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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리바라기 Oct 10. 2022

책들의 시간 5_다시, 미니멀 라이프.

# 디스크, 미니멀, 그리고 산책할 기분_글 cpt_cpt studio

  한 2년 전부터, 나의 관심사는 온통 ‘미니멀리즘’이었다. 미니멀리즘을 실천하기 위해 하루에 하나씩 버리기를 계획하기도 하였고, 미니멀리즘과 관련된 책들을 잔뜩 빌려다 읽기도 하였다. 계획을 세웠으니 실천해야 한다며, 집안을 돌아다니며, 버릴 것들을 찾아 헤매기도 하였으나, 이내 일상에 지쳐 계획은 마음에만 머무는 날들이 많았다. 무엇보다 문제인 건, 그렇게 잔뜩 버리고는 곧, 습관을 따라 버린 수의 배만큼 다시 사고 마는 것이었다.

  도서관에서 이 책의 제목을 보았을 때, 나의 관심을 끈 건, 사실 ‘미니멀’보다 ‘산책할 기분’이었다. 책을 빌릴 때에는 ‘미니멀리즘’은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라 여기며, 거진 포기 상태이었기도 하였고, ‘산책할 기분’이 어떤 기분인가 궁금하기도 하면서, ‘산책’의 키워드에 관심이 있어 이 책을 빌려왔다. 근데, 막상 책을 손에 드니, 의식의 흐름에 어느새 합류하여 작가의 글에서 내 마음의 한 구석을 본 것 마냥 기분이 좋아졌다.    

  

1. 물건 줄이기의 시작     


  이 책의 구성이 참 좋다. ‘일어날 일들의 전조’에서부터 시작하여, 디스크에 걸린 ‘이력서 혹은 진단서’를 보여주고, 그 후 ‘재활 일지’를 적어 나간다. 디스크 치료기인 듯 읽다 보면, 청소하는 작가가 보이고, 물건을 하나 둘 버리는 작가가 보인다. 그러면서 그 과정에서의 정리한 물건과 작가의 생각이 재활 일지에서 펼쳐진다. 멋진 구성이다. 매력적이었으며, 나도 모르게 그 의식의 흐름에 따라 내가 처음 ‘물건을 버리고 싶다’라고 생각했던 순간이 언제였는지 떠올려 보게 되었다. 그리고 결국 해내지 못하고 포기했던 순간도.      


물건을 줄이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물건이 줄어든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줄이고 버리는 행위 자체에 몰입하다 보면, 결국 다시 물건을 사게 된다.(57쪽)     


몇 해 전 한 번 읽고 난 후, 또다시 몇 해를 방치해 둔 도미니크 로로의 책은, 은연중에 내게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방향이 교묘히 틀어져 적용되는 핀셋 정책. 사람은 결국 선택을 한다. 그저 가만히 내버려 두거나 결정을 피하는 것마저 하나의 선택이다. 회피나 안주가 아닐지라도 대부분의 선택은 관성에 따른다. 많은 경우, 이 관성은 우리 삶을 운전하는데 효율을 높여 준다. 혹은 그렇게 착각하게 만든다. 그 결과는 완전히 반대다.(78쪽)


  ‘미니멀리즘’이라고 말하기에는 머뭇머뭇하게 되지만, 나의 첫 정리 혹은 물건 버리기의 시작은 여느 날과 다름없는 평범한 일상 중 하루였다. 그냥 답답했다. 감당할 수 없는 마음의 상처가 되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깊은 우울의 날도 아니었다. 그냥 갑자기 느껴진 답답함. 오랜 시간 ‘브런치’에서 ‘미니멀리즘’을 키워드로 글을 읽고 있기도 했었고, 미니멀리즘 관련 도서도 많이 읽어왔기에 선뜻 나도, 뭔가를 버려보자 그렇게 마음먹었던 것 같다. 그리고는 거창하게도 ‘하루 하나씩 버리기’를 계획하였다. 물론, 매일 하나씩 버리고 사진을 찍고, 그렇게 계획을 세웠지만, 계획으로만 끝이 났다. 그러기를 어느새 2년. 실천한 날은 한 달이 채 되지 않겠지만, 아주 천천히, 조금씩, 포기하지 않고 필요를 다한 어떤 것들을 버리고 있다. 하지만, 버린 만큼 더 많이 뭔가를 사기도 하고, 그것에 자책하기도 하고, 또 버리고, 또 사고. 반복되는 일상이었다. 이 책을 읽고는, 나의 이 반복된 과정이 ‘관성에 따르는 나의 선택’이었음을 인정하게 된다.      


2. 다시 도전해야 할 과제, 무엇.      


  작가는 디스크에 걸려 응급실에 실려가면서 자신에게 다가온 상황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병원에서 친구가 사 준 깨끗한 흰 수건, 그 수건을 사용하면서 작가는 버릴 것들에 대하여 생각하고, 버릴 것이 자신의 물건만이 아니란 것을 깨닫게 된다. 그 과정에 동감한다. 나도 그러하였기에, 뭔가를 하나하나 버리면서 물건을 줄여나가는 것의 과정에서 내가 느꼈던 생각들 그 생각들을 확인받고, 공감받는 기분이 이 책엔 담겨 있다. 작가의 ‘재활 일지’는 물건을 버리는 과정이면서 동시에 스스로를 정의 내리고 발견해나가는 과정이었다.


버리지 못하는 것들의 존재 이유는 보통 ‘혹시나 하는 불안감’이거나 ‘아, 영광의 순간이여’들이다. 그러니 우린 보통 혹시나..하며 불안해하며 살 게 되거나 ‘저땐 저랬지’라며 과거를 파먹고 뒷걸음을 치며 살 게 되기 십상이다.(133쪽)     

그럴 여유가 없다고? 내면 나온다. 아니, 내야 한다. 왜 그래야 하냐고? 잘 먹고 잘살려고. 뭐가 잘 먹고 잘 사는 건데? 글쎄. 그냥... 사람답게? 바쁜 척 힘든 척 어려운 척 잘 나가는 척 모자란 척 불행한 척 행복에 겨운 척... 척척박사인 척 말고. 그냥 나답게. 살려고.(134쪽)


  책을 읽으면서 다시 마음속에서 뭔가가 꿈틀꿈틀 움직였다. 나는 물건을 버리지 못해서 고민했던 것이 아니라, 왜 버리는지에 대한 이유를 잘 발견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 이면에는, 작가가 말하는 ‘~척’이 포함되어 있었을지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미니멀 라이프’를 삶의 가치로 삼아 놓고 답답함이 스멀스멀 기어 온 날 그렇게 시작했던 미니멀은 당연히 오래가지 못했던 것이었다. 다만, 그 과정에서 물건을 버리면서 느껴왔던 아주 작은 해방의 씨앗들이 조금씩 ‘미니멀 라이프’의 삶을 살고 싶다는 마음을 먹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 책은, 실천의 마음을 가지게 해 준 책이다. 재미있다.      


3. 정리


사실 나의 일신에 대하여서도 도무지 해결할 수 없는 것투성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희망을 가지고 행동을 바꾸는 것, 그 희망이 나에 관한 것이 아닐지라도 희망하는 것, 쓸데없어 보이는 시간이 쌓여 서서히 드러나는 변화나 결과를, 혹은 가만히, 그저 있기만 해도 된다고 생각해야만 ‘알아차려지는 것들’을 알아채는 것.(332쪽)


  사람들이 책을 읽으면서 자신의 생각과 비슷한 결을 발견하였을 때, 그때의 마음이 또 스스로의 삶을 살아가는 데 힘이 되어준다고 믿는다. 작가에게 ‘디스크’가 ‘미니멀’의 삶을 불러왔고, 그리고 다시 ‘산책할 기분’을, 무엇보다 작가에게 ‘창작의 마음’을 다시 주었음을 읽고는 기분이 좋았다. 나도, 나를 발견하는 그 무엇을 향한 도전을 다시 시작해야겠다. 분명, 2년 동안 ‘미니멀 라이프’의 마음을 버리지 못했던 건 버릴 이유를 찾고 싶다는 마음이 더 강했음을. 그렇다면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마음. 그 마음으로 오늘을 살아낸다.      


[이야기 나눠 보기]

1) 혹, ‘미니멀 라이프’에 대한 관심이 있다면, 그 계기는 무엇이었습니까? 그리고 지금 어떻게 실천하고 있습니까?

2) 마음속에 여전히 품고 있는 꼭 하고 싶은, 또는 도전하고 싶은 일이 있습니까? 그것은 무엇이며, 왜 그 일이 하고 싶은지 나눠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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