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옥선 산문_이야기장수
퇴근을 할 때면 늘 친정 엄마에게 전화를 한다. 저녁은 뭘 먹었는지, 지금은 뭘 하고 있는지, 그런 소소한 일상의 나눔. 원래 살갑지 않은 성격이라 혼자 계신 엄마를 잘 챙기지도 못한다.
사실, 나는 내 성격에 대하여 스스로도 오해하고 있었다. 친절하고 다정하며, 사람을 잘 챙긴다고. 청소년기 뚱뚱한 몸에 낮은 자존감으로 인해, 그런 내가 인정받기 위해선 친절해야만 한다고 믿었던 시간도 있었다. 그래서 만들어진 사회적 친절, 나눔, 배려, 그리고 양보. 그런 것들이 어느새 체화되어 나는 내가 그런 사람인 줄 알았다. 하지만 많은 책을 읽고, 스스로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고 자연스러움에 대하여 고민하며 조금씩 나의 이상적 자아와 현실적 자아를 조금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친절하지만 누구에게나 친절하지 않고, 도덕적 기준을 잘 알고 있지만, 마냥 착하지 않으며,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보다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고 많은 사람들과 있을 때에는 그 자리가 불편해 체하고 만다는 것, 한두 사람과의 깊은 관계를 좋아하며 시시콜콜 이야기를 물어보지만 사실 그 이야기들에 영향을 잘 받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의무와 책임에 연락을 하지만 이내 연락해야 하는 순간들을 놓치고 만다는 것.
그래서 엄마에게 전화를 하는 것도 일종의 루틴처럼 한다. 주 5일, 퇴근 시간. 엄마의 삶을 존중하고 엄마를 좋아하지만 온전히 내 삶이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 이기적 존재가 바로 나다.
그런 양면적 감정 속에 있을 때 만난 책이 ‘즐거운 어른’이다. 재미있게 잘 읽었다. 1948년생 할머니가 쓴 책. 이 책이 끌렸던 것은 책 뒤표지에 적힌 문구들 때문이었다.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 내 꿈은 고독사, 젖가슴이 큰 게 그리 좋은가?, 남자 잘못 만나 인생 망한 여자는 있어도 안 만나서 망한 여자는 없단다’ 등의 구절. 읽는데 피식 웃음이 나왔다. 묘한 공감, 그리고 어떤 위로. 그래서 이 책이 읽고 싶었다.
1. 나는 어떤 할머니가 되고 싶은가?
나는 지금의 이 자유로움을 한껏 누리기 위해 다짐한다. 세속의 일(정치적 사건 등)에 관심을 덜 가지려 하고 관념이나 도덕, 종교나 신념, 이런 추상적인 것들로부터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한다. 요즘 머리고 물구나무서기를 연습하고 있다. 공동체육관에서는 난도가 높은 동작은 시도하지 않기 때문에 나 혼자서 유튜브를 참고하며 계속해본다. 가끔씩 성공하지만 아직 완전하지는 않다. (36쪽)
그때까지도 나는 스스로 살이 안 찌는 체질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항상 뱃살이 너무 홀쭉하고 뱃가죽이라고 할 게 없어 허리에 쫀쫀한 내의라도 입으면 소화가 잘 안 돼서 어떤 때는 새 내의의 고무줄을 가위로 조금 잘라서 입고 다니기도 했다. 문제는 배에 힘이 없어서 어쩐지 좀 구부정한 자세로 다니게 되고, 그 자세가 편했다. 친정어머니는 내게 허리 펴고 자세를 바르게 하라고 잔소리를 했는데 아무래도 그런 말은 자식에게 관심 있는 엄마라야 할 수 있는 말일 게다. 내 등이 좀 굽어 보인다는 말씀이었다. 그런데 자세라는 게 신경 써서 곧게 하고 있지 않으면 금방 평소에 편한 자세로 돌아가게 된다. (153쪽)
책을 읽으면서 엄마 생각이 많이 났다. 늘 엄마가 하는 잔소리, “등 좀 펴고 걸어라.”라는 말씀. 작가도 작가의 어머니에게서 그런 말을 많이 들었나 보다. 가끔은 아니, 그냥 생긴 대로 살게 두지, 왜 이렇게 자꾸 말씀하시나,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정말 작가의 말처럼 자식에게 관심 있는 엄마라야 할 수 있다는 말, 그것도 공감이 간다. 자식을 낳고 키우다 보니, 이젠 그 말씀이 참 와닿는다. 엄마의 사랑, 관심, 걱정.
이제 70대 초반의 친정엄마는 큰 수술을 몇 번이나 받으셨다. 그 힘든 과정을 잘 이겨내시고, 남편 없는 삶을 잘 견디며 살아오셨다. 어릴 땐 엄마와 내가 성격이 많이 다르다고 생각했더랬다. 지금도 많이 다르긴 하지만 나는 엄마에게 받은 삶의 가치, 질서, 태도와 같은 유산이 많다.
어떻게 늙고 싶은지, 어떤 할머니가 되고 싶은지, 종종 상상해보곤 한다. 여전히 걷는 삶. 그런 삶을 살고 싶다. 70대 친정 엄마도 아침저녁으로 걸으신다. 퇴근 때 전화하면, “어, 이제 걸으러 나왔지.”라고 말씀하실 때가 많다. 얼마 전 학교 복도 계단을 내려가는데, 무릎이 시큰시큰했다. 옆의 젊은 여선생님이 가볍게 통통 튀면서 내려가는 것을 보고 한참을 부러워 바라보았다. 벌써 그런 기분을 느끼면 안 될 것 같은데, 걷는 게 좋은, 그 마음만큼 몸이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을 느낀다. 그래도 나는 아주 오래, 열심히 걷고 싶다. 이왕이면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그리고 작가의 표현처럼 ‘추상적인 것들로부터의 평정심’을 지니며 살고 싶다. 엄마와 잘 투닥거리지 않는 편인데, 얼마 전엔 속이 상했다. 엄마의 입장도, 말씀도 사실 다 이해되지만, 그런 사회라 할지라도 그러지 말아야지, 하는 그런 마음이 들었다. 속상하게 상처 주며 전화를 끊었다. 이내 반성했다.
늘 생각한다. 나는 성공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나는 돈이 많지 않아도 괜찮다고. 하지만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엄마의 기반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도 잘 안다. 그런데도 사회적 어떤 성취를 원하는 엄마의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갈등이 생긴다. 추상적인 것들로부터의 평정심, 그런 평정심을 가진 할머니가 되고 싶다.
2. 젊은이를 바라보는 마음.
그래, 신경을 안 써도 괜찮은 것은 좋은데, 젊은 사람들 눈에는 나이 든 사람들이 정말 안 보이는 모양이다. 어쩌다 지하철을 타보면 간혹 젊은 남녀가 꼭 붙어 서서 끌어안고 있는 장면을 보게 된다. 출입구 쪽 봉에 기대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거나 남자가 여자 머리를 쓸어 넘겨주기도 한다. 야 참, 이런 장소에서 둘에게만 저렇게 몰입할 수 있는 신경줄이 참 튼튼도 하구나, 설마 하니 자기들 눈에 나이 든 사람들이 보이면 그러고 싶겠냐고, “야들아, 사람 없는 데 가서 그러면 안 되겠니?”하는 말이 금방이라도 입 밖으로 나올 것 같지만 품위 유지상 못 본 척한다. (198쪽)
이 부분을 읽고 한참을 공감했다. 차 사고가 나서 얼마간 대중교통으로 출퇴근을 한 적이 있다. 정말, 작가가 묘사한 부분과 똑같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은 그런 장면을 지하철에서 목격했다. 나도 서 있고, 저들도 서 있는데, 바로 눈앞에서 두 어린 젊은이들이 난리가 났다. 남자의 입술이 여자애의 목덜미에 향해 있고, 손이 여자의 가슴께를 향한 것, 까르르 웃으며 지하철 바닥에 앉아버린 여자애의 모습. 이건, 정말 보는 내가 어찌할 바를 모르는 순간이었다. 교사라 그런지 회색 후드티에 회색 운동복 바지 차림, 인형이 줄줄이 달린 무거워 보이는 가방을 보고는 고등학생이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들었다. 차마, “그만”이라고 말하지는 못했다. 학교 안에서나 선생님이지, 밖에서 모르는 아이들에게 훈계를 할 수 있는 위치일까, 그런 마음도 있었다. 부끄러워지기도 했고, 스스로 어른스럽지 못하다고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다음에 그런 모습을 본다고 해도 말하지 못할 것 같다.
그런 마음을 다음날 선생님들께 말씀드렸더니, 지하철에서 신고를 할 수 있다고 하셨다. 다음에는 문자 신고를 해야겠다. 공공장소에서의 예절은 개인의 욕구보다 먼저 지켜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3. 정리
참 재미있게 읽은 책이다. 1948년 할머니의 이야기가 40대 후반을 지나고 있는 나에게는 ‘즐거운 삶’에 대하여 생각해 보게 만들어 주었다. 일상의 소소한 장면들을 잘 놓치고 사는 나에게 옛날이야기는 그것대로 의미가 있고 재미있었다. 태풍이 오고 난 다음, 마을의 강가로 구경 가는 장면은 조금 충격적이기도 했다. 기후와 환경의 변화, 산업화의 정도에 따라 그때는 가능한 것이 지금은 가능하지 않구나,라고 생각도 들었다. 우리 엄마의 삶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사는 삶의 모습이 다 다를지라도, 우리 엄마도 긍정적이라 즐거움이 가득한 분이신데, 더 즐거운 삶을 사셨으면 좋겠다. 나도, 즐겁게 나이 들고 싶다.
[이야기 나눠 보기]
1) 어떤 할머니가 되고 싶은지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2) 지금의 나이에서 요즘 젊은이를 바라보는 마음은 어떤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긍정적인 모습과 부정적인 모습, 그리고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도 생각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