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은 공평하시다는 말이 딱 맞다. A 차장에게는 현명함과 동시에 치명적 주사를 주셨다.
술을 먹으면 정말 걷잡을 수 없이 변했다. 그분에 대한 소문은 너무나 무성했다.
같이 맥주를 먹을 때는 우비를 입고 먹어라, 맥주를 머리에 붙는다더라. '똥을 한 바가지 퍼다 부을 놈 아'라는 말과 함께 뭘 던진다니 피해라 야 이 사람아 하면 그 자리를 피해라. 살고 싶으면.
이런 식의 이야기였다. 설마 그런 일이 나에게 닥칠지 모르고 나는 소문을 즐기고 있었다. 밤에 전화가 왔다. A 차장이다. 9시가 넘어 막 집에 도착해서 쉬고 있는데, 잠시 나올 수 있는 냐는 것이다. 거래선 점장과 같이 있는데 우리 부서 직원도 있고, 술 한 잔 즐겁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우리 집에서 10분도 안 되는 거리였다. 망설이다가 잠시 들르지 뭐라는 생각이 들어 찾아갔다.
가보니 생각하는 만큼 음탕한 노래방은 아니고 널찍한 방에서 한 사람은 노래하고, 둘둘이 자기들끼리 이야기하는 모습이었다. 전혀 흥나 보이지 않았다. 탬버린 치다 말다 하면서 동료들하고 수다 떠는데, A 차장이 내 옆에서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
"팀장님 애첩이지? 뭘 잘 보였냐? 너는 거지발싸개 같은 짓만 한다며? "
"그러지 마시죠" 낮은 목소리는 칼처럼 그에게 향했다.
나는 자리를 일어나려고 했는데, 뒤에서 계속 너는 팀장이 잘 봐줘서 좋겠다는 둥 시부렁대는 것이었다.
뒤를 돌아 성질을 내며 꽥 소리 질렀다
"그 입으로 다시 그런 소리 해봐 쫙 찢어 버릴 거야"
같이 있던 거래선 점장이 나를 말렸다. 벌떡 일어섰다. 서봤자 키도 나만 한데, 어쩌려고 하면서 속으로 겁도 났다. 그 방을 박차고 나왔다. 그리고 택시를 탔는데 화가 안 풀린다. 차를 돌려 노래방으로 다시 갔다.
"너 내일 두고 봐 " 다시 한번 경고하고 나서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아침. 참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몇 가지 시나리오가 머리에서 뱅뱅 돌았다. 부서장에게 말해? 인사부에 말해? 팀장께 보고해? 수많은 생각이 오고 갔다. 일단 출근하면 어찌 흘러가겠지. 어두운 분위기의 사무실로 들어갔다. 평소의 아침처럼 그렇게 키보드 소리와 커피 한 잔 훌쩍이는 소리뿐 조용했다. A 차장을 곁눈으로 찾았다. 출근을 안 했다. 나의 숙제는 다음날로 미뤄졌다.
다음날 나는 A 차장을 만났다. 그는 기억을 못 하는 척했다. 진심인지 아닌지, 그냥 업무 이야기만 했다. 나의 감정은 이미 수 그러 있었고 그 이후로 그 사건을 A 차장과 논하지 않았다. 나 또한 그냥 잊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2. 침 뱉고, 씨불놈아
천사 B 차장이 계셨다. 초짜 신입사원인 나에게 영업을 차근차근 잘 알려주시고, 뒤에서 남몰래 많은 지원을 해주셨다. 배려는 물론이고, 판단력도 좋으시고, 융화력은 최고이시다. 하느님은 B차장에게도 공평하셨다. 이분에게도 겁나 징헌 주사를 내려주셨다. 이분은 술만 드시면 침을 뱉으시고, 방뇨를 하시기도 하시고, 이야기마다 빈정대신다. 그래서A 차장과 술을 같이 드시는 날이면 두 분이 다투시고, 두 분 다 다음날 출근을 안 하셨다.
우리는 두 분 중 누가 더 주사가 센지를 토론해봤는데, 정말 막상 막 하라 결론을 내지 못했다.
B 차장은 이런 주사로 여러 차례 경찰서에 가게 되었는데, 택시기사랑 싸우거나, 가게 주인과 싸우거나, 지나가던 사람과 시비가 붙거나 걸리는 대로 싸움으로 끝을 보게 된다. A4용지로 두장의 기록이 다 그러한 시비로 경찰서에 갔던 내용이라고들 했다.
주사의 전조는 '침을 뱉기 시작'하는 것과 '씨불놈아'라고 시작이 된다.
이 두 분 모두 위태위태한 회사생활을 하고 계셨는데 , 두 분 중에 한 분이라도 우리에게 저녁 먹자고 할까 봐 두려운 나날이었다. 거래선과의 식사 때는 어김없이 거래선 중 한 분과 시비가 벌어졌다. 영업담당은 회사를 대표하는 얼굴이라 했건만, 같은 회사를 다니는 것이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하루는 화가 나신 부장님이 출근 안 한 두 차장을 다 잡아오라고 했다. 그리고 두 차장의 의자를 모두 책상 위로 올려놓으라고 하셨다. A 차장은 행방불명으로 찾지 못했고, 자고 있던 B차장이 소환되었다.
B차장이 술냄새를 풍기며 쭈빗쭈빗 들어오자, 부장님은 구령을 외치셨다.
" 모두 일어서!, B 차장께 박수!!!"
30여 명 직원이 영문도 모르고 박수를 쳤다. 망신을 주고 싶으셨는데, B차장은 의자를 내리고 태연히 업무를 했다. 마치 심폐소생술처럼 강력한 처방과 회유가 지속되었고 외줄 타는 것처럼 회사를 다니시다가 두 분 모두 퇴사를 하셨다. 어디선가 건강히 잘 계셨으면 좋겠습니다 선배님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