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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 에포크 Dec 09. 2022

이제 그만하면 됐다고요?

자폐스펙트럼 치료

주말마다 시어머니께 안부전화를 드린다.

한번 통화하면 30분에서 길게는 1시간도 하는데 그리 살가운 며느리는 아니지만 그래도 열심히 가족들 근황 이야기들을 들려드린다.

그렇게 통화하다 보면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듣기도 하는데 나와 가족들을 위해 하시는 말씀이라는 걸 알기에 감사히 받아들이려고 노력한다.

엊그제도 한 통화에서 시어머니는 내가 아들의 치료지원센터를 다른 지역 멀리까지 다니는 것을 아시고 하시는 말씀이 괜스레 마음이 시리다.

"애야, 네가 고생하고 있다니 마음이 아프다. 근데, 네가 이런 말 들으면 섭섭해할지 모르겠지만, 솔직히 진우(가명)가 그리 열심히 다녀도 크게 늘지도 않는데 무슨 소용이냐, 그동안 네가 그렇게 노력해도 애가 티가 크게 나는 것도 아니고... 내 주변에 아는 지인은 진우(가명) 같은 애가 있는데, 애한테만 돈을 그렇게 투자하고 매달렸지만 결국 어른되서는 시골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같이 살더구나. 애써봐도 시간낭비, 돈 낭비라 하더라. 그러니 너도 둘째한테 너무 애쓰지 마라. 그간 7년이면 너도 니 인생 갈아서 갖다 친 거니 이제 그만하면 되었다. 우리는 첫째도 있잖니, 둘째 애한테 드는 돈 아껴서 가능성이 창창한 첫째한테 몰아줘야지..."

나도 안다. 어떤 마음으로 하신 말씀 인지도 안다.

그 말씀이 틀린 말도 아니다.

근데 그 말씀이 나를 위해 하신 말씀인데도 한쪽 구석을 후벼낸 듯 아리고 쓰라렸다.




자폐스펙트럼을 완치 시키는 치료법이란 현재는 없다. 

뇌 관련 정신신경학적 기술이나 연구는 이제 시작단계이고, 자폐 스펙트럼의 단어가 알려주듯, 그 유형과 형태, 특성들이 모두 제각각이므로 치료법이 이거다하고 정해질 수 없는 것이 현시점이다.

모두 임시 치료법이거나 유사 과학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양육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처음에는 그저 막막하고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 자폐스펙트럼을 판정받고 나면 다들 하는 프로그램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

언어재활, 감각통합재활, 작업재활, 인지 훈련, 특수체육 등등....  

확실한 치료법이라기보다 수많은 임상을 통해 보니, 그나마 이러한 것들이 자폐스펙트럼 및 발달장애나 지연이 된 아이들의 좀 더 나은 생활을 돕는다는 일종의 임상 훈련인데, 그 방법은 대부분,

반복과 연습.

인지든, 언어든, 신체재활이든 어떤 과목이 되었든 수업내용과 형태는 다를지 모르지만 대부분의 치료지원들은 이 방법 중심으로 돌아간다.

약물 치료하는 분들도 이 반복과 연습을 잘하기 위해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길어질 수 있게 감정이나 감각을 높이거나 낮추는 등의 약을 복용하는 경우가 많다.

행동 분석학적인 접근법으로는 ABA,

마음 정서 접근법으로는 ESDM이나 플로어 타임 법, 감각을 조절할 수 있게 도와준다는 감각통합재활, 소근육을 단련하는 작업재활 등이 있다.


그 외에도 한때 성행한 뇌파 조정 요법으로 접근한 뉴로피드백, 식이-수면 조절 요법, 청각 훈련(AIT)을 통한 토마티스와 베라르 요법, 언어 강제 발화, 등등 확실한 치료라 할 수 없는, 아직은 연구단계인 치료법들이 입소문을 타서 유행하고 있고 지금도 새로운 방법들이 계속해서 양성되고 있다. 또한 병원에서 처방받는 여러 감정이나 감각을 조절시키는 한방이든, 양약이든 약물치료의 종류도 천태만상이다. 그뿐 아니라 양육자를 위한 부모교육 프로그램과 세미나, 장애가족들을 위한 여러 종류의 정신 상담도 지속적으로 추천받는다.

그러나 이 모든 치료들은 가슴 아프게도, 확실한 완치를 기대하면 안 되는 그야말로 보조치료법들이다.

이미지출처 _네이버 이미지


그럼에도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는 부모들은 이중 뭐라도 하게 된다.

'아이에게 도움만 될 수 있다면!'이라는 마음으로...

그러나 이렇게 다양한 방법들이 양육자들을 현혹하지만 확실한 치료법이란 없으므로,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혼란스럽고 망설여진다.

이 많은 치료지원 중 아이에게 어떤 치료방법이 맞을지는 해봐야지만 알 수 있고, 여러 번 반복하고 연습해도 아웃풋이 제대로 나오기까지는 많은 시행착오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이처럼 지극히 주관적인 결정에 따라 아이들의 양육방법이 천차만별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간절한 부모들의 마음을 혹하게 하는 여러 치료요법들이 우후죽순 생겨나 희망고문을 하기도 한다.

'어느 병원 어느 의사 선생님이 진료를 잘 본다더라, 어느 센터 어느 선생님이 잘 가르친다더라, 어떤 애는 탯줄 줄기세포를 추출한 주사를 맞아서 완치했다더라, 브로콜리 새싹이 뇌의 뉴런에 영양공급을 해준다더라, 누구는 치매약을 계속 먹이고 있다고 하더라, 가바쌀로 밥을 해 먹였더니 좋더라, 어떤 병원의 어떤 약물이 효과가 좋다더라, 어떤 애는 강제 발화법으로 말을 했다더라'...

이러한 입소문은 입증 안된  수많은 치료요법들이 유행시키고, 양육자들로 하여금 허황된 병원쇼핑, 센터 쇼핑을 유도한다.


나 또한 위에 모든걸 해보지는 않았지만, 이런 저런 '~카더라' 파도에 휩쓸려 다녔고, 어리석은 교육열 쇼핑에 끼여 하나라도 차지하려고 눈치게임을 몇 번이고 했었다.

그러나 이런 부모들을 욕할 수 없다. 확실한 치유법이 없기에 더욱 희망고문에 솔깃할 수밖에 없고, 실낱같은 희망의 지푸라기라도 손에 쥐고픈 간절한 마음으로 비롯된 씁쓸한 치료 전쟁이기 때문이다.


이미지 출처 _ 네이버 이미지. 일러스트 나소연


이런 한바탕 파도가 지나가고 나서야 너덜너덜해진 마음으로 오롯이 아이를 보게 되었다. 그동안 보지 못한 것들이 보이고, 최고보다는 아이에게 맞는 적절함을 찾게 된다.

그제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그러나 지난 과오의 시간들을 탓할 생각은 없다.

그 시간들 덕분에 나의 경험치는 단박에 올랐고 그 과정들 속에서 삶을 바라보는 시각과 멘털이 강화가 되어, 비록 정식 전문가는 아니어도 적어도 나의 아이를 눈여겨보는 눈이라는 게 생겼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나는 이제 시작이다.

이제야 우리 아들과 하고픈 것들을 시작할 수 있다. 

지난 7년 동안 했으면 많이 했다고 말씀하시는 주변분들께는 극성으로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내게 아이와의 여정은 앞으로 평생이다.

그러니 지난 7년이라는 시간은 나에게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나는 아들에게 무슨 소용을 바라는 게 아니다.

나에게 대단한 의무나 목표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삼시세끼 밥 먹듯 아들이 할 수 있는 것들을 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이미지 출처 _ 픽사베이


아이가 불편하면 병원에 가고, 도움이 필요하면 도와주고, 모자란 학습이 있으면 학원에 다니는 건 다른 아이들도 다 그리 자라고 있는 것이지 않나... 아들의 경우도 같다.

과목과 방법이 다를 뿐.

나는 특별한 아들을 특별하게 키운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여느 아이들과 똑같이 키우고 있을 뿐인데 다른 분들 눈에는 다르게 보이는 모양이다.

앞으로도 자폐 스펙트럼과 발달지연 또는 발달 장애를 위한 직접적인 치료법은 당분간은 없다. 그리고 나는 언제나처럼 이런저런 시행착오도 하고 우당탕탕 실수도 계속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궁금한 게 많고 배우고 싶은 것도 많다. 


이제는 대단한 치료법이 아닌 우리 가족만의, 우리 아들만을 위한 엄마의 소소한 방법으로 시간을 보내고 싶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아이들과 하고 싶은 게 많고 아이들과 함께 있는 게 즐겁다. 그래서 앞으로 아이들과의 시간이 오히려 더욱 기대된다.


그만하면 됐다니요, 이제 시작인걸요!

이미지출처 _네이버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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