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숨은 차별을 발견하는 일곱 가지 시선_창비
개학 이후 정신없는 나날의 연속이다. 그럴 때면 나는 두 가지 감정에 휩싸인다. 많은 일들로 인해 채워지는 피로감과는 별개로 일을 해내고 있다는 어떤 뿌듯함. 좋은 말로 일에 대한 열정이지, 결국은 영혼마저 갉아먹는 노동의 시간. 그러면서도 스스로 정한 ‘삶과 일의 균형’을 지켜내고 싶은 마음이 든다. 3월, 그때 읽은 책 두 권.
처음은 김금숙 작가님의 책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빛나는_강화의 자연 속에서 삶을 그립니다’. 강화는 살고 있는 지역에서 가까울 뿐만 아니라, 가끔 제주의 느낌이 나기도 하고, 성곽의 어떤 길이 주는 고풍과 참 좋은 사람과의 여행이 담긴 곳이다. 그래서 이 책이 읽고 싶었다. 강화의 자연 속에서 삶을 그린다는 부제가 참 좋았다. 만화가라고 알고 있어, 처음엔 그림이 많은 책은 아닌가, 생각했었다. 강화에 터전을 잡고 살아가는 작가의 강화 살이 이야기. 강아지 두 마리와 그곳을 지키는 주민들의 이야기, 작가가 소개하는 작품 노트 이야기. 책이 참 재미있어서, 책이 참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 주어서 바쁜 마음이 차근차근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바쁠 때이지만 결코 타협하지 않을 두 가지. 걷기과 책 읽기. 결국 내가 원하는 일상의 모습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지금은.
그렇게 만난 ‘김금숙 작가님’의 책은 다른 책을 찾아보게 만들었고, 그중 하나가 ‘호시탐탐’이라는 인권 만화책이다. 최근의 몇몇 사건들로 인해, ‘인권’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 보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참 중요한 가치, 인권. 그리고 책의 부제, ‘숨을 차별을 발견하는 일곱 가지 시선’.
책을 읽으면서 노동자 차별 문제와 동성의 사랑과 결혼, 이주 배경 청소년의 자립과 정착, 그리고 ‘참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사적 처벌의 문제 등 많은 부분에 대하여 공감과 걱정, 생각이 들었다. 또한 김금숙 작가님의 시선, ‘지역소멸’에 대한 이야기. 완전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다. 아주 오래전 읽었던 ‘십시일반’이 생각났다. ‘십시일반’은 창비인권만화의 첫 번째 책이었으며, ‘호시탐탐’은 네 번째 책이다. 첫 책이 발간된 그때부터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인권’이라는 주제에서 아주 서서히 조금씩 더 나아지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러한 마음으로 세상을 다시 한번 들여다본다.
1. 돌봄, 돌봄이라는 이름으로.
나는 태어나 가장 먼저 필요한 것.
사는 동안에도 필요하며…
마지막까지 필요한 것.
또 나는 사람의 발에도, 지팡이와 바퀴에도, 침대와 식탁, 경사로와 계단에도… 사람이 있다면 어디에든 닿을 수 있어야 하는 것. 나는 무엇일까? 혹시 정답을 알겠어? 그래. 이것은 ‘돌봄’이 답인 수수께끼.
그러나 나는 정답을 넘어 오답들 위로도 흐른다는 것을 알고 있어? 너무나 자주 ‘내가 아닌 이름’들로 흐르고 있다는 것을. 어쩌면 어떤 오답들은 내가 처한 위기를 좀 더 잘 말해줄니도 몰라. 그것도 한번 들어보지 않겠어? (127쪽)
누군가에게는 상품이었고, 누군가에게는 엄마였고, 또 누군가에게는 도리였던……내가 아닌 이름들로 흐르다 수수께끼로 남은 것.
이것은 돌봄이 답인 수수께끼. 너에게 나는 지금 무엇이며, 무엇이 되어야 하는 걸까?(146쪽)
- 호시탐탐, [수수께끼] 중/ 김정연 작가님.
작가의 말이 인상 깊었다. 김정연 작가님의 인권 만화 ‘수수께끼’는 ‘돌봄’에 대하여 생각하게 해 주는 만화이다. 작가님은 만화의 창작 의도를 이렇게 말씀하신다.
모두에게 필요한 돌봄을 다른 이름으로 내맡기는 사회가 과연 어디로 갈 수 있을까요. 돌봄을 모두의 일로 생각하는 상상에 조금이라도 보탬되고 싶은 마음입니다. (238쪽)
돌봄을 모두의 일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나는. 그만큼 돌봄의 문제에 있어 어려움을 겪지 않아서일지도 모른다. 아니, 참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그 시간을 지나왔으면서도 그것에 대한 감사함을 모르고 살았다. 저출산의 문제와 고령화 사회의 문제에 있어서도 나는 해당되지 않는다 생각했다. 어리석었다. 그러니 돌봄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었고, 개인적 책임이었으며, 만화 속에서 말하는 ‘도리’의 문제였던 것이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돌봄을 다른 이름으로 내맡기는 사회가 과연 어디로 갈 수 있을까? 작가의 물음에 무엇이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그런 마음. 돌봄을 모두의 일로 생각할 때 세상은 좀 더 합리적인 해결책을 제안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운이 좋게도 시어머니께서 전적으로 아이의 양육을 책임져 주셨기에 아이를 키워본 적이 없다. 그래서 사람들에게도 아이를 키웠노라고 말하지 못한다.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과는 별개로 돌봄에서 자유로웠던 것은 사실이다. 그것이 나에게 준 자유는 나를 어떤 면에서 여유롭게 만들었다. 그건 다른 가족의 희생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돌봄’이 또 다른 ‘도리’의 이름으로 개인적 차원의 문제로만 여겨진다면 사회는 어떻게 될까? 사람들은 아이를 낳지 않을 선택을 할 확률이 높으며, 물질적으로 여유로운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누릴 수 있는 복지 혜택이 달라질 것이며, 고령화 사회의 문제는 더 심각해질 것이다. ‘돌봄’은 개인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방안이 필요한 것. 그러니 사회 정책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어떤 시에서 저출산 정책을 해결하기 위해 ‘프러포즈 존’이라는 공원 사업을 한다는 내용을 들은 적이 있다. 결혼을 장려해 출산까지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결혼하고도 출산을 선택하지 않는 사람들의 문제에까지는 깊이 고민하지 않은 결과물이라 생각이 들었다. 생각이 많아지는 순간이다.
2. 시간이 지날수록 빛나는
몇 년 전이었다. 뉴스에서 보았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한 청년이 대형마트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열심히 공부를 하지 않아서 이런 일을 한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몹시 불편했다. 지인 중에는 박사 학위를 받고도 취업을 못해 백화점에서 장식품을 파는 이가 있었다. 그러니 이는 분명 당신 탓이 아니다. 그런데 종종 가진 자가 비우며 살라고 한다. 가난은 불편할 뿐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있어 보일 뿐인 말은 가난한 이에게는 사치며 폭력이다.
다행히 내게 그림을, 문학을 발견하게 해 준 좋은 선생님도 있었다. 예술은 물질적으로 가난했던 나를 정신적인 풍요로움으로 위로해 주었다. (104쪽)
김금숙, 시간이 지날수록 빛나는 중.
‘시간이 지날수록 빛나는’은 강화 자연 속에서의 삶을 글로 적은 작가님의 수필집이다. 남해의 봄날이라는 작은 출판사에서 발간한 책이다. 처음 이 책을 선택했을 땐, 김금숙 작가님이 ‘그래픽 노블’ 작가라는 점에서 만화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컸었다. 하지만 수필집이어서 처음엔 그림을 많이 볼 수 없다는 생각에 아쉬움이 들기도 했다. 기우였다. 만화책이 보고 싶단 생각을 하긴 했지만, 책은 나에게 아주 편안했으며, 재미있었고, 들뜬 생각을 가라앉혀 주었고, 그리고 좀 더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들어 주었다.
작가님은 외국에서 오랜 시간 공부하다가 다시 한국에 들어오신 분이다. 서울에서의 삶이 아닌 강화를 선택한 이유들이 있었겠지만 그중 하나는 고향과 비슷한 어떤 풍경들 때문이었다고 한다. 강화에 정착하면서 겪은 불편함 들도 있었지만, 사람들과의 교류와 자연에서의 안식으로 지날수록 빛나는 시간이 만들어졌다.
인용 부분은 ‘당신 탓이 아니다’라는 제목의 글 중 일부이다. 어린 시절 학교 선생님의 말, 부모님이 가난한 이유는 게을러서이다, 그런 폭력적인 말. 작가님은 어렸었고, 그 말은 오래 내내 상처가 되었으며,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말은 틀린 말이다. 또한 가진 사람들의 여유에서 나오는 ‘비우면서 살라’라는 말도 정말 가난한 이에게는 사치이며,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잘 안다. 비우면서 살 수 있는 건 있을 때 가능한 말이기에.
다행히 가난하고 어린 작가님에게 문학과 예술이 정신적 풍요를 주었으며, 그림을 통한 문학의 재구성을 이루어낼 수 있는 일을 주었지만, 아직 우리 사회는 가난으로 인한 돌봄이 필요한 사회이다. 개인적 차원의 극복만이 아닌 사회적 정책의 필요성. 다시, 밝은 눈으로 세상의 구석구석 차별을 발견하고 바꿔나갈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
3. 정리
책을 읽으면서 더 읽고 싶은 책들이 많아졌다. 김금숙 작가님의 다른 그래픽노블을 찾아 읽고 싶단 생각이 들었으며, 이옥선 할머니의 삶을 그린 ‘풀’도 읽고 싶고, 발달장애 청년의 이야기인 ‘준이오빠’도 읽고 싶어졌다.
책이 너무 좋아 딸에게 읽어보라고 건네면서 딸의 일상을 전해 들었다.
한밤, 대학가의 자취방이 모여 있는 다세대 주택. 새벽녘 술에 취한 청년들이 딸아이 집의 벨을 눌러댔단다. 방음도 약한 따닥따닥 붙어 있는 집들 가운데 여성 혼자 살고 있는 집의 벨을 눌러대며 ‘벨튀’라고 웃으며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딸아이는 순간 화가 나서 문을 열어버릴까 생각했다가 무서움이 들어 참았다고 한다. 그렇게 그 새벽은 지나가고 무서움과 화남은 잦아들었다고 했지만, 이야기를 듣는 나는 아주 많이 걱정되었고, 무서웠다. 집주인에게 연락하고, 복도의 CCTV의 작동 여부를 확인하였다.
막상 나의 일로 다가온 공포에 우리 사회의 취약한 면들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었다. 상대적으로 공포에 취약하게 노출된 여성의 삶과 1인 가구의 삶, 돌봄이 필요한 영역이 정말 많다는 생각들.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그리고 사회의 정책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이야기 나눠 보기]
1) 호시_밝은 시선, 너른 시선, 그리고 좋은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 우리 사회에서 필요한 돌봄에는 무엇이 있는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그 ‘돌봄’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2) 자신이 살고 있는 터전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시간이 지날수록 빛나는’ 나의 삶의 터전은 어떤 곳이며, 어떻게 적응하고 살아가고 있는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