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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해 Feb 04. 2022

착한 밥, 미운 밥

수나가 유치원을 바꾼 이유


1. 늦둥이 딸 


회사를 다니면서 두 아이를 낳는 것은 장단점이 있다. 장점은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단점은 아이를 봐줄 사람을 찾는 것도, 퇴근 후 바로 아이를 데리고육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큰아이를 내 나이  서른 살에, 둘째 아이를 마흔 살에 낳았다.  둘째 아이는 삼신할미의 수첩에는 적혀있었던 것만 같았다. 


아이의 존재를  밝히기에는 시간이 필요했다. 늦은 나이에 가진다는 것이 주의 사람들에게는 생경한 일일 수 있어서 말을 아꼈고, 유산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더욱 함구하게 되었다.  시댁과 친정에는 아이가 13주쯤 건강을 확신한 후 밝힐 수 있었다. 큰아이는 신기해했다. 11살에 동생을 만나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당연히 모를 것이다.  자연분만으로 태어난 딸내미는 엄마젖으로 열 달  잘 키웠다. 휴직 열달 동안, 엄마로서의 행복함을 순간순간 맛봤다.  매일 출근 시간에 유모차를 끌고 나가 공원에서 멍 때리기도 하고, 점심시간 직장인들이 밥을 먹기 위해 쏟아져 나오는 모습을 구경하기도 했다.  가끔 직원들은 내 초라한 아줌마 모습을 보기도 했다. 부끄럽지만 부끄럽지 않았다.  육아 휴직 동안 조부모님이 큰아이를 맡으셨고, 온전히 딸내미만 돌볼 수 있었다.   


육아휴직이 좀 남았지만 복직을 결심했다. 수나를 열 달 남짓 키워 놓고 시댁에 맡기고 출근할 생각이었다. 우리 시부모님은 건강하시지만,  일흔이 넘으셨기에 죄송스러워 말 못 하고 있었다. 내 생각이 들킨 것 처럼, 먼저 며느리가 출근 언제 하는지 물어시며, 아이를 맡아주겠다 하셨다.  너무나 감사한 부모님. 그해 겨울 12월 송년의 분위기를 틈타 복직하였다. 복직해서 일주일도 안돼서 적응하게 돼버린다는 사실이 웃펐다.  좀 더 신입사원처럼 일을 배우며 쉬엄쉬엄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러나 일은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들었고, 그런 일상 속에서도 더 창의적으로 일하고 싶은 욕심이 눈덩이처럼 커져갔다. 정말로, 일하는 시간 동안은 아이 생각이 별로 안 났다. 퇴근 후에는 싸악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아이의 얼굴로 오버랩되며 장면이 바뀌었다. 너무 보고싶어 빠른 걸음으로 재촉하여 아이를 만나러 갔다. 


수나는 못생겼다. 귀엽다는 이야기는 들어도 예쁘다는 이야기는 못 들었다. 말도 느렸다. 문제라고 전혀 생각 안 했다. 오빠라고 하지만 둘은 10살 차이, 오빠가 어깨띠로 엎고 다니며 내 동생이에요 하는 즐거움도 잠시였고 오빠는 캐나다로 유학을 갔다. 수나는 반포동에 있는 어린이집에 입학했다. 시장 안에 있는 어린이집은 큰 규모는 아니지만, 정이 넘치는 어린이집이었다.  회사 어린이집 입소 가능한 나이가 되었을 때  회사 어린이집으로 옮기리라 생각했다.  드디어 24개월이 넘었고,  어린이집 지원이 가능해졌다. 







2. 회사 어린이집 



신모델 론칭으로 모든 영혼이 그리 쏠려있었다. 일본으로 벤치마킹도 갔다. 그런데 출장에서 한 가지 사실을 알았다.  회사 어린이집 지원이 비행기를 탔던 날 마감이 되었다. 유치원에 전화를 했다. 마감이 되어 죄송하지만 받아줄 수 없다는 것이다. 너무나 야박하다. 같이 있던 동료들을 나를 위로했다. 회사 어린이집은 공짜이기도 하지만 선생님들의 학력도 좋고, 아이를 잘 봐준다고 소문이 자자했기 때문이다. 시댁에도 죄송했다.


아이가 있으면 국내 및 해외 출장 갈 때도, 회식이 있을 때도 항상 마음에 걸린다. 엄마 뱃속에서 나와서 엄마맘을 잘 아는건가? 용케 엄마의 일정에 장애가 되지 않았고. 회사에 충실 할 수 있었다.  그러다 시댁을 믿고, 친구와 술 한 잔도 하고 영화도 보고, 학원도 다니고 하고 싶은 것을 조금씩 할 수 있었다. 


다음 해, 회사 어린이집에 당당히 입소했다. 낯선 선생님이 어색하겠지만, 잘 적응기를 거쳐 제대로 원생이 되었다. 다섯살 어느 날, 딸내미가 유난히 옷 투정을 한다. 회사는 가야 하는데 이 옷은 안 예쁘고, 저 옷은 꼭 끼고, 이 양말은 색이 안 예쁘고 기상천외 한 변명에 미쳐 죽겠는 거다. 버럭 소리를 질러야 해결되었고, 울음을 머금은 손을 끌다시피 해서 어린이집에 갔다. 문 앞에 도착해서는 들어가기 싫다는 것이다. 한참을 달래고, 어린이집에 들여보냈다.  나도 회사 가기 싫은 날이 있지만, 왜 그리 안 들어가겠다고 우기는지 정말 떼 놓고 간신히 출근했다. 아이를 달래느라 진땀 빼고,  제시간에 오려고 뛰어오는 바람에 심장이 뛰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일단 자리에 가방을 자리에 놓고 나니, 후회가 지워지지 않았다. 내가 잘해준 것도 별로 없는데 오늘만 해도 10번은 소리 질렀던 것 같았다. 좋은 소리로 달래지 못했을까?  저렇게 가기 싫어하는데 어린이집에 던져 넣듯이 보냈을까? 아픈 건 아니었을까? 경황이 없어서 생각하지 못했던 경우의 수가 암세포 퍼지듯 확확 머릿속에 박혔다.  코가 찡해지고 눈앞이 흐려졌다.  그리고 오늘은 아이의 생일날이었다. 


무작정 일단 나가서 진정하고 싶어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홀로 엘리베이터에 서있는 순간 눈물이 넘나 흘러 고개를 숙이고 그 눈물을 떨구고 있었다.  뒤에서 누가 내 이름을 불렀다. 대답도 할 수 없고. 그 자리를 피할 수 없었다. 손으로 눈물을 닦고서 넵.. 안녕하세요? 하고 대답했다. 차마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놀라신 상무님이 왜 그래? 무슨 일 있어?라고 물으셨다. 애가 오늘따라 어린이집에 안 떨어지네요. 속상해서요, 오늘 딸내미 생일인데.. 말해놓고도 후회했다. 너무 속속들이 말한 느낌이다. 그리고 내 목소리는 울먹임을 멈추지 못했다.  어이구.. 오늘 일찍 집에 가, 반 차라도 쓰던가.  엘리베이터 먼저 타세요 하고 화장실로 피했다. 씩씩하기만 했던 나였는데, 나의 울음을 그곳에서 보셨을 그분도 마음이 안 좋았을 텐데. 오늘은 내가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싶은 하루였다. 




3. 착한 밥, 미운 밥 



2년간 즐거운 어린이집 생활을 한 뒤, 7살을 맞이했다.  오리엔테이션에서 보니 7살은 입학을 준비하는 시기이므로 학습이 병행된다고 한다. 한자도 가르치고 생활규칙을 배운다고 한다. 나는 육아 유경험자이다. 그러나 오래된 경험이라 모두 새로 배워야 하는 새내기 맘 하고 같았다. 7살 때 영어유치원으로 옮기는 엄마도 있었다. 어린이집 마치고  학원을 바로 보내는 엄마도 있었다.  수나가 어린이집에서 돌아오면, 나머지 학원은 시부모님께 부탁했다. 미술 피아노, 발레, 태권도. 아이들이 한 번쯤 해봤을 그런 것들이 우리 아파트 상가에 다 있다. 다 시켜봤다.  나중에 좋아하는 것 2가지가 남았다. 태권도와 피아노였다. 


7살이 되자 의젓해지고 언니가 되려나 보다 생각했다. 관찰일기 숙제가 있었다. 어린이집에서는 착한 밥 나쁜 밥이라는 주제로 주별로 관찰일기를 쓰는 것 같았다. 색깔과 모양새, 그리고 부풀거나 밥알이 변화된 느낌을 적는 것이다. 착한 밥에게는 좋은 말을 해주고, 미운 밥에게는 나쁜 말을 해준다. 네가 싫어, 너는 더러워 이런 식의 말을 해주나 보다.  수나가 기록을 하는데, 선생님이 다시 생각해 봐. 그건 네 의견이 아닌 것 같아라고 이야기했다. 내 의견인데 네 의견이 아니라고 선생님이 그래서 다른 이야기를 생각해야 하는데  생각이 떠오리즈 않는다.  수나는 밥이 노랗다고 말했고, 선생님은 네 의견이 아니야라고 하셨다고 했다.  수나가 전해주는 말을 들어도 무슨 상황인 모르겠다.  내가 너무 책을 안 읽혀서 어휘력이 부족한 것 이 아닌가 후회를 했다. 밥이 문드러졌어요, 밥알이 작아졌어요라든지 몇 가지 따라 말하기를 연습시키고 다시 어린이집 밥을 관찰하라고 했다. 


한 주 뒤, 아이는 다시 착한 밥 나쁜 밥 이야기를 했다. 선생님이 다시 또다시 이야기하라고 하셨단다. 무슨 일이 있거니 생각하고 선생님께 쪽지를 보냈다. 아이가 밥 관찰로 인해서 너무 스트레스받는 것 같으니, 많이 도와달라고 이야기했다. 선생님은 일기장에 쪽지를 줘서 고맙다고 답장하시고는 잘 지켜보겠다고 이야기하셨다.  한 달 뒤,  이불에 오줌을 쌌다. 7살 아이가 침대에 오줌을 싸는 경우면 분명히 문제가 있는 것이다. 점심시간을 틈타 바로 어린이집으로 가서 원장 선생님께 말씀드렸다.  그간 아이가 말했던 밥 사건과 등등 아이의 스트레스 상황을 이야기드렸다.  친구 중에 말썽꾸러기 아이가 한 명 있는데 게는 맨날 선생님한테 혼난다는 것이다.  수나는 그걸 보면 자기도 혼날 거 같아 무섭다고 했다.  원장 선생님은 좀 더 아이를 잘 살폈어야 하는데 죄송하다고 했다. 그리고 담임 선생님 뵈었다.  

"학습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아이가 오줌을 싼다는 것은 스트레스의 정도가 얼마나 심한가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라고 할 말을 했다. 

어린이집을 그만 다니고 싶다고 했고 수속 서류를 받아 자리를 떴다. 



4. 새 유치원 



그렇게 무작정 나오긴 했지만, 다음 어린이집을 어떻게 구하나 싶었다. 인근에 있는 사립 유치원에 바로 갔다. 연초에 마감되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유치원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다행히 열흘 뒤에 연락이 왔다. 한 친구가 이사를 가게 되어 자리가 났다는 것이다.  회사 근처라 점심시간에 바로 가서 등록했다. 수나는 유치원 버스가 뭐라고 그 노란 버스를 타면 그리 기분이 좋아졌다.  맨 앞자리에 서고 싶어서 매일 아침 정류장으로 달리기 하는 행복한 루틴이 생겼다. 그리고 쌍둥이 남사친도 생겼다. 캐나다 오기 전 아쉬움을 다래던 수나의 남사친들. 


회사 어린이 집은 평판이 좋은 곳이었지만, 수나에게는 괴로운 곳이었다. 당장 그만둔 것은 내가 엄마로서 정말로 잘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가끔 차려진 밥을 보면서 이밥은 어떻게 표현해야 하나 생각하며 혼자 웃어 보는 그런 아스라한 추억이 하나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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