들을 뒷받침하는 보이지 않는 감초들이 있는데, 이런 감초의 역할과 성장을 조명했던 대표 프로그램이 바로 전지적 참견 시점이다. 매니저라는 직업은 일정 조율부터 아티스트 관리, 회사와의 소통, 홍보 전략 제시 등 눈코 틀 새 없이 바쁘지만, 어쩐지 팬들의 예쁨보다 미움을 사기 쉬운 직업이다. 이름도, 얼굴도 잘 알려지지 않는 이 직업과 그 삶을 매력 있게 그려낸 프로그램이 <전지적 참견 시점>이었다. 프로그램 초반만 해도 일반인을 방송의 소재로 활용했을 때 과연 사람들이 보겠는가 여러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지만,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우리는 사회 초년생으로 구슬땀을 흘려가며 매니저 업무에 적응하던 청춘을 응원했고, 정직하고 맛있는 먹방을 즐겼으며, 매니저와 아티스트 간의 인간다운 정에 감동하고 그들 자체의 선함을 주목했다. 이 과정에서 감초는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받아 그들의 삶과 방송에서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한편, 최근 들어 방송의 초점이 ‘매니저 혹은 스타와 매니저의 관계성’에서 ‘스타의 일상’으로 옮겨가며 보통의 관찰형 예능으로 정착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본능적으로 엘리베이터에 둘이 타면 괜히 긴장하게 되는 외모의 소유자들.
하지만, 알고 보면 노래 하나에, 문장 하나에 울컥해 눈물을 훔치는 여린 꽃사슴 같은 남자들.
이 남자들이 모여 아카펠라에 도전했다. 이 프로그램이야말로 감초들을 발견하고 그들이 주인공이 되는 모습을 담고 있다. 누군가는 맡아야 하는 악역을 주저 없이 자처한 사람들(사실은 자처했다기보다 역할들이 딸려왔다고 표현함이 더 자연스러운 사람들)이 모여 귀여움을 발산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그 아이러니함이 큰 웃음으로 다가온다. 뭐라 할까 시꺼먼 형들이 아기 상어를 목청 높여 부르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꼬순내 나는 강아지의 발 향기를 맡는 기분이다. 꿉꿉한데 귀엽고 행복함이 더 크게 묻어나는 느낌. 최선을 다해 사랑하는 연기 활동을 하고 꿈에 다가가도 이름 석 자보다 연쇄살인마, 사기꾼이라는 수식어가 익숙해져야 하는 건 감사긴 하나 아쉬운 일이다. 작품 속에서 항상 뒤처지고 구르고, 어둠과 가까워야 했던 사람들이 주인공이 되어 노래로 작품을 만들어가고 감성과 눈물에 솔직해지는 모습을 담아낸 점에 진정으로 숨은 진주를 발견했다고 할 수 있다. 감초가 아닌 주인공으로, 그들의 이름과 순한 맛 매력을 기억해주시길 바란다.
육아는 부부가 마땅히 함께해야 하는 것이고, 이때 육아의 주연과 조연을 분리하는 것은 꽤 위험한 일이다. 그러나 과거부터 모성을 강조하는 드라마 및 예능이 대거 등장했고, 이 과정에서 아버지로서의 역할과 교육이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결국 주인공이 되어야 할 아버지의 역할이 마치 감초처럼 부수적인 위치를 얻었는데, 이러한 과오를 되잡고 다시금 감초를 주인공으로 격상시킨 프로그램이 바로 <물 건너온 아빠들>이다. 제 몸 하나 건사하기도 벅찬 타지에서 외국인으로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아빠들은 각자만의 교육철학을 보이며 아이들을 교육했고, 오히려 한국사회에 뿌리내린 ‘아빠는 육아에 서툴다. 혹은 엄격해야 한다'와 같은 통념을 깨고 새로운 관점의 교육방식을 제공했다. 여기에 더해서 패널들과 건강한 토론을 진행하면서 뒤로 빠져있던 아버지의 육아를 가져왔다는 점에서 상당히 차별성을 보인다. 한국의 교육열은 점점 높아지고 있고, 이런 시류에 맞게 양육, 부모 교육과 관련된 프로그램도 쏟아지고 있다. 어쩐지 자극적이고 강렬한 문제 상황을 필두로 해법 제시하던 기존의 호흡에서 벗어나 육아 지침으로 삼을 만한, 힐링되고 선한 내용을 전달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 프로그램이다.
어떤 풀이 감초가 될지 명초가 될지는 시대와 관점에 따라 달라진다.
결국 각자가 자신만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인지하면서도 비교적 놓치기 쉬운, 소담스러운 사람들의 노력과 길목도 애정으로 살피면 어떻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