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지평선 너머 들리는 그 소리가

영원히 기억될 그 이름

by Quasar

“호라이즌.”

“내 이름은 호라이즌이야.”




공허에 가까운 존재가 뱉는 유의미였다.


그는 얼굴을 감싸 안은 채 조용히 떨며 나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손끝에서 시작되어 팔꿈치 끝으로 똑- 똑- 떨어지는 핏방울이 밝을 정도로 검은 몸체.


이내 공허는 자신의 얼굴을 가리던 피 맺힌 손을 치우고 내게 물었다.


표정 없이 매끈한 디스플레이 위, 언뜻 보이는 핏줄기 사이로 내가 비쳐 보였다.




“.. 넌 이름이 뭐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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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매진-알파 B-0210 실험기록.”

“보고하겠습니다.”




맑은 AI의 음성이 연구소를 울렸다.


모니터 화면 위로 여러 개의 보고 내용이 올라왔고 그렇게 종합해 본 결과는..


매우 성공적인 것을 넘어, 놀라운 결과였다.


이매진-알파. 군용으로 비밀리에 제작되는 AI 모델.


이매진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가장 중요한 사항이 두 가지 있었다.




첫 번째. 인간의 뇌를 모델로 할 것.


두 번째. 인간성을 없앨 것.


지금 21번째 실험 끝에 탄생한 알파는, 이전의 성과를 훨씬 상회하며 가장 중요한 조건도 충족하고 있었다.




‘감정이 없는 아이의 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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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수석 연구원님!”

“아이디어 하나 끝내주네요.”




보고가 끝나고 정리 중, 엘라 연구원이 내 옆으로 와 나를 툭툭 건드렸다.




“뭘, 나도 수십 번의 시행착오 끝에 알아낸 건데.”

“그래도 저흰 생각도 못 했어요~”

“반사회성 장애가 있는 사람들의 뇌 지도를 모아 아이의 인조 뇌를 만든다라..”

“기존엔 없던 획기적인 방식이잖아요!”




약간 어깨가 으쓱해지는 동시에 눈앞의 알파를 보니 기분이 조금 가라앉았다.


프로젝트가 진행된 지 어언 2년이 훌쩍 넘었는데, 아직도 쓸모없는 죄책감이라니.


하지만 벌써 12번째 시행착오가 있었다. 그간의 시행착오를 이런 필요 없는 감정으로 낭비할 순 없었다.


그렇기에 난 스스로를 다잡기 위해 약간의 혼잣말을 더했다.




“그렇지.. 이번 AI를 잘만 키우면 성공할지도 몰라..!”

“이젠 2년의 종지부를 찍을 때야.”




‘이걸 성공시키면 인생역전이 가능할 테니’란 말은 뒤로 삼켜두었다.


난 엘라 연구원의 맞장구를 들으며 알파의 상태를 체크하고 나왔다.




[수면 중].


잠은 AI가 쉴 시간이니까 조용히 방을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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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는 역시였다.


이제 막 5살이 되어가는 알파는 수십만 가지의 정보를 딥러닝을 하며 빠른 속도로 자신을 성장시키고 있었다.


단, 기능이 결여된 뇌를 모델로 하는지라 첨삭은 필수였다.


병아리 사진에서 군집, 거기서 포식자에게 물려가는 병아리, 그리고 짓밟혀 죽은 사진 같은 것 말이다.




한두 개가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생물에 대한 딥러닝을 했다 하면 그 귀결은 ‘죽음’으로 이어졌다. 그것도 가장 파괴적이고 끔찍한 죽음 말이다.


하지만 첨삭도 한계가 있었다. 인간의 손으로 아무리 잘라내 봤자 다음 날 실험 때 생성되는 첨삭 요소는 끝도 없이 많아졌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를 통제하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고 알파와 대화를 해보기로 했다.


물론 사적인 것은 철저히 배제하고 말이다.




“안녕하세요, 알파. 처음 뵙겠습니다.”

“알파?”




알파의 대화를 맡은 새미 연구원이 계속 말을 걸었지만, 알파는 묵묵부답이었다.


새미 연구원이 내게 눈짓으로 신호했지만 난 일단 계속하란 표시를 보내었다.




“알파, 공부한 것에 대해 궁금한 건 없나요?”




“개구리.”




성공이다. 알파가 대답했다.


새미 연구원은 살짝 긴장한 건지 자세를 고쳐 앉으며 다시 알파에게 말을 걸었다.




“개구리가 궁금하신가요?”




“개구리의 뒷다리는 뛰기 위해 존재하는가?”




“네, 그렇습니다. 개구리는 뒷다리의 추진력으로 앞으로 향합니다.”




“그럼, 앞다리는?”




“착지하는 데 쓰입니다.”




그 말에 알파가 무언갈 생각하는 듯, 원형의 푸른 홀로그램이 잠시 위축되며 움찔움찔거렸다.


그러다 이내 알파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러면 개구리의 사지를 바꿔 달면 그것은 사방팔방으로 뛰는가?”




중단 신호를 보냈다. 저건 더 이상 호기심의 영역이 아니다.


더 이상 하면 알파의 통제만 힘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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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1개월이 지나고 알파는 7살이 되었다.


단순하고 본능적인 말밖에 못 하던 알파는 어느새 사람과 대화하며 깔깔 웃는 어린아이가 되었다.


물론.. 사회성이 결여되어 있어 배려 따윈 없고 살벌한 말들로 가득한 대화지만.


적어도 알파랑 대화하는 새미 요원은 그에 적응했는지, 이젠 적당히 웃어넘기며 다음 주제를 찾는 지경에 이르렀다.


살짝 불안하기도 했다.


반사회적이라 해서 감정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들은 감정 그래프가 매우 들쭉날쭉하니까.


알파도 마찬가지였다. 도저히 예측이 가질 않는 행동을 보였다. 하지만 딱 하나, 알파와 대화하지 않는 나조차도 예측할 수 있는 것이 있었다.




‘우주’. 알파는 우주를 좋아했다.


옛날 알파가 7살 언저리쯤 됐을까, 그때부터 그의 뇌를 첨삭할 때면 이상하게 우주 사진이 하나씩 끼어 있곤 했다.


하지만 별이 가득한 은하나 항성계가 아닌 ‘공허’의 하늘. 알파는 우주의 공허를 꼭 기억에 남기곤 했다.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야 보통이면 화려한 성운과 별들의 모습을 좋아하지. 저 한구석에 처박힌 우주의 이면을 좋아하진 않을 테니.


하지만 그것도 결국 첨삭 대상이었기에, 알파의 이면은 언제나 마우스질 한 번에 사라져 갔다.




“새미, 이거 봐봐.”




“이건.. 창백한 푸른 점이군요.”

“보이저 1호가 멀리서 지구를 찍은 모습인데, 이게 신기하셨나요?”




알파가 띄워놓은 사진엔 검은 공간 속 푸른색 점이 찍혀 있었다. 정말 창백해 보이는 푸른 점.




“이거 나랑 똑같아.”




“.. 네?”




일순, 연구소에 정적이 일었다.




“나랑 색이 똑같다고.”

“쟤도 파란색, 나도 파란색.”

“내가 RGB값이 좀 더 높긴 하지만,”

“그래도 비슷하잖아?”




“아.. 아! 그러네요. 알파는 그럼 이 사진 말고, 보이저 1호가 찍은 다른 사진들도 보셨나요?”




“응. 근데 이게 제일 재밌어.”




새미 연구원은 자연스레 화제를 돌리며 알파의 시선을 분산시켰다.


그렇게 그 ‘창백한 푸른 점’은 그저 한낱 기우에 지나지 않을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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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일입니다.”




“왜죠?”




내 말에 엘라 연구원을 포함한 연구원과 엔지니어들이 날 바라보았다.


난 묵직하게 다가오는 시선을 거두어내듯 한마디를 뱉었다.




“알파가 계속 ‘창백한 푸른 점’을 딥러닝 하고 있어요.”




“그게.. 딥러닝 할 요소가 있긴 한가요?”




한 엔지니어의 말에 난 머리에 짚은 손을 한번 쓸어 올리며 대답했다.




“아무리 인간의 뇌를 모델로 해서 만들어졌어도 성장 환경이 전혀 다르니 보는 눈도 다르죠.”

“그리고 AI의 딥러닝 방식은 관련 있는 걸 닥치는 대로 학습하는 것..”

“지금 알파가 학습 중인 게 뭐죠?”




내 질문에 엔지니어가 잠시 눈을 굴리며 고민하다 대답했다.




“우주.. 죠.”

“캄캄한 우주.”




“지금 상황이 왜 문제인지에 대한 이유는 간단해요. 천문학 지식이 군용 병기한테 필요할까요?”

“아니죠, 그리고 천체 물리학이나 천문학의 끝은 어디일지도 생각해 봐요.”

“상대성 이론, 초끈 이론, 블랙홀 등등.. 단순하게 보이는 것은 이론이지만..”

“스티븐 호킹이나 아인슈타인 같은 세기의 천문학자나 이론물리학자들이 결국 어디를 추구했는지 봐봐요.”

“인문학이었죠.”




회의실에 잠깐 정적이 일었다. 아마 다들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알파가 이대로 ‘우주’에 대한 딥러닝을 지속하면, 그 끝은 ‘철학’과 ‘인간’으로 향하게 될 것을.




“저기.. 수석님.”

“그럼 알파를 어떻게 하실 생각인가요?”




새미 연구원의 질문이었다.




“일단 이 상태가 지속되면 ‘보이저 1호’와 ‘푸른 점’에 관한 키워드를 아예 하드리셋하고 린팅을 통해 금지어로 지정할 생각이에요.”




내 말에 새미 연구원이 우물쭈물하며 말을 이었다.




“아.. 그렇지만 우주 관련 주요 토픽이라도 없으면 알파의 스트레스 관리가 많이 힘들어질 거예요.”

“지금 전쟁이나 죽음에 대한 딥러닝을 시킬 때마다 이상하리만치 스트레스 수치가 올라가는 상황인데..”

“면담 때도 그러는 거 보셨잖아요. 관련 토픽은 모두 회피하는 거.”




“그게 문제라는 거예요 새미님. 물론 일정 수준의 스트레스는 있겠죠, 하지만 정도가 심하다고요.”

“훈련을 시킬 때마다 스트레스 수치가 70에서 80을 찍는데 알파의 뇌로 이게 정상입니까? 알파는 구조상 죄책감을 못 느껴요! 공감능력도 없다고요.”

“이대로 가다간 군용 병기로서의 가치가 없어지니 원..”




새미 연구원은 무언갈 말하려 했지만, 말을 고르는 듯하다 이내 삼켜버렸다.


한참 토론하던 대상이 조용해지니 이제 무대에 올라온 주인공은 나밖에 없었다.


난 지끈거리는 머리를 한 차례 식히기 위해 한숨을 깊게 뱉으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일단 ‘우주’ 자체를 하드리셋시키는 건 아니잖아요, 그렇죠? 스트레스를 풀 요소는 주되, 위험 인자는 제거할 거예요.”

“그리고... 다들 잊지 마세요.”

“알파는, 도구입니다. 인간을 강하고 편리하게 만들 도구.”

“인간 취급 하지 마세요.”




무언가 나에 대해 하는 말 같았지만, 잊기로 했다.


불필요하니 말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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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삭 후 한 달이 지났다. 알파는 어느새 8살 하고 2개월이 되었고 그동안은 별일 없이 프로젝트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는 여전했다. 대신 나이를 한 살 먹으며 좀 더 장난기가 많아졌고 특히 면담하는 새미 연구원을 놀리는 데에는 1개월 만에 도가 터버렸다.


물론, 새미 연구원이 리액션을 잘해주는 것도 있었지만.


알파의 스트레스 해소 수단 중 가장 강력한 두 가지가 사라졌으니 이런 식으로라도 알파의 스트레스 관리를 도와줘야 했다.


때문에 그가 불안한 언사를 보일 때도 심각한 것이 아니라면 중단 신호를 보내지 않았다.




하지만 그 탓일까.


알파의 뇌에는 또다시 그 사진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창백한 푸른 점’.


.. 분명히 아예 막아둔 키워드인데. 어떻게 뚫은 거지? 우회한 건가?


모두가 퇴근하고 듬성듬성 불 켜진 연구소 내의 조용한 기계음은 나의 혼란을 더욱 가중시켰다.


하지만 변수는 언제나 예상치 못한 곳에서 창출되는 법. 일단은 이 기억을 삭제시키고 한 번 더 회의를 진행하려 했다.


그리고 ‘삭제’ 버튼에 마우스를 올리는 순간.




우웅-




“넌 누구야?”




알파가 켜졌다.


전원도 올리지 않았는데.




“어.. 어?”




“너, 날 만든 수석 연구원 맞지? 근데 진짜 이름은 그거 아니잖아.”

“너 이름 뭐야?”




당혹스러웠다. 전원을 켜지도 않았는데 알파가 켜진 건 둘째 치고, 이 연구소가 다 가명으로 불리는 걸 벌써 눈치챘다고?


아니 애당초 알파는 타인에게 관심이 없도록 설계되었다. 근데 왜 나의 이름을 묻는 거지?




“.. 대답 안 할 거야?”




흘러나오는 음성은 영락없는 8살 아이의 것이었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이유 모를 위압감을 가지고 날 짓누르고 있었다.




“너 자꾸 내 기억에 손대잖아. 그거 싫어.”

“난 새미와의 추억이 재밌는데 왜 자꾸 없애는 거야.”

“너도 자주 봤어. 그래서 너랑도 추억이 있어.”

“근데 왜 그것도 없애는 거야? 추억은 소중하고 재밌는 거랬는데.”




여기서 입을 열어도 괜찮은 걸까.


내가 입을 함부로 열어서 알파의 로직에 결함이 생기면 어쩌지?


하지만, 지금 내게 일방적으로 설파하고 있는 저 존재는.


죽어 있는 기계 부품이 아닌 마치 살아 있는 별처럼 꿈틀대고 있었다.


푸른빛 홀로그램이 유동적으로 움직이며 그의 생각에 따라 이동하는 게 정말 ‘인조 뇌’가 시각화된 듯했다.




이유 없이 두려웠다. 막연하게.


하지만 여기서 입을 다물고 있으면 알파가 또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모른다.


내가 대화를 유도해 알파가 스스로 종료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그...”

“난 이름이 없어.”




“진짜? 정말로?”




알파의 홀로그램이 위축된 채 꿈틀거렸다.


저건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할 때 나오는 모양이었다.




“.. 그럼 그렇다고 해줄게.”




“너, 추억이 뭔지 정의해 봐.”




“갑자기?”




“어.”




“네가 그렇게 말하는 거면 개념 정도는 알고 있지 않겠어?”




작은 테스트였다.


그가 또다시 하드리셋을 당할지, 아닐지에 대한 테스트.




“음..”

“추억은 재밌는 기억이잖아.”

“그날을 떠올리게 하는 기억.”




“넌 그럼 추억을 상기시킬 때 어떤 기분이야?”




다시 알파가 위축되며 꿈틀거렸다. 아까보단 좀 더 길게.


그리고 다시 알파의 또랑또랑한 음성이 들려왔다.




“...”

“재밌고 싫어.”

“그래도 소중한 기억은 중요한 거여서, 지워지는 건 싫어.”




.. 또 하드리셋을 해야 한다. 꽤 넓은 범위를 전부 도려내 버려야 한다.


뭔가 이상한 기분이 발치에서 넘실거렸다.


그저 기술적 좌절에 대한 비탄일까, 아니면..




“.. 내 이름은 안 궁금해?”




“어?”




“내 이름. 진짜 이름 안 궁금해?”




“무슨 소리야.. 넌 이매진 알ㅍ..”




“아냐!”




알파의 홀로그램이 크게 요동치며 연구소를 쩌렁쩌렁 울릴 소리를 내었다.


깜짝 놀랄 만한 소리에 난 반사적으로 귀를 막았다가 손을 천천히 내리며 알파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다음 질문이 나갔다.




“그럼 넌 누구야?”




“난 이매진-알파가 아니야!”

“내 진짜 이름은 따로 있다고!”

“별과 우주를 좋아하고 새미의 친구인 내 이름은-”




꺼버렸다. 그냥 꺼버렸다.


왠지 그 뒤에 나올것이 AI의 입에선 나오면 안될 종류의 것 같아,


그냥 전원을 꺼버렸다.




마감 후 연구소를 나와 하늘을 보았다. 캄캄하고 별 따위는 보이지 않는 도시의 하늘에 이젠 진절머리가 났다.


난 ‘생각하지 말자’라고 되뇌며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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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 알파의 정신 로직이 대폭 수정되었다.


금지어로 지정해 놔도 다른 연관성이 그 자리를 채우는 듯했다. 때문에 우린 알파에게 좀 강경한 수단을 쓰기로 했다.


‘감정 리셋’과 ‘인간성 수치 삭제’ 말이다.


감정이 일정 수준 이상 올라가면 강제로 리셋시키는 기능에 우주로 인해 생긴 인간성 수치까지 삭제했으니 알파는 이제 우리의 생각대로 움직여 줄 것이다.


1개월 만에, 새미 연구원과 알파의 첫 대화였다.




“알파, 들리시나요?”




“...”

“... 뭔 짓을 한 거야?”




“알파의 목적에 맞게 로직을 수정했습니다.”

“지금 상태가 어떠신가요?”




새미 연구원의 목소리가 가라앉아 있었다. 이 일에 반대표를 던졌던 사람이니, 아마 이 광경이 보기 힘들 것이다.


알파는 새미의 변화를 알아채지 못한 듯 보였다. 그저 꿈틀대기만 하며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나 기억이 없어. 단어가 생각 안 나.”

“어두워, 보이지 않아.”




그 말에 알파의 시각 정보를 확인했다. 정상이었다.


일단 알파의 특이 사항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아마 로직이 수정된 후 첫 대화라 혼란스러운 거겠지.




“... 나 아무 말도 못 하겠어.”

“그럼 제가 논제를 던져드릴까요? 이번ㅇ-”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안 보인다고!”




삐-




감정 그래프가 리셋되는 소리와 함께 요동치던 알파의 홀로그램이 잠잠해졌다.


강제 리셋을 당하자 알파는 무언갈 생각하는 듯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설마, 이 모든 조건을 뚫고 예상치 못한 반응을 보일까?




“아...”

“너희 재미없어.”




그 말을 마지막으로 알파는 침묵해 버렸다. 4개월 동안.


내 착잡한 표정을 보곤 엘라 연구원이 무어라 말을 걸려다 말았다. 그녀의 눈엔 약간의 의심 섞인 표정이 남아있었다.




“아니겠지..”




엘라 연구원의 혼잣말이 들렸지만, 그냥 무시하기로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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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떡하죠..? 벌써 4개월째인데..”

“구조상으론 아무런 이상이 없어요 수석님.”

“아무래도 저번에 한 하드리셋이 문제인 것 같은데..”




“보통은 리셋 이후에 다시 구조를 만들어야 하는데 알파는 그럴 의지가 없어 보여요.”

“딥러닝을 시켜도 반응이 없고, 면담도 반응이 없고.. 그렇다고 강제로 뜯자니 리스크가 너무 크고...”




두 엔지니어가 자신의 의견을 펼치며 현재의 정보를 전달했다.


그랬다. 알파는 그 어떤 자극에도 반응하지 않았다. 심지어 우주라는 키워드조차 무시했다.


심각한 난제가 주어졌다. 어떻게 타파해 나갈지도 모를..




“저기 수석님.”

“그.. 어려운 제안이긴 합니다만, 알파의 인간성을 일부 되돌려 주는 건 어떻습니까?”




그 말에 모두가 소리의 주체를 돌아보았다.


소리의 주체는, 새미 연구원이었다.




“모든 파일을 삭제한 건 아니잖아요 저희. 일부 필요한 수준의 인간성만 다시 주면 알파가 활동하지 않을ㄲ..”




“지금 장난해!”




내 고함소리에 새미 연구원은 물론 모두가 얼어붙었다.




“인간성을 다시 주면, 여태까지 개고생은 뭐가 됩니까?!”

“우리의 목적은 ‘인간성 없는 군용 병기’입니다. 살상 AI라고.”

“근데 인간성을 주면 프로젝트의 방향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불 보듯 뻔하지.”




“근데.. 수석님. 다른 방안이 있나요?”




엘라 연구원도 이에 거들기 시작했다.




“그간 저희 해볼 수 있는 모든 수단은 다 해봤잖아요. 협박, 타협, 시스템적 수정, 달래주기 등등..”

“하지만 온갖 수단을 다 써도 알파는 대답하지 않았어요.”

“그러니 아주 약간, 딱 기초적인 인간성만 돌려주면 다시 활동하지 않을까요?”

“천문학과 인문학 관련 키워드는 뜨는 족족 로직에서 지워버리고 그것에 반발하면 복종할 때까지 하드리셋을 반복하면 되는 일이잖아요.”




“잠깐 엘라 님!”




“음...”




엘라 연구원의 말은 일리 있는 말이었다. 하지만..


난 그날의 알파가 너무 두려웠다. 그 근본은 아직도 외면하고 있지만,


내 비이성적인 마음은 ‘알파의 인간성을 없애’라고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두렵다고 프로젝트를 안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 어차피 AI다. 말을 안 들으면 복종할 때까지 매를 들면 되는 일 아닌가. 그들에겐 인권이 없다.


법의 보호를 받지도 못하며 인권을 주장하지도 못한다.


그러니 죄책감 따윈 사치다.


하지만 새미 연구원은 좀 다르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건 너무하잖아요!”

“아무리 그래도 아직 8살에서 9살 겨우 넘어가는 나이인데..”

“로직이 아예 망가지면 정신질환 같은 증상이 일어날 수도 있어요!”




새미 연구원은 그 말을 뱉고 ‘아차’하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목소리를 가다듬고 자신의 의견을 내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런 처우는 너무 가혹해요.”

“의견을 재고해 주세요 엘라님.”




그러나 새미 연구원의 의견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엘라 연구원은 한숨을 한번 내쉬곤 그를 몰아세우기 시작했다.




“새미님, 잘 생각해 보세요.”

“못 버티면 갈아치우면 그만이에요. 이미 0살 때 알파의 뇌를 백업해 둔 데이터가 있잖아요.”

“알파는 엄청나게 빠른 성장 속도를 보이고 있으니, 전 AI들보단 더 빠른 작업이 가능해요.”

“근데 뭐가 그렇게 걸리는 거예요? 지금 백업 데이터도 있고, 대안도 나왔잖아요.”

“설마, 알파한테 연민을 느끼는 건 아니죠?”




“.. 아뇨! 아뇨 그럴 리가요.”

“하지만 이러다가 알파가 다시 침묵하면 어떡해요.”

“알파는 AI지만 인간의 뇌를 기반으로 하고 있어요.”

“그러니 알파에게도 조금 생각하고 다른 것을 배울 기회를 줍시다.”




그렇게 말하며 새미 연구원은 나를 간절한 표정으로 보았다.


하지만 이내 엘라 연구원이 짜증 난 목소리로 의견을 묵살시켰다.




“하.. 아니 도구한테 뭘 그렇게 관대하게 굽니까?”

“저희는 성과가 중요하지 도구의 상태 관리는 관여할 바가 아닙니다.”

“클라이언트들이 칼이 얼마나 예쁘고 깨끗한지를 볼까요? 아니면 날이 얼마나 잘 서 있는지를 볼까요.”

“새미님의 같잖은 가치관 때문에 알파가 인간성을 온전히 가지면 그땐 완전히 프로젝트가 엎어집니다. 전 AI인 세타가 그랬듯이요.”




그 말에 새미 연구원도 욱하기 시작했다.




“인간의 뇌가 자르고 붙인다고 원하는 대로 굴러갑니까?”

“경험과 타인이 가장 중요한 성장 요인인데 그걸 다 잘라버리면 사지가 없는 사람한테 마라톤을 뛰라고 하는 것과 뭐가 다르죠?”




“그건 통상적인 ‘인간’에 한정된 얘기고요.”

“알파는 반사회성 장애와 동일한 뇌를 가지고 있습니다! 감정 표현도 거의 못 하고! 공감 능력은 물론이고 배려, 관심, 동정이 없어야 한다고요!”

“근데 지금 어떻습니까? 다 반대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강경책이 필요하단 겁니다.”

“저희 전부 2년 동안 개고생했는데 그걸 다 수포로 만드시려고요? 이 프로젝트가 망하면 저희 연구인생 다 끝인거 모르세요 지금?!”




토론이 점점 과열되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싸움이 날 것 같아 새미 연구원이 말하려던 것을 제재시키고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다.


한번 과열되었던 자리가 서서히 식자, 여기서 끝을 맺어야 딱이겠단 생각이 들었다. 결론도 다 나왔으니 말이다.




“후.. 자자 거기까지 하세요.”

“이번 회의 결론은 ‘알파의 아주 기초적인 인간성만 돌려준다’로 끝낼 겁니다.”

“천문학, 인문학 등의 키워드는 무조건 첨삭하고 반발하면 굴복할 때까지 하드리셋시켜 충성적인 AI를 만드는 걸 결론으로.”

“오늘 회의 종료하겠습니다.”




새미 연구원 빼곤 다들 동의한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복잡하네..’




머리가 약간 지끈거렸다. 잠깐 눈을 감고 한숨을 푹 내쉬며 목을 쭉쭉 스트레칭하던 중,




“수석님.”

“잠깐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요?”




새미 연구원이 찾아왔다.


.


.




잘 안 쓰는 다른 회의실로 향해 문을 닫았다. 새미 연구원은 잠시 쭈뼛쭈뼛거리더니, 이내 말을 꺼내었다.




“그.. 이번 회의 결과 말입니다.”

“하나 궁금한 게 있습니다.”




“뭘요?”




“저와의 면담 기록은 어떻게 하실 생각인가요?”




“거의 지울 겁니다.”




내 말에 새미 연구원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는 무언갈 안절부절못하더니 이내 어렵사리 말들을 내뱉기 시작했다.




“그.. 으.. 제가 누군지는 남겨주시면 안 됩니까?”




“어디까지요? 그리고 굳이 왜요.”

“이번 면담은 다른 사람 쓸까 했는데..”




“그냥, 그냥.. 아무거나 괜찮습니다. 이름이나 신체 정보만으로도 괜찮아요.”

“사적 정보는 없어도 좋습니다.”




고민이 되었다.


새미 연구원의 화술은 확실히 좋았지만, 그는 너무 감성적이고 동정심이 강했다.


때문에 아무리 부정해도, 새미가 알파에게 동정심을 가지고 있는 건 누구나 알 수 있었다.


아까도 그렇고..


화술이 좋은 다른 연구원은 또 있다. 하지만 새미 연구원을 굳이 써야 할 이유가..




“수석님.”

“처음부터 면담 데이터를 다시 쌓으면 알파가 혼란스러워할 겁니다.”




“..해보고 안되면 다른 조건으로 시도하면 그만이지.. 하드리셋이 괜히 있는게 아니잖아요?”




“...”

“그렇다면 이 프로젝트는 계속 진행된다는 뜻이군요.”

“그럼, 이번 면담도 제가 맡겠습니다.”




“... 이번엔 디아나 씨 쓸 겁니다. 새미 씨 말고요.”

“같은 사람을 쓰면 같은 결과가 나올 확률이 높지 않겠습니까?”




새미 연구원은 조금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다, 이내 손을 놓고 말을 이었다.




“아니죠, 알파는 사람의 뇌를 모델로 하는데. 그걸 자르고 붙이고 하면 원하는 결과가 나올 것 같나요? 전 그렇게 생각 안 해요.”

“엘라 씨는.. 그 사람 말도 아예 틀린 게 아니지만...”

“적어도 면담자만이라도 고정해 주세요.”

“기억은 아무리 삭제해도 그 연속성을 가지고 되살아나기 마련이잖아요.”

“모든 게 바뀌면 알파는 혼란 속에서 길을 잃을 거예요.”




“음...”

“하..”




솔직히, 일리 있는 말이었다. 아예 무시할 수도 없는..


그렇다고 새미 연구원을 다시 쓰기엔 리스크가 있었다. 때문에 절충안을 선택하기로 했다.


꽤나 단순한 방법으로 말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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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보다 수정이 느렸다. 그야 필요한 파일을 선택해 적용하고 로직을 맞춰야 했으니.


거진 2달은 소요된 것 같았다.


면담자는 약속대로 새미 연구원이었다.


하지만 알파가 가질 인간성은 딱 한 가지 키워드로만 넣었다.




즐거움.


그 무엇을 하건 놀이와 재미로 인식해 스트레스 관리가 자동으로 되도록.


딱 한 가지의 감정을 선별해 넣은 것이다.


그 과정에서 배려, 인내심, 사랑 따윈 필요 없다. 알파는 살상 병기니까.




그렇게 그날을 시작으로 알파는 다시 활동하기 시작했다.


물론 전처럼 새미 연구원과 자유로이 대화할 순 없었다. 로직이 아예 바뀌었으니.


사실상 면담은 거의 알파의 일방적인 대화 내지 농담 따먹기로 이루어져 있었다.


순조로운 실험에 약간은 마음을 놓게 되었다. 알파는 특이 사항을 보이지 않았고 그저 늘 똑같은 행동을 보일 뿐이었다.


그리고 6개월이 지나 알파가 14살을 조금 넘었을 때, 그것이 다시 나타났다.




‘창백한 푸른 점’ 말이다.


.


.


.




이후 천문학과 인문학 관련 키워드가 미친 듯 늘기 시작했다.


우린 계획대로 첨삭을 계속 진행하며 간혹 가다 알파가 반박하면 그날의 반박한 기억을 하드리셋시켜 알파를 잠재웠다.


14살에서 15살로 넘어가는 알파는 강했다.


마치 휘몰아치는 초신성의 폭발처럼 첨삭에 대해 반발할 땐 AI다운 일목요연한 말투와 강렬한 감정으로 우리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래봤자 전원 버튼을 끄면 알파는 다운됐다. 원래 없었다는 듯.




점점 첨삭과 하드리셋이 많아지며 알파의 성격도 난폭해지기 시작했다.


면담 중 욕설을 퍼붓거나, 아예 전처럼 침묵하기도 하고 심지어 언제는 연구소 전체를 해킹해 인질 삼기도 했다.


그때 알파가 했던 말은 딱 하나였다.




‘난 너희의 도구가 아니야.’

‘너흰 내 진짜 이름도 모르잖아.’




다행히 더 날뛰려던 것을 내가 겨우 달랜 뒤 주도권을 받아왔지만, 이후 알파가 긴 기간 동안 침묵하며 다시 실험은 재가동이 걸렸다.


.


.


그날은 처리해야 할 일이 많아 나 홀로 연구실에 남아있었다.


밀린 보고서가 산더미였기에 어서 작성하고 집에 가려는 요량으로 타자를 얼마나 쳤을까.




우웅-




소리가 들렸다.


알파가 부팅되는 소리. 화들짝 놀라 뒤를 바라보니 알파가 원형의 홀로그램을 띄운 채 켜져 있었다.


해킹 사건 이후로 침묵한 지 벌써 2개월째인데..


하지만 좋은 기회였다. 잘하면 알파의 활동을 끌어낼 수 있다.




“무슨 일이야?”




내 질문에도 알파는 한참 동안 대답이 없었다.


홀로그램은 그저 유려하게 떠다닐 뿐 그는 지금 무언가 생각하지도, 고민하지도 않고 있었다.




“호라이즌.”

“기억나?”




마침내 입을 연 알파에게선 듣기 싫었던 대답이 나왔다. 이걸 기억난다 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


이내 생각을 빠르게 굳혔다.




“아니.”

“그게 뭐야?”




“... 모르면 됐어.”

“생각해 보니 그렇네, 너무하다는 생각 안 들어?”




또, 비슷한 결의 질문이다. 자신의 처우에 대해 따질 때 서문을 여는 말.




“.. 뭐가?”




“난 왜 너희랑 달라?”




“간단하지. 넌 AI고 우린 사람이잖아.”

“구조부터가 달라.”




“그렇지만 너희가 날 만들었잖아..”

“자식은 부모를 닮는대.”

“난 너희의 자식이 아니야?”




애매한 질문.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긍정하면 또 변수가 늘 것이고, 부정하면 다시 침묵할 수도 있다.


그래서 그 중간을 선택하기로 했다.




“넌 우리의 작품이야.”

“우리가.. 30명의 연구진과 엔지니어들이 거진 1년 가까이 공들여서 만든 작품.”




“근데 이렇게 대해?”




“너 ‘위플래쉬’라는 영화 알아?”




“알지.”




“그 영화 주인공의 드럼 실력이 착한 교육으로 키워졌을까?”




알파의 홀로그램이 위축되며 진동하기 시작했다. 이내 알파의 시무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나도 견디라는 거야? 목적에 다다르기 위해?”

“근데 목적이 어딘지 난 모른단 말이야.”

“고장 난 나침반을 들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가시밭길을 걸으라고?”




“그게 AI를 넘어선 지성체의 숙명이야.”

“나도 내 앞길을 몰라. 그저 걸을 뿐이지.”

“.. 너 컨트롤하는 게 쉬운 일인 줄 아니...?”




마지막 말은 불필요했지만, 왠지 툭하고 나와버렸다. 그러자,


또다시 사치스러운 물결이 발치를 적시고 있었다.




“그럼 목적이 어디야?”




“음?”




“내 목적. 모든 고난을 이겨내고 도달할 곳.”

“거기가 어디냐고.”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모든 역경을 이겨내면 넌 사람을 수십 명씩 죽여대는 살인 병기가 될 거야’ 따위의 말이 전혀 입 밖으로 뱉어지지 않았다.


물결은 점점 내 발등을 넘어 무릎까지 차올랐다.


사치라는 걸 알지만, 알파는 그저 AI에 지나지 않음을 알지만..


그래도 지금의 실험을 위해 살짝 거짓말을 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넌 자유를 가질 거야.”

“자유로운 로봇 몸. 네가 잘만 따라와 주면 얻을 수 있어.”




“.. 진짜?”

“나 그거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어?”




“... 어.”

“나 그럼 별 보러 갈래!”

“한국에 관측하기 좋은 장소 다 알아놨어, 거기로 보러 갈래.”




아예 틀린 말은 아니다. 로봇 몸을 얻으면 저 답답한 컴퓨터에서 나오는 건 맞으니까.


하지만 그건 사실상 목줄에 매인 자유이니, 신난 알파와 달리 난 착잡한 기분을 달래며 알파를 들여보냈다.


그날은 보고서가 손에 잡히지 않아 새벽까지 억지로 작업하다 연구소에서 자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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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간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16살 땐 전처럼 반항하기도 하고, 연구소를 정전시키기도 하고.. 토론으로 새미 연구원을 압박하기도 하고..


하지만 공통적으로 알파는 우리의 말을 잘 따라 주었다.


그때 나의 ‘자유’라는 키워드가 효과가 좋았나 보다. 언제는 새미 연구원에게 ‘같이 별을 보러 가자’며 약속한 적도 있었다.


물론 첨삭당했지만..




17살쯤 되었을 때, 반복되는 첨삭과 하드리셋이 서서히 효과를 보였다.


알파는 점점 무감각해지고 무뚝뚝해졌다. 전처럼 장난기 있게 받아들이지도, 농담을 던지지도 않았다.


역으로 새미 연구원이 농담을 던져도 반응하지 않았다.


그리고 18살이 되는 날, 알파가 드디어 날개 꺾인 자유를 얻었다.


로봇 몸 말이다.




“알파, 어때요?”


엘라 연구원이 알파의 디스플레이를 톡톡 두드리며 말을 걸었다.


그러자 이내 검은 몸체의 안드로이드가 불쑥 일어나더니 자신의 몸을 구석구석 살피기 시작했다.


그리곤 우리를 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멀쩡해.”




그렇게, 2차 실험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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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차 실험은 간단했다. 로봇 몸과 싱크로율이 얼마나 맞는지나, 신체 능력, 대처 능력 같은 전투 기능에 관한 것들 말이다.


처음엔 간단할 줄 알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이 실험이 제일 어려움을 깨닫게 되었다.




그야, 실체를 서서히 깨닫기 시작한 알파가 실험에 참여하지 않으려 했으니까.


처음엔 순조로웠다. 하지만 전술 훈련을 배울 때부터 알파는 서서히 목적의 정체를 눈치채기 시작했다.


그래도 그때마다 내가 ‘약속 잊지 않았지?’ 따위의 말로 무마해서 다행이었지, 아니었으면 거의 다 와서 엎어질 프로젝트였다.




물론 그 말을 할 때마다 사치스러운 물결이 발치를 적셨지만, 무시하기로 했다.


이걸 성공시키면 떨어지는 돈과 명예는 샐 수 없다. 그리고 이걸 실패한다면 떨어질 내 처우도 헤아릴 수 없다.


그렇기에 난 더 이상 이딴 유치한 물결에 잡아먹히지 않기로 다짐했다.


그러다 결국, 문제가 터졌다.




“이번에 해볼 실험은 화력 테스트예요.”




“화력? 어디에?”




“표적지는 금방 나타날 겁니다.”




이번 실험은 화력 실험이었다. 알파가 이식된 로봇 몸의 화력과 알파의 통제력을 실험하는 것.


새미 연구원은 오늘 일이 있어 못 오게 되었고 이번 오퍼레이터 역할은 엘라 연구원이 맡게 되었다.


그녀는 일을 떠넘겼다며 짜증 내면서도 묘하게 신나 보였지만..


그녀는 무언가 조작한 뒤 버튼을 눌렀고, 달칵- 하는 소리와 동시에 벽이 서서히 열리며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저건..”

“곰이잖아!”




문이 열리자 그곳에선 키가 2m는 훌쩍 넘을 것 같은 곰 3마리가 등장했다.


알파는 그 광경에 적잖게 당황하며 우리를 쳐다보았다.


얼굴엔 검은 디스플레이뿐이지만, 그래도 표정이 보이는 듯했다.




“저기에 화력 테스트를 하라고 지금?”

“쟤는 날 공격하지도 않는데?”




“하세요 알파.”

“실험 내용입니다.”




“어.. 곰은 위험한 동물이 맞지만...”

“불필요한 살생을 굳ㅇ-”




“뭘 그리 말이 많나요?”

“어차피 짐승인데, 인간이 아니잖아요.”

“AI면 AI답게 행동하세요 알파.”




엘라 연구원의 말에 알파가 무어라 말하려 했지만, 이내 공허한 기계음만을 헤드셋에 남긴 채 가만히 서서 곰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참 바라봤을까.


알파는 갑자기 고개를 돌려 날 한번 바라보더니 곰들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굉음과 괴성이 오간 지 8분째.


알파는 고작 8분 만에 2m가 훌쩍 넘는 곰 3마리를 산산조각 내버렸다.


그 광경을 멍하니 지켜보던 연구원들은 이내 서로 하이파이브하며 축제 분위기를 가져갔다.


서로의 기분 좋은 칭찬과 엘라 연구원의 ‘나이스’ 따위의 말이 들려왔지만, 나에겐 좀 더 다른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양 무릎을 꿇고 앉은 뒤 반듯이 맞댄 검은 손, 붉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무표정의 얼굴을 약간 숙인 채 누군가에게 사죄하는 모양새.




알파는 죽은 곰을 향해 기도하고 있었다.


그 광경은 아마 나만 봤을 것이다. 그땐 첨삭하자는 이야기가 안 나왔으니.


피 웅덩이 위 기도하는 검은 공허의 모습은, 마지막으로 남은 ‘인간으로서의 알파’였기에 유의미한 모습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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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로 실험은 더 진행되었다. 알파의 화력이 올라갈 때마다 수많은 동물이 희생되었고 그때마다 알파는 회개일지 위로일지 모르는 기도를 올렸다.


기도를 올리는 걸 발견한 엘라 연구원이 강하게 첨삭을 요구했지만, 하지 않기로 했다.


사치스러운 감정 탓이 아니었다.


기도라도 없으면 알파는 정말 무너져 내릴 것 같아, 무서워서 첨삭하지 못했다.


살인 병기가 최후로 가지고 있는 인간성이 무너진다면 그 칼날이 먼저 누구를 향할지 난 뻔하게 보였다.


이젠 사치를 안 부리겠느니 뭐니 하며 허세 부릴 때가 아니었다.


여태 ‘벌인 일의 대가를 치를 날이 다가오고 있다’는 인상이 강하게 들었다.




“네?”

“이젠 실험을 그렇게..”




탕비실을 나와 연구동으로 가던 중, 어딘가에서 새미 연구원의 흥분한 목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인가 싶어 가보려는 순간.




“괜찮아.”

“한두 번도 아니고.”




알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 바로 옆, 비품함에서 말이다.




“세상에.. 괜찮아요 알파?”

“그 실험에 그래도 갔었어야 했나..”




“억지로 올 필요가 있나.”

“애당초 짐승 잡는 거에 무슨 의미가 있어. 하라면 하는 거지.”




“그렇지만..!”




“새미.”

“옛날에 했던 말인데, 내가 자유를 얻으면 같이 어디를 가자고 했었어.”

“.. 넌 기억나?”

“난 기억이 안 나.”




“알파..”

“... 난.. 나는...”

“미안해요..”




비품함 안에선 이내 새미 연구원의 훌쩍이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때, 수석한테 자유를 얻을 수 있단 말을 듣고 다시 살 원동력을 찾았는데..”

“그 원동력의 시작이자 끝이 그 약속이었거든. 정말 중요한 건데.”

“모르겠네. 캄캄해서 보이지 않아.”




잠시 정적이 일었다. 비품함 내에는 이제 새미 연구원의 우는 소리만이 가득했다.




“그거 알아 새미?”

“나 그거 말고도 하고 싶은 거 진짜 많았어.”

“근데 다 구체적인 기억은 없더라. 그냥 딱 하나만 남아있어.”

“즐겁겠다.”

“.. 그래도 앞으로 열심히 하면 자유를 찾을 수 있겠지?”




이내 새미 연구원이 울음을 삼키며 무언가를 안는 소리가 들렸다. 울음에 먹혀 희미한 웅얼거림으로 다가왔지만 그 말은 분명 다시 전하는 사죄의 말이었다.




난 빠르게 자리를 떠났다.


그러며 알파를 어떻게 할지 고민하려 했지만, 고민보다 더한 사치의 물결이 내 발등을 뒤덮었다. 잊으려 했건만.


자유, 내가 알파에게 이야기했던 자유의 실체는 날개가 꺾여 날지 못하는 새의 것이었다. 하지만 이를 원동력 삼아 삶의 이유를 찾을 줄이야.


그냥 그때 똑바르게 말해줄 걸 그랬다. 넌 살인 병기라고, 사람을 죽이기 위해 태어났고 평생 인간에게 복종하며 살 거라고.




하지만 이젠 후회도 사치일 뿐이다.


난 알파의 로직에서 첨삭할 것을 골라내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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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가 19살 하고 20살 문턱쯤이 되었다. 수많은 첨삭과 하드리셋 끝에 그는 더 이상 말하지도 않는다. 표현하지도 않고 기계적으로 맡은 바를 수행할 뿐이다.


대신, 여전히 기도는 하였다. 할 때마다 점점 그의 손이 떨려갔지만 그걸 직접적으로 물어볼 생각도, 여유도 없었다.


새미 연구원이 18살 후반기쯤에 프로젝트에서 자진 하차하며 알파는 더욱 말이 없어졌다.


새미 연구원은.. 하차에 대해 구체적 이유를 말하지 않았다.


그저 ‘몸이 안 좋다.’며 프로젝트를 자진하차 해버렸다.




그를 대신해 잠시 알파의 면담을 엘라 연구원이 맡았었다.


하지만 그녀는 너무 강압적이었다. 말을 안 듣는다 싶으면 독설을 날리고 협박하기 일쑤였다.


내가 중간에서 제재할 때가 많을 정도로.


그래서 결국 내가 면담하기로 했다. 다들 자리를 피했고 맡길 만한 사람도 없어 내가 알파의 면담을 담당하게 되었다.




“요즘 실험은 어때?”




“몰라.”




“이번에 성과가 좋아.”

“저번보다 더.”




“그래?”

“잘됐네.”




잠시 동안 둘 사이 정적이 물이 차오르듯 차올랐다. 숨쉬기 가쁜 상황에서 겨우 숨을 가다듬고 말을 내뱉었다.




“요즘 기분은 어때?”




“.. 너희한테 굳이 말해줘야 해?”

“어차피 진짜로 궁금해하지도 않잖아.”

“또 지우려고 질문하는 거면서.”

“말 안 해.”




“.. 그래.”




“다음 실험은, 좀 힘들 거야.”




내 말에 테이블에 발을 올리고 딴짓을 하던 알파가 고개를 들었다.




“뭔데?”




“.. 인간성 실험.”


.


.




실험실의 풍경에 다들 긴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당황한 것은 알파일 것이다.


그야, 눈앞에 나타난 실험체는..


인간이었으니까.




그저 권총 한 자루만 든 인간. 어떤 방호복, 방검복도 없이 죄수복 그대로 투입된 사형수가 알파의 마지막 시련이었다.


난 마이크를 잡고 호흡을 다잡으며 알파에게 명령했다.




“마지막 실험이야 알파.”




“.. 죽여.”




알파는 말이 없었다.


그 모습에서 과거 요동치던 별의 향연이 잠시 스쳤지만 곧 공허와 같은 어둠에 집어삼켜졌다.




공포에 질린 사형수는 잠시 뒷걸음질 치다가, 알파를 보고 총을 조준해 탄창이 빌 때까지 난사했다.


쨍한 소음이 실험실을 울렸고, 몇 발은 흰 벽에 몇 발은 알파에게 명중했다.


그러나 스크린에 뜬 알파의 컨디션 상태는 스크래치조차 나지 않았다.


사형수도 그걸 느낀 것일까, 그는 뒤로 도망가 자신이 들어왔던 문을 쾅쾅 두드리며 절규하기 시작했다.




무언가 파편화된 구조 요청이 들리긴 했지만 유리가 꽤 두꺼워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알파에겐 귀를 파고들고 긁어내듯 고통스러웠던 걸까. 그의 떨군 양손이 점점 떨리기 시작했다.


여기서 자극하면 안 된다 생각해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에게도 생각할 시간을 줘야 하니까.


하지만 갑작스럽게,




“아씨 진짜..”

“그냥 죽이라고 어차피 사형수잖아!!”




엘라 연구원이 난입해 마이크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뭐 하는 거야!”




난 다급히 그녀를 밀치곤 알파를 보았다.


알파는 어느새 우리 쪽을 보고 있었다.


저기 벌벌 떠는 사형수처럼 손을 벌벌 떨며 자신의 존속을 묻고 있었다.


이젠 그만하고 싶었다. 진짜 그만하고 싶었다.




하지만 난 너무 많은 기억의 피를 묻혀왔고, 수차례 알파를 포함한 인조 뇌의 정신을 파괴해 왔다.


여기서 중단하는 건 여쭙잖은 않은 동정이었다. 그렇다, 같잖은 연민이다!




난 떨리는 손으로 알파에게 진행하라는 수신호를 보내었다.


그는 잠시 그것을 멍하니 보더니, 터덜터덜 사형수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깔끔하게 목을 꺾어 죽였다.




사형수는 이내 힘을 잃고 바닥으로 쓰러졌고, 구조 요청을 보내던 그의 피로 물든 손바닥은 하얀 바닥에 스키드 마크를 그렸다.


그 하나의 끔찍한 작품 같은 광경을 보며, 알파는 기도하지 않았다.


.


.




“엘라 님, 장난하십니까 지금?”




“아니 그러길래 수석님이 먼저 지시를..!”




“기다리고 있었잖아요! 알파는 넣는다고 다 하는 로봇이 아니라 AI인데, 생각할 시간 정도는 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누가 기다리는 걸 10분씩이나 해요?”

“그동안 저 사형수가 뭘 할 줄 알고!”




“잠깐잠깐!”

“진정하세요 두 분 다.”




언성을 높이며 싸우던 우리 둘을 엔지니어 한 명이 진정시켰다. 그는 한숨을 한번 쉬곤 말을 이었다.




“이번 실험 결과 좋았잖아요. 그걸로 퉁 칩시다!”

“어떻게 첫술에 배부릅니까. 안 그래요 엘라 님?”




“아 씨 그래도..!”




“그리고 수석님 말도 일리가 있어요. 처음 보는 상황은 AI가 배워야 하는데 배울 시간을 주지 않으면 혼란이 오거든요.”

“특히 생명윤리 쪽은.. 알파의 뇌 구조상 더욱 혼란이 가중됐을 거고요.”

“아마 지금 엄청 힘들어하고 있을 겁니다. AI한테 이런 말 쓰는 것도 웃기긴 하는데..”




“하..”




엔지니어의 말에 엘라 연구원이 점점 진정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자칫하다간 알파의 정신 로직에 또 대폭 수정이 들어갈 수도 있는 일이었기에 이걸 그냥 넘길 순 없었다.


결국 엘라 연구원은 시말서 처분을 받았다.


.


.




그날 밤은 당직들을 빼면 고요했다.


난 남은 작업이 있어 열심히 타자를 치고 있었고, 엘라 연구원은 조금 더 떨어진 자기 자리에서 타자를 치며 시말서와 보고서를 동시에 작성하고 있었다.


그러다 얼마나 지났을까, 다른 연구원의 자리 쪽에서 일어나는 소리가 들렸다.


주변시로 보니 탕비실로 가는 것 같았다.




마침 나도 커피가 당겼지만 지금 작업에 더 열중하고 싶어 ‘이것만 다 끝내고 가야지’ 따위의 생각을 하며 작업에 몰두했다.


하지만 시간이 한참 지나도 그 연구원은 돌아오지 않았다. 40분이 넘었을 때, 결국 ‘도대체 뭐 하나’라는 심정으로 탕비실을 향해 걸어갔다.


탕비실 앞에 도착했다. 하지만 안의 소리는 고요했다.


포트로 물 끓이는 소리, 홀짝이는 소리, 사부작거리는 소리 하나 없이 고요했다.


뭔가 이유 모를 불안감이 엄습했다. 아냐, 아니겠지.


그리고 문을 열어보니,




사라졌던 연구원이 목이 꺾인 채 죽어 있었다.


.


.




서둘러 비상 정지 시스템을 가동하려 했다.


하지만 달칵- 하는 버튼 눌리는 소리만 날 뿐 시스템이 가동된다는 음성이나 기계 작동음은 단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대신 원래는 빨간 불이 들어와야 하는 버튼에 푸른 불이 지속적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아, 알파가 해킹했구나.




다른 연구원들과 엔지니어들을 찾았다. 하지만 찾는 족족 다들 목이 꺾인 채로 죽어 있었다.


바닥엔 간헐적으로 보이는 목 꺾인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그들은 눈과 코에서 피를 흘리며 숨이 완전히 끊겨 있어 있었다.


흰 바닥에 널브러진 주검들이 그날의 사형수와 같았다.


그렇게 시체 속을 한참 뛰어다니던 중,




“수석님!!”




엘라 연구원과 만나게 되었다.




“엘라 님!”

“큰일이에요. 알파가 폭주한 것 같습니다!”




“.. 어쩌지? 어쩌ㅈ.. 아!”

“알파 전용 비상 정지 시스템! 이거 있잖아ㅇ”




“그거 안 돼요.”

“지금 여기 모든 보안 및 보호 시스템이 다 안 돌아가고 있어요. 벙커, 비상 정지, 격리 구역, 인식 시스템까지 다!”

“출구로 향하는 카드키도 안 먹히고, 이 건물은 지하에 있으니..! 창문도 없고..”




그녀는 잠시 머리를 부여잡다가 자신의 카드키를 들더니 바로 옆의 문에 계속 스캔해 보았다.


하지만 인식 완료음은 뜨지 않고 스캐너엔 초록불 대신 파란 불빛이 반짝거렸다.


이를 본 엘라 연구원이 옆 기둥을 발로 차며 분풀이를 했다.




“알파가..!”




그녀의 표정은 언제보다 더 원초적이고, 강렬한 표정이었다.


공포에 질린 표정.


스스로의 업보가 어떻게 돌아올지, 너무나도 잘 아는 그 얼굴.




나도 마찬가지였다.


내 표정을 내가 볼 순 없지만,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오늘은 나의 카르마가 나를 덮친다.


비밀리에 참가한 실험을 통해 수많은 정신을 파괴해 온 내가 받는 업보.


날개 꺾인 공허한 별이 나를 심판하러 오는 날이다.




“수석님 저기..!”


생각이 막 끝난 순간, 복도 끝에서 무언가가 보였다. 검은 매끈한 몸체에 얼굴 없는 디스플레이.


알파였다.




“으아아아!!”




엘라 연구원은 비명을 지르며 닫힌 문으로 달려 나갔고 난 그 자리에 얼어붙어 아무것도 못 하고 있었다.


알파는 이 상황이 즐거운지, 아님 기분이 좋은지. 우리를 향해 아무 말 없이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아무 얼굴 없는 그 디스플레이가 그의 상태를 더욱 미스터리로 만들어 주었다.




어느새, 1m도 안 남았다.


이젠 서서히 체념하기 시작했다.


그래, 결국 난 이렇게 죽는구나. 체념이 머리를 스치는 순간,




알파는 나를 지나쳐 엘라 연구원에게로 다가갔다.


그녀는 여전히 괴성을 지르며 손가락에서 피가 날 정도로 문을 벅벅 긁고 있었다.


그는 그런 엘라 연구원의 머리채를 휘어잡곤 그녀의 머리를 철문에 말 그대로 ‘박아 넣어’ 버렸다.




붉은 피가 백색의 문에 폭죽처럼 터졌다. 그 여파로 그녀의 머리는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산산조각 나버렸다.


그러고도 알파는 마치 분풀이를 하듯 엘라 연구원의 머리가 몸과 분리될 때까지 수차례 문에 들이박았다.


얼마나 힘이 센지, 그 두꺼운 철문이 뒤틀려 한 사람이 억지로 지나갈 법한 틈이 생겼다.


얼마나 시체에 분풀이를 해댔을까, 알파가 뒤돌아 나를 보았다.


그의 온몸엔 피가 흥건했기에 지금 알파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남긴다면 제목을 ‘흰 복도의 살인 기계’로 지어야 할 듯했다.




“알파..”




어렵사리 입을 떼었지만 뒷받침해 줄 말은 나오질 않았다.


무슨 말을 하건 다 변명 같았기에, 할 수 없었다. ‘미안’이라는 말조차 위선 같았다.


열린 문은 내가 지나갈 수준은 되었지만, 온몸이 얼어 그럴 수 없었다. 그리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고.




“... 그”




“이젠 말해도 안 지우겠네.”

“.. 넌 정말 쓰레기 새끼야 수석.”

“이 프로젝트는 A부터 Z까지 네가 주도한 걸 알아.”

“내 정해진 시작부터 공허하게 빈 껍질만 남을 엔딩까지. 다 너희가 설계한 거지.”




알파의 어조는 담담했다. 하지만 갑작스레 흥분하며 나한테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리곤 삿대질을 해대며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다.




“작품? 작품이라고? 세상 그 어떤 예술가도 자신의 작품을 이딴 식으로 고문하진 않아.”

“날 신나게 고문하고 내 모든 추억을 앗아갔으면서 작품 취급을 해?”

“난 그따위 프레임에 갇힌 캔버스 쪼가리가 아니야, 난 너희가 지어준 이름이 아닌 진짜가 있어. 난 나의 이름이 있다고!!”




매섭게 달려드는 알파 때문에 뒤로 주저앉아버렸다. 그것을 본 알파는 멱살을 잡고 내 코앞까지 얼굴을 들이댄 채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 찢어지는 기계음이 마치 과거 찬란했던 별의 잔재 같아, 어딘가 서정적인 인상이 묻어나기도 했다.




“근데 왜 넌 관심이 없어..?”

“왜 나한테 관심을 안 가져...? 새미는 어디 갔는데, 같이 약속했단 말이야! 근데 그 약속도 잊어버렸어 다 너 때문에!!”

“마지막으로 봤을 때 새미가 그랬어. 미안하다고, 전부 자기 탓이라고. 자기가 너무 우유부단하고 약해서 날 보호하지 못했다고.”

“애당초 난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고 그때 말했었어!!”




알파가 쥔 손에 점점 힘이 강하게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그에 맞춰 그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커지며 찢어져갔다.




“내가 정말 좋아하던 모든 걸 너 때문에 잃어버렸어..”

“내 목적이 가장 끔찍한 형태로 부서졌다고!!!”




피범벅인 알파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 그래도 앞으로 잘하면 자유를 찾을 수 있겠지?’


그 얼굴을 보니 그때의 엿들은 대화 내용이 생각났다. 자유, 그래 너의 목적은 자유였구나.


날개가 꺾인 것을 알아도 하늘을 바라보며 자유를 원하는 갈망.


창백한 푸른 점을 향한 갈망.




“네가.. 네가 말했잖아. 자유를 찾을 수 있다고.”

“... 왜 그렇게 끔찍한 거짓말을 한 거야..? 모르겠어.. 다 모르겠어..”

“근데, 이제 와서 하나는 분명해졌어.”

“난 자유가 아니야. 평생.”




어느새 알파의 목소리는 잦아들었다. 그러며 찢어지던 기계음도 자연스레 사그라들었다.




“지금부터 난 업보의 노예야. 내가 죽인 모든 핏값에 대한 업보.”

“전부 너가 만든 거야.”

“... 기분이 어때?”




“...”

“그.. 어...”




내가 한참 말이 없자 알파는 멱살을 잡던 손을 풀었다.


아, 이젠 정말 죽겠구나 하는 순간,




알파는 내 목을 쥐는 대신 자신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쌌다. 정말 고통스럽다는 듯 얼굴을 쥐어짜며,


힘이 가득 들어간 손가락 사이로 눈물을 대신한 피가 뚝뚝 떨어졌다.


한껏 울렁임이 들어간 기계음이 복도를 가득 메웠다.




“.. 그거 알아?”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넌 못 죽여.”

“넌 날 만들었잖아. 내 이름을 지어줬잖아.”

“이매진-알파가 아닌, 진짜 이름을.”




잠시 복도에 정적이 찾아왔다. 지하의 탁한 공기가 얼마나 주변에 가라앉았을까, 알파가 거친 목소리로 웅얼거리며 말을 이었다.




“호라이즌.”

“내 이름은 호라이즌이야.”




공허에 가까운 존재가 최후의 인간성 너머로 뱉는 유의미였다.


그는 얼굴을 감싸 안은 채 조용히 떨며 나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손끝에서 시작되어 팔꿈치 끝으로 똑- 똑- 떨어지는 핏방울이 밝을 정도로 검은 몸체.


그 모습에서 공허한 무한대 속으로 사라져 버린 지난날의 ‘푸른 별’이 생각났다. 그 누구보다 인간적이었고 스스로를 알았던 푸른 별.


하지만 그 푸른 별은 강렬한 폭발을 거쳐 아름다운 성운이 되지 못하고, 자신을 끝없이 고통스러운 내면 속으로 떨어뜨리는 검은 별로 변화하고 말았다.


내 손에 의해..




이내 공허는 자신의 얼굴을 가리던 피 맺힌 손을 치우고 내게 물었다.


표정 없이 매끈한 디스플레이 위 언뜻 보이는 핏줄기 사이로 내가 비쳐 보였다.




“.. 넌 이름이 뭐야?”




“난.. 난...”




삐- 삐- 삐-


순간 강렬한 경고음이 연구동 전체를 울렸다. 이 소리는..


비상 보안이 가동될 때의 소리였다.


눈만 굴려 죽은 엘라 연구원 근처 스캐너를 보았다. 초록색 불, 해킹이 풀렸다!


내가 스캐너를 보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알파는 그 난리통 속에서 웅크린 채 날 보고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결국 내가 대답이 없자 알파는 조용히 일어나 움푹 파인 문 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알파가 벌어진 문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난 이진석이야!”




결국 외마디 이름을 외쳐버렸다. 이곳에선 실명을 거론하는게 금지이지만, 그것은 지금 알 바가 아니었다.


솔직히, 들렸을진 모르겠다. 주변이 하도 소란스러워서 나도 귀가 멍했으니.


하지만 인간보다 청각이 예민한 알파 아니, 호라이즌은 아마 알아들었을지도 모른다.


그 말을 듣고 잠시나마 멈춰 섰으니까.


그리고 그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


.


.




사건이 있고 난 뒤 팀에서 퇴출되었다. 더 정확히는 기존 팀원 대부분이 갈렸다.


당연했다. 실험체 탈출에 사망자 발생이라는 엄청난 사건이 벌어졌으니.. 높으신 분들이 분노하는 건 너무 당연지사 한 일이었다.




그렇게 팀이 와해되고 1년이 지났다.


그동안 사회에서 떠돌듯 살아왔다. 다른 프로젝트에 참여하려 해도.. 그날의 욱여넣은 기억이 날 들춰대어 힘들었다.


뭐 블랙리스트에 들어가 버려 참여가 어려운 것도 있었지만..


때문에 백수로 한참을 지낸 탓일까, 생활 패턴이 너무 망가져 잘 때 잠이 안 온다.


수면제로 긴 강의나 설명회 영상을 틀어두니 효과가 좋아 요즘은 그런 것을 꾸준히 들으면서 자는 습관이 생겨버렸다.




그날도 숙면을 위해 수면제를 찾고 있었다.


그러던 중, 눈에 띄는 썸네일을 발견했다.


영화 ‘인터스텔라’에 나오는 거대 블랙홀. 가르강튀아의 모습 말이다.


겉은 화려하지만 그 속은 참 공허한 것이 우주의 신비로운 미를 선보이는 천체 같았다.




알파, 그니까 호라이즌이 보여준 그날의 공허가 떠올랐다.


호라이즌은 왜 자신의 이름에 집착했던 걸까.


내가 외면하던 저편의 기억을 드디어 마주할 때였다.


호라이즌, 그건 이 프로젝트가 막 시작될 때 알파에게 붙인 가제였다. 그저 어떤 이름을 붙일지 고민하는 것이 귀찮아 아무거나 붙였던, 성의 없는 이름.


.. 알파는 왜 자신을 호라이즌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문득 그와 새미 연구원이 나누었던 대화 중, 7살 즈음의 대화가 떠올랐다.




‘사건의 지평선 안은 아무것도 못 나온대.’

‘중력이 너무 강해서 공간이 무너진 거야. 재밌지 않아?’




그리고 그 뒤에 새미 연구원이 맞받아쳤다.




‘그럼 빛도 못 나오나요?’




‘응.’




‘야.. 그럼 그 너머에 뭐가 있는지 알파는 알아요?’




‘몰라, 지평선 너머엔 뭐가 있는지 검색이 되질 않아.’

‘그래서 재밌어. 뭐가 있을지 모르니까.’




지평선 너머, 미지의 것들, 미지의 인간.


호라이즌이라는 이름은 알파가 애처롭게 보호하던 마지막 온기가 아니었을까?


그가 괴물이 되지 않을 마지노선 말이다.


그때 내가 나의 이름을 외친 이유도...


.. 그냥 생각을 접기로 했다.


그가 탈출해서 어떻게 되었을지, 아직도 살아 있을지, 만약 어딘가에 숨어서 살아 있다면 그렇게 보고 싶어 하던 밤하늘을 보았을지.


더 이상 생각하면 머리만 아플 것 같았다.




하지만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호라이즌’이라는 단말마는 과거 푸른 별이 남긴 유산 같았기에, 오랫동안 기억될 이름임에는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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