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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 에포크 Aug 23. 2022

한마디만이라도

말해줘

언어(language, 言語) : 생각이나 느낌을 말 또는 글로 전달하는 수단.
생각이나 느낌을 나타내거나 전달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음성·문자·몸짓 등의 수단 또는 그 사회관습적 체계.

  언어의 주요 기능은 사람들 사이의 의사소통이다. 인류는 언어를 통해 서로 이해하고 도우며 새로운 문화를 창조해 왔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문화와 전통을 함께 창조하고 공유하며 이어 갈 수 있다. 고도로 발달한 언어와 이를 통한 지식의 전승과 축적은 '문명'이라는 이른바 '대 공동체'를 만드는데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또한 이를 통하여 인류의 비약적인 발전을 가능하게 하였다. 이외에도 언어는 단순한 정보전달의 목적 이외에도, 언어 예절이라는 것을 통해 강력한 수직적 상하관계를 설정하여 무리 생활'(조직 사회)을 유지, 지속적으로 전승하고 보존하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이처럼 인류 최초의 발명품으로도 꼽히며 우리가 인류로 속해 살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언어이다.

이렇게 인류의 최초의 문명의 이기가 바로 언어인 셈이다. 그런 훌륭한 의사소통의 도구인 언어를 우리 아이는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있다. 


새벽녘부터 아들(진우)의 컨디션이 안 좋았다.

그것도 모르고 무심한 엄마라는 나는 잘만 자다가 거친 숨소리에 스르륵 눈을 터보니 보니 식은땀에 색색 거친 숨소리를 내뿜는 모습에 번쩍 눈이 뜨인다.

"어디가 아파?"

"어디가 아파..?..."

급하게 짚어보는 이마는 다행히 열은 없다.

"그럼 어디가 아파?"

"어디가 아파...?..."

 잠결에 어디 다쳤는지 팔이며, 다리며 구석구석 살펴보지만 다친 곳도 없다.

몇 번이고 어디가 아프냐고 물어봐도 돌아오는 답장은 엄마 말을 따라 하는 반향어들 뿐이다.

"배가 아파?"

 "배..." 힘겹게 반향어를 해보려다 지치는지 말하다 만다. 아이는 아픔을 버텨볼 요량으로 이자세 저자세로 뒤척거린다.

배를 만져보니 착잡하다. 배탈이 난 모양이다.

급기야 화장실을 여러 번 들락날락 거리며 새벽을 그렇게 지새웠다.

결국, 아침 일찍 학교에 양해를 구하고 결석하고 말았다. 개학한 지 하루 만에 결석이지만 어쩔 수 없다. 부랴부랴 다녀온 병원에서 타 온 약을 겨우 먹고 오전 10시 넘어서야 잠든 아이.

아이를 보며 눈물 왈칵 쏟아진다.

아픈데도 아프다고 말  하는 아이가 속도 상하지만, 말하고 싶어도 말이 안 나오는 저 속은 어땠을까?

외젠 카리에르 <아픈 아이>

아들은 자폐스펙트럼 발달장애이다. 전반적으로 발달장애를 가지고 있다. 언어도 인지도 근육의 움직임이나 활용도 또래보다 느리다. 뇌 속 움직임이 모두 수동이다. 자동으로 되는 게 드물어 모든 것들을 쪼개고 쪼개어 스텝 바이 스텝으로 설명하고 반복해야 한다.

감각은 예민한 편인데 유독 통각에 대한 역치가 매우 높은 아이다. 편도체 전달이 늦어서 정말 심하게 아픔에 이르러서야 아프다고 느끼는 친구다.

식은땀이 나고 숨소리가 거칠어질 정도인데도 표현도 못하고 오죽이나 아팠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저며온다. 배가 아프면 배라도 움켜쥐었다면 금방 알 수 있었을 텐데 그런 힌트 같은 몸짓 하나 없어 알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그럼 말을 하지~~~ 왜 말을 안 해~~~"

속이 상해서 나 혼잣말로 타박을 줘보지만 괜히 내뱉은 말이 오히려 나의 가슴으로 꽂힌다. 자기라고 말을 안 하고 싶었을까?....

이런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 한 번은 학교에서 가위질이 서툴러 손가락을 다쳤는데 동맥 근처였는지 피가 철철 흐르는데도 아무 말을 안 하고 있다 옷에 묻은 피를 발견하신 선생님 덕분에 보건치료를 받은 적도 있다.

아프면 아프다고 말해줄래? (출처 _네이버 이미지)

말 표현이 안되니 엄마가 추측할 수밖에 없다.

예측이 가능하려면 아이를 잘 관찰해야 한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기 때문이다.

전후 사정을 잘 파악하고 있지 않으면 원인을 알 수 없다. 어쩌면 아들이 아픈 게 개학해서 학교 적응이 안 된 아이가 새 학기 증후군이 생긴 것일 수도 있고, 정말 단순히 전날 먹은 식단에 문제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더운 날씨에 선풍기를 틀고 자다 배앓이하는 것일 수도 있고, 정말 어디 심각한 바이러스가 침투된 것일 수도 있다.

엄마인 나는 원인을 정확하고 자세하게 알고 있지 못해도 대충이라도 알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의사나 선생님께 인과 과정을 설명해줄 수 있고, 아이가 아픈 원인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 지금은 어리니까 괜찮다. 내가 곁에 있어줄 수 있고 그러고 싶다. 계속.

그런데 마치 늘 조마조마한 살 얼음판 같은 이 아이 근처에서 언제까지나 마냥 맴돌 수도 없는 노릇이다. 다음에 엄마가 없는 곳에서 행여 불편함이 생기거나 갑자기 아픈데 주변에 아무도 없으면 아들은 오늘 새벽 때처럼 누군가에게 도움이라도 받을 수 있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도 아이에게 가르쳐주지만 사실, 앞으로 어떻게 훈련해야 할지 알아서 더 갈길이 멀다.

천 번이고 만 번이고 몸이 기억할 정도로 반복해야겠지...

음성이 안되면, 문자로, 그것도 어려우면 몸짓이라도 가르쳐야 한다.  어떤 형태의 언어라도 아들에게는 생존의 방편이다.


출처_네이버 이미지

언어는 어떤 형태이든 소중하다. 상대방이 아무리 관찰하고, 알고 있어도 정작 자신이 필요할 때 전달하지 않으면 모른다.

아이를 보며 언어라는 게 참 상호작용적이구나를 느낀다. 한 명만 전달해서는 언어라는 정의가 성립되지 않는다. 반응하고 받아들이는 행동을 해주는 상대가 있어야 한다. 주고받아야 언어다.

내가 바라는 건 정말 최소한인 건데 아들에게는 그게 어렵다. 의지나 몸의 문제가 아니다. 아들의 뇌가 그렇게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억지로 바란다고 되는 게 아니란 걸 나도 알지만 이럴 때는 정말 속이 까맣게 탄다.

세 살 배기도 표현하는 최소한의 "아프다"는 말 한마디, "도와줘"란 말 한마디가 열 살이 넘은 내 아이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다.

한마디만이라도 해줘. 말이 안 되면, 아니면 몸짓이라도.

오늘따라 속상한 마음으로 넋두리로 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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