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왜 약하게 태어나는가에 대해 고민해본 적이 있다. 동물은 태어나자마자 걸음을 떼야 한다. 태어나자마자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움직여야 살아남을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은? 인간의 생존방식은 인류 진화에 탁월한 것인가? 태어나자마자 움직이지도 눈을 뜨지도 말을 하지도 못하는 인간은 단순히 그저 울음소리만 낼 뿐인데 어떻게 지금까지 생존해있을까?
인간은 갓 태어났을 때 동물보다 훨씬 더 약하고 무력하게 태어난다. 인간은 보호 없이 생존이 불가능한 상태로 수개월-수년을 보낸다. 하지만, 이게 단순히 생물학적 약점이아니라 진화적으로 선택된 전략이라면 관점은 완전히 달라진다.
인간은 두뇌가 크고 복잡하지만, 직립보행을 하면서 골반이 좁게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두개골이 다 커지기 전에 태어나야 산도가 버텨낼 수 있었다. 따라서 인간은 미숙아로 태어나는 것을 선택했다. 갓난아이로 태어나 우리는 평생 발달을 한다. 그 중 뇌는 아이에서 완전한 성인 뇌가 될때까지 출생 이후 발달을 급속도로 이어간다. 성인이 보여주는 대뇌 인지 능력과 소뇌로부터 나오는 운동 감각과 제어 능력, 후두엽에서 보는 시각적 인지, 측두엽에서 듣는 청각 등 복잡하고 생존에 가장 적합하게 큰 뇌를 갖기위해 인간은 미숙아로 태어난다.
또한 인간은 학습이 가능한 존재다. 미완전한 상태로 태어나 문화,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가르침을 받고 학습을 하고 생존한다. 동물은 본능으로 살지만 인간은 다르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끝없이 배우고 끝없이 성장한다. 오히려 끝없이 성장하기 위해 미숙아로 태어나는 것이, 백지로 태어나는 것이 최고의 전략일지도 모른다.
아기는 장시간 돌봄 없이 살 수 없다. 그래서 아이를 키우기 위해 협업, 공동체, 돌봄 윤리 등이 필수로 생겨났다. 약하게 태어났기 때문에 인간이 뭉쳐살 수 있는 공동체 본능을 심어준 셈이다. 강해서 혼자 살아남았다면 인류는 과연 지금까지 이어질 수 있었을까? 혼자 살고 혼자 죽었다면 지금 현재는 달라졌을 수 있다. 우린 약해서 함께 뭉쳤고 약해서 함께 살아야 했다. 그 함께는 협력이고 협력했기에 진화하고 생존했다.
철학적으로 불완전함이란 不가 아니다. 불완전함은 불완전함을 채우기 위한 기회이다. 불완전함을 채우기 위해 학습했고, 불완전하여 생존하기 위해 연결했다. 불완전함은 끊임없는 배움과 관계를 만들어냈고 성장하며 발달하는 지금을 만들었다.
결국, 약하다는 것은 인간 생존에서 본다면 약자가 아니다. 생존에 가장 적합할 수 있도록 설계된 태어남이다. 불완전하기에 완전하게 만드려고 시도하는 존재다.
약해서 함께사는 법을 배웠고 약해서 공동체를 만들었고 문명을 탄생시켰으며 약해서 생존을 가르쳤고 약해서 인간이 되었다. 인간은 스스로 대단한 존재라는 점을 인식해야 하고 도움을 받고 성장했으며 성장이후 나도 도움을 주어야 한다. 인간은 인간답게 살 때 가장 이상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