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줄의 카톡에 눈물 어리다

by 금송

가슴이 먹먹함이 무엇인지 이제야 알았다. 한 줄의 카톡

큰딸이. 동생을 무척이나 보고 싶은 모양이다.


“엄마 선경이가 보고 싶겠다.”


자기의 속마음을 오늘 밤 소식을 전한다. 순간적으로 눈물이 앞을 가로막는다.

예쁜 두 딸이 엄마의 사랑이 그렇게 고픈지?

늘 엄마는 언니만 신경 쓰고 언니만 감싼다고 한두 번 투정이 아니었다.


실상 언니가 자랄 때는 건강이 부진하여 병원 결석, 선생님 만남이 잦았다.

그러다 보니 동생 챙기는 것이 늘 부족함이 있었기에....

내가 후남이로 커서 후남이로 안 키운다고 작은 딸 신경을 섰지만,

자라면서 느끼는 감정이 쌓이고 쌓인 모양이다.

똑같이 할 수는 없지만 그들이 필요할 때 손을 내밀면,

가차 없이 무조건 달려가는 침묵의 바보상자.

그저 말없이 실행에 옮기는 실행자.

느끼는 감정이 다르기에 서로가 서운한 시간들이 많은 모양이다

하나 서운한 감정, 이해 부분, 오해 부분, 서운함은 자기들의 몫임을

뒤늦게 깨달아서 이제는 그런 소리가 와도 탁구공을 보내듯 “응” 듣고 끝낸다.

예전에 그런 소리를 들으면 축구 꼴 키퍼처럼 받고 멍이 들 때도 있었다.

아이들은 다 성장하여 자기들의 가정을 성실하고 진실 되게,

꾸려 나가는 것이 다행이고 정말 대견스럽다.

언니와 동생은 성향이 달라서 자랄 때 꽤나 다툼이 있었고.

M.B.T.I 에서 하나는 E(외향성),

하나는 I (내향성)이다.

하나 둘 내 곁을 떠나니 못해 준 것만 눈에 밟힌다.

“있을 때 잘해” 실감이 난다.

세월이 흐르고 나면 내가 그들 곁을 떠날 때 아이들은 어떻게 기억할까?

사계절이 있듯이 우리의 삶도 계절처럼 변화의 모습이 날이 갈수록 달라짐을 볼 수 있다.

부모의 역할은 어디선 까지 있을 테이고 본인들의 몫이 있기에

우리 내외는 지지하고 묵묵히 기도로 도와줄 수밖에 없다.

요즘 세상은 얼마나 좋은 세상인지 이웃과 전화하듯 외국에 있어도,

페이스톡으로 영상을 보며 통화하니 스마트폰 연구진들의 노고가 더욱 고맙게 느껴진다.

그들 덕분에 행복을 느낀다. 순간의 기쁨, 환희의 찬 목소리 그 연구진이 아니었으면,

보고 싶은 딸의 얼굴 손녀 손자들을 보지 못하고 애달픈 마음으로 남을 텐데

옛 시절과 현재를 돌이켜 보면 즐거움의 시간만은 아니었다.

힘든 것은 지나가고 흘러가기 마련이고....

모두가 그렇겠지만 과정의 단계가 있듯이, 그 상황에서 즐거움으로 채웠고

사랑하는 가족이 있기에 존재의 가치를 느낄 수 있었다.


가슴이 훈훈한 작은 딸을 그리며,

큰딸의 세심하고 잔잔한 손길을 바라보며,

모두가 나의 스승임을 (남편, 자식, 이웃) 새삼 느껴 본다.


“ 엄마 선경이가 보고 싶겠다.” 카톡의 한마디가.... 자기 마음 을. 전한다

연약하고 약한 마음이 새어 나와 일깨워 주는 순수한 시간이 한참 흐르고 나니,

여린 마음이 생겨 눈언저리에 내가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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