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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리바라기 Oct 03. 2022

책들의 시간 4_누군가의 위로를 경험하고 싶다면.

# 책들의 부엌_김지혜 장편소설_팩토리 나인


  이 소설책을 다 읽고, 손으로 정성스레 책을 한번 쓰다듬은 다음 책상에 내려놓았다. 선하고 깨끗한, 그리고 이른 봄부터 겨울까지의 풍경이 머릿속에 그려지는 소설이다. 작가의 말처럼, ‘봄 햇살을 닮은 따스한 노래와 이야기와 사람(292쪽)’들이 떠오르는 책. 읽으면서, ‘사람들이 소설을 읽는 이유는 무엇일까’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으며, 내 곁에 있는 누군가가 떠올랐으며, 내가 그들로부터 위로를 받았던 경험과, 그 경험으로 다시 누군가를 위로했던 경험이 떠올랐다.

  사람들이 책을 읽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책을 읽는 이유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 먼저, 나는 책을 피곤할 때 펼쳐 든다. 유난히 일이 많아 몸도 마음도 지칠 때 책을 읽으면, 나도 모르게 쉰다는 느낌을 받았으며, 그게 좋아 책을 읽곤 했다. 책을 한 권만 읽지는 않았다. 머릿속에 방이 많아, 동시에 여러 권의 책을 읽었으며, 어떤 책은 좀 빨리 읽고, 어떤 책은 진도가 안 나가 늦게 끝나는 편이긴 하지만, 여러 책을 동시에 읽어 다양한 생각이 불쑥불쑥 치고 들어와도, 책의 이야기는 내게 무엇이라 설명하기 힘들지만 쉼을 주었다. 그리고 나는 책을 읽으면서 만나는 세상이 좋았으며, 마음 아팠으며, 계속 생각이 났으며, 더 나은 세상을 꿈꾸었으며,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는 폭이 넓어졌으며, 조금씩 어른이 되어갔다. 그래서 나는 책을 읽는다.      


1. 위로, 또는 공감과 인정이 필요한 사람들.     


  이 책은 ‘소양리 북스 키친’이라는 북카페이면서 북 스테이를 결합한 복합공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담고 있는 소설이다. 책을 읽으면서 내내 동네의 독립 서점들을 생각했고, 그보다 더 크고 넓은 파주의 책방들을 생각했으며, 여전히 꿈꾸고 있는 ‘시골 한 달 살기’가 떠올랐다. 사람들이 일상을 벗어나,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하는 여행의 많은 이유들 중 많은 부분은 아마도 일상에서의 고민과 괴로움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도 일상의 지침에 쉼이 필요했으며, 누군가의 위로와 공감이 필요했다. 그 상황이 충분히 이해되어 소설에 빠져들었다. 분명, 나보다 어린, 많이 어린 청년들의 이야기가 더 많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인물의 마음에 공감이 되었다.


  마리는 최면술이나 심리 상담 등을 믿지 않았다. 믿지 않았다기보다, 피했다는 게 정확한 표현이었다. 만에 하나, 자신의 머릿속에 품고 있는 생각이 해수면 위로 떠오를까 봐 마리는 항상 전전긍긍했다. 말하기 전에 머릿속으로 자신이 할 거짓말의 맥락이 자연스러운지 반드시 한 번씩 점검했다. 꾸며낸 내용에 빠진 건 없는지도……. 언젠가부터 거짓말을 할 때 마음이 편안해졌다. 진실을 말하는 건 언제나 무거웠다.(135쪽)     

  지훈은 마리의 어깨에 가만히 손을 올렸다.

  “마리야, 우린 누구나 거짓말을 하고 살아. 누군가로부터 나를 보호하려고, 때로는 나에게서 누군가를 보호하려고. 가끔은 그냥 현실 세계를 떠나고 싶어서.”(157쪽)


   책 속 인물, 마리. 어느 순간 거짓말을 진실이라 믿으며 리플리 증후군을 가진 채 살아가게 된 사람. 마리의 어릴 적 친구 지훈은 다시 만나게 된 마리를 위해 심야책방 프로그램에 마리를 초대하고 ‘가재가 노래하는 곳(델리아 오언스)’이라는 책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마리의 마음을 조심스레 들여다본다. 진실을 말하는 것이 언제나 무거웠다고 말하는 마리, 사람들은 사실, 타인의 상황과 모습들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고 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하지만, 자신이 처한 상황이 사람들에게 알려질까 충분히 두려울 수 있다. 나도, 들키고 싶지 않은 그런 비밀들을 가진 채 살아가고 있으니까. 다만, 굳이 말하지 않는 것. 진실을 고백해야 하는 순간을 내가 먼저 만들지 않는 것. 말하지 않음으로 거짓된 삶을 살아가고 있기도 하기에, 마리의 마음이 안쓰러우면서도 이해가 되었다. 때로는 결코 자신의 탓이 아닌,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서 마주하게 되는 피하고 싶은 들키고 싶지 않은 순간들도 분명히 있으니까. 하지만 그런 순간에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는 분명 자신의 몫이다. 진실과 거짓의 양면적 선택만 있는 것은 아님을 이제는 안다. 삶을 살아가면서, 말하지 않는 거짓도, 굳이 꺼내지 않는 진실도 있을 수 있으며, 그 사실을 밝힘으로써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선택도 다양하기에, 때로는 선택에 있어 고백할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함을 안다. 그것이 자신에게 더 당당할 수 있으므로. 하지만 삶의 모습은 내 생각으로만 살아갈 수 없음도 너무 잘 안다. 마리를 향한 지훈의 마음이 마리에게 전달되리라 생각하며, 마리를 이해하려 노력하고, 공감해주고자 조심스레, 책 속 인물 마리의 어깨에 손을 올려 본다.    

  

2. 책과 사람. 같은 마음.


  유진은 옅은 웃음을 띠며 말했지만, 수혁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바람이 불어왔다. 가늘고 긴 한숨을 닮은 바람이었다.

  “그 이후부터는 우울하거나 화가 나면 정신없이 빠져 읽을 수 있는 책을 집어 들었어요. 탐정 추리 소설이나 판타지 이야기 같은 거로요. 소설 속 세계에 빠진 순간만큼은 진통제를 삼킨 것처럼 현실의 고통을 잊을 수 있어요. 그것뿐만이 아니에요. 책의 세계에 빠져 있다 보면 등장인물이 문득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거든요. ‘인생에 참 어이없는 일이 많이 생기지? 진짜 이 정도일 줄 몰랐지?’하고요.”(199쪽)


  책이 위로가 되었던 순간이 정말 많았다. 며칠 동안 한 번도 웃지 않았을 때, 책을 읽고 웃었던 적이 있었으며, 마음이 스르르 녹아 제 풀에 기분이 풀린 적도 있었다. 그래서 책 속 유진의 말이 무엇인지 너무 잘 알고 있다. 소설을 읽으면서 만나게 되는 인물의 어떤 한 부분이 갑자기 내 마음속으로 걸어 들어올 때, 나는 소설이 재미있어진다. 그래서 읽게 되는, 책들!      


  “……수혁아, 몇 시간이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라. 깊은 우물 속 같은 마음을 꺼내며 밤새도록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사람이면 되는 거야. 아버지가 살아보니까 그렇더라. 화려한 시절도 지나가고, 미칠 듯한 열정과 환희의 순간도 빛이 바래지. 하지만 이야기는 영원히 남아. 이야기는 마음속에 남는 거니까. 어디 닳아서 없어지지도 않고, 깨어서 부서지지도 않더라…….”(270쪽)


  나는 가끔 내가 이야기 수집가인 듯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가끔씩 주어지는 평일 한낮의 여유, 좋아하는 사람과 책방에 있는 카페에 앉아 차를 마실 때, 일상을 공유하며, 이야기를 나눌 때, 그 사람의 이야기가 가슴에 콕 박혀, 따뜻함이 스며들 때 이 이야기를 잊고 싶지 않아 가슴에 새기며, 이야기를 수집하는 마음이 든다. 사람의 이야기는 그렇게 힘이 세다. 가슴에 오래 남아, 어떤 한순간 불현듯 떠올라, 살며시 미소 짓게 만들기도 하고, 그 순간의 풍경과 커피 향이 떠올라, 지금은 같이 있지 못하는 상황에 당황하듯 눈물이 나기도 한다. 그래서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책을 읽는 것 마냥, 천천히, 차분하게 눈을 보며 듣게 된다. ‘우물 속 같은 마음’을 발견하듯. 또 책을 읽을 때면,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 마냥 또 집중하듯 읽게 된다. ‘닳아서 없어지지 않는 마음’을 발견하듯.


3. 정리

  

  가끔 ‘문학 처방전’이란 이름으로 수업을 할 때가 있다. 문학 속 인물을 정해, 그 인물이 처한 상황을 분석하고, 성격을 찾아보며, 인물의 결핍과 필요를 찾아보는 시간. 인물을 분석하면서, 때로는 어린 시절의 나를 발견하기도 하고, 청년 시절의 내 옆에 있던 친구들을 생각하기도 하고, 홀로 오랜 시간을 살아온 엄마와 일찍 세상을 떠난 아빠를 생각할 때도 있다. 아이들도 그렇게 누군가를 떠올리기를 바라며, 그 문학 작품 속 인물들에게, 또 다른 문학으로, 또는 음악으로, 미술로 결핍과 필요를 채워보는 시간. 그렇게 문학을 접하면서, 나는 분명 나의 세상이 넓어졌다고 믿는다. 그래서, 소설은 재미있다. 나를, 또는 그 아이를, 그 학생을, 그 사람을 만날 수 있음에.     

 

[이야기 나눠 보기]

1) 아주 힘든 시간을 지날 때 자신에게 힘이 되어준 책이 있다면, 소개해 봅시다.

2)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입니다. 외롭고 높고 쓸쓸한 마음이 들 때 위로가 되어준 사람이 있나요? 그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3) 책 속 ‘소양리 북스 키친’을 찾는 많은 사람들 중, 한 명을 정해, 그 사람에게 들려주고 싶은 노래를 찾아 작은 위로를 건네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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