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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해 Apr 20. 2024

동생의 남자 친구가 시각장애인이 되었다


국가자격증 시험을 앞둔 바로 전날이었다.

멋지고 그럴싸한 자격증 <관광통역안내사>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밤에 동생에게 할 이야기가 있으니 주말에 만나자는 메시지가 왔다.

그냥 전화로 이야기해, 뭐 심각한 거야?

응.. 그게...


무겁다.

말이 무겁게 나오는 순간 머리가 쭈뼛했다.

전화가 왔다.

여러 번 울음을 눌러 삼킴 모양이다.


"기억나 언니? 소개해줬던 B말이야, 나 지금 B랑 살고 있어

근데, 내가 너무 몸이 안 좋은데, 혹시 내가 어떻게 되면 B좀 잘 봐줘

B는 지금 눈이 안 보이거든."




갑자기 심장에서 대포가 터지는 듯했다.

"야 그러기 있어? 갑자기 그런 말 하면 어떡해? "


"뭐? 뭐라고? 다시 말해봐!"

B랑 산다고? 근데 눈이 안 보여? 왜?"


남자랑 살고 있다는 동거 따위의 고백은 중요하지 않다.

마흔이 넘은 여동생의 동거 소식은 너무나 반가울 따름이지만

동거인이 시각장애인이라니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기억은 10년 전으로 돌아갔다.

나와 남편은 여동생이 남자친구를 소개해준다고 해서 B를 만나 식사를 한 적이 있다. 당시 순한 인상의 털털한 전남 사투리가 너무 구수한 괜찮은 친구였다.

그렇게 잘 사귀는 줄 알았는데 결국은 헤어졌고 인연이 아닌가 보다. 그래 끝내라.


끝!

이라고 생각했는데, 왜? 다시 나타났으며 멀쩡하게 올 것이지

왜 눈이 안 보인단 말인가?


코로 숨을 들이쉬고 입으로 내쉬며 후들대는 전화기를 두 손으로 부여잡았다.

전화 넘어 내 심정을 이해하는지 동생은 말을 이어갔다.


사연은 이러했다.

동생은 B가 너무 좋아서 헤어지지 못해 다시 만났다.

당시 헤어진 이유는 결혼을 반대한 B의 아버지가 때문이었는데 돌아가신 연후였다.


그런 일 있고 좀 있다 B가 뇌종양 진단을 받고 수술을 했는데 시신경에 문제가 생겨서 시력을 잃었다. 시력을 회복할 수 없어 장애인 판정을 받고 일을 할 수 없어 B는

회사를 그만뒀다.


후천적 시각 장애인이라 일상적 생활에 넘어지고 부딪히는 어려움이 있어 동생이 옆에서 봐주다 동거를 하게 되었다.  B는 머리가 똑똑한 친구였고 장애인 특별 채용으로 공무원으로 근무 중이다.


가슴 아픈 사랑이야기라고 하기에는 너무 짜증이 났다.


" 언니, 이런 말 해서 정말 미안해 가족으로 받아들여줘"


통화를 마친 후 한시도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다음 날 새벽까지 잠을 뒤척이다 멍한 채 시험장에 갔고, 1년에 딱 한번 시험 볼 수 있는 이런 사건 앞에 좋아라 시험장에 가고 있는 내가 어이없었다.

몇 개 더 맞았으면 되었을 그 시험에 시험에 집중하지 못하고 탈락했다.


그렇게 갑자기 시각장애인의 가족이 되었다.

그리고 시각장애인 가족이 된 것이 원망스러운 이유 한 가지를 보태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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