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아침. 노트북과 노트 한 권을 챙겨 들고 여느 때처럼 스타벅스로 향한다.
원래 나는 한여름에도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즐겨마시는 편이었는데, 유난히도 더웠던 올여름엔 예외적으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줄기차게 마셔댔다.
오늘 같은 날씨 정도면 따뜻한 커피를 마셔도 될 법한데, 나도 모르게 또 아아를 주문해 버리고 말았다.
다시 주문을 하려다 직원도 번거로울 것 같고, 나도 귀찮기도 해서 그냥 얼음 가득한 커피를 받아 들고 이층으로 올라왔다.
오늘도 역시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스타벅스는 이른 아침이건 늦은 저녁시간이건 사람이 없는 때가 잘 없다.
그럼에도 번잡한 시내 중심가가 아닌 이상, 어느 수준 이상의 소음도 없고 흘러나오는 음악은 적당히 잔잔하고 내가 앉은 의자는 적당히 편안하다.
그야말로 글쓰기에는 딱 좋은 환경이 아닐 수 없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아메리카노를 마실 때면 꼭 달달한 것을 곁들여 먹는 습관이 있는 내가 오늘 선택한 것은 바로 바닐라 마카롱.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냥 뽀얀 크림빛에 끌렸을 뿐.
먼저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쭉 들이키고 나서 마카롱을 살짝 베어무는 순간 눈이 번쩍 뜨이고 만다.
아... 너무 맛있잖아......!
입 안 가득 특유의 씁쓸함이 퍼지고 난 뒤 곧 혀 끝에 살살 감도는 달콤함이라니...... 도저히 이 커피와 빵의 조합은 멀리하려야 멀리할 수가 없다.
일단 카페인과 설탕으로 뇌를 각성시켰으니 이제 본연의 일에 집중해야지......
아무것도 채워지지 않은 흰 화면을 잠시 노려보다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들을 한 자 한 자 써 내려가기 시작한다.
글 한 편을 완성하는 동안 썼다 지웠다, 썼다 지웠다를 몇 번이나 반복하는지 모른다.
중간중간 머리칼을 쥐어 뜯기도 하고, 턱을 괴고 잠시 멍을 때리기도 하고, 괜히 전에 썼던 글들을 다시 찾아보기도 하는 등 부단히 딴짓도 많이 한다.
창작의 고통이란 걸 절실히 체감하고 있는 요즘이다.
새로운 소설을 쓰면서 가장 어려운 점은 스토리가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첫 소설을 쓸 때는 내 안에 '영감'이란 분이 수시로 찾아왔었다.
어느 날 꿈에 잘생긴 선비 하나가 나왔는데, 꿈을 깨고 난 뒤에도 그 선비의 지고지순한 사랑이 여운처럼 남아 처음으로 소설이란 걸 쓰기 시작했다.
운전하다가도 주인공의 대사가 불쑥 떠오르고, 밥을 먹다가도 갑자기 스토리가 그려지고, 노래를 들으면 감수성이 폭발해서 마치 신들린 것처럼 글을 쭉쭉 써 내려갔다.
물론 그때도 중간중간 스토리가 막히긴 했지만 그래도 두 달 여만에 90편이 넘는 글을 완성하는 기염을 토해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뒤로는 도저히 소설을 쓸 수가 없다는 거였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지역에 여행까지 다녀오고 나서 새롭게 도전한 두 번째 소설은 결국 스토리가 떠오르지 않아 잠시 휴재상태.
지금 새로운 소재로 세 번째 소설을 쓰고는 있는데, 아직 글 초반인데도 불구하고 벌써 스토리가 막히기 시작했다.
뭐가 문제일까......? 뭔가 떠올라야 소설을 쓸 텐데, 도저히 뭘 써야 할지를 모르겠다.
첫 시작은 너무 마음에 들어서 계속 쓰고는 싶은데, 스토리가 안 나오니 글을 쓰기가 너무 힘이 든다.
결국 소설 쓰기를 잠시 멈추고 이렇게 글이 안 써진다는 푸념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고 있다.
어떤 때는 한 번에 3천 자가 넘는 분량이 술술 써질 때가 있는데, 그럴 때는 진짜 내 안에 또 다른 내가 살고 있는 듯한 기분마저 든다.
그래서 요즘 내가 가장 만나고 싶은 것은 그 어떤 잘생긴 남자배우도 아닌, 바로 내 안 어딘가에 살고 있을 그분이다.
아무리 기다려도 오질 않으니 결국 내가 먼저 그분을 애타게 불러보기로 한다.
최대한 불쌍하게, 최대한 간절하게... 그래서 막 도와주고 싶은 생각이 절로 들게끔......
일단 목청부터 가다듬고... 아아!
저기요, '영감'님... 거기 있는 거 다 아니까 이제 그만 나와봐요...... 저 지금 힘들어 죽겠다니까요...... 잠깐이라도 좋으니까 좀 왔다 가시라고요, 제발...... 네?
숨을 죽이고 한참을 기다려봐도 감감무소식이다.
이런... 망했다...... 오늘도 그분은 나타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이판사판이다. 어떻게든 자력으로 해결해 보는 수밖에......
커피도 그란데 사이즈로 마셨겠다, 당충전도 했겠다 글 쓸 준비는 충분히 마쳤다.
심호흡을 하고 다시 한번 노트북의 빈 화면에 집중을 해본다.
모든 글 쓰는 사람들이 불치병처럼 달고 산다는 '내글구려병'도 무섭지만 내 글이 구린 것도 일단 뭘 써야 가능한 것 아닌가......
지금 나는 '글안써져병'을 심하게 앓고 있는 중이다.
늘 느끼는 거지만 소설이란 너... 참 쓰기 어렵다.
#소설도 쓰기 어렵지만 에세이도 만만치 않다. 잠시 끄적인다는 게 반나절을 다 잡아먹어버렸다. 결국... 글쓰기는 다 어렵다는 당연한 사실을 깨닫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