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성남 상권을 페어로 맡았고, 선배와 나는 총 50개의 매장을 담당했다. 이중 내 매장은 20여 개 남짓. 이렇게 많은 매장을 담당하게 되면 직원들의 이름이나 신상 파악하는 것도 매우 고된 일이었다. 차도 없고 네 가력도 부족한 신입은 소위 경쟁력에 큰 지장이 없는 소매장 중심으로 맡았다. 희한하게 가고 싶은 매장, 안 가고 싶은 매장이 생긴다. 이유는 다양한데,다 내 마음이 그렇게 만든 거다. 가고 싶은 매장은 마음에 맞는 직원이 있기 때문이고, 가기 싫은 매장은 내가 일처리를 해줘야 하는데 마무리가 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기 싫은 매장에가면 오래 머물지 않고 후다닥 도망치듯 나온다는 것이다. 그냥 매장 갔다 왔다는 시늉 내는 셈이다. 매장 실적도 그것을 보여준다. 우리 담당이 어찌 코빼기도 안 보이냐?이름이 뭐더라? 이런 식으로 하면 제품을 팔아줄 마음이 나겠는가? 심지어 진열도 제대로 안 되어있을 테고, 고객은 이 매장에는 우리 회사 제품 별로 없다고 느낄 것이며, 이 매장에 이는 우리 메이커 사러 다시 안 올 것이다. 이렇게 써 놓고 보니 내가 많은 잘 못을 했네.
가고 싶은 매장은 매일 가게 된다. 매장 직원이 귀찮다고 자기 쉬는 날이니깐 내일은 오지 말라고 한다. 매장에는 늘 손님이 가득한 것이 아니다. 직원을 쫓아다니면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할 수 있다. 그것이 제품이던, 매출이던, 반품이던, 심지어 가정하던, 여자 친구던 뭐든 이야기 소재는 많다. 젊은 영업사원이라 그들과도 말이 되었고, 메이커 직원이라고 권위 따위도 없었다. 그냥 편한 파트너일 뿐이다. 매장 가는 것이 즐거움 그 자체였다.
나는백팩을 메고 매장을 다녔다. 왜냐면 월별, 시즌별로 매장에 신제품을 안내하는 홍보물, 연출물, 그리고 정책 서류들이 많기 때문이고 지고 갈만한 클 가방이 필요했다. 지금도 차가 업는 영업사원들은 이렇게 큰 가방으로 회사 연출물을 나르는 경우도 있다. 냉장고나 세탁기 등 제품에 붙이거나 제품 위에 세우는 덩치 큰 연출물은 가방에 안 들어간다. 그럴 때는 검정 비닐봉지에 넣어서 그냥 들고 지하철을 탄다. 상상해 보라, 작은 여자애가 큰 가방을 메고 검정 비닐봉지를 들고 지하철을 타는 모습이란, 누가 회사 직원이라고 생각할까 웃프다. 난 절대 부끄럽지 않았다. 그래서 월급을 받는 거니까.
매장 갈 때마다 간식을 사 가면 직원들이 좋아한다. 이건 회사 경비로도 처리가 되므로 내가 정성만 기울이면 다양한 간식을 사줄 수 있다. 녹번에 있는 매장의 직원들이 붕어빵을 사다 줬더니 너무 좋아했다. 그래서 가끔 붕어빵을 매장 가는 길에 들러서 사다 줬다. 하루는 녹번 매장에서 임원분을 만났고, 그분이 내가 사 온 붕어빵을 신기해하셨다.그 뒤 나는 그분과 마주칠 때마다"붕어빵 소녀"라는 별명을 가지게 되었고, 이런 영업 형태를 칭찬하셨다. 직원을 모아놓고 나보고 강의도 하라고 하셔서 나의 영업 일상을 강의하기도 했다. 남들도 하는 영업인데, 어찌 보면 구질구질한 모습을 까발려야 하는 것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한 편으로 좋게 생각하자 하고 잊었다. 시대 트렌드에 맞는 영업 스타일이 있는 것이고, 그 안에서 신선하게 느껴지는 혁신이 생길 테니 말이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어느 날,
후배가 할인점 영업을 하면서 경쟁사를 압도적으로 이기게 된 강연을 들은 적 있었다. 데자뷔처럼 나의 예전 모습 오버랩되었다. 악착같이 목표 달성할 때까지 거래선 직원들에게 부탁하고, 그리고 남보다 빠르게, 부지런하게 거래선 요구사항을 처리해 주고, 제안하는 것. 판매사원을 내 가족처럼 챙기는 것과 그들에게 동기부여를 적절히 잘하는 것 모든 정답이 거기 있었다. 인터넷 발달과 주문 입력하는 방식 정도만 달라졌지 영업의 기본은 변함이 없었다.
나는 초심을 잃었는데, 후배는 진정으로 즐겁게 일하는 모습이었다
일주일 뒤, 너의 모습에 반했노라, 초심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주제넘은 말과 함께 준비해 간 만년필을 그녀에게 선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