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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리바라기 Sep 27. 2022

책들의 시간 3_그 누구도 확언할 수 없는 내일.

# 달팽이 안단테_엘리자베스 토바 베일리 지음_김병순 옮김_돌베개

  독서 모임의 책으로 이 책이 선정되었을 때, 나의 첫 느낌은 ‘이렇게 바쁜 세상에 달팽이처럼 여유롭게, 그렇게 천천히 살아가자는 의미의 책 선정이구나.’라고 생각했더랬다. 제목만으로 그렇게 유추했었다. 수필이겠거니, 달팽이의 삶을 배우자이겠거니. 책이 주는 따뜻한 표지, 달팽이의 그림, 그리고 안단테. 딱, 그만큼의 생각이었다.

  그런데 책을 읽어 나가면서, 저자가 말하고 싶은 메시지, 그리고 그 파문은 무엇일까에 대하여 생각해 보게 되었다. ‘달팽이 안단테(엘리자베스 토바 베일리)’는 34살에 떠난 여행에서 자신도 알지 못하는 병에 걸려 똑바로 서거나 앉지도 못하고, 누워있게 되는 처지가 되어버린 저자의 달팽이 관찰기이다. 나중에서야 저자는 자신의 질병명이 ‘후천성 미토콘드리아병’ 임을 알게 된다. 정말 우연히, 책을 읽기 전 미토콘드리아 근우병 환자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 책에서 이 불치병에 걸린 저자의 이야기를 읽게 되다니, 조금의 우연이지만 놀라웠고, 이 책을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1. 미래에 대한 막연한 긍정. 또는 장담, 그러나 알 수 없는 일.


  건강할 때는 언제나 친구와 가족, 직장과 관련한 일들로 늘 바쁜 일상이었다. 정원도 가꾸고 도보여행도 하고 배타기도 즐겼다. 그렇게 익숙하지만 단조로운 나날의 연속. 날마다 아침밥을 짓고 숲을 산책하고 일하러 나가고 책을 읽고 무언가를 가지려고 일어서곤 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 것이든 그것을 가지려고 일어서는 것. 그 행위만으로도 큰일을 해낸 것이리라. 이제는 생활의 모든 것이 내가 누워 있는 곳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여러 달이 정처 없이 흐르고 난 뒤, 건강하게 살면서 일을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왜 그토록 장황하게 떠들었는지 모르겠다. 지금은 내가 할 수 없는 모든 일들을 뒤도 돌아보지 않고 하면서 항상 바쁜 일상에 치이는 친구들을 볼 때마다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25쪽)


  현재를 살아가면서, 미래는 사실 잘 보이지 않는다. 막연한 긍정이 있을 뿐이다. 사실, 나는 그러하였다. 그래서 미래를 생각하기엔, 지금이 너무 좋고, 미래에 대한 우울감을 가지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지금이 안정적인 것도 아닌데, 불안전한 삶일지라도 그것이 이어지는 미래에 대하여 굳이 생각을 하고 싶지는 않았던 것 같다. 저자 또한 그러했으리라. 어느 순간 갑자기, 일어나 서고, 걷던 일상을 할 수 없게 되어 버린 상황에서, ‘건강하게 살면서 일을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했던 어떤 순간들이 떠올랐을 것이며, 그리고 그렇게 막연히 그런 삶을 살아가리라는 자신감이 있었을 것이며, 지금은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다는 좌절감이 들었으리라. 나라면, 나라면 과연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지금은 아프지만 치료받으면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이 있는 초기라면 그래도 견딜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 힘듦을 설명할 수 있을까? 어느 순간 뭔가를 확신하고, 확언하며, 막연한 긍정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생겼다. 때때로 말의 힘은 강하고, 믿는 대로 이루어지며, 긍정의 힘은 변화를 가져온다. 그걸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대로 삶이 흘러가지 않을 수 있음을, 그런 순간이 생길 때 어떻게 해야 단단하게 자신을 지켜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작은 씨앗 하나는 가슴에 심어 두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해 주었다. 이 책은.


  그들은 의자에 앉아 한동안 안절부절못하다가 서서히 긴장이 풀리면서 마침내 평온한 자세를 취했다. 그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더 재미난 이야기들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내가 거의 움직이지 못하고 몸이 굳어 있다는 것을 눈치챌 때쯤이면 방 안에 어색한 침묵이 감돌곤 했다. 그들은 내가 힘들어하지 않을까 걱정했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내가 그들이 두려워하는 모든 것. 운, 불확실성, 상실, 죽음의 백척간두 같은 것을 생각나게 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건강한 사람들은 우리 같은 병자들을 보면 내색하지는 않지만 속으로는 자기도 그렇게 될까 봐 두려워했다.(56쪽)


  저자의 생각에 내 마음이 뜨끔했다. 늘 시선의 공정함, 편견 없는 사고를 외치면서도, 정작 타인의 불행을 자신의 기쁨으로 삼고 마는 어리석은 나. 나도 저자가 느끼는 친구들의 모습을 가지고 있음을 인정해야 하는 것. 저자에게 닥친 질병이 저자의 잘못이 아니듯, 비켜 간 불행에 내가 행복함을 느끼는 것 자체가, 내게 그런 운이 있다 믿는 것 자체가 실상은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그건, 나의 의지로도, 나의 믿음으로도, 나의 생각으로도, 말로도 이루어 낼 수 없다는 것.

  스스로 생각지도 못한 일들로 인해 저자의 삶은 이전과 완전히 달라진다. 스스로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게 된 저자는 친구가 밖에서 발견하고 가져온 달팽이를 그때부터 관찰하기 시작한다. 그 처음은 종이에 난 구멍 때문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상상을 했다. 저자는 자고 있고, 달팽이는 아주 느린 속도로 움직여, 배고픔에 편지 봉투를 갉아먹고. 저자는 그걸 발견하고, 그제야 달팽이를 관찰하는 삶. 그리고 저자는 자신에게 닥친 그 시간을 견디기 시작한다. 견딤이라는 단어가 주는 묵직함을 생각해 보게 된다.      



2. 견딤, 고립, 또는 좌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


고립은 사람을 더욱더 깊이 병들게 한다. 그때 유일하게 존재를 규정하는 법칙은 불확실성밖에 없으며 그 속에서 유일한 움직임은 시간의 흐름뿐이다. 사람들은 얼토당토않은 돌연변이에 걸리면 그것을 견뎌내며 살기가 쉽지 않다. 때로는 가까운 친구들과 가족들도 그것을 돌보기 어려울 때도 있다. 겉으로 말은 안 하지만 서로 점점 더 멀어지는 것은 어떨 수 없는 일일 수 있다. 비록 당신은 과거와 같이 지금도 여전히 존재하지만 실제로 지금의 당신은 완전한 모습이 아니다. 때로는 당신이 잘 아는 사람들이 당신을 떠날 때도 있다. 심지어 당신이 분신처럼 생각하는 사람들도 변하고 시작한다.

  내 몸에 침입한 병균들이 내 생명을 완전히 앗아가길 바랐던 적이 여러 차례 있었다. 건강하게 살다가 파티가 끝나면 그냥 문을 열고 나가듯이 그렇게 생을 마감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병균은 나를 삶의 언저리로 데리고 가서 가차 없이 내동댕이쳤다. 나는 거의 하루도 버텨내지 못하고 다음 날이면 증상이 더 심해지거나 몇 년에 걸쳐 서서히 회복되던 병세가 하룻밤 사이에 예기치 못하게 악화되는 악령의 그늘 속에 갇히고 말았다. (152쪽)


  저자에게 있어 달팽이는 우연히 저자의 집에 오게 되어 저자가 만들어 준 유리 상자 속 숲에 살게 된 존재이며, 어느 날 관찰의 대상이 되어, 저자에게 고립의 마음에서 벗어나게 만들어 준 존재이다. 저자는 달팽이를 관찰하면서, 달팽이의 습성, 수면, 사랑 등에 대하여 알게 되었고, 자료를 찾고 자신이 알게 된 바를 기록하고, 남겼다. 그리고, 1년의 시간. 저자는 드디어 자신의 영혼이 증발하는 것을 막아준 달팽이를 다시 숲으로 보내준다. 새끼 달팽이 118마리와 함께. 책은 드라마틱한 결말을 보여주지 않는다. 읽으면서도 간절히 저자가 회복되기를 바랐다. 근데 그러지 않았다. 저자는 여전히 질병에 시달리고 있으며, 회복되었다가 나빠지기를 반복하였으며, 희망과 절망의 그 어디쯤에서 살아간다. 나는 이것이 우리의 삶이고 견딤이라 생각한다. 언젠가 존경하는 선생님께서 인생은 오랜 시간의 지겨움을 견디고 가끔씩 웃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저자가 자신에게 닥친 질병을 오랜 시간 견뎌낼 때 달팽이는 안단테의 속도로 자신의 삶을 살아내고 있었다. 이끼 밑에서 자고, 일어나 버섯을 먹고, 집 안에서 여정을 나갔다가 다시 돌아오고. 그런 반복적이고 단순한 삶을 살아내었다. 그렇게.      



3. 정리


  사람마다 삶의 속도는 다르다. 사람마다 처한 상황과 환경도 물론 다르다.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말은 함부로 할 수 없다. 또한 ‘힘들겠다, 힘내라’ 등 섣불리 위로도 할 수 없다. 그렇다고 관계를 맺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다. 책을 읽고 또 한 번 생각했다. 고립을 막아주는 무엇, 저자에겐 그것이 달팽이였음을. 그렇다면, 나에겐? 우리에겐 무엇이 우리의 고립을 막아주고 있나 생각하게 된다.      


[이야기 나눠 보기]

1) 나의 생각이나 행동을 변화시킨 특별한 사건이나 경험이 있습니까? 그 경험을 나눠 봅시다.

2) 나의 고립을 막아주는 특별한 관계, 그 관계는 무엇이며, 지금 어떻게 그 관계를 이어가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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