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반짝이는 별 Apr 22. 2022

내려 놓으세요.

인생칠십 고래희 16

육체 노동을 해야하는 경우 주위로부터 힘들지 고생한다. 좀 쉬어 등 인사치레라도 위로의 말을 받는다. 그럴 때면 대답한다.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건 고생이 아니야. 내 힘으로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일이 힘든거야.”

바로 사람과의 관계다. 남과의 관계는 어렵지 않다. 내가 양보하고 포기하거나 손해 보면 된다. 금전적인 손해도 기꺼이 감수하면 된다. 그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힘듦에  자식 문제가 깊이 자리하고 있다.


애들이 유아기적 학령기가 된 자녀를 키우는 선생님들이 부러웠다. 어서 크기를 바랐다. 빨리 세월이 가서 학교만 다녀도 고생이 덜어질거라 생각했다. 선배 선생님들이 말했다.

“몸 고생하던 아기 때가 좋은거야. 나이가 들수록 맘고생은 커져. 나이에 비례한다니까.”


이젠 지인생 내인생 따로다.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다른 길 위에 있다. 세월이 흘러감에 남편은 내편이 되고 자아가 강해진 자식은 남이 되었다.

“아무리 엄마 신념을 말하셔도 내 신념은 달라지지 않아요. 엄마가 나를 내려놓아야 해요.

저는 절대로 바뀌거나 주저앉지 않을거에요.”

비혼주의를 고집하며 여성도 잘 살수 있는 세상을 위해 온 힘을 쏟겠다는 딸이다. 언제는 여성이 잘 살수 없었던가. 인권상을 받아오고 책도 써내지만 좋기는 커녕 슬픔만 더해 갔다.  살아있는 한 자식을 위한 간절한 바램을 버리지 못한다. 가슴속 한 켠에 돌덩이가 얹혀있다.


멀리 사는 둘째 딸이 어쩌다 집에 와 머물게 되면 무슨 일이 있나 싶어 눈치를 본다. 혼내고 야단치던 어린 시절과는 달리 묻고 싶은 말을 꾹꾹 누르며 참다 참다 조심스레 의중을 살핀다. 말미에 겨우 내 생각을 얹는다. 사위 어려워 뭔 일 있느냐고 감히 알아볼 수도 없다. 잘해주고 싶고 내 자식처럼 귀한 건 당연지사인데 사위도 엄연한 남이다. 딸도 남인건 매한가지이니까.

친정어머니가 자주 하시던 말이 있다.

“내 자식 키우는 사람은 남의 자식 흉볼게 없어.”

따라 다니며 재잘거리던 살가운 어린 딸은 어디에도 없다.

“알아서 할거에요. 내려 놓으세요.”


마음 답답할땐 춘천 소양호에 다녀오곤 했다. 양지쪽에 앉아 넓고 깊은 강물을 바라보고 있으면 무거운 마음뿐만 아니라 가벼운 몸살끼도 없어졌다. 오십견인지 팔을 올리기 힘들었을 때 소양호에 가서 한나절쯤 마냥 바라보는 사이 편해졌다.  아름다운 풍광을 찾아 다니는 사람들은 다 이유가 있다. 박지원의 요동벌, 이덕무의 서해 사봉, 정호승 시인의 선운사 해우소등 나름의 속풀이 호곡장이 있듯이 내겐 소양호 강물의 속풀이 치료소가 있다. 울지 않아도 된다. 그저 말없이 바라보고만 있어도 된다.

어릴적 살던 고향에 품어주는 뒷산이 있었고 마을을 돌아가는 큰 냇물이 흐르고 있었다.

흐르는 강물처럼 살다

언젠가는 너도나도 가는 바다에 닿겠지.

유유히 흐르다가도

바위 돌들을 돌아가다가도

절벽을 만나 곤두박질 치다가도

흘러흘러 가겠지.

김영랑의 시 한구절이다.

내 마음의 어딘듯 한편에 끝없는

물이 흐르네


모란


작가의 이전글 뒤따라 다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