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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해 Mar 11. 2022

유학 얼마 만에 영어가 터질까?

캐나다 유학 2년째, 영어 향상 속도 체감기


방언처럼 영어가 터지겠지?
라는 생각은 한 달 만에 깨졌다


8살 우리 수나는 캐나다 학교에서 3개월째 벙어리 귀머거리였다. 눈치코치는 가히 100단쯤 된 것 같았다.  책 펴라면 펴고, 도시락 먹으라면 먹고, 체육실로 가라면 따라가고 그렇게 삼 개월이 지나갔다. 그 와중에도 희한한 것은 학교 가기 싫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표정도 밝기만 하다. 재밌냐고 물으면 재밌다고 했고, 뭐가 재밌냐고 하면 다 재밌다고 했다. 전형적인 그냥 뭐가 좋은지 모르지만 나쁘지 않아 좋은 그런 느낌이다. 삼 개월짜리 수나의 영어는 거의다 예스, 잘 모르겠으면 웃음이었다.   


강남에 살던 수나는 영어를 많이 배우고 유학 왔겠지? 많이 묻는다. 전혀 아니다. 캐나다에 오기 전 영어학습지 1년, 말레이시아 놀러 갔다달 이것이 영어 노출의 전부였다. 유학의 목적을 말하자면 내 지분이 65%, 수나가 35% 정도였다. 순전히 나의 이기주의로 세트로 따라오게 된 셈이라 수나에게는 뭔가 재촉하진 않았다. 야심 차게 20년 새해를 박차고 유학 온 사람들에게 좌절기가 왔다. 코로나가 심해져서 학교에 갈 수가 없게 되었다. 온라인으로 수업이 진행되는 것도 아니었고 방학만 길어졌다. 외국 드라마에서 보듯이 푸른 초원에서 아이들이 떠들며  어울려 노는 모습을 상상했건만 코로나로 인해 사람들을 만나면 벌금에 잡혀갈 지경이었다.  이 시기에 한국이 더 안전하다며 돌아가는 사람도 생겨 마음이 흔들리기도 했다.


현 상황에서의 최선이라 한다면 온라인으로 뭔가를 하는 것이었다. 캠 **이라는 화상영어를 등록했다. 웃기지 않은가. 온통 영어만 쓰는 곳에 왔는데  화상으로 캐나다인을 만나서 영어 연습하고 있는 우리 모습은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코로나 감염자 수에 따라 학교를 개방했다가, 휴교했다가 하면서  여름 방학을 앞둔 어느 날이 되었다.  수나와 친구들은  퇴근하시는 선생님들과 마주쳤다. 아이들은 달려가 자기 이야기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수나가 누군가와 영어로 현실에서 말하는 모습을  처음 봤다. 거리가 제법 있었는데도 여러 아이들 중에 수나의 얼굴이 크게 비치면서, 내 귀는 수나의 입에 다가가서 나팔처럼 엿듣고 있었다. 수나의 음성은 또렷했으며 단어가 아닌 문장으로 수다를 떨듯 말하고 있었다. 그렇게 몇 분인가를 멍하니 수나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명히 대화였다. 수나가 영어로 말을 할 수 있구나라는 뿌듯함에 심장이 멎을 뻔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수나에게 너 영어 이렇게 잘하는 것을 몰랐노라며 마구 칭찬해줬다. 칭찬이 들어가자 반대급부가 나왔다. 엄마가 영어 잘한다고 했으니 화상영어 안 하고 싶어라고.  잠시 머뭇 거림을 들켜버렸다.


 “ 그래, 화상영어 하지 말자 , 나도 안 할래 “

나도 매일 누군가와 어색하게 영어를 하는 생활을 청산하고 싶었던 차에 수나의 요청에 숟가락을 얹었다.


 여기서 학교 다니고
놀러 다니는 게 공부하는 거야



가만히 있을 내가 아니다. 학습을 모두 걷어내고, 일일캠프, 만들기 프로그램, 보이즈 앤 걸즈,  요가, 골프 등을 빈틈없이 보내기 시작했다. 명분은 놀러 가는 것이다. 실제는 영어로 말할 수 있는 곳을 찾아다녔다.  가기 싫다고 할까봐 온갖 미사여구를 붙인 말로 가고 싶게 포장했고, 성공적이었다.

한번 가보고 나면  또 가고 싶다고 했다. 집에서 엄마랑 있는 것보다 또래랑 노는게 백배 더 재밌겠지.

 수나가 영어로 문장을 말하는 것을 발견한 5개월째부터 시나브로 실력이 늘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학교에서 가져온 숙제를 혼자 해가는 것이며 제법 책도 더듬더듬 읽기 시작했다.  캐나다에 온 지 1년이 넘어가니 친구들과의 대화는 일도 아니었다. 생각보다 공부도 곧잘 따라갔다. 1년 반이 지나니 신기하게도 발음이 원어민 발음에 가깝게 변해갔다. 아이들의 뇌와 혀는 내 것과 다른 것이 분명하다. 더 유들유들한 것일까? 아니면 목구명이 덜 영글었나 싶을 정도로 확 변했다.  2년이 되어가는 즈음 남들 앞에서 매우 적극적으로 말하는 아이가 되었다. 물론 수업에서 적극적으로 발표하거나 절대 나서지는 않지만, 캐너디언 친구들과 만나서 놀 때는 자신감이 넘치는 아이로 변했다. 언어의 자신감이 성격으로 투영되고 있었다. 남들은 2년쯤 되면 한국어 발음이 꼬인다고 하던데 다행히도 수나는 너무나 정확하게 한국어 발음을 고수하고 있다.

 



한 달 전에 도시락을 차에다 두고 학교에 간 적이 있었다. 학교에서 전화가 왔다.

“ 수나 엄마시죠?  전데요 , 도시락 좀 가져다주세요”

“ 네 선생님, 수나가 도시락을 놓고 갔대요? 가지고 갔는데요? “

“ 아니에요, 도시락 놓고 갔어요. 어서 가져다주세요”

담임 선생님 아니신가? 누구시지?  좀 이상했다.

“ 죄송한데, 누구세요? “

“ 수나, 난 수나예요”


아뿔싸 수나의 발음이 너무 달랐다.  유창함이 20살 중반의 수나 담임선생님으로 착각하게 했다.

그 뒤로 수나의 영어에 대하여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않기로 했다.


집에서 한국말을 쓰고 학교와 방과 후 프로그램을 하면서 매일 영어를 10시간 정도 쓰는 아이라면 5개월쯤부터는 영어로 된 긴 문장을 말하기 시작하며, 1년째는 말하기는 물론 읽기와 쓰기 실력이 동반 상승하며, 학습에 거의 완벽하게 적응한다. 2년째는 원어민에 준하는 발음과 표현, 이해력을 얻는다는 결론을 얻었다.



[본 내용은 지극히 주관적인 의견이며, 개인차가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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