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산 날이 적은 남매 이야기
서른에 아들을 낳았다.
마흔에 딸을 낳았다.
기억하기 쉬운 10살 터울이다.
남편은 액자를 정리했다고 둘의 얼굴과 추억을 벽에 걸었다.
그 안에는 남매가 같이 있는 사진은 없다.
그럴 것이 딸내미 태어날 때 아들은 어학연수로 캐나다에 있었다
아들은 지금 군대에 있다.
결론적으로 우리 네 가족은 캐나다, 서울, 군대가 있는 수원. 이렇게 세 곳에 뿔뿔이 살고 있다.
카톡이라는 일상의 대화 속에서 우리는 가족임을 인지하고 있다.
아들이 아침밥을 먹으면서 페스트 톡으로 전화를 한다.
한국의 아침시간은 내가 있는 캐나다 저녁 8시쯤 된다.
내 폰을 쥐고 사는 딸내미는 오빠 전화가 오면 바로 나에게 전화를 넘긴다.
내가 수업 중이거나 바쁜 일이 있어 오빠랑 이야기 하라고 했다
무슨이야기 했는지 물어보면 이런식 이다
"오빠가 자기 군대 노래 알려줬어"
"그래서 너는 뭐 했어?"
"그냥 듣다 끊었어, 할 말이 없어"
내가 둘째를 가졌는 소식에 사람들은 두 가지에 놀란다
하나는 내 출산 나이가 마흔이라는 점.
두 번째는 첫째와 터울이 10살 난다는 점.
10살 터울 여동생이 있다는 직원에게 여동생하고 사이가 어떤지 물어봤다.
얼마 전 이태원 클럽에서 동생을 잡아왔다는 것이다.
어찌나 밤새도록 노는지,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라고 했다.
등치도 좋은 그 친구가 여동생을 클럽에 찾으러 갔을 때
다른 친구들이 얼마나 부러워했을까?
이건 내 생각이겠지?
오빠가 아빠야? 남친이야?
놀지도 못하게 난리야?
이건 동생 생각이려나?
그런 이야기를 듣고 아들의 행동을 곱씹어 보니
꼭 전화 끝에는 동생 뭐 하는지 묻는다.
"TV 보고 있어"
"캠프 갔어"
"친구네 집에서 놀다 온대"
"자고 있어"
뭔가 대답을 들어야 안심한다.
그래도 오빠인가 보다,
스무 살인 오빠와 열 살인 동생은
수돗물처럼 맹맹하지만
두 곱 또는 세 곱의 삶을 살고
마흔 살과 서른 살이 되면
어떻게 맞닿게 될지 궁금하다.
둘이 친해지길 바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