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자유롭게 할 은유의 책 편지_은유 지음_창비
학교 행사 중, 하나로 인문학 캠프를 기획하게 되었다. 작가를 초청해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도 듣고 직접 글도 써 보는 활동을 통해 마을의 이야기도 발견하고 자신의 내면도 들여다보는 활동을 진행하고 싶었다. 도서관 선생님께 말씀드리니 ‘은유 작가님’을 추천해 주셨다. 실행력이 뛰어난 도서관 선생님께서 바로 은유 작가님을 초청작가로 섭외하셨다. 작가님에 대하여 전혀 몰랐던 나는 얼른 도서관에서 두 권의 책을 빌렸다. 강연회가 열리기 전 작가님의 책을 읽고 싶었던 마음이 컸다. 그래서 만나게 된 책이 ‘해방의 밤’이다. 부제, 당신을 자유롭게 할 은유의 책 편지.
책은 수월하게 넘어갔지만 마음은 오래 불편했다. 하지만 그 불편함을 똑바로 인지하고 받아들이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알지만 굳이 나서지 않았던 많은 일들이 생각났고, 타인이라는 이름으로 방치했던 마음속 깊이 숨겨두었던 이들의 이름이 생각났다. 작가님의 사회를 보는 시선이 글쓰기의 동력이 되었을 수 있겠단 생각도 들었다.
1. 편견으로 가득한 나를 보는 일
필라테스 강습 시간에 선생님이 지구만 한 고무공을 건네주며 말했다. “팔을 쫙 펴서 남편분 안 듯이 꽈악 끌어안으세요.”‘네? 아니, 왜요? 그다지 그러고 싶지 안…’ 운동기구에 누워 복부 근육에 힘을 주느라 입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순간 공을 놓칠 뻔했지. 나이 든 여성이라도 남편과 자식이 없기도 하잖아. 저 사랑 넘치는 이성애 가족 판타지를 대체할 표현이 없을까. 고양이? 나무? 베개 끌어안 듯이? 아니, 그냥 두 팔을 최대치로 늘리라고만 해도 충분했을 거 같아. (212쪽)
두 가지 생각이 들었죠. 하나는 나보다 집단이 우선인 가족주의 체제에서 가장 약자인 며느리의 자리로 들어가는 딸에게 ‘나를 지키는 법’. 즉 ‘다르게 사는 법’을 알려주는 엄마는 참 멋지구나, 또 하나는 우리가 듣고 쓰는 말은 참 정치적이구나 하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세계를 구성하는 건 결국 그가 접하는 말과 행위죠. 사회적 관계망을 통해 몸에 흘려든 말들이 세계관을 형성하고 그것을 준거 삼아 우리는 자기 경험을 해석하고 행동을 결정합니다. 행 혹은 불행을 느낍니다.(277쪽)
이제는 많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정상’이라는 이름으로 통용되고 인정되는 관계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시기와 때에 맞는 어떤 정해진 역할이 있다고도 그렇게 생각하곤 한다. 나 또한 성장의 과정에서 자리 잡은 경험들이 진리인 양 그것이 전부라 생각하면서 사람들에게 실수를 할 때가 있다. 책을 통해,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매체를 통해 그런 생각들이 많이 없어지긴 했지만 며칠 전 학교 환영회에서도 실수를 하고 말았다. 어떤 선생님께 다짜고짜 “아이는 어리시지요?”라고 물었던 것이다. 그런 질문들이 얼마나 무례한지에 대한 인지도 없이 친해지기 위한 한 방편 정도로 여긴 나의 잘못된 행동이었다. 선생님께서는 웃으시면서 “이번 생에는 우리 부부에게 아이는 없나 보다 여기기로 했어요.”라고 말씀하셨다. 으레 결혼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니 아이가 어릴 것이라고 생각했던 내 편견이 잘못된 행동이라는 문제의식도 가지지 못한 채 툭 튀어나와 벌어진 일이었다.
작가님이 글에서 쓰신 것처럼 한 사람의 세계를 구성하는 건 결국 그가 접하는 말과 행위라는 내용이 사뭇 크게 다가왔다. 책을 읽으면서 계속 나의 잘못된 어떤 행동들이 떠올라 부끄러웠던 것은 오히려 다행이었다. 나를 구성하는 세계의 변화가 시작될 거라는 조금의 희망이라 여겨졌다.
국어 수업 준비를 하면서 ‘이길보라 작가님’이 언어에 대하여 표현한 부분을 읽었다. ‘청자’는 음성언어 사용자를 대상으로 한 단어이며, 수어 또한 ‘아름다운 언어, 사랑의 언어’로서의 분류가 아닌 하나의 언어로 보아야 한다는 작가님의 견해를 읽고 내 생각이 얼마나 한정적이었는지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책을 통해, 나는 어제의 나보다 조금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을 거라는 그런 마음도 들었다.
2. 불행의 스펙트럼
불행의 스펙트럼은 넓습니다. 허기, 권태, 불안 같은 일시적 상태부터 가난, 불화, 폭력, 질병, 낙인 같은 구조적 고통까지. 우리가 이를 드러냈을 때 사람이 다가오기도 달아나기도 하죠. 그럼에도 저는 불행은 말하는 것이 좋다는 입장입니다. 내 불행을 나부터 숨기고 부정한다면 상황을 남에게 이해받기도 그리고 바꾸어내기도 어려워요. 또 불행을 털어놓아보아야 ‘불행을 말해도 되는 안전한 관계’로 자기 주변의 인간관계를 구축할 수 있겠죠. (284쪽)
불행의 스펙트럼이란 단어를 듣는 순간 온갖 불행의 다양한 모습들이 생각났다. 또 사람마다 불행을 느끼는 그 지점이 참 다양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나 자신을 정의할 때 ‘기쁨도 슬픔도 오래가지 않는 사람’이란 표현을 쓸 때가 있다. 보통 기쁨의 허들이 낮아 아주 작은 일에도 쉽게 기뻐하는 좋은 습관과 성향을 가졌지만 그것이 오래가지 않아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일을 끊임없이 만들어야 해서 피곤하기도 하다. 또 슬픔이나 아픔에 대한 허들이 높아 쉽게 불행하다고 여기지 않을 때가 많다.
예전엔 불행을 이야기하는 이 앞에서 더 큰 나의 불행을 꺼냄으로써 위로를 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또 아이들과 상담하면서 아이들이 겪는 불행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숨었다.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았고, 피하고 싶었다. 불행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음으로 불행이 없다고 생각하는 최면을 걸었다. 하지만 일상의 작은 행과 불행은 끊임없이 엎치락뒤치락 다가왔고, 그것대로 또 삶은 이어졌다.
작가님이 글에서 쓰신 이야기처럼 불행을 말해도 되는 안전한 관계에 대하여 생각해 보게 된다. 타인의 불행을 수집하듯 모으는 사람을 본 적도 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불행을 이야기하는 이는 불행을 이야기함으로써 그냥 그것대로 위로를 받았을 수도 있겠다 싶다. 그 사람이 불행을 말해도 되는 안전한 관계의 사람이라면. 책을 읽으면서 내게 참 소중한 많은 사람들이 생각났다. 한때는 내 불행이 그에게 무거운 짐이 될까 말하지 못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불행을 이야기하는 동안 불행은 희석되어 낮게 가라앉았고, 나는 또 일어서 걸었다. 삶이란 그런 건가 보다.
3. 정리
저도 스무 살 무렵에는 도대체 여자가 무슨 차별을 받는다는 건가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결혼과 출산을 거치고, 또 글 쓰는 일을 하며 다른 삶의 배경을 가진 여성들을 만나면서 그런 생각들이 깨졌습니다. 사람은 변합니다. 변화란 거저 오는 것이 아니라 애써서 만드는 것이라고 하죠. 비난으로는 변하지 않고 애씀으로 변하는 것 같아요. 누군가 애써 글을 쓰고, 누군가 애써 글을 읽고 애써 소개하고요. 남의 말에 귀를 열고 질문하고 영향을 받는 것도 애씀이지요.(331쪽)
‘해방의 밤’을 읽으면서 편견으로 가득한 나를 발견하는 일은 아프고 힘들었지만 또 그만큼 내 생각이 깨어지고 확장되는 시간이기도 했다. 작가님이 글을 쓰고 책을 읽고 많은 이들을 만나고 토론을 하고 강연을 하는 그 시간을 통해 해방의 씨앗이 뿌려진 것처럼 나는 또 이렇게 작가님의 책을 읽으면서 사유와 실천에 대하여 고민하고 애쓰며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