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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리바라기 Oct 17. 2022

책들의 시간 6_불행이라 할지라도 그건, 때로는.

# 작고 기특한 불행_오지윤 산문집_RHK

 

  제9회 브런치 북 출판 프로젝트 대상 작품이다. 처음 제목을 보았을 때 요즘 말로 가슴이 ‘심쿵’ 했다. ‘작고 기특한 불행’이라니. 불행이라는 것이, 작고 기특할 수 있다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역설적 표현이 삶에 얼마나 자주 등장하는지. 불행이라고 생각하였지만, 조금만 지나가 보면, 그나마 다행이었다고 위로할 수 있는 순간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 순간들로 채워진 시간들이 결국은 흘러 지금의 내가 되었음을. 그래서 이 제목을 가진 책을 얼른 읽고 싶었다.

  술술 잘 읽히는 책이다. 작가의 삶을 채워 온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사건들이 작가에게 생각의 깊이를 더해주고, 자신의 자존감을 높여주는 시간이었음을 발견할 수 있는 책이다. 그렇다면 나에겐, 나의 생각을 확립하고 나를 좀 더 정의 내릴 수 있는 사건들은 무엇이었을까? 그 사건들을 회피하지 않고 마주하여, ‘작고 기특한 불행’을 받아들였던 시간들은 언제였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1. 요즘 연애, 관계 맺기의 어려움에 대한.


  텔레비전 방송들을 볼 때면, 연애 프로그램이 넘쳐 난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솔로들의 인연 찾기부터, 돌싱들의 새로운 만남, 헤어진 연인들의 이야기까지. 언젠가 프로그램에 나온 출연자의 인터뷰를 들은 적이 있다. 프로그램에 나오는 사람들이라면, 그래도 어느 정도의 확인이 이루어진 거라 믿어서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에 대한 불안감을 줄여줄 수 있다는 내용의 인터뷰였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사람을 만나는 기회는 줄어들기 마련이고, 누군가를 만나고 싶은 마음들은 때론, 아는 사람보다 자신을 모르는 사람들 속에서 시작하고 싶은 욕망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쉬지 않고 자신이 보여주고 싶은 모습만을 드러내는 시대.

  인터넷상에서 이루어지는 사회적 관계 구조는 때로 공허함과 피로함을 느끼게 한다. 소개팅 앱을 통해 새로운 만남을 만들어 가보지만, 만남 주체들의 목적이 다른 경우도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작가의 소개팅 앱을 통한 만남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때도 그러하였고, 지금도 그러하구나’라고 느낀 점은 사람과의 만남에 있어 ‘부수적인 감정 소모’에 대한 피곤함이다.


  소개팅 앱에는 ‘FWB’라는 세 글자가 종종 보였다. 다들 유교 걸, 유교 보이인 줄 알았는데 말이다. Friend With Benefit, 쉽게 말하면 잠자리를 가지는 친구 사이다. (52쪽)

  FWB도 요리와 같은 발명품일까. 생의 목표인 번식에 충실한 동물들은 사명감을 가지고 사랑을 나눈다. 마음은 그들과 같아도 인간은 동물과 달라 보이기 위해 굳이 ‘Friends’라는 관계를 붙인다. 욕망은 포장하지 않으면, 비린내가 나는 것들은 죄책감을 불러일으킨다.(53쪽)

 ‘이름’을 붙일 수 없는 관계는 우리를 불안하게 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다가와 꽃이 되고, 우리 관계도 이름을 붙여 주었을 때 꽃이든 똥이든 뭐라도 되는 것이다. 앞으로 얼마나 더 다양한 이름의 관계가 발명될까. 새로운 발명품들이 우리를 외롭게 할 거란 편견은 버릴 것. 어떤 클래식한 관계도 행복하기만 한 건 애초에 없었다.(55쪽)


  나는 사랑을 참 많이 갈구하는 사람이었다. 그 모습은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 맺기가 아닌, 단 한 사람과의 시간과 공간의 공유에서 표현되곤 하였다. 그래서 한 명의 친구와, 짝사랑하는 남학생이 늘 내 마음속엔 있었다. 그 남자에게 사랑받고 싶은 마음은 때론 선한 행동으로, 넓은 이해심과 아량으로, 베풂으로 나타났으며, 그 이면엔 끝끝내 나의 노력만이 사랑이 될 수 있다는 공허한 마음으로 남아 자존감을 갉아먹었던 것 같다. 어린 시절엔.

  지금 세대들의 ‘FWB’가 나의 대학생 시절에도 분명히 존재하였지만, ‘클래식한 관계’만이 사랑이라 믿었던 나는, 오히려 지금의 포장된 욕망이 감정의 솔직함 측면에서는 또 다른 관계 맺기의 유형임을 아주 조금 이해한다. 하지만, 여전히 클래식한 관계가 우리에게 주는 사랑의 깊이를 믿는다. 대학생 시절의 나의 서툰 짝사랑들이, 공허한 마음들이, 부끄러운 기억들이 나에게는 사랑받지 못한다는 ‘불행’의 시간을 주기도 하였지만, 그 작고 기특한 불행으로 인해 나는 단단한 관계의 고마움을 아는 사람이 되었다.      


2. 그리하여 나란, 나란 사람이란.


쓸데없는 말을 많이 해 버린 날이 있다. 상대방에게 맞장구를 쳐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에 괜히 내 치부를 드러낸 날도 있고 웃기지도 않은 드립을 치느라 누군가를 불편하게 한 날도 있다. 오늘은 나를 보호하기 위해 말을 많이 한 날이다. 이런 날에는 공허함에 부르튼 마음을 피가 날 때까지 벅벅 긁으며 집으로 돌아온다. 하루 종일 뱉은 말주머니들이 썩지도 타지도 않는 쓰레기가 돼 지구에 영원히 남을 것 같은 날. 나는 무색무취의 매립지 위에 서서 한숨만 쉰다.(88쪽)


  책을 읽으면서, 결국 ‘작고 기특한 불행’으로 만들어지는 나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크고 작든 마주하게 되는 일상의 삶에 생각이 더해지면서 사람들은 자신만의 가치관을 만들어내다. 그 가치관이 견고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때로는 작은 일들에도 쉽게 흔들리고 무너지는 경우도 있다. 나는 그러하였다. ‘난 이런 사람이야’ 정의 내렸다가도 어느 순간 말과 다른 행동을 할 때도 많았으며,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서도 내 생각과는 다른 결정을 내릴 때도 많았다. 그런 일상의 사건들을 겪으면서 조금씩 나는 나를 발견한다. 늘 하고 싶은 말만, 해야 하는 말만 하고 살아갈 수는 없지만, 작가의 일화처럼 쓸데없이 말을 많이 한 날. 나는 모든 에너지를 다 빼앗긴 기분이 들어 나에게 친절하지 못하다. 일종의 방치 같은. 또는 벌 같은. 근데 이제 그러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을 했다. 책을 읽으면서. 피할 수 없다. 쓸데없는 말을 최대한 줄이면서 나를 보호하지 않는 한. 하지만 이젠, 그리하지 못하였다고 자책하지 않는 내가 되어야겠다 생각하게 된다.


3. 정리.


나는 평범하지 않은 걸 볼 때 마음이 놓이는 사람이다. ‘다양성’ 속에 살고 있다는 안도감은 뿌리도 깊고 여운도 길다. 여행을 간 지 오래돼서일까. 아니면 뉴스에 나오는 대로 ‘내 집’이 없어서일까. 불안이 불쑥거린다.(158쪽)


  평범하지 않은 걸 볼 때 마음이 놓인다는 작가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얼마 전 같이 일하는 분들과 함께 커피를 마시며, 산책을 하다가, 우리 사회의 정보화 발전에 대하여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세상은 너무 빨리 변했으며, 부모님 세대와 자녀 세대의 차이가 보통 3세대 차이라면, 우리 부모님과 우리의 세대 차이는 4세대 차이라는 말을 들었다. 이런 차이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시간을 만들어 낸다. 그러다 보면, 차이가 차별이 되는 사회가 되기도 하고.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 평범한 것을 추구하는 것이 편하고 좋으니까. 그래서 평범하지 않은 걸 볼 때 마음이 놓인다는 말이, 얼마나 어려운 말인지 잘 안다. 많은 것들을 이해할 수 있는 열린 마음. ‘다양성’을 인정하는 마음. 그 마음을 지닌 작가가 부러웠다.

  책을 읽으면서, 여전히 작은 나를 발견하는 건,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을 발견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나는 오늘도 책을 읽고,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이야기 나눠 보기]

1) ‘불행’이라고 느꼈던 시간이나 사건이 있었나요? 그 불행의 터널을 어떻게 지나왔는지 나눠 봅시다.

2) 우리 사회의 다양성은 어떤 모습으로 드러나고 있으며, 스스로 다양성을 인정했던 경험에 대하여 나눠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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