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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들의 시간 128. 나의 인생만사 답사기

# 유홍준 잡문집_창비

by 벼리바라기
나의 인생만사_사진.PNG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정말 재미있게 읽었었다. 물론 전체를 다 읽지는 못했다. 그래도 청소년기에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통해 문화유산의 소중함을 알아갔다. 그리고 여행의 계획을 세울 때, 도움을 받았다. 절이 좋아졌고, 절을 품고 있는 자연이 좋아졌으며, 절의 단청과 기둥을 유심히 보는 습관이 생기기도 했다. 이번에 도서관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는 반가움이 들었던 이유이다. 또 잡문집이라고 하니,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보다는 가벼울 것 같은 느낌이 있어 쉽게 손에 들 수 있을 것 같았다. 탁월한 선택이었다. 재미있게 잘 읽었다.

워낙 글을 재미있게 잘 쓰셔서 술술 읽혔다. 그러면서도 미술평론가로서 우리나라 정자와 백자에 대한 설명을 해 주셔서 흥미롭게 책을 읽을 수 있었다. 또한 나이가 지긋한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인생의 이야기를 맛보는 기분이었다. 참으로 부드러운 말투로, 살아왔던 옛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으며, 한 시대에 획을 그으며 세상의 변화를 이끈 사람들의 죽음을 애달파하는 이야기를 해 주셨다. 그래서 책을 읽는 내내 때로는 강의를 듣는 기분이었고, 때로는 어떤 식당에서 만난 옆 테이블의 할아버지들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었다.


1. 꽃차례


봄이 왔다. 새봄을 맞으며 추사 김정희는 "봄이 짙어가니 이슬이 많아지고 땅이 풀리니 풀이 돋아난다"라며 향기 은은한 난초를 그렸지만 나는 봄꽃이 만발한 유적지를 생각하며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한다. 강진 백련사의 동백꽃, 선암사 '무우전'의 매화, 부석사 진입로의 사과꽃, 한라산 영실의 진달래, 꽃의 향연이 벌어지는 서울의 5대 궁궐. 전 국토를 거대한 정원으로 삼으며 이 땅에 살고 있는 자랑과 행복을 누리고 있다. (29쪽)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다. 꽃이 좋아진 것이. 나이가 들면 꽃을 좋아한다는데, 정말 나이가 들어 그런 것인지 꽃이 좋아졌고, 카톡의 배경 화면도 온통 꽃 사진이 차지한 지 오래다. 예전엔 사실 잘 몰랐다. 봄이면 꽃구경을 가고, 가을이면 단풍구경을 간다는 말을. 그런데 이상하게 요즘은 꽃이 피면 꽃구경을 가고 싶다는 마음이 많이 든다.

내 고향은 벚꽃이 아주 유명한 지역이다. 지역 축제가 열리기도 하는 곳. 봄이 오면 학교 뒷동산을 가득 메운 꽃 터널이 만들어졌고, 내가 다닌 고등학교 주변은 벚꽃이 정말 예뻐 드라마의 촬영지가 되기도 했었다. 참 좋은 곳. 나중에서야 그곳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즐기지 못했단 생각에 아쉬움이 들기도 했다.


한 해가 시작되면 학교에 세 그루 있는 매화나무의 꽃이 피기를 기다린다. 이른 봄 겨울이 지나는 즈음에 피는 매화나무는 봄이 오는 시간을 알려주는 꽃나무 같다. 그리고 매화나무 꽃이 피면 곧이어 학교 주변의 벚나무들이 만개하고, 그 뒤를 이어 짙은 색의 겹벚꽃이 피기 시작한다. 벚꽃과 겹벚꽃 사이엔 보라색의 라일락이 그 향기를 짙게 풍긴다. 라일락 향이 퍼지는 학교 교내를 걸을 때면 선생님들에게 말하곤 하였다. 향기가 있는 꽃은 꼭 노래가사에 나오는 것 같다고.


나는 산딸나무의 꽃도 좋아한다. 꽃인지, 잎인지 알 수 없지만, 연한 녹색의 꽃이 참 좋아 여름이 올 때까지 산딸나무를 보는 맛으로 산다. 정말 가만가만 생각해 보면, 전 국토를 거대한 정원으로 쓰고 있다는 말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 것만 같다.


2. 여행을 떠나고 싶은 마음


정자는 누마루가 있는 열린 공간으로 이층이면 누각, 단층이면 정자라 불리며 이를 합쳐 누정이라 하고 흔히는 정자로 통한다. 정자는 사찰, 서원, 저택, 마을마다 세워졌지만 그중에서도 관아에서 고을의 랜드마크로 세운 것이 규모도 제법 당당하고 생기기도 잘생겼다.

남한의 3대 정자로는 진주 남강변의 촉석루, 밀양 낙동강변의 영남루, 제천 청풍 남한강변의 한벽루를 꼽고 있다. 북한에선 평양 대동강의 부벽루와 연광정, 안주 청천강의 백상루, 의주 압록강의 통군정 등이 예부터 이름 높다. (89쪽)


책을 읽으면서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마음이 많이 생겼다. 원래 여행을 가는 것을 좋아하긴 하지만, 사실 무언가를 둘러보는 여행보다는 마실 가듯 가는 여행을 더 좋아하는 편이다. 그래서 지역의 랜드마크를 찾기보다는 지역 시장이나 갔다가 맛있는 거나 먹고 카페에서 책을 읽는 여행을 더 선호하긴 한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여행이 가고 싶었다. 특히 정자를 소개한 이 부분에서는 작은 버킷리스트가 생기기도 했다. 남한의 3대 정자에 꼭 가보고 싶은 마음.

진주는 인연이 깊은 곳이다. 이십 대의 어느 부분을 진주에서 보내기도 했으며, 술을 마시고 남강 다리를 건너기도 했고, 유등축제를 보기도 했다. 그리고 분명 촉석루에도 가 봤을 것이다. 하지만 이십 대 어린 시절엔 촉석루가 그렇게 의미 있게 다가오지 않았다. 그래서 촉석루 논개의 이야기는 오래 기억에 남았지만, 촉석루에 대한 기억은 많지 않다. 나이가 드니 촉석루에 다시 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조만간 시간을 내어 진주 여행을 해야겠다.

밀양도 사실 본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밀양을 가 본 적은 있지만 영남루에 가본 적은 없다. 제천의 한벽루도 가본 적이 없다. 가 보고 싶다.


3. 정리


책을 읽으면서 나의 주변을 둘러싼 자연에 대하여 더욱 관심이 생겼다. 출근길에 만나는 일출도, 퇴근길에 만나는 일몰도 나는 참 좋다. 동네의 공원에 열리는 앵두나무의 열매와 단풍나무의 어린잎을 보는 것도 참 좋다. 절을 구경하는 것도 좋아한다. 그런데 이제 우리나라의 정자도 찾아보고 싶어졌다. 가고 싶은 곳, 하고 싶은 일이 있다는 것도 참 좋다.

또 책을 읽으면서 참 그리운 분들의 이야기를 발견하는 것도 좋았다. 유난히 좋아했던 신영복 교수님의 일화, 그리고 잘 알지 못하지만 시대를 살아낸 여러 분들의 이야기를 읽는 것. 마음을 꽉 채워준 기분이다.

[이야기 나눠 보기]

1) 봄이 오면 하고 싶은 일은 무엇입니까? 혹시 좋아하는 꽃이 있다면 어떤 꽃인지, 왜 그 꽃을 좋아하게 되었는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2) 국내 여행지 가운데 추천해 주고 싶은 곳이 있다면 어디인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왜 그곳이 좋아졌고, 그곳이 어떤 의미인지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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