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반짝이는 별 Dec 15. 2022

50년전에 대학생이었다.


꽃나무 기르기에 재미를 붙여 인터넷 중고 마켓에 올라온 화분을 종종 구매한다. 화분 놓을 자리가 부족해 항아리 하나를 중고 마켓에 올렸다. 직거래하는 구매자 부부가 와 묻는다.

“누가 올렸어요?”

“제가요.”

“세상에나.” 마상에나.

한옥 창문을 샀다. 내 또래 판매자는 말했다.

“집 사람은 치매가 왔는데......”


도서관에서 보고 싶은 책이 있어 자료 위치 안내표를 뽑아 찾다가 못 찾고 직원에게 부탁했다. 직원은 내가 책 못 찾는 건 당연하다는듯 큰소리로 핀잔을 주었다.



자주 찾는 인터넷 부동산 카페가 있다. 증여하는 부동산은 5년이 지난  후 팔아야 하는걸 모르고 빨리 팔아 손해를 많이 봤다. 내년부터는 10년간 못 팔게 하는 법이 시행된다고 한다. 부동산 법이 지난 5년간 너무 자주 바뀌고 그것도 징벌적 규제 강화 일변도였다. 세무사도 부동산 중개사도 모를 정도다. 부동산도 책을 읽고 공부를 해야한다. 이 카페에서 부동산 정보도 얻고 사람 사는 모습도 본다. 간혹 인생에 도움이 될만한 주옥같은 글도 볼 수 있지만 읽기 불편한 글도 올라온다. 이 카페의 특징 중 하나는 노인 비하다. 무식한 틀딱들이라며 비난한다. 틀니나 닦으라는 표현이다. 할아버지는 국민학교 졸업 할머니는 그도 마치지 못한 못배운 사람 취급한다. 기초 연금을 받아 생활 하는 가난한

노인으로 치부한다.

 시청 부근에 갔다가 팥칼국수 식당에 들어갔다. 아직 직장인 점심 시간 전이고 좋아하는 음식이라 들어갔다. 자리에 앉기도 전에 직원이 다그친다. 할머니 왜 오셨어요? 일하러 오신거면 계단타고 지하로 가세요. 아니면 나가세요.

 밥얻어 먹으러 오는 거지 취급이다. 노인의 현주소다.

딸, 며느리, 아줌마, 할머니, 세대마다 무시 받으며 산다.


자동차를 운전한지 35년이 되어간다. 당시 나는 생계형 운전자였다. 맞벌이로 아이들을 맡길데가 없어 등하교를 같이할 차가 필요했다. 운전 학원에 등록하며 필기는 내가 알아서 할테니 실기를 먼저 가르쳐달라고 부탁했다. 운전 강사는 필기 책을 건네며 필기 강의 시간에 빠지지 말고 나와 공부해야 한다고 못을 박았다. 얇은 책 한권 그거 공부하는건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닌데도 아줌마들은 필기를 통과하지 못한다며 무시했다. 늦은 실기 지도로 한코스 배워 시험보고 또 한코스 배워 시험보느라 급한 내 마음과는 달리 더디기만 했다. 학원에선 혼자 공부해 한번에 필기 합격한 아줌마라고 이름이 났다.


자동차 운전으로 아줌마의 위치를 알게 되었다. 택시 운전자들이 고약했다. 여자 운전자인줄 알면 앞지르기를 한다음 갑자기 급 정거를 한다. 특히 경사로에서 빈번했다. 한번 부딪쳐 보라는 심보들이다. 위험천만한 행동이다. 경적 울리는건 다반사였다. 달리는 차 유리문을 내리며 비아냥 거렸다.

“아줌마, 집에 가서 밥해요. 차 끌고 다니지 말고.”

궁시렁거린다.

“아줌마가 말이야. 집에서 솥뚜겅 운전하지 건방지게 차를 끌고 돌아다니다니.”

아저씨들아, 나도 집에서 애들하고 살림만 하고 싶단다. 나도 전업주부로 살고 싶다고요.

자동차 정비소에서 덤터기 쓴 후로 차 수리는 남편에게 맡겼다.


여중 여고 교대를 다녔고 직장도 학교다. 남녀 차별을 느끼지 못했다. 바깥세상에서 그렇게나 아줌마들이 무시당하는 존재인지 미처 몰랐다. 최근까지도 무식한 막무가내 운전자 김여사로 몰아 김여사 비하 분위기가 만연했다. 과도기의 과정으로 이런 풍조는 자연스레 사라졌다.


머리가 희고 노인이 되자 세상은 노인 비하가 팽배함을 알았다. 또 하나는 지역 비하다. 오죽하면 나이로 출생지로  우월감을 가져야 하는지 잘 난게 그리도 없단 말인가. 방송에서도 노인들의 무식함을 소재로 방영했다. 요즘은 없어졌다. 노인이라고 다 글을 모르는것도 아니고 상식이 부족한것도 아니다. 그들은 글 공부 대신 일을 익혔고 그 시절 가난한 집안에서 자라나 배움의 기회가 없었을뿐 공부에 목마른 사람들이었다. 글 배움 적은 것은 부끄러울것이 절대 아니다. 내 친구들 중 최고로 여기는 사람은 국민학교만 나온 영희다. 영희는 나이들어서도 여기저기 배움을 찾아 나름 공부를 했다. 50년전 대학에 간 나는 고등학교때 전교 1등이었다. 장학생이 되지 못하면 학교를 다닐수 없는 절박함으로 살았다. 돈이 없어 수학 여행을 못갔다.  방을 얻어주지않아 남의집에서 더부살이를 하며 학교를 다녔다. 서러운 환경이었으나 학교를 다닌다는 행복으로 버텼다. 어머니를 불러 담임은 물론 교감 선생님까지 서울대학에 보내라고 졸업 후 취업이 안되면 우리 학교 교사로 써주겠다고 했다. 서울엔 더부살이할 연고지도 없다. 가난으로 선택의 여지없이 학비 싼 2년제 교대에 갔다. 근무하며 아이 키우며 방송통신대를 마치고 대학원 문턱을 밟았다. 공부에 대한 미련은 평생 남아있다. 50년전 대학을 다닌 나도 이러거늘 하물며 학교를 다니지 못한 노인들의 배움에 대한 염원은 어떠하랴.


사람들은 의외로 고정 관념과 선입견등으로 획일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줄도 모르고 떠밀려 살아간다. 심리학자들이 연구해 만들어낸 성격은 유형이 제한되어 있다. 내가 신봉하던 애니어 그램의 성격유형은 지구상의 모든 인간들이  9가지 유형에 속한다. 9가지 유형중 부분 부분 겹치는 성격도 나타나나 그 많은 사람들만큼의 유형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홉가지 밖에 안되지만 족집게처럼 들어맞는다. MBTI 성격 유형도 16가지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다 이 유형들에 들어있다. 거기다 선입견과 편견 고정 관념 그리고 관습을 더한다면 발현되는 성격은 더 좁아진다.



안하무인 나이를 벼슬삼아 대접을 받으려는 노인들은 젊어서부터 가부장적이었던 사람들이다.

세탁기에서 빨래를 꺼내 말리는 아들을 보던 시어머니는 방바닥을 치며 통곡을 했다. 내 귀한 아들이 그것도 세상에서 제일 잘 난 내 아들이 빨래를 널다니 장가 잘 못갔다며 한탄을 했다.

남존여비 사상이 박힌 가부장적인 시어머니는 아들 낳은 값을 받고 싶어했다. 기세등등 하고픈대로 며느리를 상대로 칼춤을 추었다. 부모가 되어 어찌 저리도 자식을 모른단 말인가. 남편마저 정이 뚝뚝 떨어진다.


친정 어머니도 당신 아들들은 세상에서 제일 잘 난 아들이다. 딸 부부가 찾아가자 아들에겐 비밀로 하라며 조상을 모신 산소로 데려가 잔디를 심게 했다. 아들은 아까워서 궂은 일 시키고 싶지 않다. 내가 어떻게 해서 저리 잘 난 아들을 낳았는지 모르겠다며 딸 앞에서 자랑스러워 하셨다. 반면에 사위는 내 아들에 비해 한참 못미친다. 사위는 개자식이라는 말을 인용하며 무시했다.

세상의 반은 아들들이다. 어머니가 무시하는 사돈의 아들도 사돈에겐 최고 아들이다.  남아 선호 사상은 딸은 무시해도 되는 하찮은 존재다.  시어머니는 자주 말했다.

"길가는 사람 다 붙잡고 물어봐라. 내 아들 종태만한 사람 없다."

칼춤을 추던 안하무인 시어머니는 93세에 돌아가셨다. 40년간 내게 맺어진 어머니라는 인연은 이별하는 날 전혀 슬프지 않음에 안타까웠다.


조선 시대에 아들을 낳은 여자는 옷 매무새로 인해 젖가슴이 드러나도 흉이 되지 않았다. 아이를 등에 업고 머리에 물동이를 이고 가는 어머니는 저고리 아래 젖가슴을 내놓고 다녔다. 젖 먹여 키운 아들이 있다는 특권이다. 아들 선호 사상이라는 고정 관념을 바꾸는 일은 나라를 침략해 정복하기보다 어렵다. 길고 긴 세월이 필요하다.


누구나 다 먹는 나이로 내 의지와 상관없는 출생지로 세상의 반인 아들 낳은 사실로 우월감을 가져야 한다면 자존감 없는 불쌍한 사람들이다.


효도라는 명분을 앞세워 나이를 벼슬 삼아선 안된다. 어른은 대접받아야 한다는 가부장적인 우리 부모 세대가 노인이 되었고 노인 폄하를 만들어 냈다. 베이비 부머 세대가 나이들어 그들까지 떠나고 지금의 젊은 세대가 노인의 자리에 들면 우리 부모 세대와는 다른 세상을 만들것이라 기대한다. 그때는 노인 폄하가 사라질것이다. 남아 선호사상과 아줌마와 김여사가 사라진것처럼. 







keyword
작가의 이전글 어머니 외가 가신 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