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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잎새 Oct 27. 2024

때로는 지나침이 아니함만 못하지 아니한가

 과유불급(及). 딱 나를 두고 하는 말 같다.


 최근에 에니어그램 테스트를 한 일이 있는데 결과지를 가득 채운 붉은색과 푸른색 컬러의 향연을 보고 깜짝 놀랐다. 테스트를 해 준 동료 직원도 이런 컬러는 참으로 드문데 하며 신기해했다. (다른 직종에서는 이런 컬러가 많을 수도 있는데 적어도 내가 근무하는 곳에서는 보기 힘든 유형이다. 참고로 나는 교육행정직 공무원이라 학교에서 근무 중이다. )



에니어그램 테스트 결과지



 전반적으로 모든 에너지가 높게 나온 나는 기준이 높아 치열한 삶을 살고 있다고 했다. 맞는 말인 것 같았다. 기질적으로 끊임없이 부족함에 초점을 두기 때문에 그로 인한 스트레스도 크다고 했다. 이 또한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대목이었다. 이쯤 되니 재미로 테스트가 나란 사람을 돌아보게 하는 심오한 철학으로 이어졌다.


 나는 태생적으로 피가 뜨겁고 열정이 많은 사람이다. 호기심이 많고 새로운 곳에 가는 것을 좋아하며 단순 반복적인 일을 가장 힘들어한다. 그리고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일단 과감하게 도전하고 보는 편이다. 물론 매사에 그런 것은 아니다. 당연히 내가 좋아하고 흥미를 가진 일에 대해서만 그렇다.(아이러니하게도 어쩌다 보니 적성과 가장 맞지 않는 직업을 갖게 되었다.)


 어찌 된 게 나이를 먹어도 어릴 때처럼 먹고 싶은 것도 많고 배우고 싶은 것도 많고 가보고 싶은 곳도 많은지 나조차도 신기할 따름이다. 생각해 보니 어릴 '하고잡이'란 소리를 많이 들었던 같다. 친구들은 점점 나이가 드니 몸이 안 따라줘서 뭘 못하겠다는 데 나는 적어도 그런 일은 없다. 체력도 좋은 편이고 때로는 하고자 하는 의지가 육체의 피로함까지 이겨버리곤 한다. 몸이 아파서 무언가를 중단하거나 하지 못했던 적은 별로 없었다.


 여기까지만 보면 이런 성격이 장점이 많아 보이지만 나는 때때로 나 스스로가 과하다고 느낄  때가 있다. 아니, 예전엔 훨씬 자주 그랬다. 과거에는 지금보다 훨씬 역동적으로 움직였으니까.


 최근에 소설을 쓰면서 마냥 영감이 안 떠올라서 글이 써지지 않는다고만 생각했다. 혹은 내가 준비가 덜 돼서 그런 거라고 치부하기도 했다. 거기다 건강까지 핑계 삼으니 띄엄띄엄 글을 쓰는 것에 대한 타당한 이유가 모두 갖추어졌다.  


 그러다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이러다 아예 뒤편을 쓸 수 없을 것 같다는 불안감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미 한 번 휴재를 경험했는데 또 한 번 글을 중단하면 연재중단 작가라는 낙인이 찍힐 것만 같아 두려웠다.


 어떻게든 뒷이야기를 써야겠다는 생각에 노트북을 꺼내 들었지만 몇 문장 쓰지도 못하고 지우고 고치기만을 반복하고 있었다. 아무리 해도 어딘가가 마음에 들지 않았고 최근에 올린 회차들도 영 엉성하게만 느껴졌다.


  도저히 글을 쓸 자신이 없어 한숨만 내쉬다가 조회수가 높은 다른 작가들의 글을 읽기 시작했다. 도대체 이 사람들은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쓰고 있길래 독자들이 이렇게 많이 읽어주는 걸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글을 읽어 내려갔다.


 처음에는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계속 읽다 보니 어? 어딘가 좀 매끄럽지 않은 부분이 있네... 그런데 그게 크게 거슬리지는 않았다. 주인공들의 행동이 좀 이해가 가지 않을 때도 있었고 뭔가 몰입이 되지 않는 부분도 분명히 존재했다. 내 글에서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느낀 것들이 다른 소설들에서도 똑같이 나타나고 있었다. 그럼에도 다음 이야기가 무리 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순간 나는 크게 깨달았다. 내 소설이 자꾸 흐름이 막혔던 가장 큰 이유는 내가 너무 디테일에 집착하고 있었기 때문이란 것을. 소설이란 게 일단 스토리가 나가야 하는 데 문장 하나하나, 등장인물의 심리, 장면묘사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으니 가장 중요한 스토리가 진행되지 못하고 있었다.


 제대로 된 준비를 갖추고 작품에 임하는 것은 다음 소설부터 할 일이고, 일단 완결을 내려면 쓰고 봐야 하는 데 써놓고도 마음에 들지가 않으니 도무지 뒷이야기를 끌어나갈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 사실을 알고 나니 글을 쓸 때 조금 어깨에 힘을 빼고 가볍게 임할 수가 있었다. 너무 잘 쓰지 않아도 괜찮아. 일단은 큰 틀에서 스토리를 들려주는 것에 초점을 맞추자. 웹소설 독자들은 작가가 무슨 이야기를 들려줄지가 궁금한 것이지 여기서 뭔가 대단한 글솜씨를 기대하는 게 아니야......


 4,500여 자를 쓰는 데 퇴고까지 하면 적어도 8시간, 때로는 그보다 훨씬 더 걸리기도 하는 데 마음을 비우고 쓰게 되니 1,500자를 쓰고 제 자리 걸음만 하던 원고가 순식간에 분량이 채워지게 되었다. 원래라면 다 써놓고도 읽기를 수십 번 반복하느라 늦어졌을 업로드가 오타만 확인하고 그냥 과감하게 버튼을 클릭해 버렸다.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생각해 보면 언제나 너무 잘하려고 해서 일을 그르친 적이 많았다. 그냥 힘을 빼고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보여주면 되는데, 실수하기 싫어서 더 잘하고 싶어서 신경 쓰다 보니 과긴장 상태가 되어서 결국 실력의 반의 반도 보여주지 못한 일이 더러 있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자책으로 인해 심한 무대공포증까지 앓게 되었다.(한때 외국어를 너무 좋아해서 중국어, 영어, 일본어까지 했지만 결국 사람 앞에서 발표하는 일이 힘들어 동시통역사나 외교관의 꿈은 포기하게 되었다.)


 타고난 성격인지라 아무리 고치려고 해도 나는 다시금 또 무언가를 과하게 잘하려고 애쓰고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스스로에게 실망하고 스트레스를 받을 게 뻔하다. 그러니 절대 그러지 않겠다는 결심보단 과함을 조금씩 덜어내는 연습을 하려고 한다.


 때로는 지나친 것이 아니함만 못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적당히'의 힘도 적당히 빌릴 줄 아는 내가 되고 싶다.


 #에니어그램... 사람마다 다르게 느낄 수도 있긴 하지만 내 경우엔 허걱 싶을 만큼 정확한 분석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아직 안 해보신 분들은 재미 삼아 한 번 해보시길 추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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