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친구.
눈앞에 있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수백 미터에 달하는 수조 속에서도 그 위용을 떨치는 거대한 존재는, 지금 고작 단 하나의 물건을 유심히 바라보며 자신의 상태를 전시하고 있었다.
깨진 머그컵.
그 존재는 깨진 머그컵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시선을 떼지 않았다.
호기심, 그 행동은 분명한 호기심이었다.
하지만 말이 안 된다. 그야...
이 존재, 오라마는 고생물이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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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에라투모르.
캄브리아기 때부터 데본기 때까지 꽤 긴 시간을 생존해 온 할루키케니아의 후손.
자신의 조상과는 달리, 판피어류로 진화한 생물이었다.
쉽게 말해 그냥 물고기라는 거다. 좀 많이 큰,
우리 연구소는 고생물 복원 전문 연구소였다. 그리고 난 거기서 이 바나에라투모르라는 종의 복원작업을 맡았다.
그렇게 만나게 된 것이..
지금 막 인공 배양을 시작한 바나에라투모르들 이였다.
난 거기서 그것들의 양육을 맡았다. 꾸준히 환경을 조절해 주고, 기계를 점검하고, 고대어들이 커가는 것을 기록했다.
죽기도 많이 죽고 사고도 많이 일어났다. 집단 폐사가 일어날 때도 있었고..
그 수많은 죽음의 확률을 뚫고 살아남은 단 한 마리의 개체가 바로 오라마였다.
1년 만에 보인 성과였기에 우리 팀은 오라마를 애지중지하며 키웠었다.
진화 전의 고생물이어도 은해를 아는 걸까,
오라마는 어릴 적엔 거대한 수조 앞을 지나가는 우리를 졸졸 따라다녔고 우리 팀을 뺀 타인을 경계했다.
그렇다고 성체가 된 후에도 우리에게 관심을 가지진 않았지만..
그래도 가끔가다 아예 초면인 사람이 들어오면 뚫어져라 쳐다보며 경계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오라마가 성체가 된 후 처음으로 우리가 아닌 다른 것에 관심을 가졌다.
바로 오늘.
깨진 머그컵에 말이다.
“오.. 라마?”
오라마는 천천히 유영하며 머그컵을 관찰하고 있었다. 그건 누가 봐도 ‘관찰’하는 행위였다!
“세상에”
“윌슨 팀장님..!”
옆에서 누군가의 소리가 들려왔다. 리암 연구원이 내 옆으로 달려오며 머그컵을 관찰하는 오라마를 바라보았다.
오라마는 에메랄드와 노란빛이 섞인 빛깔을 띄며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어릴 적, 기분 상태 변화 정도로만 쓰이던 캐모플라쥬 능력이었다.
리암 연구원은 잠시 그 광경을 멍하니 지켜보다 무언가가 생각났는지, 어딘가로 달려가 어떤 검은 것을 들고 왔다.
머그컵이었다. 내가 깬 것과 똑같은 디자인이지만 색은 다른.
리암 연구원은 두 발짜국 옆으로 가더니 머그컵을 힘차게 내리쳤다.
쨍그랑- 소리와 함께 검은 머그컵이 깨져 나뒹굴었다.
오라마의 눈이 살짝 움직이더니, 이내 오라마가 고개를 돌렸다.
.. 검은 머그컵 조각들로 말이다.
아까와 똑같은 색을 띤 채 오라마는 이번엔 검은 조각들을 관찰하고 있었다.
“팀장님..! 팀장님..!”
“보셨습니까?”
“봤네, 봤어.”
리암 연구원이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내 한쪽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이런 적 처음이에요..!”
“오라마가 호기심을 가졌다는 뜻일까요? 아니면 혹시..!”
리암 연구원은 이내 날 바라보며 말했다.
그의 환한 얼굴에서 ‘폭발하는 학술적 호기심’이 느껴졌다.
“지능이 있단 뜻일까요?”
지능.
고생물과 지능. 세상에서 재일 어울리지 않는 단어의 조합이었다.
하지만.. 미세하게 열린 문 틈으로,
가능성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래서 계획된 실험 방향을 바꾸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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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간단한 실험이 주를 이뤘다.
소리를 들려주고, 도형들을 보여주는 등 아주 기초적인 자극 실험을 진행했다.
하지만 오라마는 오로지 그날의 깨진 머그컵 외에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특히 소리엔 더더욱.
결국, 비상회의가 소집되었다.
“머그컵에 왜 관심을 보였던 걸까..?”
“그러게요, 소리인 줄 알아서 도자기나 유리 깨지는 소리를 들려줘도 반응이 없고.”
“그렇다고 다시 머그컵을 보여줬을 땐 그냥 지나가 버렸어요.”
내 의문에 리암 연구원이 의문을 얹었다.
다들 골똘히 머리를 굴리며 자기들 만의 마인드 맵을 펼치고 있었다.
의문이라는 백지에 얼마나 예상을 덧그렸을까,
엘리자 연구원이 입을 열었다.
“혹시, 상태 아닐까요?”
“상태?”
“네, 물체의 상태 변화요.”
“오라마는 유어 시기 때 우리나 기타 사물 등에도 이유 없는 캐뮤플라쥬를 하곤 했잖아요.”
“이번에 보였던 색인, 에메랄드빛과 노란빛을 띠고서요.”
“어쩌면 그게 이유 없는 캐뮤플라쥬가 아닌, 지금 우리가 의심하고 있는 오라마의 ‘호기심’이지 않을까요?”
그 말에 피아티 연구원이 ‘아!’하는 탄성을 내지르며 주먹으로 손바닥을 가볍게 때렸다.
“그럼 그냥 머그컵이 아닌 ‘깨진’ 머그컵에 관심을 보인 건 익숙한 사물의 상태 변화가 오라마의 호기심을 이끌어냈단 건가요?”
“제 예상은 그렇습니다, 일단은.”
“오라마는 어릴 적부터 우리를 봐왔고, 우린 머그컵으로 커피를 자주 마시니깐..”
“재일 가까이서 보던 사물의 형태 변화가 오라마의 호기심을 이끌어낸 거군.”
내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해결되지 않은 의문이 있었다.
“근대 이상하네.. 우린 분명 바나에라투모르의 DNA를 그대로 복원하지 않았나?”
“그렇다면 고생대에도 지능이 있는 개체가 존재했단 의미인가...?”
“어떻게..”
“한 가지 사고에 매몰되는 것은 좋지 못합니다 팀장님.”
“지금 이 시대에는 인간이 주역이지만 언젠간 누군가에게 자리를 내주어야 하듯, 그들이 그랬을 수도 있으니깐요.”
피아티 연구원이 내 말에 따끔한 일침을 놓았다.
그 따끔한 말에 내가 ‘그건 그렇지’라며 감사의 의미를 표하자 다들 하하 호호 웃으며 회의가 마무리되었다.
다들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고 나도 자리를 정리하고 나오며 오라마의 수조를 보았다.
그래, 시대의 주역.
과연 바나에라투모르라는 종은 데본기 바다의 주역들이었을까?
그 증거는 오라마가 보여줄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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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 회의 때 내용을 바탕으로 이번엔 우리가 자주 쓰던 물건들을 찢고 부숴보았다.
성공이었다! 오라마가 관심을 보였다. 저번과 같은 색을 띠고 말이다.
특히 수조 옆을 쭉 이동하며 차트의 종이를 북북 찢을 땐 오라마가 엘리자 연구원을 따라다녔다.
하지만 모든 것에 관심을 보이진 않았다.
오라마는 기계 수준의 변화엔 관심을 보이지 않았으며, 단순한 물체 변화에만 관심을 보였다.
또한 여전히 청각적인 자극엔 관심이 없었다.
여기서, 하나의 아이디어를 얻어냈다.
단순한 변화에만 관심을 보이니 실험도 단순하게 하자고 말이다.
우린 ‘도형 반복 노출 실험’이란 것을 기획했다.
내용은 간단했다. 오라마에게 4일간 원을 보여준 뒤, 5일 차엔 반으로 쪼개진 원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천천히 도형의 대한 다양성을 넓혀가는 실험이었다.
“성공할까요 팀장님..? 오늘이 드디어 5일 차인대..”
실험을 먼저 제안한 리암 연구원이 약간은 불안한 듯 손을 꼼지락 대고 있었다. 솔직히 나도 불안했다.
아예 없는 케이스였고, 실험의 방향이 바뀐 이상 따라오는 리스크도 컸으니..
우리가 불안해 보였을까, 탕비실 의자에 앉아 그걸 지켜보던 엘리자 연구원은 이내 일어나더니 리암과 나의 손에 무언가를 쥐어줬다.
작은 곰젤리였다.
“그렇게 위축되어 있지 말고 이거 먹고 힘내요 다들.”
“곰젤리? 웬 곰젤리인가?”
내 말에 엘리자 연구원이 곰젤리 하나를 입에 쏙- 넣고 우물거리며 답했다.
“단거 먹으면 힘나잖아요!”
“그리고 이걸 부적 삼아서 불운을 담는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일이 잘 안 되면 확! 먹어서 없애버리는 거죠.”
“왜 굳이 불운을 먹어요..”
리암 연구원의 말에 엘리자 연구원이 그의 등을 가볍게 팍- 치며 답했다.
“버리면 불운이 남아있잖아요!”
“없애서 불운조차 내 것이 되게 만드는 거죠. 아무리 불운이 찾아와도 무너지지 않도록.”
난 곰젤리를 유심히 보았다.
흰색의 말랑하고 귀여운 곰젤리. 그래, 불안해할 바엔 내 것으로 만드는 게 좋겠지.
난 엘리자 연구원을 향해 엄지를 치켜 새우며 곰젤리를 우적우적 씹어먹었다.
리암 연구원도 이내 짧은 기도를 올리더니 곰젤리를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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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실험시간이 되었다.
늘 정해진 시간과 기간마다 바꾸기로 했기 때문에 도형을 막 바꿀 순 없었다.
5분 전, 우리의 불운이 내 것이 되었을지 아닐지 확인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동시에 오라마가 나아갈 앞으로의 여정도 말이다.
“바꿉니다.”
피아티 연구원의 말에 난 동의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고, 이내 그는 컴퓨터를 조작해 이동식 TV화면에 쪼개진 원을 띄웠다.
저 멀리서 오라마가 해엄 쳐 오고 있다. 마침 늘 해엄치 던 패턴대로 오는 것이라 도형을 눈치챈 것인지, 아닌지 헷갈렸다.
그리고 TV앞에 다다르자,
오라마는 고요히 멈춰 서서 도형을 잠시동안 지켜보았다.
그의 몸은 빛나진 않았지만 확실한 것 하나는 알 수 있었다.
성공이다. 실험이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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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물이란 단어는 겉으로 보기엔 고리타분해 보이지만 그 실체를 알면 모험과 신비가 가득한 마법의 단어였다.
오라마는 그런 ‘고생물’이란 단어에 딱 어울리는 존재였다. 정말 역설적이게도.
계속되는 도형 실험 때마다 짧게나마 관심을 가지는 오라마를 볼 때면.
과거, 이 전공을 처음 택했을 때의 학구적 불씨가 살아나는 느낌이 들었다.
도형 실험이 막바지에 이르자 오라마가 관심을 보이는 시간도 점점 늘어갔다.
그래서 우린 여기서 파생된 실험을 더 해보기로 했다.
‘팩토그램 실험’ 말이다.
이전과 내용은 같았다. 다만 보여주는 그림이 달라졌을 뿐.
다양한 사물과 동물, 인간의 자세 등을 묘사한 그림을 보여주자 오라마는 전과는 비교되지 않을 수준의 관심을 보였다.
특히 인간의 팩토그램에 관심이 상당했다. 오라마는 유일하게 이 그림들 앞에서만 호기심의 색을 띠었다.
하지만 물고기나 바다 관련 팩토그램은 처음에만 잠시 관찰했지, 나중엔 관련 그림은 싹 다 무시한 채 은은한 군청빛을 띠곤 수조 안을 느리게 유영했다.
나머지는 비슷했다. 전 실험과 약간 다를 수준이었다.
“음... 이재 뭘 해보죠?”
엘리자 연구원의 의견이었다.
그 말에 난 전부터 늘 생각 중이던 아이디어를 꺼냈다.
“도형, 팩토그램까지 했음 다음엔 뭘 해야지?”
“어.. 글자요?”
엘리자 연구원의 대답에 내가 손가락을 튕기며 ‘그래!’라고 답했다.
“이 정도로 이해력이 뛰어나다면 글자를 가르칠 수도 있을지 몰라.”
“하지만 어떻게요?”
“오라마 특성상 침팬지나 개처럼 보상을 통한 반복학습이 어려울 텐데..”
“피아티, 잘 생각해 보게나.”
“오라마가 그동안 어떠한 보상체계를 통해 그림들을 익혔는가?”
피아티 연구원은 음- 소리를 내며 손바닥 위를 반대 손가락으로 살살 긁더니 대답했다.
“음.. 그건 아니죠.”
“하지만, 글자를 가르치는 건 전혀 다른 일입니다 팀장님.”
“이전과 똑같은 방식을 고수하실 생각인가요?”
난 씩- 웃으며 답했다.
“아니.”
그 미소엔 옛 저녁, 의문이라는 백지 위에 좋은 의견이 떠올랐다는 나만의 표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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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말을 한 것이 무색하게 실험 내용은 거의 달라진 게 없었다.
딱 하나, 달라진 게 있다면..
‘청각적 자극’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생각이었다.
우린 오라마의 수조에 진동으로 소리가 전파되는 장치를 설치했다.
오라마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정도로 볼륨을 낮게 조정하고, 여러 가지 자료들을 틀어줄 계획이었다.
대사가 간단한 영화나 드라마 같은 매체, 언어 공부용 자료, 일상생활 녹음본 등등..
가끔가다 우리가 말을 거는 것도 자료로 넣었다.
오라마의 상태를 꾸준히 확인해야 하니깐 말이다. 다들 간단한 인사나 안부를 묻는 것이 주를 이루었다.
하지만 스트레스를 받은 탓일까, 오라마의 활동이 소폭 줄었다.
그렇다고 철수할 수준의 문제는 아니었기에 실험은 계속 진행되었다.
그리고 3개월이 지난 시점에 다시 수조 앞에 대형 TV를 설치했다.
그리고 오라마가 들었던 언어 중, 가장 노출도가 높았던 언어를 띄워주고 그에 반응을 보이면 내가 그 단어를 읊어 주었다.
안녕, 잘 지냈어?, 고마워 같은 것 말이다.
오라마는 이번엔 호기심의 색과 뭔지 모를 주홍빛의 색을 번갈아 보이며 단어들에 관심을 보였다.
그러면서 나도, 오라마의 색에 물드는 기분이었다.
그 신비로운 광경을 볼 때마다 정말 ‘호기심을 가진 어린아이’를 보는 듯해,
나에게 오라마는 더 이상 ‘바나에라투모르’라는 고생대에 한정된 존재가 아니게 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이 실험의 종지부를 찍을 날이 다가왔다.
오라마가 여태 배운 모든 것들이 효과가 있는지, 그의 종족이 과연 데본기의 주역이었는지 확인할 실험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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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조 앞에 단어들을 붙여놓았다.
전부 오라마가 배웠던 것들 이였다. ‘안녕’, ‘반가워’, ‘고마워’, ‘싫어’, ‘좋아’ 등등..
늘어놓은 단어들을 유심히 보며 난 내 손에 놓인 것을 보았다.
아까 탕비실에서 가져온 흰색 곰젤리.
엘리자 연구원이 두고두고 먹으라고 큰 통을 가져다 두었기에 거기서 하나를 골라내었다.
‘오라마와 소통하게 해 주세요.’
작은 소원을 담아 초록빛 수조에 묵념한 후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흰 곰젤리에 담아 먹어버렸다.
그리고 준비한 연구원들에게 신호한 후, 마이크를 잡았다.
“안녕.”
전파를 탄 내 목소리가 거대한 수조 안에 웅얼거리며 퍼졌다.
하지만 오라마는 반응이 없었다. 그저 평소처럼 수조를 천천히 유영하며 우릴 보고 있을 뿐이었다.
“어..”
“반가워.”
최대한 평소 읊어주던 것과 같은 톤으로 말했다. 하지만 오라마는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
나열된 단어를 쭉 읊을 때 까지도 오라마는 반응이 없었다.
답답했다. 물론 여태까지 성공하던 실험이 실패해서도 있겠지만..
그보다 나에겐 오라마의 반응이 야속할 정도로 서러웠다.
결국, 참지 못하고 수조 앞으로 다가가 한마디를 읊조렸다.
“실패인가..”
날 본 걸까, 오라마가 다가왔다. 그리고..
단어 앞으로 이동했다.
‘싫어’ 말이다.
“어..? 어?!”
다시 마이크를 잡으려던 찰나, 스친 생각들 때문에 난 그냥 여기 서서 말하기로 했다.
“좋아.”
그러자 오라마는 ‘좋아’라는 단어로 이동했다.
“안녕”
오라마가 ‘안녕’으로 이동했다.
난 오라마가 가는 곳을 천천히 따라다니며 마지막 단어를 읊었다.
“... 반가워.”
오라마도 내 앞에 단어, ‘반가워’에서 멈춰 섰다.
그의 몸은 지금 주홍빛과 붉은빛으로 융화되어 빛나고 있었다. 무슨 기분의 색인진 모르겠지만..
그래도 오라마는 지금 기분이 좋아 보였다. 나도 그에 화답하며 오라마에게 웃어주었다.
그는 이재, 데본기 주역의 증인을 당당히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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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커는 전부 철수되었다. 내 작은 목소리에도 반응했던걸 보면 소리에 꽤 민감했던 모양인데,
그동안 아무리 작은 소리여도 스피커로 그걸 때려 박았으니..
오라마의 활동량이 소폭 준 게 이해가 갔다.
대신 수조에 좀 좋은 장비를 설치해 주었다.
센서가 오라마의 위치를 인식해 일정 범위 내로 들어오면 TTS로 해당 단어를 읽어주는 장치였다.
오라마에겐 소리가 바깥에서 작게 들리도록 처리했다. 그 편이 스트레스가 줄 것 같아서였다.
뭐 오라마가 수조 벽에 딱 붙어 해엄칠 때면 단어가 무작위로 나온다는 게 단점 아닌 단점이지만..
잘 그러지 않으니, 상관없는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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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개월이 흘렀다. 그동안 오라마는 많은 단어들을 배웠고, 그러면서 장치의 단어도 계속 바뀌어갔다.
‘좋아’에서 ‘기뻐’로, ‘싫어’에서 ‘미안’으로 바뀌어갔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안녕’과 ‘고마워’는 바뀌지 않았다. 그야 아주 기본적인 대화 방식이니깐.
그리고 오라마가 그 단어들을 유독 좋아하는 것도 있었다.
“안녕 오라마. 오늘은 기분이 어때?”
“좋아”
이재 오라마는 문답이 가능할 정도의 지식수준을 갖추었다.
내 질문에 은은한 오로라 빛을 띠며 대답하는 오라마가 참 고마웠다.
“좋네, 이번엔 새로운 단어를 배워볼 거야.”
‘새로운’이라는 말에 오라마의 몸이 호기심의 색으로 물들었다.
마치 나에게 ‘무엇을 내놓을 건지’를 묻는 듯했다.
이번엔 살짝 긴장되었다. 그야 오라마가 보기만 하면 환장하는 단어였으나 깐.
난 준비 중인 피아티 연구원에게 신호를 보냈다.
딱- 소리와 함께 TV가 켜졌고 거기엔 한 단어가 나와있었다.
‘인간’
그걸 본 오라마는 유심히 단어를 지켜보다가 센서 앞으로 이동했다.
오라마가 울린 딱딱한 기계음이 연구실을 가득 매웠다.
“이거”
“뭐야?”
“이건 우리야.”
그 순간, 오라마의 색이 바뀌었다.
오라마는 일순 호기심의 색에서 진하고 깨끗한 주홍빛과 붉은빛으로 빛나더니 뒤로 천천히 몸을 뺐다.
그리곤..
수조를 들이받았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모두가 당황했다.
하지만 우리의 상태는 상관없는지 오라마는 계속 ‘인간’이라는 단어를 향해 몸을 들이받으며 입을 쩍- 쩍- 벌려대었다.
피아티와 리암 연구원이 심하게 당황하며 ‘안정제를 넣어야 한다’라고 주장했지만,
그 모습은 나에겐 조금 이상하게 다가왔다.
오라마의 눈과 색에선 그 어떤 악의도 느껴지지 않았다.
저번에 바다와 물고기를 보여주었을 때 보여주던 침울한 색과는 다른, 너무나 깨끗하고 쾌활한 붉은색이었다.
어린아이의 색 같았다.
놀고 싶은 어린 아이.
하지만 이 상황은 갈무리해야 했다. ‘어떤 말을 해야 할까’ 고민되던 순간,
머릿속에서 한 문장이 스쳐 지나갔다.
난 수조 앞으로 뛰어나가며 오라마에게 두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외쳤다.
“나중에 놀아줄게!”
“그니까 그만해!!”
내 말에 오라마가 물러났다. 그의 몸 색은 여전히 깨끗한 붉은빛을 띠고 있었지만 그 색은 좀 옅어져 있었다.
대신, 오라마는 흥분한 듯 갑자기 돌아다니다 센서로 향했다.
그리고 무작위로 센서를 울리고 다녔다.
‘저것’
‘나’
‘혼자’
‘싫어’
‘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남긴 채 잠잠해졌다.
‘그저’,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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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것, 나, 혼자, 싫어, 바다, 그저, 좋아..”
“무슨 뜻일까요?”
난재같은 단어의 나열에 우린 모두 머리를 부여잡고 있었다.
엘리자 연구원이 잠시 머리를 붙잡더니 의견을 내놓았다.
“저것이라면 인간이거나 우리.. 자긴 혼자라 싫은 거고, 그럼 바다, 그저, 좋아는 무슨 뜻일까요?”
“바다에서 온 존재라 그런 거 아닐까요? 어쩌면 바다가 좋다는 단순한 뜻일지도 몰라요.”
리암 연구원에 의견에도 모두의 의문은 해소될 여지가 안보였다.
그러다 문득, 머릿속에 생각이 스쳤다.
“오라마에게 우리가 보여준 바다는, 그저 픽토그램뿐이었어.”
“외의 관련된 자료는 전부 물고기 같은 바닷속 생명이었지. 당시의 생물을 픽토그램 화한.”
“하지만 오라마는 분명 ‘바다’라는 계념을 이해하고 있어. 그때 바다를 한참이나 본 뒤로 관련 키워드들을 모두 무시하기 시작했으니 이해하고 있을 거야, 분명히.”
“실례지만 팀장님..”
“무슨 소리인지 도통...”
“잠잖고 들어보게 피아티, 오라마는 수조 밖으로 못 나가네. 그렇지?”
“그렇죠”
“오라마는, 평생을 검역수조 아니면 저 메인수조에서 보냈어. 데본기의 초록색 물과 함께 말이야.”
“그러니 오라마의 시야에서 보는 우리는 어떤 색이었을까?”
내 말에 피아티 연구원이 잠시 고민하더니 손바닥 위로 주먹을 탁- 놓으며 외쳤다.
“오라마에겐 여기가 바다라는 뜻인가요?”
“하긴.. 데본기의 어류들은 색을 볼 수 있죠.”
“아마 오라마가 말한 바다는 이곳이 아닐까?”
“우리가 있는 이 연구소 실험실.”
“근.. 대 그럼 왜 여기가 좋은 거예요?”
“태어난 곳이어서 그런가..”
“종합하면 우리.. 혼자는 싫고.. 하지만 여긴 좋다?”
리암 연구원이 보기 좋게 정리해 주었다. 하지만 그래도 아직 오라마가 만든 수수께끼의 문제 풀이는 울퉁불퉁한 구성을 띄고 있었다.
머리에 과부하가 와서 빙빙 돌고 있었다. 결국, 내가 먼저 백기를 들고 말았다.
“... 모르겠다.”
“오라마랑 좀 더 있으면 알게 되지 않을까?”
그냥 근거 없는 직감적인 말 이었지만.
마치 흰 곰젤리처럼, 내겐 부적 같은 힘을 가진 말이었다.
아무 실증도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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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 교육은 계속 진행되었다.
오라마는 이재 복잡한 단어의 조합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봤자 ‘이거 좋아’나 ‘기분 별로’ 같은 말이었지만..
‘고생물’이라는 카테고리의 종이 이 정도까지 온 것도 정말 대단한 일이었다.
그날도 평소와 같은 실험이 진행되었다.
“안녕.”
“잘 잤어?”
“조금”
“별로.”
언제나 다를 바 없는 기계음이 공간을 채웠지만 단어 선정 탓일까, 뭔가 목소리가 풀 죽어 보였다.
이에 자연스레 오라마의 안부를 물어보았다.
“왜? 무슨 일 있어?”
“질려.”
질려?
추가한 단어 중 거의 쓰이지 않는 단어인데..
심지어 이런 식으로는 처음 쓰이는 단어였다. 약간 당황한 나는 오라마의 기분을 달래주기 위해 몇 가지 제안을 내었다.
‘놀거리’나 ‘새로운 단어’ 같은 것들.
하지만 이것들은 모두 물속에 힘 없이 가라앉을 뿐이었다.
뭐가 문제인 걸까, 무엇이 오라마의 기분을 상하게 만든 것일까?
아까 전부터 계속 드는 생각이 있었지만 말해도 될지, 망설여졌다.
하지만 뭐라도 하지 않으면 오라마가 침묵할 것 같았기에 난 의문 위에 그린 내 의견 중 가장 불안한 것을 내뱉었다.
“.. 어디로 가고 싶어?”
그 말에 순간 오라마에게 오팔 같은 빛이 지나갔다.
오라마는 무언갈 골똘히 생각하는 듯 잠시 멈춰있더니, 이내 센서를 향해 천천히 나아갔다.
그리고 딱 두 마디를 남겼다.
“걸음”
“너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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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라마가 인간이 되고 싶단 뜻일까요?”
“그럼 이거 진짜 대박인데!”
리암 연구원이 신난 목소리로 떠들어 대었다. 하지만 그 소리에 피아티 연구원이 바로 찬물을 끼얹었다.
“그래도 다른 뜻일 수 있잖아요.”
“그저 흥미로웠다던지..”
“그렇다기엔 메시지가 너무 뚜렷하지 않나요?”
피아티 연구원의 말을 엘리자 연구원이 다시 반박했다.
그녀는 곰젤리를 손에서 굴리며 말을 이었다.
“너무 노골적으로 말하잖아요, 뭘 하고 싶은지.”
“전부터 보여준 인간에 대한 관심도 그렇고.. 이쯤이면 자신을 우리와 동일하다고 생각할지도 몰라요.”
“솔직히, 안전하단 생각이 들진 않네요.”
“... 그건 저도 동의 합니다.”
피아티 연구원이 손바닥 위에 반대 손가락을 슥- 슥- 그으며 말했다.
“오라마가 아무리 순종적이라 해도 9m의 거대 육식어종이 스스로를 ‘지성체’라 여기는 건 좀 다른 문제긴 하죠.”
“만약 여기가 싫어지거나 악의를 가지게 된다면...”
“보수공사를 위해 수조에 들어가는 사람을 해칠 수도 있고, 더 심하게는 수조를 깨버릴 수도 있어요.”
“저번에 다들 보셨잖아요? 오라마가 우릴 공격하려 드는 것을”
아니.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연구자로서, 더 나아가 연구 팀장으로서 근거 없는 판단은 독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마음속에선 점점 더 크게 피어오르는 불씨가 날 건들고 있었다.
학구열의 불씨.
그 어떤 확실한 실증적 근거나 물증도 없이 그저 ‘알고 싶다’라는 감정.
그건 불확실한 심증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팀장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줄다리기가 시작되었다.
순수한 학구열과 팀장으로서 지켜야 할 원칙이 서로 싸우고 있었다.
“팀장님..?”
하지만 이내 결판이 났다.
“괜찮으ㅅ”
“그때 오라마는.”
“우릴 해치려던 게 아니었어. 난 그걸 느꼈다네.”
“나중에 놀아준다는 말에 멈춘 것도 그렇고, 그 덩치로 수조를 몇 번 들이받으면 분명 박살 낼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않았어.”
“오라마는 딱 적정선까지 힘조절을 했어. 마치.. 놀듯이.”
“그럼 지금 팀장님은 오라마가 우리와 놀려고 했단 뜻인가요?”
“그렇지만.. 이건 심증일 뿐이잖아요!”
“팀장님의 마지막 말에 멈춘 것도 단순히 ‘나중에’나 ‘그만해’를 중심으로 알아들은 걸 수도 있고, 힘조절을 한건 그저 지능 높은 동물의 질 낮은 장난 일 수도 있어요!”
“돌고래가 복어를 가지고 놀듯, 오라마에게 그럴 가능성이 있단 것을 배제할 수 없어요.”
엘리자 연구원이 손에 곰젤리를 꼭 쥔 채 의견을 내었다.
하지만 이에 누군가가 새로운 덧칠을 하기 시작했다.
리암이었다.
“그렇다고 하기에 오라마는 여태까지 너무 인간 친화적이었어요. 오라마가 진짜 악의를 가졌다면 저희에게 이런 요구 자체를 하지 않았을 거예요!”
“악의를 가진 존재는 타인을 못 믿으니깐요. 만약 오라마가 거기까지 사고가 된다면 ‘어딜 가고 싶어?’라는 질문에 우리를 답하진 않았겠죠.”
“그건 호기심을 넘어 동질감과 친밀감에서 오는 답이니깐요.”
“음...”
“하지만 그래도 이건...”
한바탕 토론 끝에 잠깐의 고요함이 찾아들었다.
그 고요함 위에서 난 오라마를 생각했다.
순수한 어린아이 같던 고대의 생명체. 어쩌면 이 토론으로 오라마의 끝을 정해야 할 수도 있었다.
.. 하지만 그전에, 해보고 싶은 게 있었다.
“제안할게 하나 있네.”
“뭐죠?”
“오라마에게 사람을 경험시켜주고 싶어.”
내 말에 세 연구원이 모두 ‘네?’하고 소리치며 날 동그란 눈으로 쳐다보았다.
“안됩니다 팀장님, 이건 너무 위험해요!”
“오라마의 수조는 현재 데본기 시절 바다환경입니다. 저 독성 가득한 물에 노출되면 위험해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팀장님.”
“그뿐 아닌 오라마는 9m 육식 어종입니다. 수조의 무턱대고 들어가는 건 너무 무모한 행위예요.”
엘리자와 피아티 연구원이 강하게 반대하고 나섰다.
하지만 리암은 조금 달랐다.
“완전한 폐회로성 잠수복이면.. 가능성 있지 않을까요? 아주 튼튼하게 특수 제작한 걸로 말이에요.”
“리암 지금..”
“들어봐요 엘리자.”
“오라마는 지성이 있는 고생물이에요. 감사함을 알고, 미안함을 알죠.”
“... 전 예전부터 조금씩 느끼던 게 있어요.”
“뭘..”
“오라마에게 인간성이 생겼지 않을까? 하는 근거 없는 느낌이요.”
“물론! 물론.. 그냥 몇몇 사람들처럼 기계적으로 안녕과 고마워를 말하는 걸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제 눈엔 아니었어요. 오라마는 어린아이 같으니깐..”
리암 연구원의 말에 엘리자 연구원이 머리를 부여잡으며 한숨을 쉬었다.
그러며 무언가 반박할 말을 꺼내려던 찰나.
“그럼, 리암과 팀장님은 오라마를 믿습니까?”
피아티 연구원이 끼어들었다.
“저희가 안에 들어갔을 때, 그 어떤 반응을 보여도 대응할만한 수단이 있으신가요?”
“솔직히, 없네.”
“저 커다란 물고기를 어떻게 이기나. 그것도 독성 가득한 물속에서.”
내 말에 피아티 연구원이 꼬물대던 손을 풀곤 허리춤에 손을 올렸다.
그리곤 바닥을 바라보며 잠시 곰곰이 생각하는 듯 눈을 감고 있다, 다시 날 바라보며 말했다.
“...”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팀장님께 굉장히 실망했습니다.”
날 정면으로 바라보는 그의 눈엔 알 수 없는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무리한 의견에 대해 제대로 된 근거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대책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미 팀장님은 들어가고 싶으시잖아요. 그렇죠?”
“.. 전 팀장님을 잃긴 싫습니다, 하지만.”
그는 허리춤에 손을 풀고 팔짱을 끼며 말했다.
“학술적 조사와 실험에 늘 합리적 실증만이 뒤따르는 법은 없죠.”
“리암도 그렇고, 팀장님도 그렇고.”
“오라마와 많은 유대가 쌓인 듯합니다.”
“.. 그러니 오라마에 대해선 저희보단 두 분이 더 잘 알겠죠, 그렇죠?”
그 말에 리암이 힘차게 끄덕였다.
나도 따라 끄덕이며 나의 의견을 전했다.
“오라마는, 내가 제일 잘 알아.”
“그의 탄생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과정을 지켜봤으니깐.”
이에 피아티 연구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내게 손을 내밀었다.
믿음이자 신뢰의 보루 같은 손길이었다.
난 힘차게 잡아 흔들며 피아티 연구원에게 내 의지를 전했다.
그 모습을 아까부터 조용히 지켜보던 엘리자 연구원도 꼭 쥐고 있던 곰젤리를 꿀떡- 삼키더니 내게 손을 내밀었다.
그 손길에도 화답하며 말했다.
“다들 믿어줘서 고맙네..”
“그러니 이번 실험은 내가 들어가도록 하지!”
그러자 또다시 두 연구원들이 뒤집어졌다. 누군지는.. 알 꺼라 생각한다.
.
.
.
2명의 연구원의 강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오라마를 만나러 가는 건 나로 결정이 되었다.
특히 리암이 절대 안 된다며 사정사정했지만..
내가 주도하고 벌인 위험한 일에 다른 팀원을 사지로 몰아넣을 순 없었다.
습- 습-
산소마스크의 습윤한 소리가 물 찬 천장을 메아리치듯 울렸다.
“팀장님, 괜찮아요?”
리암 연구원의 목소리가 헤드셋 너머로 들려왔다. 난 헬멧 안쪽의 마이크 부분을 톡톡 치며 ‘괜찮음’을 표현했다.
그리고 발 밑을 보았다.
발 밑 거대한 수조 엔 독성 가득한 초록색 물이 가득 차 있었다. 만약 잠수복이 고장나기라도 하면...
아니다, 이런 불행한 생각은 이미 곰젤리에 담아 먹어버렸다.
나의 것으로 만든 불행은 더 이상 힘을 가지지 못하니 이런 생각은 의미가 없다!
들어가기 전, 우린 서로 이 실험에서 반드시 지키기로 한 한 가지 수칙을 주고받았다.
“리암. 기억하지?”
“이번 실험의 절대적 수칙.”
“... 무슨 일이 있어도 중단하지 않기요.”
“그래.”
난 잘 다녀오겠단 의미의 수신호를 하고, 물속으로 들어갔다.
첨벙- 하는 소리와 동시에 오라마가 반응을 보였다. 아마 먹이를 넣어줄 때와 비슷한 소리가 나서겠지.
오라마는 입을 살짝 식 벌리며 사냥할 듯 해엄 쳐 오다 나를 보곤 그 자리에서 멈춰서 버렸다.
그리고 한참 동안이나 날 바라봤다. 물론 물고기 특성상 정면에 눈이 달린 건 아니라 시선이 직관적으로 보이진 않았으나,
호기심과 쾌활함의 색을 띠며 멈춰있는 오라마는 분명 날 관찰하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대치 상태가 얼마나 지났을까,
오라마는 갑자이 입을 다물고 나에게 돌진하더니..
날 그대로 들이받아 버렸다!
다행히 잠수복이 튼튼해 많이 아프진 않았지만 당황스러웠다. 이게 무슨 일이지?
하지만 오라마는 저 멀리 갔다 다시 나에게 돌진하며 이번엔 날 물곤 더 깊은 곳으로 내려갔다.
헤드셋 너머로 연구원들의 고함과 비명소리가 들렸지만 그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야 오라마가 계속 날 가지고 놀았으니깐.
들이받고, 물고 흔들어 던지고, 위로 올라가려 하면 머리로 눌러버리고, 그 후 다시 들이받기를 반복했다.
그때와 같은 쾌활한 색을 하고선.
어쩌면 저 색은 어린아이의 순수함이 아닌 순수한 악의를 가진 색이었을까? 아니면 다른 종류의 호기심의 색일까?
오만가지 생각과 두려움이 혼합되어 의문이라는 까만 종이 위에 의견을 내놓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가지고 논 듯했다. 천천히 추락하며 공처럼 다뤄졌으니.
그렇게 결국 난 수조의 바닥에 다다랐다.
이잰 잠수복도 한계일 것 같고, 나도 멀미가 나서 미칠 것 같았다.
여전히 오라마는 나를 향해 돌진해오고 있었다. 결국 난 아까부터 계속해왔던 의미 없는 버둥거림을 다시 시작했다.
하지만,
오라마는 내 앞에서 정지하듯 멈추더니 나에게 자신의 얼굴을 가져다 대었다.
무슨 상황인지 감이 잡히지도 않았다. 애당초 멀미가 너무 나서 재정신도 아니었다.
내가 진이 다 빠진 채 팔만 휘적대고 있자 오라마도 한참 들이밀던 얼굴을 치우더니 날 다시 물었다.
그리곤 천천히 올라가 날 수면 위에 던져놓고 가버렸다.
“팀장님! 팀장님!”
겨우겨우 발을 디딜만한 곳으로 올라오자 그 재서야 팀원들의 무전이 귀에 들어왔다.
“괜찮으세요 팀장님?”
“어... 어어...”
“그냥 멀미 좀 심하게 나는 거 빼면 괜찮아...”
“잠수복은요?”
그 말을 듣고 난 잠수복을 구석구석 살펴보았다.
오라마가 이곳저곳 문 흔적을 재외 하면 깨지거나 금이 가거나, 변형이 된 흔적은 전혀 없었다.
흠집을 재외 하면 완전 새것 같았다.
이때, 스피커로 딱딱한 기계음이 들려왔다. 하지만 수조 안에 있는 내겐 먹먹하게 파편화된 소리로 다가와 알아듣기 힘들었다.
기계음이 다 끝나고 리암 연구원에게 무전을 쳤다.
“리암, 들리나?”
“네.. 네 팀장님.”
“오라마가 뭐라고 한 것 같은데, 뭐라고 한 건가?”
“그게..”
어렴풋한 물속 너머로 리암 연구원과 나머지 연구원들이 수조에 다가와 있는 게 보였다.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다음에 나온 그의 목소리를 통해 난 그들의 표정을 대충 유추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재밌어, 고마워.”
“그리고..”
“다시.”
“라고 했어요.”
그 목소리엔 이유 모를 환희가 묻어있었다.
난 무전내용을 다 듣고도 멍하니 앞만 바라보다가 문득 오라마를 바라보았다.
오라마는, 아주 선명한 오로라 빛을 띤 채 내 발 밑을 빙빙 돌며 해엄치고 있었다.
맑은 감정의 색 말이다.
이 시점에서 직감적으로 느꼈다. 오라마는 더이상 증인이 아니다.
‘오라마’그 자체이다.
.
.
.
상부에서 난리가 났다.
어쨌든 표면 상 사람을 공격한 것이니..
특히 한 투자자는 엄청 성질을 내며 오라마를 당장 폐기할 것을 요청했다.
[어차피 이제 다른 샘플들도 많잖아. 도대체 뭐가 아쉬워서 저 괴물을 데리고 있나? 아리안 팀장!]
[기술이 발전하며 복원되는 고생물이 지금 한두 마리가 아닌데, 전시목적도 아닌 순수연구 목적에 사고까지 친 생물에게 내가 굳이 투자를 해야 하나?]
[내가 뭣하러..]
솔직히, 이 양반의 투자는 별로 받고 싶지 않았다. 생물을 오로지 돈으로만 보는 사람이었으니깐.
그렇지만 이 사람이 대주는 자금도 무시 못할 정도로 많았기 때문에 이 투자자를 놓치게 된다면 연구소 측에게 문책당할 것이 뻔했다.
그렇기에 난 오늘도 투자자들의 비위를 맞춰주며 최대한 그들의 심기를 달래주었다.
“선생님, 그래도 오라마는 연구의 성과가 뚜렷이 보이는 개체입니다.”
“실제로 지금 저희와 소통도 가능하니, 오라마의 연구를 지속한다면 분명 훨씬 좋은 성과들이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지능을 가진 고생물은 충분히 전시용으로써 가치가 있지 않겠습니까?”
솔직히, 허울뿐인 말이고 이 말을 하는 나도 참 싫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내 말에 투자자가 좀 누그러진 걸까, 그의 목소리가 한결 부드러워졌다.
“음.. 음 그건 그렇지..”
“그럼 팀장은 사고의 원인을 뭐라고 생각하는가?”
“그건.. 오라마의 폭력성이나, 야생성으로 인해 일어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내 말에 투자자가 의문을 표했다.
‘그럼 사고의 원인이 무엇이란 말인가?”
“그건..”
“오라마가 놀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뚝-
그에겐 너무 가당치도 않은 소리였을까, 전화가 끊어져 버렸다.
.
.
결국 연구팀 비용이 삭감되었다. 좀 많이.
전처럼 비용이 많이 드는 실험은 하기 힘들어졌고, 오라마와 그 수조를 유지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게 되었다.
덕분에 팀 운영이 어려워졌다.
다들 하고 싶은 실험이 있으면 꼬박 몇 개월을 기다려야 하고, 그동안 오라마의 상태에 변화가 생기면 그 실험은 엎어지니 말이다.
대신, 오라마가 달라졌다.
전보다 변화하는 색의 종류가 다양해졌다.
혹은 종종 자신의 색을 바꾸며 우릴 따라오거나 연구원들이 수조 근처에서 커피나 텀블러 같은 걸 들고 있으면 놀라게 하는 등.
진짜 ‘아이’처럼 교감과 장난치기를 시작했다.
특히 오라마가 자주 보이는 행동이 있었다.
그건 ‘수조 벽에 가만히 머리 붙이기’였다.
처음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다들 황당하여있었지만,
엘리자 연구원이 호기심에 오라마의 인중 쪽에 손을 댄 것을 시작으로 이 행동은 팀 내 하나의 문화처럼 번져나갔다.
그때마다 오라마가 보여주는 색은 한결같았다.
‘아름다운 오팔빛’ 말이다.
.
.
.
“이잰 뭘 해야 할까요?”
수조 투입 실험 후 4개월째, 이잰 슬슬 다른 실험의 성과를 보일 때다.
솔직히, 그만하고 싶었다. 오라마와는 이미 충분한 교감을 쌓았으니깐.
하지만 성난 투자자와 연구소는 계속 우리에게 ‘오라마의 연구 성과 기록’을 요구하고 있었기에 실험을 안 할 수도 없었다.
이들을 등지게 되면 오라마가 위험했다.
우린 긴 시간 동안 토론을 했다.
그리고 딱 한 가지의 실험을 고안했다.
많이 위험한 실험 말이다.
.
.
.
오라마의 수조 앞에 커다란 거울을 설치했다. 적어도 그가 자신의 몸 대부분을 확인할 만한 크기였다.
거울은 아직 천막에 쌓인 채 오늘의 실험 내용을 숨기고 있었고, 오늘은 우리들도 실험 내용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야, 이번 실험은 ‘인지 실험’이니깐.
우린 단 한 번도 오라마의 이름을 불러준 적이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못 알아 들었기 때문이다.
개, 고양이를 넘어서서 대부분의 인간 손에 길러진 포유동물은 자신의 이름을 아는데..
오라마는 몰랐다. 개나 침팬지보다 높은 지능을 가졌음에도 말이다.
모르는 척하는 건지..
그래서 반 강제적인 형태로 이름과 자신을 알려주는 실험을 준비했다.
솔직히 많이 걱정되었다. 그 지능 높은 동물들도 소수를 재외 하면 거울 속 자신을 공격했으니.
더더욱이 스스로를 ‘인간과 동급’이라고 생각하는 존재에게 ‘넌 인간이 아니야’라고 말하는 행위는 더 위험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오라마를 과연 저 착각 속에 내버려 두는 것이 좋은걸까?
...난 아니라고 생각한다.
스스로의 종 자체는 알 필요가 있다. 그래야 나중에 사고나 문제가 벌어지지 않으니.
때가 되어 난 신호를 보냈고, 피아티 연구원과 리암 연구원이 거울을 가린 천을 치웠다.
그러자 거울이 반짝이며 자신의 형상을 드러냈고, 여기저기 유유히 해엄치 던 오라마는 그걸 보더니 거울 앞을 여러 번 지나가다 이내 센서로 다가갔다.
“걸음.”
“없음.”
... 우리와 자신이 왜 구조적으로 우리와 다른지에 대한 질문인가.
난 목소리를 가다듬고 오라마에게 차가운 진실을 전해주었다.
“넌 ‘물고기’인 오라마니깐.”
그 말에 오라마의 색이 변했다.
그때의 침울한 색으로 변하며 오라마는 수조를 천천히 유영했다. 마치 생각하듯이.
그리고 다시 센서 앞으로 가 센서를 울렸다.
“생각해”
“너희”
“친구”
오라마는 ‘친구’라는 단어 앞에서 한참을 멈춰있었다.
나도 그 단어에 매여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입술만 달싹일 그때.
오라마가 뒤로 깊게 빠지더니,
수조벽을 아주 강하게 들이받아 버렸다..
.
.
.
사고였다. 많이 큰 사고.
수조 벽엔 커다란 금이 가 수조 자체를 통째로 교체해야 했다. 오라마가 박은 직후 물이 조금씩 새어 나와 모든 연구원들이 비상에 걸렸었지..
거기에 지지해 주던 프레임도 살짝 휘어져 그것도 교체해야 했다.
덕분에 돈이 어마무시하게 들어갔다.
하지만 지금 돈보다 심각한 것은, 오라마의 상태였다.
오라마는 그 여파로 심하게 다 치친 않았지만, 이빨에 금이 가 잠시 검역 수조에 머물렀다.
그동안은 놀아줄 수도, 어울려 줄 수도 없었기에 우리는 수조가 교체될 동안 심심해할 오라마에게 간간히 방문해 말을 걸어주었다.
하지만 오라마는 반응이 없었다.
그저 침울한 색만 띌 뿐이었다.
이 상황은 수조가 모두 수리된 이후에도 똑같았다.
오라마의 먹이 반응은 크게 줄었고, 행동 또한 거의 사라지다시피 줄어들었다.
그저, 수조 한 구석에 가만히 박혀있을 뿐이었다.
꽤 심각한 상황이었다. 먹이도 거의 안 먹고 행동도 안 하니..
이대로 가다간 정말로 오라마가 죽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오라마는 우리의 그 어떤 대처에도 반응하지 않았다.
.
.
그날은 오라마를 처음 만난 지 3년이 다 되어가는 때였다.
처음 프로젝트를 시작했을 땐 4년 만에 오라마를 만났으니, 그것까지 합하면 이 바나애라투모르라는 종을 본 건 7년째였다.
오라마가 처음 태어난 후 성공적으로 안정적인 생물학적 궤도에 올랐을 때, 나와 리암 연구원은 좀 의미 있는 이름을 지어주기로 했다.
‘오라마’. 그게 오라마였다. 라틴어로 바다를 의미하는 단어.
바다에서 온 존재이니, 데본기 해양 생물 복원 작업의 첫 시작을 알리는 주역의 이름으로 이 단어를 선정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름을 좀 잘못 지어줬나?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야 오라마는 그날 4억 년 전 데본기로도, 지금 홀로세의 바다로도 돌아갈 수 없으니깐.
오로지 넓은 시간의 감옥에 갇혀 끝없이 외롭게 살던 존재에게 ‘바다’라는 이름은 참 모순되고 역설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그 의미를 우리가 조금이나마 찾아주었다고 생각했었다.
다양한 실험을 통해 교감하고 장난치며 감옥 속 4억 년의 바다는 활력을 되찾고 있었다.
그리고 그 활력을, 내가 부숴버렸다.
오늘 연구소는 내가 당직이었기에 다들 퇴근하고 없는 상태였다. 정확히는 피아티 연구원도 있었지만..
일부러 돌려보냈다.
오라마와 단 둘이 대화하기 위해.
“오라마.”
오라마는 수조 저편에서 고요하게 누워있었다.
“그으..”
“미안.”
“네가 그렇게 싫어할 줄은 몰랐어.”
여전히 반응이 없었었다.
난 잠시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을 이었다.
“우리가.. 너무 심한 걸 직면시킨 것 같아.”
“네가 바다와 물고기라는 키워드를 계속 외면해 온다는 분명 이유가 있었을 텐데..”
“아마 검역 수조에 있을 때, 수조 벽 너머로 너의 모습이 비쳐 보였겠지?”
“배양실은 어두웠으니깐.. 그렇지?”
오라마의 반응은 이잰 상관이 없었다.
난 슬슬 오라마를 ‘물고기’가 아닌 ‘사람’으로 대하기 시작했다.
“.. 난 네가 참 좋아 오라마.”
“넌 내 희미해진 학구열을 불태우고 날 순수했을 시절의 학자로 만들어 주었거든.”
“참 많이 웃기도 하고, 머리 싸매기도 하고 놀라기도 했던 것 같아.”
“그래도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다 행복한 추억인 것 같아.”
무언가에 꽂힌 것일까.
수조 한편에서 거대한 덩어리가 꿈틀대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것에 신경 쓸 세도 없이 난 고개를 숙인 채 이야기를 지속했다.
“옛날에, 저것 그리고 혼자는 싫고, 바다는 그저 좋다고 했지?”
“그거 우리말했던 거야..? 여기엔 거의 우리밖에 안 오니깐..”
“우리와 혼자가 싫은 게 아니라 외로웠던 거야?”
“그래서 그랬구나... 우리가 외로워 보여서 같이 놀자고 한 거였구나..!”
“친구, 그래 친구말이야.”
천천히 물살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난 그 소리를 무시한 채 마지막 뜻과 감정을 말들에 담아 오라마에게 전했다.
“우리가 너무 오만하게 굴었어. 네가 ‘스스로’ 생각하는 오라마가 아닌, 우리가 생각하는 오라마로 만들려고 했어.”
“넌 그저 ‘함께 하는 친구’를 원했을 뿐인데..”
“미안해, 정말 미안해.”
“그니까 제ㅂ-”
무언가 수조 벽 바로 앞에 존재감이 느껴졌다.
고개를 들어보니, 오라마가 서있었다.
오라마는 수조 앞에 서서 그저 날 바라보기만 하고 있었다. 조용히.
그리고 이내 천천히 움직이며 센서 앞으로 다가갔다.
“이해”
“어려움”
“그래도”
“고마워”
마지막 단어 앞에 오라마가 멈춰있었다.
딱딱한 기계음이었지만, 난 그곳에서 고대 바다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자연스레 손을 수조 벽에 가져다 대었다.
오라마도 내 손에 머리를 가져다 대며 몸을 환하게 빛냈다.
아름다운 오팔빛으로 말이다.
나도 그에 맞춰 환한 미소를 보여주었다. 내 찌든 연구 생활을 다 날릴 법한 환한 미소를.
.
.
.
그 뒤로 오랜 시간이 흘렀다.
오라마는 그 후 상태가 점점 회복되며 3개월 만에 이전 같은 건강상태로 돌아왔다.
연구소도 다행히 새로운 투자자를 찾았다. 이번엔 고생물에 눈이 돌아간 부자 할아버지였다.
부자 할아버지는 오라마와 대화를 몇 번 하더니 흥분하며 당장 지원하겠다 말하였고, 이 부자 할아버지. 센디넬 씨는 우리의 든든한 자금줄이 되었다.
그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이번엔 우주선에 쓰이는 재료로 잠수복을 만들어 오라마와 주기적으로 놀아주었다. 저번보다 훨씬 튼튼하게 만들어서 말이다.
가끔은 오라마가 힘조절에 실패해 연구원이나 나를 물 밖으로 튕겨내 다치게 할 때도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오라마는 그 연구원이 보이면 미안하다 말하며 자신이 좋아하는 장난감이나 먹으려던 고기를 줄려 하곤 했다.
안 받으면 삐졌기에, 우린 울며 겨자 먹기로 위로의 뇌물을 받은 뒤 오라마의 수조에 새로운 먹이와 장난감을 주어야 했다.
센디넬 씨도 오라마와 놀겠다는 걸 말리느라 진땀 뺐었지만,
결국 실패해 버려 오라마가 센디넬 씨를 물 밖으로 튕겨내는 진 풍경을 보기도 했다.
물론 센디넬 씨는 그조차 좋아하며 투자금을 올리겠다 말했다.
오라마는 센디넬 씨를 참 잘 따랐다. 처음엔 경계를 많이 했는데 센디넬 씨와 대화를 자주 하니 점점 그를 잘 따르기 시작했다. 놀기도 자주 놀고 말이다.
좀 서운하긴 했다. 동고동락한 건 우리 인대.. 특히 리암이 엄청 서운해했다.
하지만 리암이 오라마에게 따져도 돌아오는 건 ‘그러면 놀자’ 뿐이었다. 그럼 군말 없이 놀아주긴 했었다.
그리고 그렇게 다사다난한 시간이 지나 어느새 9년.
오라마는 생과 사의 문턱에 섰다.
턱 힘이 약해 입으로 넣은 먹이관과 거의 남지 않은 비늘과 지느러미,
그리고 오라마의 눈은 흐려져 보이지 않게 되었다.
비늘이 다 빠져 감염에 취약했기에, 검역 어항에서 관리하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투자자들 중 일부가 반대했지만.. 우린 그들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결정한 것이 있다.
바로 오라마의 안락사.
연명치료로 고통받을 바엔, 고통 없이 안락사시키는 것이 좋다고 모두가 판단을 내렸다.
그렇게 오라마에게 마지막 인사를 할 시간이 마련되었다.
센디넬 씨도 참여하겠다 하여 센디넬 씨와 리암, 피아티와 엘리자, 그리고 난 투명한 검역 수조 앞에 서 오라마와의 마지막 인사를 준비했다.
시작은, 피아티 연구원이었다.
“어.. 음 나부터네. 오라마.”
“그간 정말 고마웠다. 넌 우리에게 정말 소중한 존재였어.”
그 말에 오라마가 희미한 호기심의 색으로 빛났다.
아마 ‘존재’라는 단어가 신기해서일까.
피아티 연구원은 잠시 묵념하듯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이더니 엘리자 연구원을 바라보았다.
엘리자 연구원은 숨을 한번 고르곤 말을 시작했다.
“고마워, 정말 고마워 오라마.”
“너랑 놀았던 그 기억은 평생 잊지 못할 거야.”
오라마가, 이번엔 희미한 쾌활함의 색으로 변했다.
엘리자 연구원은 그 모습을 보다 고개를 돌려버렸다.
다음은 리암 차례였다.
“그날 기억나?”
“네가 유어 때 이후로 단 한 번도 안 보여 주던 색을 보여줄 때 말이야.”
“그때 너 정말 예뻤어. 바다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에메랄드빛와 노랑빛.”
“그거 말고도 너랑 있는 시간은.. 정말 좋았어!”
“애처럼 삐지고 놀자고 하는 것도 다 좋았어 정말로...”
“그니깐..”
이내, 리암이 엉엉 울어버렸다.
모두, 숙연한 분위기로 잠시 기다려 주었다.
그러자 울음을 조금 잠재운 리암이 외쳤다.
“넌 나의 소중한 친구야!!”
이 말에, 오라마가 살짝 꿈틀거리며 희미한 오로라빛으로 빛났다.
그걸 본 리암은 더 울어버렸다.
그리고, 센디넬 씨 ‘큼- 큼-’ 하며 입을 열었다.
“자네는 정말 훌륭했네 오라마! 여태 본 수많은 생명 중 단연 최고였어.”
“날 하늘로 날렸을 때 그 황홀한 기억은 평생! 잊지 못할 걸 새!”
센디넬 씨는 갑자기 쪼그려 앉더니, 오라마 쪽으로 속삭이는 제스처를 취하며 말했다.
“다음 생엔 사람 대 사람으로 뵙게나.”
“기다리고 있겠네.”
그 말에 오라마가 희미한 오로라 빛과 흰빛으로 빛났다.
흰빛은 보통 ‘알겠다’라고 할 때 쓰이는 색이었다. 그걸 본 센디넬 씨는 오라마의 수조를 한번 쓰다듬곤 일어나 날 바라보았다.
이재, 내 차례였다.
난 올라오는 감정을 가라앉히고, 숨을 크게 고르며 말하기 시작했다.
“오라마.”
내 말에 오라마가 꿈틀거렸다.
“그때 기억나?”
“우리가 말실수해서 네가 아무것도 안 먹을 때 말이야.”
“그때 내가 그랬었지.. 넌 나의 소중한 친구라고 말이야.”
그 말에 오라마의 몸에 은은한 오로라와 오팔빛이 번갈아 감돌았다.
“근대, 너랑 9년을 함께 동고동락하면서 많은 게 바뀐 것 같아.”
“새로운 인연도 생겼고, 팀원들 이랑도 더 끈끈해졌어.”
“그리고 오라마, 너의 탄생부터 지금까지의 12년을 바라보며 너에 대해 새롭게 깨닫게 된 게 있어.”
점점 틈새를 비집고 나오려는 감정을 달래며 난 담담히 외쳤다.
“넌 내 가족 같은 존재야. 오라마..!”
“탄생부터 죽음까지 모든 걸 지켜본 자식 같은 존재.”
“넌 우리의 바다였어.”
갑자기, 오라마의 색이 사라졌다.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설마 지금?
하지만 이내,
오라마는 찬란한 오팔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아주 아름다운 색으로.
그 색은 겉보기엔 희미해도 난 오라마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호기심 그리고 즐거움, 기쁨과 약속을 넘어 오라마는 행복을 말하고 있었다.
다 빠진 비늘 위에 올라온 그 색은 너무나 희미했지만. 최후의 생명으로 직조해 낸 아름다움은 다른 의미로 선명한 비단 같았다.
난 오라마의 머리 쪽 수조벽에 손을 대었다.
오라마도 꿈틀거리며 초점 없는 눈을 내게 맞추었다.
“안녕”
“오라마”
그리고 난 떨리는 손으로 안락사 장치의 버튼을 눌렀다.
수조 안으로 오라마를 고통 없이 잠재울 약이 들어갔다. 약이 들어간 지 얼마 안 지나 아가미가 멈추고 색이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모든 게 끝나자.
방에는 조용한 울음소리와 정적만이 가득했다.
.
.
.
새로운 바나에라투모르가 왔다. 70cm짜리 유어.
아직 오라마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인 1개월 만에 온 개체라 좀 다들 심란하고 곤란한 상황이었다.
그래도 오라마 말고도 이 종 자체에 대한 데이터는 더 필요했기에,
가장 성공적으로 바나애라투모르를 키워낸 우리에 지능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개체가 왔다.
과거 오라마가 있었던 거대한 수조 엔 이제 리가토가 있었다.
라틴어로 유산이란 뜻의 이름. 오라마가 죽고 1개월 만에 온 이 개체가 마치 오라마의 유산 같았기에 붙인 이름이었다.
당직이라 나밖에 없는 날, 넓은 초록빛 수조에서 헤엄치는 리가토를 보았다.
리가토가 작진 않지만 그래도 수조가 워낙 큰지라 그 덩치가 상대적으로 작아 보였다.
난 자그마하게 보이는 리가토를 손바닥으로 가려보며 오라마 땐 느끼지 못했던 수조의 넓음을 실감하고 있었다.
이때, 저 멀리서 리가토가 나를 향해 직선으로 쭉 해엄 쳐 왔다.
어찌나 빠른지, 80m의 거리를 순식간에 해엄 쳐 왔다.
그 광경에 당황하여 손을 떼고 리가토를 바라보았다.
리가토는 쭉 달려오더니 속도를 줄여 벽에 ‘콩’하고 박고는 날 빤히 쳐다보았다.
리가토와 눈이 마주쳤다.
마주친 그 고대의 눈에서 이어진 유산이 보였다.
난 내 손 끝을 수조 벽에 가져다 대었다.
이에 리가토도 몸을 오팔처럼 빛내며, 자신의 입술을 수조 벽에 가져다 대었다.
그때 난, 연구자로선 정말 실격인 생각이지만.
어쩌면, 정말 어쩌면 시간과 공간을 넘어 맺어진 우리는 어디선가 지나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무언의 감각이 들었다.
…혹은 이어지는 4억 년 전 고대와 현재의 인연이, 영원히 끊이지 않길 원하는 나의 작은 바람일 수도 있다.
리가토는 한참을 그렇게 있다가 색을 거두곤 떠나버렸다.
난 멍하니 수조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안녕”
“오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