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클럽 문학동네_이달책_1호_고요한 읽기_이승우 산문집
드디어 시작하는 2025년도 북클럽 문학동네의 '이달책'. 잘 알지 못하는 작가님의 책이었지만, 산문집이었고, 제목이 참 좋았으며, 읽고 싶은 마음이 들어 바로 신청했다. 책을 선택하는 일은 늘 어렵다. 보통은 도서관에서 신간 코너를 쭉 둘러본다. 그리고는 아주 오랜 시간 제목들을 낮은 소리로 읽어보며, 책을 선택하곤 한다. 정말 제목이 매력적이어서, 제목 때문에 읽고 싶어지는 경우가 팔 할이다. 그리고 아는 작가님의 신간, 재미있게 읽었던 소설집을 떠올리는 읽어 본 적이 있는 작가님의 책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독서의 폭이 좀처럼 넓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렇게, 누군가의 추천에 의해, 또는 독서 프로그램에 의해 이렇게 책을 선택하는 경우 나는 다 읽어낼 수 있을까, 그런 두려움과 함께 책 읽기를 시작한다.
이번 책은 많이 어려웠다. 책 소개에 '인식'과 '사유'라는 단어들이 많았다. 워낙 생각하는 힘이 얕고 약한 내가 이 책을 온전히 이해하며 다 읽어낼 수 있을까에 대한 두려움은 첫 장을 펼치는 순간 실현되었다. 내게는 많이 어려웠던 책이다. 작가님의 책 읽기와 글쓰기에 대한 생각들이 나에게는 한없이 무겁게 다가와서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구절구절 인용하는 성경을 알고 있었지만, 연약한 믿음으로 책을 이해하는 것은 더 어려웠다. 그럼에도 신기하게도 책장을 넘어갔고, 어느새 몰입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책 제목처럼, '고요한 읽기'였다.
1. 기다림
제때에 도착하는 기다림은 없다. 아무리 빨리 와도 내가 기다리는 사람은 항상 늦는다고 롤랑바르트는 말한다. 그것은 내가 항상, 어쩔 수 없이 일찍 도착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기다리는 사람에게 '제때'는 정해져 있지 않다. '와야 할' 시간은 없다. 기다리는 사람은 자기가 기다리는 사람이 제때에 오지 않으리라는 것, 예정된 일이 예정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것이 기다림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여분의 기름을 준비하지 않은 이들은 기다림의 이 속성, 기다림에 '제때'란 없고, 예정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포함된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어리석다. 기다리는 사람은 기다림이 한없이 지연될 것을 알고 대비해야 한다. 기다림을 삶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123쪽)
기다림을 소재로 한 영화와 책에 대한 작가님의 생각이 담긴 부분이다. 이 부분을 다 읽고는 <5일의 마중>이란 영화가 보고 싶었다. 5일만 되면, 이미 돌아와 있는 남편의 존재를 잊고 한없이 남편을 기다리는 여자의 이야기. 그 기다림이 너무 생생하여 아주 아프게 다가왔다. '제때에 도착하는 기다림은 없다'라는 작가님의 말이 얼마나 공감이 되던지, 내 모든 순간의 기다림이 머릿속을 천천히 지나갔다.
요즘도 나는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다. 사실 내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뚜렷하게 설명하지 못하는 기다림이라, 그 기다림이 한없이 지루하다. 늘 빠른 결론에 익숙한 나로서는 이 지지부진한 기다림이 참 싫기도 하다. 하지만 기다리다 보니 내가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사실 잘 모르겠다. 잊어버린 건지, 잃어버린 건지.
딸의 영어시험 합격 소식이나, 대학입학 결과를 기다리는 일은 과정은 고통스러울지언정, 정확하게 결과를 받아들일 시간이 정해져 있어, 즉 '제때'가 정해져 있어 힘들지 않았다. 그 결과를 받아 들고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하여 준비하거나, 또는 한없이 축하하고 기뻐하면 되는 일들이었다. 하지만 요즘, 나의 기다림은 정말 '제때'가 정해져 있지 않다. 내가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막연히 삶 속에 '어떤 기다림'이 들어앉더니 하루는 기다리는 일 자체가 좋아서 마음이 들뜨기도 하고, 하루는 보이지 않는 결론에 마음이 힘들어 우울해지기도 했다. 내가 원하는 것이 정확하게 무엇인지도 모르겠다. 내 기다림은 한없이 지연되는 중이며, 지금 나는 그 시간을 견디고 있다. 그것이 지금 나에게 늙음을 가져다주고 있다. 나는 여전히, 그렇게 기다리는 중이다.
2. 자기 착취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고 최선을 다해 사는 사람의 동기가 도피인 경우가 있다. 열심히 일하는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다. 그런 사람이 있다. 내부를 피해 외부로 달아난 어떤 사람은 외부에서, 그러니까 세상에서 정말 열심히 일하고 최선을 다해 산다. 그는 내부의 '나'를 만나기가 두려워서 외부에서만 산다. 외부에서 타인과 일과 열심히 산다. 누구보다 바쁘게 최선을 다해서 산다. [캉탕]의 한 인물처럼, 전쟁하듯 산다. 살아남기 위해 매일 싸운다. 한순간도 마음을 내려놓지 못한다. 늘 마음을 들고 살아야 해서 힘들다. '자기 착취'가 그렇게 이루어진다. 그렇지만 그는 다른 사람 눈에 성실하고 열정적인 사람으로 보이고, 그 결과 일정한 성취를 이뤄내기 때문에 능력 있는 사람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그는 자기와의 만남을 피해 필사적으로 앞으로 나아가기만 한다. (23쪽)
나는 누구보다 열심히 산다. 끊임없이 스스로의 역량을 증명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나의 존재를 보이기 위해 노력한다. 필연적으로 그래야 한다고 믿는다.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 나를 증명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이유가 뭘까, 그런 생각에 대한 답을 찾은 기분이다. 어쩌면 나도 나를 만나기가 두려워 외부로, 그렇게 외부로 도피하는 것은 아닐까? 하찮은 존재인 나를 만나는 것보다, 외부적으로 인정받는 나를 나라고 그렇게 여기며 사는 것은 아닐까? 그런 마음. 책에서는 이것을 '자기 착취'라고 명명하고 있다. 다른 사람의 눈을 신경 쓰며, 능력 있는 사람으로 평가받고 싶은 이면엔, 감추고 싶은 진정한 자아가 있는 것. 책에서는 오이디푸스의 운명에 대하여 이야기하며 "우리가 우리 자신보다 두려워하는 것이 또 있을까?"라고 우리에게 묻고 있다. \
나는 어떤 사람일까? 외부로 도피하지 않고 내부의 나를 온전히 마주한다고 할 때 나는 어떤 사람이지?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가만가만 생각해 보면, 그 질문을 던진 적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정의 내리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외부의 인식과 평가로 나를 설명하기가 더 쉽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부의 인식으로 나는 어떤 사람인가, 아는 것은 참 중요하다. 그래서 나는 끊임없이 질문해야 한다. 나는 어떤 사람이지?
내가 책을 읽는 이유이기도 하다.
3. 정리.
서문, 작가님의 말 가운데 '이 작은 책 <고요한 읽기>도, 혹시 누군가에게 광학기구가 될 수 있기를, 그래서 감추어진 동굴 속의 생각들을 끄집어 내 '나'를 읽는 데 아주 미미한 기여라고 할 수 있게 되기를.'이라고 적혀 있었다. 마냥 책이 어렵다고만 생각했는데, 막상 이렇게 다 읽고 글을 쓰다 보니, 작가님의 말이 이렇게 다가오는구나, 싶었다. 감추어진 동굴 속의 생각을 끄집어내어 나를 발견하려 노력한 시간이었다. 잘 모르는 어떤 책들을 찾아보고 싶기도 했다. 고요한 읽기다.
[이야기 나눠 보기]
1) 지금, 기다리고 있는 대상이 있습니까? 지금 무엇을 기다리고 있으며, 그 기다림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2) 내부의 나를 만나기가 두려워 외부로 피한 적이 있나요? 외부의 나는 어떤 모습이며, 내부의 나를 만나기기 두려운 이유는 무엇인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bookclub_munh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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