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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해 Feb 27. 2022

사수의 막장드라마, 동성동본 그리고 해피앤딩

키 185 센티미터 , 차도남 외모의 선배가  OJT  (on the job training) 사수였다.  


"구루지야? 아까지야? 물을 거야. 그건 흑자야 적자야  묻는 거야 "

"한도라는 것이 있어야 주문을 넣을 수 있는데, 한도 증액 품위를 써야 돼, 자 봐봐"

영업에서 쓰는 말들을 친절하게 알려주기도 했다


거래선 하고 전화로 싸울 때는 전화기를 집어던지기도 하던데. 뭐야 이 사람은 이렇게 친절한 사람이었어?




토요일은 몸도 마음도 가벼운 오전 근무를 하는 날이다.  그렇게 기분 좋게 출근했는데,  사무실 앞에 웅성웅성 직원 사람들이 있었다.  어떤 여자가 사무실 문을 강제로 열고 들어오려고 했단다. 이미 한 시간 전에 일어난 일이라 뭐 그러려니 하고 자리에 앉아 업무를 보고 있었다.  

선배가 핸드폰 전화를 받으며 다급히 밖으로 나갔다. 곧 다시 들어와 부장님 자리로 갔다.


“안돼 인마”

“부장님, 가야 돼요, 죽는다잖아요”

“너 미쳤어, 인생 조지고 싶어?”

“가야 돼요. 부장님. 얘는 죽는다면 죽어요”

그리고 가방을 들고 선배가 나가 버렸다.


무슨 일이지, 누가 죽는다는 거지.  부장님은 뭘 좀 아시는 눈치였지만 오전은 그렇게 지나갔다.

우리 총명한 사수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까 궁금한 채 주말을 보냈다.




모든 것이 이상하리 만큼 정상적인 월요일이었다.  

그날 저녁 지난주 출장을 같이 다녀온  매장 디자이너, 나, 선배와 함께 저녁식사를 하게 되었다.

드디어 사건의 전말을 듣게 되었다.


지난주 토요일 사건은 전에 사귀던 여자가 선배를 못 잊고 사무실로 찾아와 소란을 피운 것이었다.

전에도 몇 번 수면제을 먹거나 자해를 해서 선배가 말리러 그녀의 오피스텔로 달려간 적이 있다고 했다.

아직도 그렇게 선배를 못 있고 가끔 찾아오는 모양이다.

그 보다 놀라운 것은  전 여자 친구는 일본인의 현지처라는 것이다.


어찌 만났을까 그 태초가 궁금해지는데, 문득 선배와 디자이너가 손을 잡고 있는 게 아닌가.


그러더니 디자이너가 작은 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우리 둘이 사귀어요"

"아..  네?"  

이 자리는 뭐야?  그 사건을 듣는 자리 아니었어? 이들은 나에게 왜 고백들을 하는 거야?

이미 사귄 지 된 것 같고, 난 그분들의 들러리였던 것이었다.

그렇지, 사내 연예에는 보초병이 필요하지 싶다.

앞으로 그냥 모른 척해줄 수 있다고 안심시켰지만, 편하게 그들을 놔두지 않았다.


선배와 사귀고 있는 디자이너는 동성동본이고 그래서 집안의 반대가 엄청 심했다.  몇 개월 만에 디자이너는 계약직을 그만두고 잠적했고 선배는 매우 힘들어했다. 잠적한 디자이너는 나에게 전화해서 선배의 안부를 묻고 울음으로 전화를 끊곤 했다. 슬프다 동성동본.  선배는 그 이듬해 집안에서 소개해준 목사님 따님과 결혼을 했다. 사랑이 없는 결혼이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얼마 후 이혼했다.


잘 생기고, 키도 크고, 노래도 잘하고, 일도 잘하는 선배는 인기는 많았지만 사랑만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한참 뒤 소식을 전해 들었다. 퇴사 후 스무 살 연하와 재혼을 했고 두 명의 딸을 두고 있다고 했다.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반백 년을 함께 사실 분을 만난 것이 그분의 운명이었던 것 같다

선배는 드디어 보상을 받고 있는 듯했다.  



막장드라마로 시작한 선배는
해피앤딩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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