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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짝이는 별 May 20. 2022

키케로의 노년에 대하여

인생칠십 고래희 18

몽테뉴의 수상록에서 젊은이는 인생을 준비하고 늙은이는 인생을 만끽해야 한다고 썼다.

소녀시절엔 공부하며 앞날이 아득해 갈길이 멀었다. 가난하여 머무르고 싶지않아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청년기엔 돈벌어 가족 부양하느라 어깨에 짐이 무거워 갈길이 멀었다. 장년기엔 직장 다니며 살림하며 애들 키우며 집안 대소사 챙기며 할 일이 쌓여 갈길이 멀었다.


인생이란 나도 모르게 세월이 흘러 노년기가 되고 은퇴후 비로소 모든 시간이 내게로 왔다. 은퇴는 내게 그토록 바라던 여유로운 시간을 가져다 주었다. 하루 해를 온전히 다 나를 위해 쓰게 되었다. 아우렐리스 명상록도 몽테뉴의 수상록도 세계의 명시도 도연명도 장자도 내 품에 들어왔다. 시간에 쫒김없이 편안히 느긋하게 읽을 수 있다. 아이들이 어려 손이 많이 갈 때 밤낮이 바뀐 아이를 키우며 직장 생활할 때 소원이 잠을 실컷 자보는것이었다. 전직을 살려 적은 월급을 받고 아직 일을 하는 남편은 출근시 내가 자는걸 방해하지 않는다. 입버릇처럼 한숨 더 자라는 말을 한다. 내겐 음식보다 잠이 보약이다. 늦잠 낮잠 초저녁잠 아침잠 밤잠 다 잘잔다.



이젠 하루가 12시간에서 48시간이 되었다. 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인생을 만끽할 수 있는 노년이 왔다. 공부만 하고 책만 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이 현실이 되었다. 맛있는 음식을 천천히 정성들여 만들어 먹을 수 있다. 퇴직 전엔 봄가을 꽃구경 단풍 구경을 못했다. 찌는듯한 여름방학 엄동설한 겨울방학에나 구경 다녔다. 이젠 가고 싶은곳도 사시사철 맘껏 다닐 수 있다. 은퇴는 내게 축복으로 찾아왔다. 노년은 더 이상 불행이 아니다. 니체는 하루의 삼분의 이 정도를 나를 위해 쓸수 없다면 노예라고 했다.


은퇴후의 날들이 일했던 날들만큼 남아 기다린다는걸 미처 깊이 인지하지 못한다. 어느 대학 총장으로 은퇴한 분의 아흔살 되던 생일에 쓴 글이 인터넷을 돌아 다녔다. 할 일을 다했다고 여긴 그는 인생의 삼분의 일을 아무것도 하지 않은채 지낸게 후회막심이었다. 지금부턴 영어를 배우기 시작하겠노라고.

사람들은 대부분 은퇴전엔 은퇴후의 생활을 준비하지 않은채 그냥 쉬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노년의 시간은 길다. 자칫 준비없이 노년을 맞이하고 자녀를 노후 보험으로 여겨 무위도식하게 된다.


키케로는 노년의 최고의 무기는 학문을 익히고 미덕을 널리 실천하는것이라고 한다. 플라톤은 81세에 책상에 앉아 저술활동을 하다 세상을 떠났다. 몽테뉴가 최고의 지성이라고 칭송한 소크라테스도 94세에 집필활동을 하며 그후 5년을 더 살다 떠났다. 그의 스승 고르기아스는 107세까지 집필활동을 했다. 비결은 노인이 되었지만 나는 전혀 불만스러운 부분이 없다고 했다. 정치가 테미스트클레스는 아테나이 시민들 이름을 전부 기억했다고 한다. 호메로스 고르기아스 피타고라스 플라톤 로마의 스토아 학파 철학자 디오게네스 등 노년에 접어들었어도 뜨거운 학구열을 불태웠다. 이는 노년에 들어서 한 일이 아닌 젊을때도 꾸준히 해온 일이리라.

플라톤이 쓴 소크라테스의 변론엔 미덕에서는 부와 다른 모든 인간적인 좋은것들이 생겨난다고 했다.


내 나이에 대통령을 하고 더 많은 나이에도 장관을 하는 사람들을 보며 젊은이들에게 넘겨주지 않고 노욕을 부린다고 생각했다. 냉장고 앞에서 무엇을 가지러 왔는지 생각이 나지 않을 때 이런 기억력으로 무슨 리더를 한단 말인가 걱정이 되었다. 노년이 된 신호로 제일 먼저 노안이 온다. 그다음 깜박깜박 기억이 안난다. 적당한 단어가 가물가물 선뜻 떠오르지 않는다. 노년을 실감하며 세상을 하나씩 포기했다. 그런데도 매일 매일의 날들은 어김없이 나를 찾아왔다.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을  보며   일본의 노년 시인 시바타 도요의 시집 약해지지마를 읽으며 나를 일으켰다. 학교 다닐적 꿈이었던 글을 쓰기 시작한 칠십세에 고맙게도 브런치는 내게 작가라는 칭호를 달아주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다보니 기억력은 없어지지 않음을 알았다. 사자성어와 한자어를 공부하고 낱말뜻을 검색하는것도 생활화 한다. 초등교사로 근무하느라 쉬운 말을 쓰는게 습관화 되어 다양하고 심도있는 표현력 공부가 필요하다. 초나라 시인 굴원처럼 간결하고 사소한 것을 적었으나 상징하는 바가 매우 크고 심원한 글을 쓰고 싶다. 인간의 정신력은 단련할수록 가벼워진다. 몽테뉴는 삶의 여정에서 찾은 최고의 필수품은 책이라고 했다. 연금술사의 주인공 산티아고는 인생의 순례길에서 책한권은 늘 갖고 다녔다. 다 읽으면 바꿔가며 읽었다. 브런치는 작가를 찾아 양성하고 책을 만드는 위대한 일을 하고 있다. 번영을 빈다.



84세의 키케로는 고대의 기록을 수집하고 변호사 시절 승소했을때의 변론들을 손보고 기억력을 훈련했다. 피타고라스 학파의 학습법에 따라 그날 낮에 말하고 듣고 행동했던 모든 것들을 밤마다 머릿속에 되새겨 보곤 했다. 키케로에 감히 견줄바는 못되나 98세의 친정 어머니는 누워 있을때면 젊어서 알고 있던 성경구절을  외우신다고 했다


인생이라는 거대한 연극의 마지막 장이 노년이다. 아무리 지겹고 힘들더라도 끝까지 지치지 않고 나아가야 한다. 나이가 들어서 기력이 쇠하는 이유는 그저 나이가 들어서가 아니라 젊은 시절을 방탕하게 보냈기때문인 경우가 많다고 했다. 키케로는 젊은 시절을 그리워하지 말자. 제철이 되어야만 그 열매를 거두어 들일 수 있는 자연의 섭리다. 노인이 조금 허약하다고 해서 뭐그리 대수겠는가. 노년의 약점을 근면함으로 채우자고 한다. 세월이 우리로 하여금 젊은 시절의 가장 위험천만한 육체적인 쾌락에서 해방될수 있도록 해준다면 이 얼마나 멋진 선물인가. 쾌락이 너무 강력하면 정신적인 광채는 꺼져버린다고 경고한다. 불필요한 욕망을 차단해 버리는 노년기는 오히려 축복이라고. 젊은 시절 아내를 버리고 바람피우는데 열정을 보낸 사람들이 나이들어 병든 몸으로 집을 찾아오는 경우를 종종 본다. 이 경우 집으로 기어들어온다고 표현한다. 쾌락의 댓가를 노년에 병상에서 치러선 안된다.


세월이 지나도 시큼해지지 않는 와인같은 노인이 되자. 노인은 이미 오랜 세월을 버텨온 사람들이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신념을 젊을때부터 가지자. 태어난 것이 헛되지않게 열심히 살았다면 충분하다. 학문과 연구를 통해 제대로 영양분을 섭취할 수 있다면 한가롭게 노년을 보내는것보다 즐거운 일은 없을 것이다. 매일 새로운 것을 배우면서 하루 하루 늙어가자.

키케로는 일찍이 아들을 잃었다. 내가 가게 될 곳으로 아들이 먼저가서 기다리는것이라고 죽음을 기쁘게 맞이했다.

가죽나무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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