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나 지금이나 무언가에 빠져 사는 사람들이 있다. 벽과 치는 취미를 넘어선 경지로 가치있는 일이거나 좋아하는 일이거나 그 일에 미쳐있는 듯 몰두하는 사람들이 갖는다. 벽이란 일종의 병이랄수 있다. 좋아함이 지나치면 즐김이 되고 즐김이 지나치면 벽이다. 벽이란 그일이 즐겁고 기뻐서 온전히 자신을 잊고 몰입하는 순수한 행위다.
매니아도 일종의 벽이나 치에 속한다. 벽은 나쁜 습벽에 인용되어 낭비벽 도벽이라는 말이 쉽게 떠오르나 박제가는 벽이 없는 사람은 쓸모없는 사람이다 라고까지 했다. 이 벽과 치에 빠져 인류를 발전시킨 사람들이 허다하다. 왕의 지시를 받아 왕관의 순금 증명을 해야하는 아르키메데스는 그일에 빠져 있다가 목욕탕에서 원리를 깨닫고 유레카를 외치며 벌거벗은 채 길거리로 나갔다. 어떤이는 아르키메데스의 목욕탕 이용을 휴식이라고 말했으나 그는 휴식시간에도 일에 골몰했던건 분명하다. 발명에 빠진 에디슨,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연구하던 라이트 형제 아인슈타인등 발명가들이나 과학자들 뿐만 아니라 어느 한분야에 혼신의 힘을 다해 미쳐있던 수많은 사람들의 덕택에 점점 살기 좋은 세상이 된다. 반고흐가 동생 태오에게 보낸 편지를 읽으며 예술가들도 벽과 치에 해당한다고 생각했다. 18세기 문장가 이덕무는 책만 읽는 바보로 간서치라고 스스로 이름했다.
치는 멍청함이 심하다고 명하나 한 분야에 미쳐 독보적인 경지에 올라선 마니아다. 벽과 치는 훌륭한 예술 작품을 탄생시킨다. 깊이 빠져있거나 가볍게 취미정도로 빠져 있거나 가치있다고 생각하는것에 미쳐있다는건 삶의 의욕을 가져오기도 한다. 큰 상처를 받은 후 뭔가에 몰두하다보면 고통을 잊어가는 효과도 있다. 좋아하는 일을 하다보면 시간도 금방 간다. 은퇴 후 남아 돌아가는 시간을 건전한 일에 몰두한다면 바람직한 노후가 되기에 안성맞춤이다.
박완서의 가지 않은 길이 아름답다라는 책에 18세기 조선 지식인의 발견이라는 책을 소개했다. 저자 정민도 이 책을 집필하기 위해 7년간 연구한 이분야의 매니아다. 이덕무의 시의 온도 문장의 온도를 쓴 한정주도 자칭 이덕무 매니아라고 했다. 고전에 흥미가 있어 우리나라 문장가들 정약용 이덕무 박제가 박지원 홍대용 정지용등의 글을 재미있게 읽는다. 이들을 관찰의 신이라고 생각했다. 열하일기의 박지원은 전문가적인 지식을 가지고 보고 들은것들을 기록한 점에 그가 단순히 관찰을 잘하는 문장가로 생각했다. 그러나 알고보면 박지원은 정보 수집벽이 있는 사람이었다. 아름다운 시인 정지용의 산문집을 읽고서 문장가의 필수 조건은 관찰이라고 생각했으나 그도 수집벽이 있다. 같은 새라도 봄에 내는 소리와 가을에 내는 소리가 다르다고 했다. 보는것들을 기록하고 모으는 수집벽이 있는 사람들이다. 기억은 쉬 사라진다. 프랑스의 베르나르 베르베르도 정보 수집력으로 방대한 양의 상식 사전을 만들었다. 어려서부터 기록하는 습관이 있었다고 한다. 좋아하는 작가 류시화도 하이쿠를 번역하기 위해 10년동안 당시 하이쿠 작가들의 궤적을 좇아 환경을 관찰하고 자료를 수집하고 기록 정리했다. 하이쿠의 대표 시인 잇사와 부쇼.부손등 불우한 생애를 살았으며 방랑벽이 있었다. 류시화도 방랑벽을 십분 활용한 사람이다. 뛰어난 문장가들은 나는 존재한다. 고로 기록한다를 증명하는 수집벽의 소유자들이다.
은퇴후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으로 이사 오면서 꽃나무들을 가꾼다. 아파트에선 장독 매실항아리 된장독을 놓느라 화분을 두는건 엄두를 못냈다. 봄이 되면 설렌다. 올해는 어떤걸 심어 기를까 힘이 난다. 벽과 치에 이를바는 아니지만 꽃나무들 가꾸는 즐거움이 크다. 이웃집 화분들까지 물을 주고 가꾼다. 올해는 산수유나무와 모란 큰 꿩의 비름과 병꽃을 더했다. 청와대 정원에 큰 꿩의 비름을 비롯 온갖 야생화가 지천이었다. 가을이면 환하게 필 것이다.
18세기 조선 문인 지식인들의 벽과 치중 원예가 성했다. 우리나라에 꽃파는 꽃시장이 없었던 시기다. 중국 문물을 들여오며 원예에 관심을 갖는 관료들이 생기고 관에서 퇴직한 하급 관리 출신이나 늙어 일없고 가난한자들이 경복궁 서측 필운대 아래 누각동을 위시해 도화동 청풍계에서 꽃나무들을 길러 판매해 생계를 꾸렸다. 청풍계는 인왕산 아래 청운초 뒷편이다. 누각동은 누각을 기준으로 누상동 누하동으로 나뉜다. 내가 사는 동네가 누하동이다. 오랜 풍습이 있어선지 이 동네는 집집마다 꽃나무들을 기른다.
백화암기라는 책에 각 꽃에 대한 평어가 기록되어 있다. 모란은 부귀와 번화라고 해 올해는 분홍 모란을 한그루 더 사다 심었다. 석류는 중국 미인 조비연 양귀비가 총애로 육궁을 기울게 했네라는 재미있는 평어가 있다. 무궁화는 8품에 분류했다. 원예문화가 조선 지식인층의 아취가 된 시기였다.
세계적인 예술가들중 아름다운 정원을 가꿔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 작품들을 볼수 있다. 조선 지식인들 사이에 밀납으로 매화를 만들어 판매하기도 한걸 보면 지천에 꽃이고 나무이건만 꽃 가꾸기에 빠진걸 알 수 있다.
사람의 눈은 두가지다. 육안으로 사물을 보고 내안, 즉 마음의 눈으로 이치를 본다고 한 이용휴는 좋은 골동품을 보면 입은 옷을 벗어 바꾸는 골동벽이 있었다.
이서구는 집에 이만권의 장서가 있는 서재가 있어 당시 유득공 박지원 이덕무 홍대용등 문인들의 모임장소였다. 서적 수집벽뿐만 아니라 그는 앵무새도 길렀다. 기르는 앵무새에 대한 자료들을 모아 정리했다. 물고기 벌레 꽃 과일 채소등 견문한 정보를 광범위하게 채록 수집벽을 나타냈다. 벽과 치는 좋아하는것에 목숨을 건다. 좋아하는 것이 곧 정보 수집벽이 되고 좋은 작품을 쓰는 밑거름이 되었다.
물밀 듯이 쏟아져 들어오던 중국의 신문물은 조선 지식인들에게 길가다 눈을 뜬 장님과 같은 혼란을 가져오기도 했지만 이를 받아들여 우리것으로 만든 열정가들의 벽과 치가 나라 발전에 한몫했다. 차 문화도 이때 발달하기 시작했다. 약재로만 쓰던 자생차를 차로 활용하고 국제 무역을 통해 국부창출로 이어졌다.
박지원은 벗을 잃으면 아내를 잃은것보다 더하다고 했다. 아내는 다시 얻으면 된다고 옷이 헤지면 다시 해입고 그릇이 깨지면 바꾸면 되는것처럼. 이는 벗이 중요하다는 표현이다. 말과는 달리 박지원은 부인이 죽자 재혼하지 않은채 살았다. 깨진 그릇 바꾸듯 새 부인을 얻지 않았다. 좋아하는 것을 함께 할 수 있었던 친구들을 인생의 동반자로 여겼기 때문이다. 혼자서도 좋아하는 일에 몰두할 수 있지만 마음 맞는 벗들과 같이 연구하고 수집하고 정리하면 벽과 치의 효과를 극대화 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의 각종 동호회도 이와 유사하다. 비록 나라를 망하게 했지만 당현종에게 양귀비는 말이 통하던 해어화이기도 했다.
꽃나무들을 기르며 꽃나무들의 특징을 검색하는 습관이 생겼다. 봄에 늦게 새순이 돋아나는줄 모르고 다른 나무는 다 새순이 나는데 이 꽃나무는 아무 기색이 없어 겨울동안 죽은줄 알고 뽑아 버린적도 있다. 간지럽히면 흔들리는 베롱나무다. 어려서 우리집 우물가에 심어져 꽃이 세 번 피면 쌀밥을 먹는다던 정깊은 나무다. 해마다 보아왔건만 새순이 언제쯤 나는지는 모르고 있었다. 보아도 보지 못했다. 마음의 눈을 뜨지 못해 이치를 보지 못한탓이다.
어린 나무를 좁은 화분에 심었다가 큰 화분으로 분갈이 하면 눈 없는 나무가 어찌 알고 자리를 넓게 가지를 벌인다. 너도 누울자리 보고 뻗는구나.
벽이 없는 사람은 쓸모없다고 한 박제가의 말을 은퇴 후 절감하며 살고 있다. 할 일 없는 사람 그저 먹고 노는 사람은 쓸모없는 사람이다. 늙어서도 일이 있어야한다. 그 일에 몰두할 수 있는 마니아가 되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친정어머니는 올해 98세다. 말하기를 좋아해서 주간보호센터라도 보내자며 의사를 만났다. 역대 대통령을 말하라고 하니 이 총기 좋은 어머니는 순차적으로 거슬러 올라가 이승만까지 다 맞추었다며 자랑하신다. 주간 보호센터는 치가 없어 못 가게 되었다. 98세의 어머니는 경비의 눈총을 아랑곳 않은채 아파트 한 귀퉁이에 채소밭을 일구신다. 조카들이 할머니가 기른 채소는 시장 채소보다 훨씬 맛있다며 가져다 먹는다. 98세 어머니의 아취는 상추 고추 쑥갓 들깻잎등 채소 기르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