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벨 에포크 May 30. 2022

너희에게 보내는 편지

나에 대해 꼭 알려주고 싶은 이야기

친구들 안녕?

난 진우(가명)라고 해.  오늘은 나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서 이렇게 쓰게 되었어. 난 자폐스펙트럼을 가지고 있거든. 나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서 나를 잘못 알고 있거나 피하기도 하고 놀리는 사람들도 있더라고.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도 있듯이 나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조금 더 날 이해할 수 있을 거야.

내가 꼭 알려주고 싶은 7가지가 있어.

제 시작할게!



하나. 나도 너와 같은 어린이야!

나도 아직은 가능성이 많이 가지고 있는 너희와 같은 어린이야. '너는 장애인이니까 못하겠지?'

'너는 이야기해줘 봤자 이해도 못할 테니 말해줄 필요 없겠지?' 등, 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물론 아직은 할 줄 아는 것보다 못하는 게 더 많고 배우려면 시간도 오래 걸려. 배우는 게 느리지만 열심히 배울게. 제발 포기하지 말아 줘!

이미지 출처-flickr

둘. 나의 감각은 무척 예민해!

난 너희가 아무렇지 않게 느끼는 빛과 소리, 냄새와 맛, 촉감들이 나에게는 엄청난 고통이 될 때가 있어. 한 가지가 아닌 여러 감각들이 복잡하게 느껴지는 나에게는 이런 일상적인 것들도 큰 자극이 돼서 가끔은 견디기 힘들어. 그래서 내게 들리는 유난히 크게 들리는 소리들을 안 들으려고 내가 더 큰소리를 낼 때도 있고 한꺼번에 들리는 복잡한  소리가 듣기 싫어서 귀를 두들기면서 막아보기도 해. 또 형광등도 너무 눈부셔서 눈을 질끈 감거나 깜박거리고 가끔 길이 어지럽게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져서 나도 빙글빙글 돌아보기도 해. 이렇게 엉뚱한 방법이지만 조금이라도 나를 진정시키려고 노력하고 있어. 재활선생님 말씀으로는 너희들의 감각보다 4~5배 이상을 느낀다고 하시더라고. 지금 재활선생님과 내감각을  올바르게 느끼는 방법을 연습하고 있어.

나도 나를 진정시키려고 노력 중이니까 조금만 이해해줘.


셋. 알기 쉽게 짧은 문장으로 이야기해줘.

내 귀는 아직 예민하고 여전히 말을 배우고 있는 중이라서 가끔 너희 말들이 길어지면 주변 소리와  겹쳐서 들리거나 말들을 이해할 수 없을 때가 많아. 그러니까 나에게 다가와서 천천히 알기 쉬운 말로 짧게 말해줘. 그럼 내가 알아듣고 이해할 수 있어.

이미지 출처-https://m.blog.naver.com/ymh0411/220168445497


넷. 나는 농담을 이해 못 해.

나는 아직 말을 배우는 중이라 줄인 말이나, 말장난,  유행어, 비꼬는 말들을 들어도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없었어. 예를 들어 너희가 내게 와서 "식은 죽 먹기야."라고 이야기했다면, 나는 아마 주변에 죽이 어디 있는지 찾았을 거야. 그냥 "쉽게 해낼 수 있어."라고 말해줘. 난 글자 그대로만 알아듣고 생각하고 해석한단다. 또 감정도 아직 잘 이해를 못 해서 어이없어서 웃는다거나 장난으로 싸우는 척하거나 또는  비웃는 감정을 받아들이지 못해서 너희가 오해하거나 재미없다고 느낄 수도 있어. 감정 또한 하나하나 배워야 해서 단계를 밟아야지만 알게 될 것 같아. 언젠가는 너희의 농담에도 웃을 수 있는 날이 분명 오겠지? 정말 기대가 돼.


다섯. 나는 변화가 두려워.

나는 온 세상이 불안하게 느껴질 때가 많아. 그 불안함을 느끼고 싶지 않아서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이 필요해. 그러고 나서 일을 순서대로 차근차근 행동하면 마음이 편해져. 그렇다 보니, 새로운 것을 안다는 게 많이 두렵고 어떨 때는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게 싫을 때도 있어. 혹시 내게 새로운 것을 가르쳐주고 싶다면 미리 말해줄래? 그래야 내가 마음의 준비를 하고 대비할 수 있거든.

나에게 배울 준비를 하고 용기 낼 시간을 줘.


여섯. 이미지! 난 시각적인 것이 좋아.

나는 눈으로 본 것들을 더  기억해. 그래서 새로운 것을 배울 때 말보다는 그림이나 사진 또는 직접 시범을 보여주면 오히려 큰 도움이 돼. 여러 번 반복해서 보여주면 더 배우기 쉬워져. 지금 한글을 열심히 배우고 있어. 너희보다 아직은 느리지만 한글을 다 익히면 글을 읽으며 더 잘 배울 수 있을지도 몰라.


일곱. 할 수 없는 것보다 할 수 있는 것에 더 관심을 가져줘.

나도 너희처럼 잘할 수 있는 게 많았으면 좋겠어. 하지만 못하는 게 더 많다는 것을 나도 알고 있어.

그래서 많이 속상해. 노력하는데도 잘 안되거든.

그래서 어떨 때는 배우기 싫거나 쉽게 포기하고 싶어져. 자신감이 없어져서.

작은 것이라도 좋아! 사소한 것이라도 좋아!

예를 들면 교실문 닫기 담당이나 책 꽂기 담당 또는  화분 물 주기 담당 같이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에 기회를 준다면 난 잘 해낼 수 있을 거야!



애들아, 나에 대해 소개해주고 싶어서 이렇게 써봤는데 어땠어? 내가 가끔 큰소리를 내고, 나도 모르게 수업에 방해되는 행동을 할지도 몰라. 사실은 모르고 하는 행동이라기보다 나도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감각 조절이나 감정조절이 잘 안 돼서 나도 어쩔 수 없이 나오는 행동들이 더 많아.

혹시 그럴 때는 어려워하지 말고 내게 다가와서 그만하라고 말해주고  조금만 이해해주고 기다려줄래?

나의 뇌는 너희보다 느리게 움직이고 가끔은 바로 기억하지 못할 때도 있어. 그래서 반복하며 연습할 시간이 필요하단다. 표현을 다 못하지만 너희와 함께 놀고 싶어서 열심히 센터도 다니면서 노력 중이야. 앞으로 너희와 즐거운 한 해 보냈으면 좋겠다.

모두들 나의 이야기를 들어줘서 고마워!

이미지 출처-https://m.blog.naver.com/hyang2695

내용은 요전에, 진우(가명)반에  프린트물로 돌렸던 자료를 토대로 내용을 좀 더 보완한 것이다.

진우(가명)가 만약 말할 수 있다면, 편지를 쓸 수 있다면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쓴 글이다. 물론 엄마가 쓴 글이니 아이가 썼다고 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내용이지만 말이다.

모든 자폐스펙트럼을 가진 사람이 아닌 한 개인(진우)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임을 미리 말해둔다. 자폐스펙트럼에도 여러 가지 기질과 특성이 다를 수는 있지만 감각이 예민하거나 언어와 인지가 차이나는 점, 감정조절이 힘든 점등은 보통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점이기는 하다.


 요즘 들어 아이가 부쩍 학교 수업에서 지적을 받으며 문제 행동으로 안 좋은 피드백을 받고 있다. 나야 엄마니까 그런 말을 들을 때면 속상하다. 그렇지만 진우(가명)가 일부러 나오는 행동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서 더 안타깝게 느껴진다. 다른 친구들에게 피해를 주고 수업에 방해가 된다고 하면 어쩔 수 없이 원래 반수업이 아닌 사랑반으로 유배(?) 아닌 유배를 가한다. 그렇지만 조금만 더  관심을 가져주고 천천히 유도해주면 또 납득하고 잘 따라주는 아이인데...

계속해서 조금만 더 이해해달라고 하면 나만의 이기적인 마음일까? 진우(가명)는 의무교육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없는 걸까? 조심히 고민하는 날이 많아졌다.  (※표지 이미지 출처 -flickr)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