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웹소설을 제대로 읽기 시작한 게 언제부터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는다. 하지만 내가 처음 웹소설을 접했을 때는 지금보다는 웹소설을 쓰는 작가들이 많지 않았고 시장 규모도 훨씬 적었던 것 같다. 나는 중, 고등학생 때 워낙 순정만화를 많이 봐서 그런지 웹소설 장르 중에서도 로맨스물은 처음부터 거부감 없이 잘 볼 수 있었다. 그렇다고 종이책도 내가 연애물을 좋아하느냐 하면 전혀 그렇지는 않다. 나는 역사와 추리 소설, 에세이, 고전 문학을 좋아하고 즐겨 읽는다. 예전엔 거의 순수문학밖에 읽지 않다가 최근엔 자기 계발, 경제, 과학 서적 등까지 골고루 읽으려고 노력하는 편이고 재미도 느끼고 있다.
내가 아는 분들 중에는 종이책은 많이 읽지만 웹소설 하면 일단 거부감부터 느끼시는 분들이 많다. 이해할 수 있다. 웹소설을 즐겨 읽는 나조차도 제목과 소개글에서부터 벌써 마음이 안드로메다로 날아가버리는 글들이 많으니까.(하지만 웹소설의 특성상 초기 독자유입을 위해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긴 하다.) 내용 또한 아무래도 흥미 위주로 된 것이 많다 보니 그런 류의 글을 좋아하지 않는 분들에게는 진입 장벽이 높을 수밖에 없다. 읽어 보지도 않았는데 재미있고 없고는 당연히 논할 수조차 없는 문제고.
하지만 웹소설 안에서도 당연히 좋은 글들은 존재한다. 문장 성분 간의 호응은 기본이고 절로 감탄이 나올 만한 수사법에 술술 읽히는 가독성까지 갖춘 웹소설은 앞에 몇 문장만 읽어 봐도 바로 표가 난다. 아니, 그런 글들은 이미 작품 소개에서부터 남다른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나는 수없이 쏟아져 나오는 웹소설 중에서도 그런 소설들을 잘 찾아낸다. 그리고 그런 소설들은 대부분 필력도 좋고 재미있는 경우가 많다. 출판사 관계자분들의 눈도 비슷한지 내가 속으로 점찍어둔 웹소설들은 연재 중 출판제의가 들어오는 것을 심심찮게 봤다.
웹소설의 장점은 언제 어디서나 가볍고 편한 마음으로 재미있는 글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유용한 정보나 대단한 삶의 성찰이나 훌륭한 교훈은 없을지 몰라도 적어도 감성만큼은 촉촉이 적셔준다. 그런 면에서 웹소설은 드라마와 비슷한 것도 같다. 그래서 웹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드라마가 많이 만들어지는 것 같고. 그리고 작가가 인생을 바라보는 시선이 나와 일치할 때, 웹소설 안에서 나오는 대사 하나하나에 마음이 움직이고 감동을 받기도 한다. 또한 깜짝 놀랄 만큼 매력적인 캐릭터가 등장하는 웹소설을 읽을 때는 여고생처럼 한없이 마음이 부풀어 오른다. 가슴 절절한 이야기가 나올 때는 저릿한 심장 통증을 느끼기도 하고 코끝이 시큰거리기도 한다. 아무튼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나는 종이책만큼이나 웹소설을 좋아하고 자주 읽는다.
그렇게 몇 년을 웹소설 독자로만 살아오다가 작년 12월, N사의 공모전을 계기로 직접 웹소설을 쓰는 사람이 되었다. 나도 내가 웹소설을 쓰게 될 거라곤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워낙 책을 좋아해서 예전에 막연히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꾼 적은 있었지만 그때도 소설을 쓰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오히려 독서감상문이나 여행기 또는 일상을 다룬 에세이를 쓰면 썼지, 소설은 그야말로 내겐 미지의 세계였다.
처음 시작은 그냥 가벼운 마음이었다. 웹소설을 읽다 보니 재미가 있었고 나도 한 번 써볼까 싶어서 블로그에 몇 줄을 끄적거리기 시작했다. 어? 그런데 이게 되네... 허구의 스토리가 줄줄 써지는 거였다. 시놉시스 그런 건 존재하는지도 모를 때였다. 원래 역사를 좋아했고 공무원 수험 공부를 하면서 한국사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되어 자연스럽게 사극 로맨스라는 장르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효명세자가 살던 시대를 배경으로 녹여낸 뒤 웹소설답게 그의 여동생인 명온공주와 세자익위사의 사랑을 중점적으로 다룬 소설을 쓰고자 했다. 하지만 쉽게 시작한 일은 그만두는 것도 쉬웠다. 3, 4편을 쓰고 난 뒤로는 더 이상 쓸 거리도 생각나지 않아서 내가 소설을 썼다는 사실조차 잊은 채 블로그에 묻어만 두고 그냥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러다 깨어난 뒤에도 도저히 잊혀지지 않는 여운을 남긴 꿈 하나 때문에 다시 소설을 써 볼 마음을 먹게 되었다. 그리고 이번엔 전과 달리 공모전 참가를 목표로 제대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웹소설을 써 본 경험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조회수와 관심수에 연연해야 했고, 끝도 없이 다른 작가들(인기작가)과 비교하며 좌절을 맛봐야만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루에 한 편은 올려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퇴근 후의 내 일상이 거의 없는 시간을 보내곤 했다. 소설을 완성시키는 동안 정말로 치열한 삶을 살았다. 평생 그렇게까지 무언가를 열심히 해본 적이 없었는데 내가 좋아하는 일이다 보니 죽어라고 매달렸던 것 같다. 그 노력 덕분인지 나는 운 좋게도 처음 쓴 소설이 베스트리그에 오르는 쾌거를 이루었다.
생초짜가 그 많은 소설들 속에서 베스트리그에 오르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기에 처음 한동안은 진짜 내가 뭐라도 된 줄 알았다. 출판사에서 먼저 제의가 오기를 기대했고 차기작을 쓰면 알아서 독자들이 붙을 거라고 착각했다. 그리고 그게 얼마나 허황된 생각이었는지는 차기작을 올리고 난 뒤에야 처절히 깨닫게 되었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맨땅에 헤딩하듯이 그냥 글부터 올리고 본 나는 생각보다 붙지 않는 독자수에 당황했고 점점 스토리가 막히자 더 이상 글을 올릴 수가 없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아야만 했다. 그랬다. 나는 초심자의 행운에 들뜬 나머지 그냥 글만 쓰면 저절로 웹소설 작가로 성공할 수 있을 거라는 말도 안 되는 꿈을 꾸고 있었던 것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최근까지도 나의 문제점이 정확히 무엇인지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단순히 아직 내가 글 쓰는 솜씨가 부족해서, 내 글이 재미가 없어서, 내가 쓰는 스토리가 독자들이나 출판사의 취향이 아니라 서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브런치에서 웹소설에 대해 다룬 작가님(너무 멋진 분이셨다.)의 글을 읽으면서, 웹소설 작가들의 카페에서 유용한 팁과 노하우를 읽으면서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내 준비가 너무 부족했었단 사실을!
출판사와 계약을 한 정식작가들은 사전준비부터 나와는 철저히 달랐다. 시놉시스와 자료수집은 기본이고 캐릭터특징, 인물관계도, 심지어 유행하는 의상과 음식들까지도 정리를 해놓은 분들이 있었다. 물론 그중에는 나처럼 지름작을 쓰시는 분들도 있지만 그런 경우는 작품을 많이 써 본 기성작가들이지 경험도 없는데 나처럼 이렇게 영감만으로 글을 쓰다가는 중간에 스토리가 막히기 딱 십상이었다. 그 당연하고도 중요한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나니 무기 하나 없이 전쟁터에 뛰어든 기분이었다. 이미 공모전에 당당하게 참가하고 있는 내 소설이 지금 보니 잘 차려입은 사람들 속에서 혼자 헐벗고 있는 것 같아 너무 부끄럽기만 했다.
나는 도대체 뭘 믿고 이렇게 겁도 없이 몇 편 쓰지도 않은 소설을 덜컥 올리고 봤던 걸까? 매일매일 다음 편은 어떻게 쓰지 이 걱정에 입맛도 없고 잠도 잘 오지 않는다. 할 수만 있다면 다 지우고 제대로 갖춰서 하나하나 다시 올리고 싶은 심정이다. 이렇게 부족한 글인데도 꾸준히 읽어주시는 독자분들을 보면 정말로 감사하기도 하고 죄송하기도 하고...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금은 공모전 성적이나 랭킹보다는 그냥 한 편을 무사히 완결만 냈으면 좋겠다는 마음만 간절하다.
지금 웹소설 시장은 이미 레드오션이 된 지 제법 되었다. 게다가 사람들은 종이책뿐만 아니라 웹소설에 있는 활자들도 점점 읽기를 꺼려하는 추세다. 남성향 소설은 그나마 시장성이 있긴 한데 일반 로맨스 소설은 전과 비교할 때 독자층이 많이 줄어든 것이 사실이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읽는 사람이 없는 글을 쓰는 것만큼 힘 빠지는 일도 없다. 그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내 소설이 잘될 확률이 얼마나 희박한지도 잘 알고 있다. 장시간 의자에 앉아 있어 어깨결림도 너무 심하고 원래 좋지 않은 허리 통증도 심상치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웹소설 쓰는 것을 멈추고 싶지는 않다. 나중에 글을 더 쓰다 보면 웹소설이 아닌 다른 일반 문학에도 도전해 볼 수도 있겠지만 지금 당장은 웹소설이라는 장르에서 성공을 거두고 싶다. 왜냐하면 내가 웹소설을 읽으며 재미를 느끼고 있고 그 재미있는 것을 직접 해보고 싶기 때문이다. 이미 시작해 버린 것은 어떻게 할 수가 없으니 최선을 다해 완결까지 가보고 그다음 작품부터는 나도 제대로 된 준비란 것을 통해 글을 써봐야겠다. 시리즈에디션에 정식연재를 할 수 있을 만한 그런 글을 쓰고 싶고, 출판사 관계자들의 눈에도 띌 만한 그런 소설을 쓰고 싶다.
세상을 살다 보니 재능도 운도 중요하지만 결국에는 끝까지 버티는 힘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포기하지 않고 그것을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정말로 그것을 이루고 있을 때가 많았다.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새롭게 도전한 웹소설 작가라는 길을 가는 것이다. 정말로 하고 싶기 때문에 시작한 일이고 그것이 내가 웹소설을 쓰고 있는 이유다.
사설이지만 브런치에는 참으로 글을 잘 쓰시는 작가님들이 많다. 웹소설을 쓰다가 작가님들의 글을 읽으며 자극도 받고 힐링도 되고 여러모로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소설을 완결내고 나면 천천히 여유를 가지고 다른 작가님들의 글을 읽어 볼 생각이다. 하지만 그전에는 우선 내 소설을 완결 내는 데 온 힘을 다해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