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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리바라기 Sep 23. 2024

책들의 시간 103. 한국이 싫어서

# 장강명 장편소설_민음사, 영화 원작 소설


  시간이 금방 지났다. 책이 얼마나 재미있던지, 책을 읽는 내내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그렇다고 시간이 오래 걸린 것도 아니었다. 세 시간 남짓의 시간 동안 책 한 권을 다 읽었다. 재미있었다. 초판 인쇄가 2015년도였으니 거의 10년 전 출간된 책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잘 읽히는 것이 소설의 힘인가 싶다가도, 사회 현실의 변화가 이리 더디어서, 그때의 마음과 지금의 마음이 같을 수 있는 건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든다. 


  제목이 참 직설적이면서도, 많은 이의 공감을 자아낼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이 싫어서’.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국적은 결국 선택할 수도 있는 일도 되었기에, 한국이 싫어서 떠난다는 그 말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책을 도서관에서 본 것은 오래되었다. 선생님들이 수업에 활용하는 것도 많이 보았었다. 그런데도 읽지 않았던 것은 직설적 제목이 주는 불편함 때문이었다. 충분히 공감이 가면서도 나는 어째, 제목이 불편하였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더 빨리 읽지 못했던 것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영화도 개봉되었다고 하는데, 영화도 봐야겠다. 장강명 작가님의 시사평론집을 한 권 읽었고, 상을 받았던 단편도 한 편 읽었고, 책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도 한 편 보았었다. 점점, 작가님의 작품들에 대한 나의 경험이 넓어지고 있음을 느낀다.      


1. 한국이 싫어서. 


 왜 한국을 떠났느냐, 두 마디로 요약하면 ‘한국이 싫어서’지. 세 마디로 줄이면 ‘여기서는 못 살겠어서.’ 무턱대고 욕하진 말아 줘. 내가 태어난 나라라도 싫어할 수는 있는 거잖아.(중략)

  내가 여기서는 못 살겠다고 생각하는 건…… 난 정말 한국에서는 경쟁력이 없는 인간이야. 무슨 멸종돼야 할 동물 같아. 추위도 너무 잘 타고, 뭘 치열하게 목숨 걸고 하지도 못하고, 물려받은 것도 개뿔 없고. 그런 주제에 까다롭기는 또 더럽게 까다로워요. 직장은 통근 거리가 중요하다느니, 사는 곳 주변에 문화시설이 많으면 좋겠다느니, 하는 일은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거면 좋겠다느니, 막 그런 걸 따져.(11쪽)


  주인공 '계나'가 한국을 떠나기로 마음먹은 이유를 적은 부분이다. ‘그냥, 이런 이유로?’ 처음엔 그런 생각도 들었다. 보통 이상과 현실은 차이가 나기 마련이니까. 그걸 알아 자유로움을 꿈꾸어도 현실에서는 수용하며, 순응하며 살아가곤 하니까. 그게 한국을 떠날 이유는 되지 않을 거란 생각이 내겐 더 강했다. 

  소설 속엔 다양한 인물이 나온다. 부모와 가치관의 차이로 갈등을 겪지만 결국 자신의 꿈을 실현하는 '계나'의 남자친구, 하지만 결국은 부모가 원하는 어떤 모습으로 타협하는 모습도 발견할 수 있었으며, 끊임없이 자신이 주어진 환경에 대하여 비난하고 비판하고 슬퍼하지만 그 어떤 변화도 시도하지 않는 '계나'의 친구들도 나온다. 그렇지만 '계나'는 그들과 달리 가족과의 갈등과 주어진 환경을 벗어나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간다. 


  한국에서 ‘경쟁력이 없는 인간’은 살아남기 힘들다고 한다. 경쟁력을 갖출 어떤 평등한 기준도 잘 구축되어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신분제도가 없는 평등한 사회임에도 불구하고 평등하지 못한 어떤 순간들을 만나기도 하고, 직업의 차이로 인해 인격적 차별을 받기도 한다. 만날 수 있는 사람의 범위가 한정되어 있기에, 내가 보는 주변의 사람들은 사실 다 비슷비슷한 환경에서 비슷하게 자란 사람이다. 그래서 주변을 둘러볼 여유와 마음을 갖지 못할 때도 많다. 서로의 사는 모습이 비슷해서. 


 '계나'는 왜 한국에서 살 수 없었을까? 추위를 잘 타는 것, 치열에게 목숨 걸고 무언가를 하지 못하는 것, 직장 통근거리, 문화 시설, 자아실현을 충족할 수 있는 공간에서의 삶. 그런 것이 '계나'를 한국에서 살지 못하게 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상징적 의미로 읽혔다. 그런 것들마저 ‘경쟁’이라는 이름으로 부추기는 사회가 싫었던 거겠지.      


  경쟁력 없는 나는 나의 삶에 대하여 어떤 마음을 가졌던가, 생각해 본다. 일주일에 한 번씩 복권을 사고, 매주 기대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 그리고 한 달에 한 번 월급이라는 금융치료, 매일 걷는 걸음 수로 받는 몇십 원 남짓. 결국 돈이다. 돈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나는 ‘소비’를 줄이기로 마음먹었다. 나이가 들었을 때, 더 이상 일을 하지 않아도 잘 살 수 있기 위하여, 소비를 줄이고 마음의 크기를 그 소비에 맞추는 노력을 하고 있다. 그렇게 살아 낼 다짐을 해 본다.      


2. 결국은 행복을 찾아가는 길


  내가 아는 건 ‘무엇을’이 아니라 ‘어떻게’ 쪽이야. 일단 난 매일매일 웃으면서 살고 싶어. 남편이랑 나랑 둘이 합쳐서 한국 돈으로 1년에 3000만 원만 벌어도 돼. 집도 안 커도 되고, 명품 백이니 뭐니 그런 건 하나도 필요 없어. 차는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돼. 대신에 술이랑 맛있는 거 먹고 싶을 때에는 돈 걱정 안 하고 먹고 싶어. 어차피 비싼 건 먹을 줄도 몰라. 치킨이나 떡볶이나 족발이나 그런 것들 얘기야. 그리고 한 달에 한 번씩 남편이랑 데이트는 해야 돼. 연극을 본다거나, 자전거를 탄다거나, 바다를 본다거나 하는 거. 그러면서 병원비랑 노후 걱정 안 하고 살 수 있으면 그걸로 충분해.(152쪽)     

  밥을 먹는 동안 나는 행복도 돈과 같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어. 행복에도 ‘자산성 행복’과 ‘현금흐름성 행복’이 있는 거야. 어떤 행복은 뭔가를 성취하는 데서 오는 거야. 그러면 그걸 성취했다는 기억이 계속 남아서 사람을 오랫동안 조금 행복하게 만들어 줘. 그게 자산성 행복이야. 어떤 사람은 그런 행복 자산의 이자가 되게 높아. 지명이가 그런 애야. ‘내가 난관을 뚫고 기자가 되었다’는 기억에서 매일 행복감이 조금씩 흘러나와. 그래서 늦게까지 일하고 몸이 녹초가 되어도 남들보다 잘 버틸 수 있는 거야. 

  어떤 사람은 정반대지. 이런 사람은 행복의 금리가 낮아서, 행복 자산에서 이자가 거의 발생하지 않아. 이런 사람은 현금흐름성 행복을 많이 창출해야 돼. 그게 엘리야. 걔는 정말 순간순간을 살았지. (185쪽)


  결국 '계나'가 추구했던 삶은 행복을 향한 길이었다. 한국에서는 행복할 수 없었다. 그리고 '계나'가 분류한 행복의 종류. 자산성 행복과 현금흐름성 행복에 대한 이야기, 재미있었다. 행복에 대하여 나는 조금 다른 개념으로 생각했다. 오히려 행복 추구의 강박관념이 삶을 불행하게 만든다는 생각을 더 많이 했었다. ‘행복해야 한다’는 그 신념이 오히려 행복하지 않다는 것에 대한 역설이라고 생각했으며, 굳이 행복하지 않아도 잘 살 수 있다고 그리 여겼던 적도 있다. 하지만 곰곰 생각해 보면, 결국 삶의 안정과 여유의 추구도 마음의 행복을 위한 길이지 않나 그런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사람마다 행복을 느끼는 기준이나 도달점이 다르다. 그래서 똑같은 상항에서도 누군가는 행복할 수 있지만, 누군가는 행복하다 느끼지 못할 수도 있음을 잘 안다. 나의 행복 도달점, 흔히들 말하는 행복 허들은 아주 많이 낮은 편이다. 하지만 지속시간은 짧아 나는 끊임없이 행복한 경험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계나'가 만난 ‘엘리’처럼 순간순간을 사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일상 속에서 잦은 행복을 발견해야 잘 살아낼 수 있는 사람이다. 결국 나는 현금흐름성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인 것이다. 그래서 높은 목표 성취에 대한 갈망은 낮지만, 작은 성취의 기쁨을 여러 번 누리는 것이 더 필요한 사람인 것이다. 

  '계나'가 한국이 싫어서 호주로 떠난 것, 결국은 행복을 찾는 길이지 않았나 싶다. '계나'는 ‘난 이제부터 진짜 행복해질 거야’라고 공항을 빠져나오며 중얼거린다. '계나'의 행복을 빌어본다. 삶이란 결국 행복을 찾아가는 길이기에.      


3. 정리     


  재미있게 잘 읽었다. 책의 마지막에 평론가의 작품 해설이 있었다. 끝까지 꼼꼼하게 잘 읽었다. 내가 소설을 읽으면서 생각했던 부분과 비슷한 어떤 부분도 있었고, 완전히 다르게 받아들인 부분도 있었다. 그래서 소설이 재미있는 거지, 그런 생각도 들었다. 누군가에게는 이 소설이 한국 사회의 신랄한 비판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결국 청춘의 홀로서기처럼 읽힐 수도 있다는 것, 그게 소설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계나'가 행복해지기를 바란다. 한국을 떠나, 부모와 남매라는 가족의 울타리를 떠나 새로운 영주권을 가진 '계나'의 선택이 결국 행복을 위한 선택이었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야기 나눠 보기]

1) 우리나라, 즉 한국이 참 싫다고 느껴진 순간이 있는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왜 그런 마음이 들었으며, 지금은 어떤 마음인지 솔직하게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2) '계나'는 행복을 ‘자산성 행복’과 ‘현금흐름성 행복’으로 분류합니다. 자신이 행복을 느끼는 방식은 어디에 더 가까운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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