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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리바라기 Sep 09. 2024

책들의 시간 101. 일인칭 단수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_홍은주 옮김_문학동네

  이상하게 잘 안 읽히는 책들이 있다. 나에게는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의 책이 그렇다. 이상하게 손에 잘 안 잡히고, 쉬이 책장이 넘어가지 않는다. 워낙 유명하여 많이 들어본 작가이지만, 정작 책은 잘 읽히지 않아 몇 번 시도 끝에 더 이상 읽지 않았다. 수필집은 읽은 적이 있다. 달리기와 관련된 수필. 작가와 관련된 유명한 일화들을 들었기에 막연하게 성실한 작가, 달리기를 하는 작가, 시간을 정해 소설을 쓰는 작가,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말하는 작가 정도로 알고 있었다. 

  이번 작가의 단편집을 읽게 된 계기는 옆자리 국어 선생님 덕분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을 좋아하신다는 말을 듣고, 궁금했다. 나에게는 참 어려운 책의 어떤 면이 그 선생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 읽어야 이야기를 나눠 볼 수 있기에, 단편집을 읽어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선택한 책이 ‘일인칭 단수’. 


  여전히 책을 재미있게 읽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잘 읽었다. 읽으면서 나를 관통한 키워드는 ‘추억’이었다. 그리고 아,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님이 이렇게 생겼구나, 그걸 알 수 있었던 기회였다. 책을 읽으면서 여러 번 멈추었다. 팝송을 찾아보고, 클래식을 찾아보고, 또 들어보느라고. 퇴근하는 동안 내내 생상스의 ‘동물의 사육제’를 들으면서 퇴근한 날도 있었다. 그런 소소한 영역의 확장을 경험하게 해 준 책이다.      


1. 팝송이 마음에 스미는 시절


  심장이 딱딱해지면서 빠르게 뛰고, 숨이 가빠지고, 수영장 바닥까지 가라앉을 때처럼 주위의 소음이 사라지더니, 귓속에서 작게 종이 울리는 소리만 들렸다. 누군가 내게 중요한 의미를 가진 무언가를 서둘러 알려주려는 것처럼.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십오 초 정도의 짧은 시간이었다. 그리하여 그곳에 있었을 중요한 메시지는, 모든 꿈의 핵심들과 마찬가지로 미로 속으로 사라졌다. 인생에서 중요한 사건들이 대게 그러하듯이. 

  고등학교 건물의 아득한 복도, 아름다운 소녀, 흔들리는 치맛자락, 그리고 <위드 더 비틀스> (77쪽)     

  팝송이 가장 깊숙이, 착실하고 자연스럽게 마음에 스미는 시절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정말로 그런지도 모른다. 혹은 그렇지 않은지도 모른다. 팝송은 그래봐야 그저 팝송일 뿐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의 인생은 결국, 그저 요란하게 꾸민 소모품일 뿐인지도 모른다.(87쪽) 


 - 위드 드 비틀스(With the Beatles 중.


  비틀스의 음악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잘 알지는 못하더라도 한 번은 들어보지 않았을까? 책을 읽으면서 두 가지 생각을 했다. 비틀스의 음악을 들려주었던 고등학교 때 친구, 그리고 ‘첫눈에 반한다’라는 경험. 

  책의 내용은 고등학교 시절 비틀스 앨범을 들고 가는 소녀를 만난 짧은 십오 초의 경험과 그 뒤 주인공의 연애 이야기를 다룬다. ‘위드 드 비틀스’는 첫눈에 반한 그녀가 들고 있던 앨범이었다. 정말 짧은 순간의 지나침. 그 뒤 주인공은 졸업할 때까지 그 아이를 다시 보지 못한다. 그때 들었던 종소리의 감각이 강렬하여,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었지만 쉽지 않았다. 청춘의 시절이었고, 그 시기를 지나 결국은 평범한 어떤 일상을 살아가는 것. 그리고 나이가 들어 어떤 순간을 떠올리는 것. 이 소설의 구성이며 의미이다.    

  

  스무 살 무렵, 고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내던 ‘제이’에게서 삐삐가 왔다. 정말 삐삐라는 단어를 쓰면서도 진짜 오래되었구나, 그런 생각이 든다. 세월이 정말 빠르구나, 나는 이렇게 늙어가는구나. 그때 삐삐에 녹음되어 있던 음악은 비틀스의 ‘Hey Jude’였다. 사실 팝송에 전혀 관심조차 없던 나였기에, 전화기 너머 들려오던 노래가 처음엔 무슨 곡인지도 몰랐다. 나중에서야 비틀스의 노래인 것을 알았고, 아주 세월이 많이 흘러 ‘존레넌과 오노 요코’와 관련된 전시회에 갔을 때 ‘헤이 쥬드’의 작곡 배경에 대하여 보게 되었다.      

  제이는 나에게 왜 그 음악을 녹음해서 보냈을까? 스무 살 그 당시엔 그 음악을 받고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던 거 같긴 하다. 같은 대학도 아니었고, 본가에 내려가면, 여러 친구들과 함께 무리 지어 보던 친구 정도였는데, 뜬금없이 왜 그 음악을 보냈을까? 술에 취해 노래를 한 번 더 직접 불러 준 기억은 있다. 하지만 손 한번 잡지 않았던 우리였기에 다른 진전은 없었다. 무심히 ‘힘내라’ 툭 위로를 던져주던 아이이긴 했다. 따로 연락조차 하지 않아 지금은 어디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비틀스, 헤이 쥬드, 그리고 제이. 나에게 비틀스는 그 정도이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오랜만에 ‘추억’에 빠져들었다. 비틀스의 노래가 듣고 싶기도 했다. 생각해 보면, 팝송이 자연스럽게 스미던 시절이었나 보다.    

  

2. 야구를 좋아하는 마음


 하지만 그것은 한참 나중의 일이다. 그에 이르기까지. 1968년부터 1977년까지 십 년 동안, 나는 실로 방대한, (기분상으로는) 거의 천문학적 횟수의 ‘지는 경기’를 지켜봐 왔다. 다시 말해 ‘오늘도 또 졌네’라는 것이 세상의 이치로 여겨지도록 내 몸을 서서히 길들여갔다는 소리다. 잠수부가 오랫동안 주의 깊게, 수압에 몸을 길들이듯이. 그렇다. 인생은 이기는 때보다 지는 때가 더 많다. 그리고 인생의 진정한 지혜는 ‘어떻게 상대를 이기는가’가 아니라 오히려 ‘어떻게 잘 지는가’하는 데서 나온다. (131쪽) 


-'야쿠르트 스왈로스 시집', 중. 


  야구를 좋아한다. 좋아하게 된 계기는 무너져 버린 일상의 어떤 돌파구였지만, 그래도 그 시절 야구를 좋아해서 나의 시간은 정말 잘 갔다. 그렇게 좋아한 지 어느새 10년. 그때도 야구팬이 참 많았지만 지금은 더 많아진 기분이다. 야구장에 가면, 큰 음악의 응원가에 가슴이 팡팡 뛰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야구를 좋아했던 이유는 일종의 묘한 심리전, 그리고 결국은 삶으로 귀결되는 어떤 루틴들이었다. 소설 속 주인공이 지는 경기를 보면서 인생에 대하여 생각하는 그 장면, 그 장면에 대한 공감과 끄덕임이 내게는 있다. 인생이 이기는 것보다 지는 것이 더 많은 날들이라는 것, 그리고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안 되는 어떤 순간들이 있다는 것, 실패와 좌절의 순간들이 잦다는 것, 그럼에도 다음날 다시 경기는 열리고 투수는 투수의 자리에, 타자는 타자의 자리에 서서 어김없이 임해야 한다는 것, 그런 것들이 내가 야구를 좋아하는 이유였다.      


  한참 야구에 빠져 살았을 때는 퇴근하면서 바로 야구장으로 갔고, 옅은 비에 우산을 쓰고 커피를 마시며, 저 멀리 외야석에서 야구를 봤다. 점처럼 보이는 선수들이 공을 치고 달리는 것을 보면서 위로를 받았다. 따로 응원도 하지 않았다. 다만 넓은 잔디와 하늘과, 사람들과 그리고 ‘그깟 공놀이’에 나는 마음을 온통 빼앗겼다. 야구가 인생 같아서.      


  여전히 내가 응원하는 팀은 야구를 잘 못한다. 아주 못하지는 않고 적당히 못한다. 그래서 이기는 경기보다 지는 경기가 조금 더 많아도 재미있게 볼 수 있다. 일 년에 한 두 차례 정도는 불꽃놀이를 볼 수 있는 날에 야구경기를 야구장에 직접 가서 관람을 한다. 야구장 먹방도 즐기고, 밤에 불꽃놀이도 보고 그렇게 집으로 돌아온다. 그럴 때면 우리 집이 야구장이 내려다보이는 아파트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도 있다. 

  책을 읽으면서 어떤 동질감, 주인공이 느꼈던 어떤 마음의 움직임에 함께 마음이 들떴다. 지는 경기를 보지만 야구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어떤 마음들을 잘 안다. 나는 여전히 이기는 야구가 좋지만, 그래도 야구를 볼 수밖에 없다.  

    

3. 정리     


  책을 읽으면서 음악과 문화와 야구 등 추억에 젖는, 생각을 떠올리는 어떤 소재들은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한국 작가의 단편들이 더 좋다. 일본 영화의 어떤 요소들을 좋아하기도 하고, 일본의 풍경과 도시의 분위기들도 좋아하긴 하지만, 일본 작가의 책은 아직 흥미롭지 않다. 참 대중적인 작가의 책인데도 그랬다. 그래도 잘 읽었다. 역시 여름날엔 소설이구나, 그런 마음으로 읽은 책이다. 

    

[이야기 나눠 보기]

1) 비틀스의 음악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음악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좋아하게 된 계기나 사연이 있다면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2) 좋아하는 스포츠나 응원하는 팀이 있다면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스포츠를 통해 얻는 마음이나 정서의 변화가 있다면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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