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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 에포크 May 23. 2022

나의 육아 목표

아이의  장애를  처음으로 겪는 분들께

"나의 아이는 자폐성 발달장애를 가지고 있어요."

어느덧 쉽게 나오는 이 문장이 사실은 마음을 여전히 쿡쿡 찌른다. 그러나 나는 이 문장을 살면서 말하는 순간이 많아졌다.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꼭 말해야지만 "되는" 순간들이 많아졌. 이제는 거리낌 없이 내뱉는 이 문장이, 처음에는 내 인생의 가장 큰 흑막이 되어 "자폐"라는 단어를 차마 내뱉지 못해서 "자로 시작하는 그것"이라고 입술이 부르르 떨어가며 겨우 표현했었다. 엄마인 내가  그 단어를 내뱉는 순간 내 아이에게 그 "장애"라는 프레임을 내손으로 씌우는 것 같아 진심으로 싫었다.


"조상중에 억울하게 죽은 할머니가 계시네.

이대로 놔두면 아들이 시름시름 아프다가 명줄도 빨리 끊어지겠어. 내가 아들 나아지게 해 줄 수 있어. 어여 굿을 해야것네!"


지금 생각하면 참 말도 안 되는 거였는데 심신이 약해지면 정말 홀리게 되는 것인 흔한 별자리도 안 믿던 내가 어이없게도 어느새 아들의 양말 한 켤레와 쌀 한 가마니를 쳐가며 이름도 모르는 무당의 말 한마디에 낯선 사당에서 생판 모르는 동상 앞에서 절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서, 굿판 날짜를 받고 선금 500이 필요하다는 무당의 말을 듣고 홀려서 꼭두각시라도 된 듯 순식간에 ATM기 앞에 서 있었다. 그리고  남편에게 계좌에서 500만 원을 출금하겠다는 최후 통보를 하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

그때 다그치는 남편의 목소리!

그 당시 내가 생각 없이 내뱉었던 독한 말들과 정신 나간 행동에도 묵묵히 들어주던 남편이 나에게 처음으로 폰 너머로 언성을 높여가며 나를 말렸다.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든다.

마치 몽롱한 꿈에서 깬 듯 "내가 지금 뭘 하지?" 하는 생각과 어리석은 행동을 되뇌며 다시 한번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펑펑 울었다.

그때의 난 참 진짜 내가 아니었던 것 같다. 그 정도로 인정하기 싫었구나, 그 정도로 지푸라기 같지도 않은 것조차에도 매달리고 싶어 했구나... 지금 그때 일을 생각하면 부끄럽지만 그때의 나에게는 그렇게 까지 정도로 정신적으로 피폐했었구나라고 스스로 위로해본다.

그렇게 7여 년이 지난 지금, 난 아들의 장애를 인정하다 못해 아들을 테마로 글도 쓰고 있으니 참 우습다.


이런 부끄러운 과거사를 들춘 이유는, 지금도 어딘가 처음으로 내 아이가 믿기 싫은 장애를 진단받고 충격을 받았을 부모님들이 계실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나 자신이 '지금은 이렇게 훌륭하게 극복했으니 당신도 그럴 수 있다'라고 자랑하는 것이 아니다. 나도  여전히 선배맘들의 조언이 간절하고, 여전히 아들을 키우며 벽을 느끼고 마음이 힘들고 눈물도 많이 흘린다. 그래도 여태껏 아들과 함께한 시간들 덕분에 조금씩 서로에게 적응하고 있고 아직도 극복 중인 -ing인 상태다.

이미지출처 _네이버

다만, 지금 아이의 장애를 처음으로 진단받고 힘들어할 부모님이 계신다면 조심스럽게 말씀드리고 싶다. 나도 같은 입장에서 그리 자격은 없지만 그래도 느낀 것이 있어 그분들께 감히 격려의 말을 하자고 한다면, 나는 아들의 장애를 인정하고 정면으로 마주 보기로 한 순간 많은 것들을 배우고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눈앞에 두려움과 불안으로 앞이 안 보일 때는 다른 이에게 도움도 요청해보고, 작은 성공에도 큰 기쁨을 느끼게 되고, 사소한 것에 감사하게 되고, 조금이라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되고, 느려도 기다리는 게 조급해지지 않게 되고,

누군가, 혹은 무엇과 비교하지 않게 되고, 아이를 시간을 들여  좀 더 살펴보게 되는 일이 늘어났다.

결론적으로는 아들을 키우며 여전히 고군분투 하지만 나 자신이 인생을 살며 얻은 것이 더 많다. 오히려 그런 아들에게 고마움이 더 크다.


아이에게 조건 없는 사랑을 주어야 한다. 성적표, 깨끗한 손이나 평판에 좌우되지 않는 사랑을.

아이에게 당신이 온 마음으로 받아들여준다는 느낌을 전해주어야 한다.
아이의 능력과 장점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단점까지도 받아들여준다는 느낌을.

아이에게 자기가 실제로 존재하고 있다는 느낌을 전해주어야 한다.
장애물뿐만 아니라 수많은 성취가 기다리는 우주의 시민임을 깨닫게 해주어야 한다.

아이가 성장하여 당신을 떠나서 독립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허락해 주어야 한다.
이것이 당신의 자녀를 명예롭게 할 법칙이기 때문이다.

조슈 사 리브먼 (Joshua Liebman)의 《부모의 계명》중에서

지금은 누구 말에 솔깃하고, 저런 약에 혹하고, 여러 치료법을 따라 해 보며, 여기저기에 휩쓸리는 순간일지 모르지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든, 할 수 없다고 생각하든, 어디로 가든, 무슨 선택을 하든 어쩌면 당신의 생각이 옳을 것이다.  본의 아니게 현재의 나는 내 아이의 인생의 결정권이 나에게 더 많이 주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어떤 결정의 기로에서는 하염없이 고민하고 헤매기도 한다.

이정표는 많지만 그게 맞는 길인지는 알수 없다. 이미지출처_아이스톡

 그러나 어떠한 결과가 나오든 나의 결정을 믿기로 했다. 어떤 결정이 되었든 간에 적어도 함부로 내린 결정은 아니기 때문이다. 엄마로서 아이를 위해 최선의 선택을 하기 위해 생각하고 또 생각해서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었을 것이기 때문이. 이러한 생각들은 사실, 장애와 비장애를 떠나 아이를 키우는 모든 부모님들은 다 똑같다고 생각한다.

장애가 있다고 해서 평범하지 않다고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성장과정은 평범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인생 전반으로 보자면 우리 아이도 같은 목표로 인생을 살고 있다. 

스스로 소소하게 행복한 인생을 사는 것.

이미지 출처 _네이버

그리고 그런 인생을 살 수 있게 세세한 기준을 세워주고 사소한 것에도 만족할 수 있는 아이로 키우는 것. 

나는 그 첫 스텝을 "믿어주기"로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이를 믿어주고, 무엇보다 그 아이를 키우는 남편과 나를 잘하고 있다고 믿는 일.

나의 육아 목표는 위의 조슈 사 리브먼 (Joshua Liebman)의 《부모의 계명》처럼 그저 평범한 진리로 내가 가야 할 길의 방향을 선택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 선택을 믿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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