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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해 Feb 20. 2022

이년 째 승진 누락

출산으로 승진 누락되던 시대


임신 7개월로 배가 한참 불렀을 때 사당에 신규 매장을 오픈했다. 선배가 오픈하는 것을 도와주긴 했지만, 온전히 매장 성쇠는 담당의 책임이었다. 3층 매장. 엘리베이터는 있었지만 계단이 주된 이동수단이었다.

담당이 얼마나 매장에 얼굴을 비치고 있느냐에 따라서, 오픈전 우리의 진열 개수, 위치 그리고 판매실적이 달라진다는 것은 영업 바이블이다. 불거진 배를 붙들고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이렇게 많이 걸으면 애가 빨리 나오는 거 아닌가 싶으면서도 매장을 떠나지 못했다.   


이틀에 한번 꼴로 두 다리가 번갈아 쥐가 났고, 남편이 내 뻣뻣한 근육을 풀어준 뒤 간신히 잠이 들었다. 임신 말기에는 살이 다는 데 내 몸무게는  오히려 조금씩 빠지기도 했다.


드디어 오픈날이다. 각 메이커 임원, 고객들이  어우러져 장사가 시작되었다.

일주일 간은 드라이기 천 원,  선풍기 만원 이런 식의 특가로 고객 줄 세우기를 했다 그런 북적한 매장에서 우리 제품을 많이 팔리기를 기원하며 일주일 내내 매장에 살다시피 했다. 다행히 첫날, 첫 달 그렇게 우리 매출은 기대 이상이었고 뱃속에 있는 아이에게 같이 고생해줬음에 감사했다. 그해 더 이상 매장 오픈은 없었다.




임신 8개월 차에 내근 업무로 변경되었다. 사무실에서 교육 프로그램을 짜서  판매사원 교육을 하고, 프로모션 정산도 하고, 마케팅 정책도 입력했다. 그 당시 정보의 육아 정책의 변화가 있었다. 출산휴가 1개월이었던 것이 3개월로 확대되었고 추가 1년을 쉴 수 있는 육아 휴직제도가 생겼다. 그러나 누구 하나 유아 휴직을 선뜻 쓰지 못한 가운데,  용감하지만 소심하게 육아휴직을 한 달을 썼고 출산 후 넉 달 뒤 다시 출근하였다.


이런 멍청한 타이밍이 있나
 

육아 휴직 기간 중에 이미 고과 평가가 되어있었다. 납득할 수 없는 최하위 평가였다. 보통도 아니고 최하위 고과는 다음 승진 누락이 필연적 상황이었다.


누군가를 하위 고과를 줘야 했는데. 출산 휴가를 간 너 밖에 없었다
이미 평가는 마무리되었으니 미안하지만 네가 이해해줘라


이의 제기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분을 부서장으로 계속 모셔야 했다.

출산으로 인한 넉 달의 공백 동안 다른 직원들이 내 대신 일해줬다는 미안한 마음 또한 나를 말렸다.

최하위 고과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지금은 출산 여직원에게 하위 고과를 주는 것은 차별적 평가라고 인정하지만,

이십 년 전 당시에 출산한 여직원은 제일 좋은 떡밥이었던 셈이다.


동기들이 대리가 되는 해와 그다음 해까지 2년간 승진을 못했다.

출산과 바꿔야 하는 나의 불이익은 참으로 컸다. 왜 반박을 못했을까 하는 후회도 들었다.

아직도 그 불편한 면담의 순간이 또렷이 기억난다. 외상 후 스트레스처럼 말이다.

나를 위해 , 내가 더 이상 화나지 않기 위해 그 부서장을 잊기로 했다.


독하게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기로 한다.

최하위 평가는 2년을 더 길게 다닐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일 수 있다.

마치 삼 년을 더 살 수 있는 '삼 년 고개' 이야기처럼 말이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승진과  누락을 반복한다.

최후 승자는 남아있는 자가 아닐까 싶다.


10년 뒤, 둘째를 낳고 1년의 출산 휴가를 마치고 돌아왔다.

이런 미친 타이밍이 있나?

이번엔 마치 복수하듯, 그해 승진을 했다.


최후까지 남아서 웃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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