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찰나, 4억 년의 불멸

영원히 기억될 내 친구여

by Quasar


'고생물'


신생대로 넘어가는 입구인 홀로세 이전 시대를 일컫는 말.


시생누대부터 백악기까지, 거쳐왔던 수많은 생물들의 도전을 연구하는 학문.


그리고 오늘 우리 프로젝트 레볼루션은, 그 생물들의 도전을 다시 이 시대에 구현시킬 것이다.




'미싱링크'라는 것이 있다.


화석의 일대기 가운데, 중간의 것이 비어 일대기를 온전히 추측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비어버린 중간 화석을 미싱링크라 부른다.


흔히들 인간에게 존재한다고만 알고 있지만, 고생물에게도 미싱링크가 있다.




캄브리아기에 생겨나 데본기까지, 꽤나 오랜 시간을 변화에 맞추어 살아온 생물.


할루키케니아는 멸종한 줄 알았지만, 그들 중 살아남은 굉장히 일부가 아주 특이한 형태로 진화한 생물.


'바라애나투로므'는 현생 어류 중, 그 어떤 것도 닮지 않았으며 둔클레오스테우스보다는 큰, 범고래보다는 좀 작은 덩치를 가지고 있었다.




태초에는 촉수형태의 관족으로 바닥을 기었을 듯 하지만 그 촉수가 크고 넓은 지느러미로 진화했고, 길었던 몸은 마치 피라루크처럼 길쭉하고, 유연해졌다.


등과 배 지느러미 부분은 길고 얇은 촉수형태의 관족이 길게 줄지어 늘어져 있었다. 그 촉수는 희고 끝으로 갈수록 물방울이 맺힌 듯 두꺼워졌다.


얼굴 중에서도 입의 형상은 뱀과 비슷했다. 살짝 다른 게 있다면 입이 좀 큰 정도. 덩치도 있다 보니 물개 사이즈의 고기 덩어리를 한입에 삼키곤 했다.


하지만 복원하며 알게 된 신체 구조 상, 식도가 덩치에 비해 비교적 좁았기에 바라애나투모르는 먹이를 꼭꼭 씹어 먹곤 했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가장 놀라운 두 가지 점은..


이 개체는 갑오징어처럼 변색과 캐뮤플라쥬 능력이 있다는 점과.


... 지능이 있었다.


.


.


.




우리가 바라애나투모르, 가칭 오라마가 지능이 있는 걸 알게 된 시기는 얼마 전의 일이다.


우연의 사건이었다. 그날도 오라마는 거대한 가로 90m, 새로 깊이 140m에 달하는 수조를 해엄치고 있었다.


유유히 떠다니는 7m 크기. 아파트 2층 높이와 유사한 생물을 보고 있자니, 그 기분은 언제나 경이롭고 모골이 송연했다.


이때, 리암 연구원이 커피를 들고 가다 머그컵을 떨어뜨리는 바람에, 컵이 깨져버렸다.


나랑 리암, 오라마 밖에 없는 밤의 연구동엔 머그컵 깨지는 쨍한 소리가 공간을 울렸다.




"아 씨..! 아! 윌슨 씨 죄송해요."


"걸래 가져올게요!"




그렇게 말하며 리암은 탕비실로 뛰어갔다.


난 깨진 머그컵을 보며 잠깐 한숨을 쉬곤, 뭔가 다가온 위화감에 고개를 들어 앞을 보았다.


오라마가. 깨진 머그컵을 보고 있었다.


이전까진 한 번도 관찰되지 않은 행동이었다.


오라마는 머그컵에서 시선을 떼지 않으며 그 거대한 몸을 좀 더 가까이 수조 벽에 붙였다.


그동안 아주 가끔씩 관찰되던 오라마의 패턴과 색의 변화도, 관찰되고 있었다.


오라마는 어느새 에메랄드와 노란빛이 섞인 패턴을 띄고 있었다.


탕비실에서 나온 리암도, 걸래를 한 손에 들고 그 광경을 멍하니 지켜보고 있었다.




난, 난 오라마가 '호기심'이 있을지도 모른단 사실에 흥분감을 감출 수 없었다.


.


.


.




그렇게 실험이 몇 가지 진행되었다.


여러 감각을 자극하는 실험, 특히 청각에 대한 실험이 많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오라마는, 스피커로 들려주는 음악 등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커피에 왜 관심을 보였던 걸까?"




내가 중얼거리자, 엘리자 연구원이 의견을 내었다.




"혹시 시각이나 후각 쪽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오라마는 여태 물이나 고기의 피 비린내밖에 접하지 못했잖아요."




"근대 그렇다고 다시 커피를 보여주었을 땐, 잠시 보고 지나가버렸어요."




리암이 반박했다.


이때, 난 문득 생각이 나는 게 있었다.




"상태 아닐까?"




"네?"




"우린 대부분 머그컵을 쓰잖아, 텀블러 아니면. 그럼 오라마도 '머그컵'이란 물체의 형태를 자주 봤을 거 아냐."


"근대 그 머그컵의 형태가 변한 게, 오라마의 호기심을 자극한 거지 않을까?"




네 말에 피아티 연구원이 손바닥을 주먹으로 살짝 치며 맞장구쳤다.




"아! 그럼 소리도, 후각도 아닌 시각적 자극이 정답이었고. 오라마는 물체에 대한 기억과 그 연속성을 이해할 만큼의 지능이 있단 거군요! 그러니 자신이 기억하던 물체가 변화하자, 신기했던 거고요."


"근대... 우리는 분명 따로 조작한 것 없이 당시 바라애나투모르의 DAN를 그대로 복구하지 않았나요? 어떻게 몇 억년 전 생물이 이런 지능을 가지고 있을 수 있을까요?"




난 그 말에 머리가 살짝 지근거림을 느꼈다.


화석상의 증거로 연구한 여태까지의 고대의 생태는, 호기심 따윈 없었다.


그저 먹고 먹히는 자연 그 자체였다.


그런데 호기심을 가진 고생물이라니..


일단, 난 자리에서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끄으으.. 그건, 앞으로 우리가 알아야 할 숙제겠지."


.


.


.




이번엔 저번 회의를 바탕으로 오라마 앞에서 여태 우리가 써왔던 물건들을 찢고 부숴보았다.


성공이었다. 오라마가 관심을 보였다. 저번처럼 같은 색을 띠고 말이다.


수조 옆을 쭉 이동하며 차트의 종이를 찢을 땐, 오라마가 엘리자 연구원을 따라다녔다.


하지만 모든 것에 관심을 보이진 않았다.


오라마는 기계는 이해하지 못하는 듯 보였으며, 단순한 물체의 변화에만 호기심을 보였다.


또한 여전히 청각적 자극엔 관심이 없었다.




.. 우린 여기서 하나의 아이디어를 생각해 냈다.


오라마에게 특정 도형을 지속적으로 노출시키고, 그걸 변화, 유지, 변화, 유지를 반복하면 오라마가 그 도형들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바로 시도해 보기로 했다.




스탠딩 TV에, 우선 동그라미를 한 달간 띄웠다.


오라마는 그 한 달 동안 전과 똑같이 수조를 유랑하기 바빴지만, 기존에 초점 없어 보이던 고대의 눈은 이재 무언가를 잡아먹을 듯 보는 눈으로 보였다. 물론 움직임은 일반 어류와 다를 바 없었지만.


그리고 한 달 뒤, 우린 동그라미가 반으로 쪼개져 양 옆에 놓인 도형을 보여주었다.


이전보다 지속 시간은 미미했지만, 오라마가 분명 반응을 보였다.


우린 이 실험을 5달간 진행하며 5개의 도형을 보여주었고, 그때마다 오라마의 집중 시간이 물건을 부술 때와 유사하게 올라왔다.


성공. 이번에도 성공이었다.


.


.


.




고생물이란 단어는, 참 고리타분해 보이면서도 신비로운 느낌이 가득한 모험의 단어였다.


오라마는 그런 '고생물'에 딱 어울리는 존재였다.


늘 똑같이 수조를 떠다니지만, 의외의 행동으로 우리를 놀라게 할 땐 난 이 종, 더 나아가 오라마에 대한 경의와 애착이 생기기도 했다.




그렇게 실험은 계속 진행되었다.


도형에서 팩토그램, 팩토그램에서 글자, 글자에서 단어까지.


오라마는 그때마다 늘 그렇듯, 수조 벽에 머리를 가까이 붙이곤 TV를 쳐다보곤 했다. 실험이 좀 진행된 이후엔 흥미롭지 않다면 그냥 가버렸지만.


자신이 흥미롭다 생각하는 건 한참을 보았다. 과거엔 단순히 궁금하다는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공부'를 하는 느낌이었다.




"이잰 오라마에게 다른 걸 해봐도 되지 않을까 싶어요."




리암 연구원이 말했다.




"시각적인 자극은 충분히 준 것 같으니, 단어의 조합으로 명령을 따르게 해 보는 건 어떤가요?"


"혹은 스스로가 단어를 조합하게 만든다던지."




그 말에 피아티 연구원이 흥미로워하며 물었다.




"흠.. 그렇담 뭐가 좋을까요? 오라마는 청각적인 자극에는 잘 반응하지 않는데.. 들려주는 단어를 알 수 있을까요?"




"여태 저희가 들려준 건 클래식이나 팝송 같은 노래였잖아요. 단어와 노래의 느낌은 확연히 다르니깐, 해볼 만한 가치는 있다고 생각해요."




엘리자 연구원이 답했다.


난 모든 것을 조용히 들으며, 생각했다.


강아지의 훈련법 중, 버튼에 특정 단어를 입력해 두고 그 단어를 누르면 보상을 줌으로, 강아지가 해당 단어를 익히게 만드는 훈련.


여기서 모티브를 따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오라마의 수조 앞에 오라마가 그동안 배웠던 단어 들 중, 가장 기초적이고 내용 전달이 간결한 단어들을 양면으로 인쇄해 6m 간격으로 붙였다.


안녕, 좋아, 싫어 등. 간단한 단어들을 이용해 오라마에게 특정 단어를 들려주면, 오라마가 그 단어가 붙은 곳으로 가는지에 대한 실험이었다.


가령 예를 들면 '안녕'이란 단어를 들려주면 안녕이라고 적힌 종이 쪽으로 가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난 그동안 잘 따라와 준 오라마에 대한 기대를 품으며, TTS음성을 내보냈다.




'안녕.'




.. 하지만 오라마는 반응이 없었다.


난 엘리자 연구원에게 한번 더 해보라는 지시를 내렸다.


기계음이 한번 더 수조 위와 안쪽 스피커를 통해 수조 안을 먹먹히 울렸지만, 오라마는 여전히 무채색의 몸으로, 반응이 없었다.




"실패인가..."




이때, 오라마가 움직였다.


오라마는 천천히 움직이며 약간 고민하는 듯하더니, 이내 한 단어 앞에 멈춰 섰다.




'싫어'




"어...? 어...?"


"팀장님 지금..!"




피아티 연구원이 흥분하며 말했다.


난 피아티 연구원을 진정시키며, 이내 생각에 빠졌다.


오라마는 왜 싫어로 향했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난 수조를 쭉 흝어보았다.


..'싫어' 바로 옆에 '실패'가 붙어있었다.


문득, 무언갈 깨달은 난 엘리자가 앉은 테이블 앞으로 가 설치된 마이크를 붙잡았다.


그리고 난 명확하고 분명한 어조로 말했다.




"실패."




그러자, 오라마가 바로 옆으로 이동했다.


'실패'라는 종이로 말이다.




난 감격에 차 감정이 올라오는 것을 억누르곤, 떨리는 목소리로 다음을 지시했다.




"저것"




오라마는 다시, '저것'이 적힌 종이로 이동했다.


난 한번 더 지시했다.




"바다."




오라마는 또 '바다'로 이동했고.


난 마지막으로 지시했다.




".. 안녕."




오라마는, '안녕'으로 이동했다.


오라마는 에메랄드와 노랑빛으로 은은히 빛나고 있었다.


난 오라마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오라마도 나를 보는 듯했다.


4억 년 전 기억과의 첫인사였다.


.


.


.




오라마의 수조에 장치를 설치했다. 오라마의 위치를 인식해, 범위에 들어오면 해당 단어를 TTS가 읽어주는 형태였다.


물론 이 구조는 오라마가 수조 가까이 움직이면 센서가 계속 오라마를 인식해, 단어가 마구잡이로 나온다는 단점이 있지만.


그래도 이를 이용하면 드디어, 드디어 우리는 고대의 박재된 기억과 소통할 수 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났다.


우리는 꾸준히 오라마와 소통하며 오라마에게 단어와 말을 가르쳤다.


내가 말하는 대로 '저것' '싫어' '좋아'만 말하던 오라마는, 이제 내가 하는 질문에 맞는 단어들을 내놓았다.




"안녕, 오늘 기분은 어때?"




"좋아."




딱딱한 기계음이 장소를 울렸다.


오라마는 몸의 색을 오로라 빛으로 빛내며 유유히 재자리에서 해엄치고 있었다.


난 그런 오라마를 보며, 덩달아 내 기분도 좋아졌다.




"그래? 그럼 오늘은 새로운 단어를 배워볼 거야."




그렇게 말하자, 리암 연구원이 TV를 켜고 스피커 조작 버튼을 눌렀다.




"인간"




TV와 스피커에선, 인간이란 단어가 나왔다.


오라마는 그 단어를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이내 한 곳으로 이동했다.




"저것"


"뭐야?"




"저건, 우리야."




그 말을 들은 오라마는, 다시 돌아와 글자를 빤히 보았다.


그리고 이내, 입을 크게 벌리며 수조 벽으로 돌진했다.




쿵-


삼중강화 아크릴 수조라 다행히 금 가진 않았지만, 오라마는 계속해서 수조 벽에 입을 댄 채 무언갈 물려는 듯, 입을 열었다 닫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오라마의 몸은 주홍빛과 붉은빛의 패턴으로 물들었다.


연구원들은 오라마의 간간이 보이는 새하얀 이빨과 거대한 입에 기겁하며 나에게 실험을 중단할 것을 요청했다.


.. 하지만 나에게 그 모습은 사뭇, '놀려는 아이' 같았다.




"멈춰! 멈춰!"




내 말에도 오라마는 멈출 생각을 하질 않았다.


난 어떻게 할까, 생각하다. 문득 떠오른 한 문장을 뱉었다.




"나중에 놀아줄게!"




그 말에, 오라마가 행동을 멈추었다.


이내, 오라마는 자신의 색을 유지한 채, 빠르게 센서가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저것."


"나."




오라마는 흥분한 듯 보였다.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센서를 울리던 오라마는 마지막으로.




"바다."




라는 말을 남겼다.


.


.


.




우린 한동안 실험을 좀 쉬기로 했다. 오라마를 위해서, 그리고 오라마가 남긴 그 무작위의 단어들을 분석하기 위해서였다.




"저것, 나, 혼자, 싫어, 바다, 그저, 좋아.'"


"... 난해하네요."




엘리자 연구원이 종이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저것이라면 인간이라는 단어, 자기는 혼자라 싫단 건가?"


"근대 바다는 왜 좋단 건지?"




피아티 연구원이 팔짱을 낀 채 말했다.




"바다에서 온 존재잖아요. 어쩌면 내장된 본능 아닐까요?"




리암 연구원이 말했다.




"하지만 오라마는 진짜 바다를 본 적 없어."


"우리가 보여줬던 것들 중에 뭔가 있는 건가..?"




"어.. 팀장님."




피아티 연구원이 무언가 고민하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불렀다.




"왜 그러는가?"




"갑자기 생각나는 게 있어서 그렇습니다."




"말해보게."




"바다, 우리는 오라마에게 바다 말고도 푸른, 물 등의 단어를 가르쳤습니다. 오라마가 단순한 단어 심부름을 졸업한 이후부터, 저흰 개체에게 바다는 푸른 물이라는 이야기를 해주었죠."




"음 그랬지."




"오라마에게 우린, 마치 푸른 필름이 낀 것처럼 보일 겁니다. 오라마의 시선은 물속에 있으니, 물 밖을 인지하지 못하는 개체에겐 수조 밖도 물속으로 인식될 수도 있습니다."


"혹시.. 오라마는 '바다'라는 공간을, 이곳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 아닐까요?"




"잠깐 그럼 혼자라 싫은 건가? 저 공간 안에? 근대 그럼 저것은 뭐야. 그것도 혼자라매."




피아티 연구원의 추측에, 리암 연구원이 당황하며 말했다.




"추측이야 추측, 어디까지나."


"어쩌면 '저것'이, 인간이란 단어가 아닐 수도 있지."




그 말을 들은 엘리자 연구원이 말했다.




"가령 어떤..?"




"..."




피아티 연구원은 이에 답하지 못했다.


난 지근거리는 머리를 붙잡으며 중얼거렸다.




' 저것, 나, 혼자, 싫어, 바다, 그저, 좋아.'




".. 저것은, 누굴 말하는 거지?"


.


.


.




시간이 좀 흘러, 다시 실험이 시작되었다.


이번엔 저번 일을 교훈 삼아, 시험적인 단어는 시도하지 않았다.


대신, 두세 가지 단어로 이루어진 문장을 교육시키려 시도했다.


'안녕, 나야' 나 '기분 좋아', '조금 별로' 같은 거 말이다.


좀 더 어려운 단어를 가르치기도 했다. 가령 예를 들면 '외로워', '슬퍼', '질려' 같은 개인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단어들 말이다.


고대의 퍼즐처럼 숨겨져 있던 미지의 존재는 점점, 그 윤곽이 맞춰지며 그 존재가 더욱 뚜렷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 윤곽은, 두려우면서도 위용 있는, 수 억 년 전 찰나의 존재였다.




"안녕, 잘 잤어?"




"조금 별로."




"왜? 무슨 일 있어?"




"질려."




처음 듣는 오라마의 말이었다.




"어.. 놀거리라도 넣어줄까?"


"아님 새로운 단어나 문장을 알려줄게."




"아니 싫어."


"질려."




오라마가 이렇게 비 협조적인 건 처음이었다.


오라마의 색은 탁했다.


난 짐작 가는 게 있었다.


9개월간, 오라마와 소통하면서 생긴 일종의 직감이었다.




"... 어디로 가고 싶어?"




그러자 오라마에게 순간, 오로라 빛이 지나갔다.


오라마는 잔잔히 해엄 쳐, 한 센서 앞으로 나아갔다.




"걸음."


"너희."




걸음..? 너희..?


그렇게 말하곤, 오라마는 그저 나를, 꿰뚫듯 쳐다보기만 했다.


그 눈에서, 수 억년을 넘어 날아온 호기심이. 아니 욕망이. 보였다.




회의시간이 되자, 리암 연구원이 신나 떠들기 시작했다.




"오라마가 인간이 되고 싶단 뜻일까요?"


"그렇다면 이건 완전 대박감인데..!"




리암 연구원의 흥분감이 보였다.




"그래도 다른 뜻일 수 있잖아요."




"하지만 다르게 해석할 여지가 있나?"




엘리자 연구원의 태클에, 피아티 연구원이 반박했다.


피아티 연구원의 말이 맞았다.


우리가 질린다며 말한 '걸음'과 '너희'란 단어는, 그 해석의 여지는 아직 불투명하지만 확실히 오라마가 '인간'에 대해 흥미를 보이고 있음을 증명했다.


난 어떻게 할까 곰곰이 생각했다.


오라마는 그때 사건 이후, 단 한 번도 공격적 성향을 띤 적 없다지만, 아무리 그래도 대형의 육식 어류였다.


명백한 지능을 가진 포식자이기에, 접촉은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하지만...




"팀장님, 여기서 어떻게 더 진전을 시키죠?"




리암 연구원이 내 생각의 상자를 뚫고, 질문했다.


난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말했다.




"... 단어랑 문장 교육, 그림 같은 것도 다 해봤어. 청각적 교육도 많이 했고, 이잰 교육이나 자극 실험 중에 더 이상 할만한 건 보이지 않아."


"하나 빼고."


"난.. 인간의 접촉이 있으면 어떨까 싶어."




내 말에 3명의 연구원들이 반박하고 나섰다.




"안됩니다 팀장님! 너무 위험해요!!"


“오라마의 수조는 지금 데본기 시절 바다 환경입니다. 저 독성 가득한 물에 들어가는 건 너무 무모한 행위예요!”




"그래요 팀장님, 수조의 환경도 환경이지만, 오라마는 7m의 육식성 고대 어류입니다. 고생물이라 어떤 본능을 가질지 모르는 개체라고요!"




리암과 엘리자 연구원이 강한 어조로 말했다.


피아티 연구원도 거들었다.




"오라마가 아무리 수조와 배양 수조에서 자랐다 한들, 우린 오라마에게 인간과 친해지는 교육 같은 걸 실시한 적이 없습니다. 너무 무모한 도전이에요."




"..."




난 고민했다.


확실히, 이 3명의 말이 맞았다.


이 바라애나투로므라는 종은 우리가 살린 오라마가 최초이자 마지막인 개체였기 때문에 오라마의 행동이 곧 바라애나투로므라는 종의 행동 데이터가 되었다.


그리고 우린 여태까지 이 종에게 단 한 번도, 인간을 해치면 안 된단 것을 가르친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때의 기억이 내 안의 박재되었던 무언의 것을 점점 살아 숨 쉬게 만들었다.


그때, 오라마와 처음 나눈 인사.


난 지금, 고대의 기억과 악수를 나누고 싶었다.




"처음으로 오라마가 단어를 이해했던 날, 기억하는가?"




"아.. 네."




내 말에 엘리자 연구원이 대답했다.




"오라마는 그동안 음악이나 기계음성 같은 것엔 전혀 관심이 없다가, 내 목소리를 듣곤 반응을 보였지."


"그리고 우리가 팩토그램으로 사람의 형상을 보여주었을 때, 오라마는 화면 앞에서 가장 긴 시간을 보냈어."


"어떻게 보면 오라마는 그때부터, 아니 훨씬 이전부터 인간에 대해 호기심을 가졌을 수도 있어."


"난, 오라마의 그 호기심을 충족해주고 싶어. 그걸 하면 오라마는 단순한 고대의 존재가 아니라, 다른 영역으로 한 발자국 나아갈 수 있어!"




그 말에 피아티 연구원이 의문을 표했다.




"영역이라면.. 무슨.."




".. 지성체의 영역."


.


.


.




3명의 연구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나의 강한 추진으로 실험이 진행되었다.


심해 잠수복을 특수히 개조한 완전 폐회로성 잠수복을 만들어 사용하기로 했다.


오라마를 만나는 건, 나였다.


내가 자원했고. 3명의 연구원은, 특히 리암은 차라리 자신이 가겠다 말했지만 난 끝까지 내가 들어가겠다 말했다.




습- 습-




산소마스크의 습윤한 소리가 수조 천장을 울린다.




'팀장님, 괜찮습니까?'




"어, 괜찮아."




내 귀로, 리암 연구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난 괜찮단 말과 함께 사인을 표시하며, 내 발 밑을 보았다.


발 밑은 140m의 깊은 바닷물로 가득 차 있었다. 산소 농도가 낮고 독성이 심해 오래는 못 있는다.


빠르게 성과를 보여야만 했다.


난 사인을 보낸 후, 수조를 향해 뛰어들었다.




첨벙-


70kg짜리 성인 남성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고, 이에 오라마가 바로 반응을 보였다.


평소 먹는 먹이보다 가벼운 소리가 원인인 듯 하다.


내 쪽을 유심히 보던 오라마는, 바로 내 코 앞까지 빠르게 해엄 쳐왔다. 그리고 이내.


.. 날 들이받아 버렸다.




“팀장님!!!”




연구원들의 비명소리가 들리고, 난 정신을 차리려 노력하며 잠수복에 손상이 갔는지 먼저 살펴보았다.


다행히 3중 강화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잠수복은, 몇 번은 더 버텨줄 것 같았다.


이때, 오라마가 다시 나에게 돌진했다.


나는 위로 피하려 했지만, 오라마가 빠르게 위쪽으로 해엄 치며 나를 눌러 수조의 아래로 보내버렸다.


그리고 오라마는 계속, 계속 나를 들이받았다.


그때, 수조를 물려고 했을 때처럼 언제보다 선명한 주황빛과 붉은빛을 띤 채로 날 가지고 놀았다.


난 결국 수조의 바닥까지 추락한 채, 뒤로 엉덩방아를 찧은 채로 오라마가 다시 나에게 돌진하는 걸 보고만 있었다.


이쯤이면 잠수복도 한계치이다. 난 어떻게든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손을 허우적 대며 오지 말라는 표시를 했다.


그리고 오라마가 내 코 앞까지 왔을 때, 오라마는 갑자기 방향을 틀며 어딘가로 빠르게 다가갔다.


… 센서였다.




오라마는 빠르게 움직이며 센서를 작동시켰지만, 물속에 있던 나에겐 먹먹하게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오라마가 센서를 다 울리자, 오라마는 다시 내 쪽으로 와 나를 물곤 물 밖으로 던져버렸다.


난 어안이 벙벙해진 채, 그동안 정신이 없어 듣지 못했던 연구원들의 무전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팀장님! 팀장님! 살아계시면 대답 좀 해주세요 팀장님!!”




리암 연구원의 목소리였다.


난 올라오는 구토감을 참으며 대답했다.




“어.. 어 난 괜찮아.. 좀 멀미가 나서 그래..”




“물 샌 곳은요? 잠수복이 고장나진 않았죠?”




그 말에 난 내 잠수복을 꼼꼼히 점검했다.


금 간 곳은 없었다. 그 어디에도.




“멀쩡해, 오라마의 이빨자국이 남은 거 빼면 완전 새것 같아.”


“그나저나, 오라마는 도대체 뭐라고 한 거야?”




“… 그게..”




리암 연구원은 수조를 바라보았다.


오라마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수조를 유유히 해엄치고 있었다.


리암은 아까 들었던 오라마의 말을 상기시키며, 멍한 표정으로 말했다.




“재밌어, 또 하자. 그리고..”


“… 고마워.”


“라고 했어요.”




난, 내 물 밑을 바라보았다.


자세히 보니 오라마가 내 발 밑에서 원을 그리며 천천히 돌고 있었다.


오라마의 몸은, 오팔 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


.


.




상부에서 난리가 났다.


당연했다. 어찌 되었건 표면상 사람을 공격한 것이니.


고생물에 대한 이해가 쥐뿔도 없던 상부는 당장 오라마를 폐기하라 난리였다.




‘어차피 다른 샘플 많잖아 이재. 도대체 뭐가 아쉬워서 저 괴물을 데리고 있나! 아리안 팀장!’


‘고생물 복원 기술이 발전하며 복원되는 생물이 지금 한두 마리가 아닌데, 전시목적도 아닌 순수연구 목적에, 사고까지 친 생물에게 내가 투자를 해야 하나?’


‘거기에 듣보잡 생선이잖아! 저거라도 돈도 못볼탠대, 내가 뭣하러..’




전화로 날카로운 노인의 목소리가 울렸다.


난 최대한 비위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투자자를 달래기 시작했다.




“선생님, 그래도 오라마는 연구의 성과가 뚜렷이 보이는 개체입니다. 실제로 지금 저희와 소통도 가능하고요. 오라마의 연구를 지속한다면, 분명 지금보다 더한 성과가 나올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고는, 오라마의 폭력성이나, 야생성으로 인해 일어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내 말에 투자자의 의문스러운 추임새가 들렸고, 이어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앵? 그럼 사고의 원인이 무엇이란 말인가.’




“그건..”


“오라마가 친구를 원했던 것 같습니다.”




뚝-


전화가 끊어졌다.




연구소의 비용이 삭감되었다. 다행히 다른 투자자들은 설득에 성공했지만, 한 투자자만이 상업적 가치가 없다며 더 이상 투자를 하지 않겠다 말했다.


.. 그 자는 돈만 밝히는 자였기에, 없어도 된다.


그래도 예산이 삭감된 여파는 컸다.


전보다 다양하고 새로운 실험은 이재 어려워졌고, 오라마의 수조 유지비를 감당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 되었다.


대신, 오라마가 달라졌다.


전보다 색의 변화도 다양해졌고, 우리에게 갑자기 몸의 색을 변화시키며 따라온다던지, 수조에 손을 대면 머리를 그곳에 대거나 연구원들이 무언갈 들고 수조 근처에 있으면 놀라게 하는 등. 진짜 ‘아이’처럼 교감과 장난치기를 시작했다.




“이잰.. 뭘 해야 할까요?”




엘리자 연구원의 말에 다들 고민에 빠졌다.


도형부터 단어, 단어 따라 하기에서 이해하고 말하기, 간단한 문장 구성, 그리고 인간과의 교감까지.


고작 ‘할루키케니아를 조상으로 둔 고생물의 일부 생태와 신체구조’라는 정보 밖에 없던 이 프로젝트에게, 이러한 성과는 정말 대단한 것이었고, 이 정도로도 충분했다.


하지만, 뿔난 투자자들에게 투자비용을 계속 받기 위해선 성과를 보여야 했다. 그래야 오라마를 살릴 수 있으니깐.


그래서 우린, 조금 무리한 실험을 진행하기로 했다.




실험 내용은 간단했다.


수조 앞에, 거대 거울을 설치하고 오라마의 반응을 지켜보는 것.


그리고 오라마가 그것이 뭔지 묻는다면, 그의 이름을 말해주는 것.


우린 여태 오라마에게 이름을 불러주지 않았다. ‘오라마’란 단어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거울은 더더욱 위험했다. 그 지능 높은 개와 코끼리, 침팬지나 고릴라 같은 영장류 마저, 거울 속 자신을 공격했다.


오라마가 최소한 보더콜리나 까마귀 정도의 지능은 가지고 있어야 실험이 안전하게 성공한다.


난 침을 꿀꺽 삼키며, 거울을 가린 천을 벗길 것을 지시했다.




푹신한 소리와 함께, 천이 벗겨졌고 바로 10X10m의 거울이 드러났다.


오라마는 수조의 뒤편에서 유영하다 거울을 발견하고, 천천히 해엄 쳐 거울로 다가왔다.


오라마는 딱히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거울 속 자신을 빤히 쳐다볼 뿐이었다.


그러던 중, 오라마가 갑자기 이동했다. 오라마는 센서 쪽으로 가며 센서를 하나하나 울리기 시작했다.




“왜?”


“걸음”


“없음”




‘왜’, ‘걸음’, ‘없음’. 다리가 없단 걸 질문하는 것 인가?


이에 나는 마이크를 잡고 오라마에게 말했다.




“넌, 물고기인 ‘오라마’니까.”




이에, 오라마의 색이 변했다.


몸의 색이 푸르고 검은색이 융화된 색으로 변하며, 오라마가 다시 천천히 유영해 센서를 울렸다.




“나”


“생각해”


“너희”


“친구”




오라마는 친구라는 센서에 한참 멈춰있었다.


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깊게 고민하고 있었다.


이때, 오라마가 다시 움직이며 거울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이내, 뒤로 깊이 빠지더니.


.. 수조를 아주 강하게 들이받아버렸다.


.


.


.




수조 엔 큰 금이 가버렸다. 깨지지 않은 게 용할 정도로. 수리하는데 수리비만 천 단위가 나왔다.


하지만 지금 그보다 더 큰 위기는, 오라마의 상태였다.


오라마는 그 충격으로 안면뼈가 부러져버렸다. 그러며 치아도 몇 개 부러져 먹이도 기존 먹이가 아닌 간 먹이를 주어야 했다.


오라마는 지금, 검역수조에 있다. 전보단 한참 작은 곳이라 많이 답답할 것이다.


하지만, 더 답답한 것은 소통할 수 있는 수단이 사라진 것이다.


오라마가 치료될 동안은, 놀아줄 수도, 대화할 수도 없었다.


.


.


.




오라마의 상태가 날이 갈수록 안 좋아지고 있다.


몸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몸은 전부 회복해 기존 수조에 넣었지만, 오라마는 예전처럼 활발히 움직이지도, 우리가 말을 걸어도 대화하지도 않는다.


동시에 먹이반응도 급격히 떨어져 원래 먹던 것의 반도 안되게 먹어 날이 갈수록 오라마의 활동이 둔해지고 있었다.


이대로 두고만 볼 순 없었다.


하지만 먹이를 억지로 먹이면 다 뱉어버리고, 주사는 오라마의 덩치 특성상 엄청 큰 주사를 놓아도 택도 없었다. 그렇다고 고농도의 영양분을 넣어버리자니, 약해진 오라마가 견딜지도 미지수라 넣을 수도 없었다.


우린, 오라마가 스스로 죽어가는 걸 볼 수밖에 없었다.




그날은 프로젝트가 시작한 지 1년이 다 되어가는 날이었다. 정확히는, 2월 11일이었다.


오라마를 만난 건 2월 18일. 고래 보호의 날이라는, 꽤 의미 있는 날에 만났었다.


그래서 라틴어로 ‘바다’라는 말에서 단어를 따와 이름을 ‘오라마’로 지었었다.




고래의 본래 집은 바다이듯, 오라마도 언젠가는 자유를 찾았으면 해서 붙였던 이름이었다


이 넓지만 지루하고 갑갑한 90X140m의 수조대신, 어딘가 자유롭게 살았음 했었다.


하지만 신생대의 환경이, 고생물을 받아들일 리 없단 사실은 너무 잘 알고 있었다.


홀로세의 호모 사피엔스들은 효율과 일, 거기서 파생되는 돈이라는 권력을 좇기 시작했고, 데본기 말에 멸종한 오라마의 일족들은 본능과 자유를 쫒는 생명이었으니깐.


공기도, 물도. 모든 게 다른 곳에서 오라마는 철저히 고립되었다.




문득 떠오른 것이 있다.


오라마가 처음 관심을 보였던 그 머그컵.


우린 머그컵의 형태 변화에서 오라마가 호기심을 느꼈다 생각했다.


하지만 어쩌면..


오라마는 머그컵을 보고 있던 날 따라한 게 아닐까?


한참이나, 머그컵을 보고 고개를 들어 나를 본 것도, 쏟은 커피에 비췬 내가 신기해서가 아닐까?


어쩌면 오라마는 한참 전부터, 아주 과거부터 우리에게 관심 있던 것 아닐까?




' 저것, 나, 혼자, 싫어, 바다, 그저, 좋아.'




“저것..나..혼자..싫어..바다..그저..좋아..”


우리와 자신이 외롭고 재미없지만 그래도 이곳이 좋단 의미였을까.


모두가 퇴근한 연구소는 조용했다.


난 마이크를 켜고, 오라마에게 말했다.




“오라마.”




오라마는 조용했다.


힘이 없는지, 수조 뒤편에서 조용히 누워있었다.




“그으.. 미안.”


“네가 그렇게 싫어할 줄 몰랐어.”




여전히 반응이 없다.


난 조금 심호흡하고, 말을 이었다




“우리가 너무 심한 걸 직면시킨 것 같아.”


“넌 수조에 사니깐, 유리의 뒤편이 막힌 곳에선 너의 모습이 흐릿하게나마 보였을 텐데.”


“어렴풋이 알던 싫었던 진실을, 내가 너무 파고든 것 같아.”




난 슬슬 오라마가 인간이 아닌, 지능이 좀 있는 고생물이란 사실을 잊고 말하기 시작했다.




“난 네가 참 좋아 오라마.”


“넌 내 꺼져있던 순수한 학구열을 불태운 것도 모자라, 고대의 기억과 이야기하게 만들어 줬으니깐.”


“너로 인해 참 많이 웃고, 놀라기도 하고 걱정도 했어. 머리 싸맬 때도 있었고.”


“그래도 지금 와서 그때를 돌아보면, 참 행복한 추억인 것 같아.”




‘좋아’, ‘행복’


그 단어를 듣자 오라마가 꿈틀거렸다.


하지만 난 마이크에 입을 거의 붙인 채 고개를 숙이고 있어 오라마가 움직이는 걸 보지 못했다.




“옜날에, 저것과 너가 혼자여서 싫어지만 바다는 그저 좋다고 했지?”


“그거, 혹시 우릴 말했던거야? 우리도 외로워보였던거야?”


“그래서.. 그래서 그때 날 들이받았구나. 아니, 사실상 넌 날 다치게 할 생각이 없었어.”


“친구가 필요했고, 친구가 되어주고 싶었던거지. 나와 놀고 싶었던거야.”




난 스멀스멀 올라오는 감정에 주먹을 꽉 쥐었다.


오라마는, ‘친구’라는 단어에 앞으로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근대 내가 너무 이기적으로 군 것 같아.”


“넌 아마 너와 우리를 동일하게 생각하고 있었을 탠데, 내가 너를 ‘물고기’인 오라마라고 해서 싫었던거였어.”


“넌, 우릴 친구로 보고 있었는데.”


“미안, 진심으로 사과할게.”


“그러니까 제발 돌아ㅇ..”




난 무언가 물을 가르는 부드러운 소리를 듣고 앞을 보았다.


오라마가, 수조 앞에 서 있었다.


오라마는 수조 앞에 서서 그저 그때처럼, 머그컵을 깼을 때, 처음 인사했을 때처럼 날 빤히 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천천히 움직이며 센서 앞으로 다가갔다.




“이해”


“어려움”


“그래도”


“고마워”




‘고마워’라는 정 가운데에 있는 센서에, 오라마가 멈춰 섰다.


그 음성은 딱딱하고 톤이 일정한 기계음이었지만 난 그곳에서 4억 년 전 바다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손을 수조벽에 가져다 대었다.


오라마도 입술을 수조벽에 대었다.


고생대와 신생대 사이 수억 년, 그 세월을 3m 유리벽처럼 두고 있지만 난 그 벽 너머로도 과거와 현재가 진솔한 대화를 할 수 있단 사실을. 지금 깨닫게 되었다.


내가 활짝 웃자, 오라마도 오팔 빛으로 은은하게 빛났다.


그날 나는, 시간을 넘어온 친구를 사귀었다.


.


.


.




그 뒤로 9년이 흘렀다.


오라마는 그 후, 상태가 점점 회복되며 이전 같은 건강상태로 돌아왔다.


연구소도 다행히 새로운 투자자를 찾았다. 이번엔 고생물에 눈이 돌아간 부자 할아버지였다.


부자 할아버지는 오라마가 센서로 말하는 것을 보더니, 흥분하며 당장 지원하겠다 말하였고, 이 부자 할아버지. 센디넬 씨는 우리의 든든한 자금줄이 되었다.


그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이번엔 우주선에 쓰이는 재료로 잠수복을 만들어 오라마와 주기적으로 놀아주었다. 가끔은 오라마가 힘조절에 실패해 연구원이나 나를 물 밖으로 튕겨내 다치게 할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오라마는 그 연구원이 보이면 미안하다 말하며 자신이 좋아하는 장난감이나, 먹으려던 고기를 줄려 하곤 했다.


안 받으면 삐졌기에, 우린 울며 겨자 먹기로 받아 새로운 먹이와 장난감을 주어야 했다.


센디넬 씨도 오라마와 놀겠다는 걸 말리느라 진땀 뺐었지만, 결국 실패해 오라마가 센디넬 씨를 물 밖으로 튕겨내는 진 풍경을 보기도 했다. 물론 센디넬 씨는 그 조차 좋아했지만..


오라마는 처음 보는 사람도 곧 잘 좋아하곤 했다. 1년 동안은 연구로 인해 가끔 오는 투자자들이나 앤지니어들만 있어 새로운 인연이 없었는데, 센디넬 씨가 오며 오라마가 자기를 좋아해 주는 센디넬 씨를 엄청 따르기도 했다.


좀 서운하긴 했다. 동고동락한 건 우리 인대. 특히 리암이 엄청 서운해했다.


하지만 리암이 오라마에게 따져도, 돌아오는 건 ‘그러면 놀자’ 뿐이었다. 그럼 군말 없이 놀아주긴 했었다.




그리고 그렇게 다사다난한 시간이 지나 어느새 9년.


오라마는 생과 사의 문턱에 섰다.


이빨이 다 빠져 입으로 넣은 먹이관, 거의 남지 않은 비늘과 지느러미, 촉수는 흐물흐물하게 녹아 뿌리만 남았고 오라마의 눈은 이재 흐려져 보이지 않게 되었다.


비늘이 다 빠져 감염에 취약했기에, 검역 어항에서 관리하고 있었다.


이잰 시간이 남지 않았다. 투자자들 중 일부가 반대했지만, 우린 그들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결정한 것이 있다.




바로 오라마의 안락사.


연명치료로 고통받을 바엔, 고통 없이 안락사시키는 것이 좋다고 모두가 판단을 내렸다.


센디넬 씨도 참여하겠다 해 센디넬 씨와 리암, 피아티, 엘리자, 그리고 난 투명한 검역 수조 앞에 서 누워있는 오라마를 보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라마에게 한 마디씩 하기로 했다.




“어.. 음 나부터내. 오라마.”


“그간 정말 고마웠다. 넌 정말 소중한 존재였어”




오라마가, 희미한 에메랄드와 노란빛으로 빛났다.


피아티가 마이크를 옆에 있던 엘리자에게 넘겼다.


엘리자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고마워, 정말 고마워.”


“너랑 바다 같은 수조에서 놀았던 건 평생 잊지 못할 거야.”




오라마가, 이번엔 희미한 주황빛과 붉은빛으로 빛났다.


엘리자는 그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며, 고개를 숙이곤 리암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리암은 이미 눈가가 붉어져 있었다.




“널 처음 봤을 때를 잊지 못해..”


“그때.. 네가 머그컵을 쳐다보면서 보여줬던 그 색, 정말 예뻤어.”


“그거 말고도 넌 정말 아이 같은 놈이었어 오라마.”


“애처럼 삐지고, 놀자 하고, 감정적이고. 하지만 난 그런 네가 정말, 진짜! 좋았어!”


“그니까.. 그니까…”




이내, 리암이 엉엉 울어버렸다.


센디넬 씨에게 마이크를 가져갈 건지 조심히 물었는대, 센디넬 씨는 잠깐이란 수신호를 남겼다.


그리고 울음을 조금 잠재운 리암이 외쳤다.




“넌 나의 소중한 친구야!!”




이 말에, 오라마가 살짝 꿈틀거리며 희미한 오로라빛으로 빛났다.


그걸 본 리암은 더 울어버렸다.


그리고, 센디넬 씨가 마이크를 받았다.




“자네는 정말 훌륭했네 오라마! 내가 투자한 게 전혀 후회가 되질 않아!”


“자네가 날 하늘로 날렸던 기억은 내 죽을 때 까지도 잊히지 않을 거야 허허!”


“다음엔, 사람 대 사람으로 봅세나.”




그 말에 오라마가 희미한 붉고 주홍빛이 융화된 색으로 빛났다.


그 색은. 오라마가 좋아하는 장난감을 가지고 놀 때의 색이었다.


이내 마지막으로, 내가 마이크를 받았다.


난 올라오는 감정을 가라앉히고, 숨을 크게 고르며 말하기 시작했다.




“오라마.”




내 말에 오라마가 꿈틀거렸다.




“그때 기억나? 네가 화나서 아무것도 안 먹을 때”




오라마의 색이, 푸르고 하늘빛으로 바뀌었다.


오라마가 삐질 때, 딱 저런 색이었다.




“그때 내가 한 말 기억나?”




오라마가 검고 회색의 빛으로 빛났다.


.. 모른단 의미인가보다.




“그때, 네가 내 학구열을 다시 불태웠다 그랬잖아.”


“나의 소중한 친구라고.”


“근대 이재와서 생각해 보니, 그건 좀 더 다른 종류의 것이었던 것 같아.”




오라마의 색은 여전했다.


난, 올라오는 감정을 부여잡으며 크게 외쳤다.




“넌! 내게 가족 같은 존재야! 내 꿈을 되찾아준, 내가 애정으로 키운 소중한 친구!!”


“가족이란 단어! 배웠지?”




오라마의 색이 잠시 사라졌다.


난 심장이 내려앉았다. 설마 지금?


하지만 이내.




오라마는 찬란한 오팔의, 무지개 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 색은 희미해도, 난 오라마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알고 있었다.


호기심, 좋음, 기쁨과 즐거움을 넘어 지금, 오라마는 행복의 색을 말하고 있었다.


그 행복은 어느 때 보다 희미했지만, 최후의 생명으로 직조한 아름다움은 다른 의미로 선명한 비단 같았다.




난 오라마의 머리 쪽 수조벽에 손을 대었다.


오라마도 꿈틀거리며, 초점 없는 눈을 내게 맞추었다.




"넌 내 시간을 뛰어넘은 가족이야."


"오라마."


"안녕."




난, 난 떨리는 손으로 안락사 장치의 버튼을 눌렀다.


수조 안으로 오라마를 고통 없이 잠재울 약이 들어갔고, 약이 들어간 지 얼마 안 되어 오라마의 아가미가 멈추고, 색이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모든 게 끝나자.


방에는 조용한 울음소리와 정적만이 가득했다.


.


.


.




새로운 바라애나투로므가 왔다. 70cm짜리 유어.


아직 오라마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인 1개월 만에 온 개체라 좀 다들 심란하고 곤란한 상황이었다.


그래도 일은 해야 했기에, 다들 열심히 해당 개체를 키우며 연구소의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이번 개체도 지능이 있는지 없는지 검사해야 했기에, 우린 검사를 위해 실험을 고안해 내고 저번과 비슷한 실험을 준비했다.




과거 오라마가 있었던 거대한 수조 엔, 이제 리가토가 있었다.


라틴어로 유산(legatum). 오라마가 죽고 1개월 만에 온 이 개체가, 마치 오라마의 유산 같았기에 붙인 이름이었다.


난 넓은 수조에서 헤엄치는 리가토를 보았다.


리가토의 덩치가 작진 않지만, 그래도 수조가 수조인지라 리가토를 상대적으로 작게 보이게 만들었다.


난 자그마하게 보이는 리가토를 손바닥으로 가려보며, 오라마 땐 느끼지 못했던 수조의 넓음을 실감하고 있었다.


이때, 저 멀리서 리가토가 나를 향해 직선으로 쭉 해엄 쳐 오고 있었다.


그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80m의 거리를 순식간에 해엄 쳐 왔다.


난 당황하여 손을 떼고 리가토를 바라보았다.


리가토는 쭉 달려오다 속도를 줄여 벽에 ‘콩’하고 박고는, 날 빤히 쳐다보았다.




그 고대의 눈에서, 이어진 유산이 보였다.


난 내 손 끝을 수조 벽에 가져다 대었다.


.. 리가토도 몸을 오팔처럼 빛내며, 자신의 입술을 수조 벽에 가져다 대었다.


그때 난, 환생이나 영혼 따윈 믿지도 않았지만.


어쩌면, 정말 어쩌면 시간을 넘은 관계인 우리는 어디선가 마주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무언의 감각이 들었다.


…혹은, 이어지는 4억 년 전 과거와 현재의 인연이, 영원히 끊이지 않길 바라는 나의 작은 바람일 수도 있다.




리가토는 한참을 그렇게 있다가, 색을 거두곤 떠나버렸다.


난 멍하니 수조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안녕”


“오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