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책들의 시간 119. 이 지랄 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

# 조승리 에세이_달 출판사

by 벼리바라기
이 지랄맞음이 쌓여_사진.jpg


2월, 아직 좀 이르긴 하지만, 봄을 맞이하는 마음으로 통도사에 다녀왔다. 매화가 보고 싶었지만, 욕심이었다. 따뜻한 남쪽이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겨울의 중심에 있었고, 찬 바람이 계곡에도, 나무에도 맺혀 있었다. 통도사는 문재인 전 대통령이 봉사지기로 있는 ‘평산책방’과 가깝다. 그래서 방앗간을 찾는 마음으로 책방에도 다녀왔다. 따뜻한 공간이었다.

사고 싶은 책이 많았지만, 딱 두 권의 책을 골랐다. 그중 하나가 이 책. 문재인 전 대통령의 추천 책이기도 했지만, 제목의 강렬함, 그리고 도도새의 그림이 책을 손에 들게 만들었다. 김선우 작가님의 책을 읽었던 적이 있어서인지, 도도새 그림을 보는데, 기분이 좋았다. ‘지랄 맞음’와 ‘축제’, 그 키워드를 모두 담아내는 듯한 표지.

단숨에 책을 읽었다. 또 다른 세상에 대한 이야기, 그러면서도 결국은 우리네 삶의 이야기였다. 조승리 작가는 중학교 때 눈이 멀기 시작하여 이제는 온 세상이 어둠으로 가득하지만 이름대로 하루하루 승리의 시간을 보내며 살아가고 있었다. 이 책은 조승리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이다. 그래서 읽는 내내 보이지 않게 될 거라는 것을 알고 살아가는 어린 작가의 모습과, 어머니의 죽음 이후 보이지 않는 삶을 살게 된 작가의 모습, 그리고 마사지사라는 직업을 가진 작가의 일상, 플라멩코를 배우는 작가의 시간 등이 그림으로 그려졌다. 내내 아프면서도 결국 축제의 삶을 살게 되리라는 믿음과 희망이 이 책 속에는 담겨있다.


1. 장애인을 대하는 비장애인의 태도


외투를 걸치고 주차장으로 나갔다. 바깥바람을 쐬고 싶었다. 대로 건너편 상가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나는 안심하며 주차장을 서성였다. 늦은 시간, 혼자 지팡이를 짚고 보행하다 모르는 사람에게 끌려갈 뻔한 일이 있었다. 여성 시각장애인에게는 제법 흔한 일로, 비슷한 경험이 한두 번씩은 있어 혼자 보행하기를 매우 꺼린다. 마스크를 살짝 내려 가을 공기를 들이마셨다. 가라앉았던 기분이 조금 풀리는 것 같았다. (186쪽)

수미 씨가 우는지 코가 맹맹했다. 사실 4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는 그녀를 벌써 몇 번이나 울린 적이 있다. 티 없이 해맑은 사람은 종종 악의 없이 상처를 줬고, 나도 내가 받은 만큼 수미 씨에게 상처를 주고 싶었다. 그 결말은 대체로 수미 씨의 눈물로 끝난다. 나는 죄책감 때문에 그녀의 팔을 잡고 있는 것이 불편해졌다. 우리는 대화 없이 목적지로 향했다. (중략)

“……난 가끔 승리 씨와 같은 곳을 바라보지만, 다른 걸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나는 승리 씨의 눈 역할만 하면 되는데 내 주관을 주입하려 했어요.”

나는 정오의 태양이 싫었다. 태양이 가장 높을 때 내 그림자는 가장 초라하게 쪼그라들기 때문이었다. 나는 수미 씨가 좋다. 그러나 자주 만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녀 옆에 서 있다가는 내 삐뚤어진 마음이 더 도드라지게 튀어나와 버리고, 나는 그런 나 자신을 혐오하고 만다. (158쪽)


담임을 맡았을 때, 학급에 특수학급 학생들이 있기는 하지만, 주변에 장애인이 있지는 않다. 그래서 잘 몰랐다. 책을 읽고 가장 충격적인 장면은 모르는 사람에게 끌려갈 뻔한 일이 발생한다는 것, 또한 그것이 여성 시각장애인에게 제법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이었다. 한 번도, 정말,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문제였다. 물론 사회에서 일어나는 이상동기 범죄들이 정말 많기도 하지만,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범죄에 대한 인식이 나에게는 부족했다. 그래서 충격적이었다. 아주 많이.

그러면서도 서글펐다. 대응할 수 있는 한계가 분명한 사람들인데, 그런 약자를 향한 우리 사회의 정책은 안전한가, 그런 생각도 들었으며 현재 우리 사회는 더 나은 사회의 모습을 향한 움직임이 멈춘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마음 한구석이 답답해지기도 했다.


장애인을 향한 비장애인의 태도는 어떠해야 할까? 책 속 ‘수미 씨’는 작가님의 활동 지원가이다. 티 없이 해맑은, 선한 의도와 마음이 작가님에게는 때론 상처가 되었고, 그건 상처를 주는 것으로 되갚아, 결국은 서로의 마음에 생채기를 남겼다. 수미 씨의 마음과 행동도 이해가 되었으며 작가님의 반응도 이해가 되었다. 장애인을 향한 걱정과 배려가 오히려 장애인에게는 상처가 되기도 하고, 비장애인의 언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순간이 생기기도 한다.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인 것.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있어서의 기본. 존중, 진심. 그런 것들을 쌓아가야 하는 건 아닐까? 가장 기본적인 것들에 대하여 생각하게 된다.

2. 모든 것이 소중하고 아름다운 순간


나는 어둠을 훑어보았다. 내 눈에 보이는 것은 온통 어둠뿐이었다. 하늘을 수놓는 수백 송이의 불꽃이 궁금했다. 그러나 지금 저 불꽃을 볼 수 없다 해서 아쉽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나의 불꽃은 더 찬란하고 빛나기 때문이었다.

창을 닫고 반듯이 앉아 눈을 감았다. 그리고 나는 나의 불꽃을 보았다. 땅에서 시작된 빛무리가 하늘에 올라 산산이 흩어지며 하얗고 노란빛이 되어 쏟아졌다. 빛은 금방 사그라졌지만 내 가슴에 반짝이는 수를 놓았다. (15쪽)

동네를 벗어나자 들은 온통 초록빛이다. 머리 위 태양이 빛의 채찍으로 세상을 때려눕힌다. 잠깐 사이 등으로 땀이 주르르 흘러내린다. 눈앞의 세상이 별스럽지 않지만 아름답다. 멀리 햇빛을 반사해 반짝이는 비닐하우스가 망막에 자극을 주는지 눈가에 눈물이 고인다. 곧 잃어버릴 세상이어서 모든 게 소중하고 아름다웠다. (123쪽)


책에는 세상이 보이지 않기 전, 보이지 않을 것이라는 절망이 가득할 때 작가가 느끼는 마음이 담겨 있다. 책의 첫 에세이는 불꽃놀이가 펼쳐지는 날의 택시 안, 작가가 느끼는 마음이 담긴 책이다. 하늘을 수놓는 불꽃놀이가 보고 싶지만, 볼 수 없는 상황, 그 순간, 작가는 자신 삶 속의 불꽃들을 떠올리기 시작한다. 눈이 멀거라는 것을 알게 되고 학교대신 도서관을 돌아다니면서 책을 읽던 시절, 외롭던 순간에 함께 있어 주었던 사람들. 특별한 엄마와의 기억들. 그 모든 것들이 작가에게 있어서는 소중하고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삶은 결국 죽음을 향해 달려 나가는 것, 그것을 잘 안다. 그렇지만 그것이 나에게 절망은 아니다. 나는 작가의 절망감을 십 분의 일이라도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작가가 눈이 멀기 전 느꼈던 경험으로 인해 눈이 먼 이후에도 소중하고 아름다운 기억을 가질 수 있었던 것, 그걸 생각해 본다면 지금 나의 삶을 향한 마음을 되새길 수 있다. 나도, 나도. 소중하고 반짝이는 순간들을 만들며, 기억하며, 모으며 지금을 살아가고 싶다는 마음.


3. 정리


방학이 끝나간다. 글을 쓰는 시점으로는 새 학기의 시작이 며칠밖에 남지 않은 시간. 두통이 몰려왔고, 제출해야 할 과제들이 쌓였고, 업무가 정해졌으며, 수업 자료를 만든다고 새벽까지 컴퓨터를 붙잡고 있기도 했다. 그러면서 하루하루 설렘과 불안의 공존으로 지내고 있다. 다시 학기가 시작되면, 또 열심히 살아가겠지, 그런 마음도 있다. 작가의 책을 읽으면서 ‘지랄 맞음이 축제’가 되는 것. 그것이 삶의 모습이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남들 보기에, 아니 스스로 느끼기에도 내 삶이 구질구질해 보인다 해도 나는 그냥 하루를 성실하 살아가겠다. 축제가 되는 그날을 기다리며.

[이야기 나눠 보기]

1) 장애인을 대하는 나의 태도를 성찰해 봅시다. 장애인을 만났을 때, 나는 어떤 모습을 보였으며, 어떻게 대했는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2) 소중하고 아름다운 순간을 수집해 봅시다. 언제 그런 마음이 들었는지, 어떤 상황이었는지, 누구와 함께였는지 자신의 아름다운 순간을 표현해 봅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책들의 시간 118.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