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시간 166. 이처럼 사소한 것들

# 클레어 키건 소설, 홍한별 옮김_다산 책방

by 벼리바라기


대중교통을 타고 다닌 지 3주 정도 되었다. 처음엔 이렇게 오래 대중교통을 타고 다니리라 예상하지 못했다. 차를 수리 맡긴 기간 동안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해야지 마음먹었고, 그렇게 가볍게 시작한 일이었다. 봄이지만 봄 아닌 추위에 지하철을 타면 노곤노곤 따뜻함에 기분이 좋았고, 퇴근길의 물밀 듯 밀려오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설령 차를 놓치는 일이 생기더라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참 부지런히 삶을 살아내고 있구나, 마음에 잔잔히 뭔가 차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지극히 사소하고 평범한 일상을 살아내는 것, 그 치열함이 좋았다. 그래서 계속 대중교통을 이용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큰 비가 오지 않으면, 그냥 대중교통을 타고 출퇴근을 해야지 그렇게 마음먹고 있다. 퇴근길, 지하철을 타고 다시 환승하여 지하철, 그리고 마지막 버스까지 타고 집에 도착하면 대략 2시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그 시간을 보내더라도 나는 지금의 이 시간이 나의 사소하고 평범한 일상이라 생각한다.

이번 독서모임의 책은 클레어 키건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면서 제일 처음 한 말이 “얇아서 좋아요.”였다. 바쁜 일상 가운데 책은 읽어야 하는데, 너무 두꺼운 책이면 마음에 부담이 되지 않을까, 그런 마음이 먼저 들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니, 결코 가볍지 않은, 지금의 이처럼 사소한 일상에 작은 파문을 일으키는 책이었다.

1. 소중한 존재로 느끼게 만들어 주는 것.

다시 물이 끓기를 기다리는 동안 펄롱은 네드가 오래전 크리스마스에 선물해 주었던 보온 물주머니를 생각했다. 그 선물을 받고 실망하긴 했으나 그것 덕분에 밤마다 그 뒤로도 오랫동안 따스함을 느꼈다. 다음 크리스마스가 오기 전에 펄롱은 ‘크리스마스 캐럴’을 끝까지 읽었다. 미시즈 윌슨은 펄롱에게 큰 사전을 이용해서 모르는 단어를 찾아보라며, 누구나 어휘를 갖춰야 한다고 했다. 펄롱은 그 단어는 사전에서 찾을 수가 없었는데 알고 보니 ‘어희’가 아니라 ‘어휘’였다. 이듬해 펄롱이 맞춤법 대회에서 1등을 하고 부상으로 밀어서 여는 뚜껑을 자로도 쓸 수 있는 나무 필통을 받았을 때, 미시즈 윌슨은 마치 자기 자식인 양 머리를 쓰다듬으며 칭찬해 주었다. “자랑스럽게 생각하렴.” 미시지 윌슨이 말했다. 그날 종일, 그 뒤로도 얼마간 펄롱은 키가 한 뼘은 자란 기분으로 자기가 다른 아이들과 다를 바 없이 소중한 존재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돌아다녔다.(37쪽)


아버지의 존재를 모른 채 태어났을 때부터 ‘미시즈 윌슨’씨의 집에서 자란 펄롱은 크리스마스 선물로 직소퍼즐이 받고 싶었다. 산타할아버지에게 간절한 마음을 담아 편지를 쓴 펄롱은 크리스마스 날 보온 물주머니와 책을 선물 받는다.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외양간에서 조금 울었던 펄롱은 나중에 어른이 되어 그 시절을 회상할 때 그 선물들이 자신이 다른 아이들과 다를 바 없이 소중한 존재로 여기게 만들어 주었다는 것을 기억하게 된다.

열여섯에 임신을 한 펄롱의 엄마는 미시즈 윌슨의 도움이 없었다면 아마 소설 속 수녀원의 세탁소에 맡겨져 아이와 떨어진 채 일을 하며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미시즈 윌슨가에서 계속 일을 하면서 펄롱을 키울 수 있었다. 펄롱은 자신이 미혼모의 자녀인 것을 알고 있지만, 마치 할머니 같은 미시즈 윌슨과 삼촌 같은 네드와 함께 그렇게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러기에 평범함에 대한 갈망이 컸을 것 같다. 펄롱은 그렇게 자라 결혼을 하고, 딸들을 낳고, 자신의 미래를 그리며, 때로는 고민하고 갈등하며, 사소한 일상을 살아간다. 수녀원에서 학대받는 아이들을 만나기 전까지.

펄롱이 어린 시절 소중한 존재라고 느낄 수 있었던 이유는 네드의 보온 물주머니가 겨울 내내 따뜻함을 주었고, 미시즈 윌슨의 선물로 인해 어휘대회에서 상을 받게 되었으며 미시즈 윌슨의 칭찬을 받았기 때문이다. 아이가 스스로 소중한 존재로 여기도록 만드는 데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곧 사랑이란 마음이 아닐까?

가만 생각해 보면, 우리 아이가 성장하는데 할머니의 온전한 사랑과 학교 선생님들의 기대감이 있었다. 지금 봐도 참 잘 자란 아이의 양육에는 나의 부족함을 덮어 준 가정에서의 시간과 학교에서의 시간이 함께 공존한다. 학기가 시작되어 새로운 고1 아이들을 만났을 때, 아이들의 시간을 상상하게 된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가만 떠올려 본다. 결국 나는 아이들에게 기대감을 가지고 적절한 칭찬을 하는 것, 그것이 결국은 아이들이 스스로를 소중한 존재로 여기도록 만드는 일임을 늘 느낀다. 쉬운 일은 아니다. 펄롱이 키가 한 뼘 자란 기분을 느낄 수 있었던 그 사소한 말 한마디의 무게를 실감한다.

2. 하나의 삶을 이루는 요소

두 사람은 계속 걸었고 펄롱은 알거나 모르는 사람들을 더 마주쳤다. 문득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나날을, 수십 년을 평생을 단 한 번도 세상에 맞설 용기를 내보지 않고도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부르고 거울 앞에서 자기 모습을 마주할 수 있나? 아이를 데리고 걸으면서 펄롱은 얼마나 몸이 가볍고 당당한 느낌이던지. 가슴속에 새롭고 새삼스럽고 뭔지 모를 기쁨이 솟았다. 펄롱의 가장 좋은 부분이 빛을 내며 밖으로 나오고 있는 것일 수도 있을까? 펄롱은 자신의 어떤 부분이, 그걸 뭐라고 부르든- 거기 무슨 이름이 있나?-밖으로 마구 나오고 있다는 걸 알았다. (중략) 펄롱은 미시즈 윌슨을, 그분이 날마다 보여준 친절을, 어떻게 펄롱을 가르치고 격려했는지를, 말이나 행동으로 하거나 하지 않은 사소한 것들을, 무얼 알았을지를 생각했다. 그것들이 한데 합해져서 하나의 삶을 이루었다. (120쪽)


펄롱은 수녀원에서 학대받는 아이를 무시하지 못하고 마음이 이끄는 대로 무작정 다시 수녀원을 찾아가 석탄 광문을 열고 아이를 데리고 온다. 그리고는 사람들의 눈을 피하지 않고 집으로 걸어간다. 그때 펄롱의 가장 좋은 부분이 빛을 내며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그걸 펄롱 자신도 무어라고 불러야 할지 몰랐다.

나는 그걸 ‘양심’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우리의 양심이 결국은 선한 행동을 하게 이끄는 것은 아닐까? 늘 생각하는 어떤 지점들이 있다. 선한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들을 찾을 때, 나의 선함이 돌고 돌아 다시 나에게 돌아오는 상상을 할 때가 많다. 그것이 때로는 알지 못하는 누군가로부터 듣는 칭찬일 수도 있고, 누군가로부터 받는 친절일 수도 있다. 그러기에 나 또한 누군가가 되어 칭찬을, 용기 있는 친절을 베풀어야 한다는 그런 마음으로 그렇게 살고자 노력한다. 지극히 연약하여 매번 무너지기도 하고, 사람들을 원망하기도 하며, 무엇보다 철저히 마음의 벽을 쌓아 올려 세상의 아픔에 눈을 감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조금 더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

교육학에는 잠재적 교육과정이라는 말이 있다. 선생님이 설명하지 않는 어떤 것들, 말이나 행동으로 하지 않은 사소한 것들이 아이들의 삶에 영향을 준다는 개념의 잠재적 교육과정. 그래서 처음 근무했던 학교의 교감 선생님께서는 교사는 ‘보여주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셨다. 말로 설명하지 않더라도 교사의 행동은 아이들에게 영향을 주기에, 교사는 자신의 성실과 열정과 예의와 마음, 그 모든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그것이 지금까지도 교사생활을 하는 내게 큰 영향을 주고 있다. 그렇게 살고자 노력하는 마음으로, 보여주는 교사가 되기 위해.

펄롱에게 미시즈 윌슨이 날마다 보여주었던 그 어떤 것들, 그것들이 한데 합쳐서 삶을 이루었다는 것, 결국 내 삶도 수많은 사람의 우연한 만남과 지속적 관계와 말하든 말하지 않든 보이는 수많은 이야기들로 이루어져 있음을 실감한다.

3. 정리

춘분이 지났다. 아이들에게 춘분과 추분과 하지와 동지의 절기에 대하여 이야기하면서, 이제 점점 길어질 낮 시간에 대한 기대감을 물어보았다. 퇴근하고 집으로 가는 길, 지하철에서 마주하게 되는 노을에 눈길이 간다. 멈춰 서 해가 지는 풍경을 오래오래 바라보았다. 그리고 또 하루의 일상에 대하여 생각한다. 하루 동안 만났던 참 많은 아이들의 표정을 떠올려 본다. 참 좋은 선생님의 목소리를 그 순간의 공기를 생각해 본다. 또 좋은 소식을 가지고 와 나를 울게 만들었던 선생님의 기대와 걱정에 어떤 선물로 기쁨을 표현할지 생각해 본다. 나의 하루는 이처럼 사소하다.

하지만 책을 읽고, 아일랜드의 막달레나 세탁소에서 고통받았던 어린아이들의 작은 부탁과 소망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우리나라에도 있었던 형제 복지원의 폭행과 감금에 대하여도 생각해 보았다. 나의 시선이, 사소한 내 일상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사소한 것들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그런 곳에도 머물기를, 그런 곳에 움직이는 양심이기를, 용기이기를, 그런 마음으로 책을 덮었다.


[이야기 나눠 보기] 1) 어린 시절 나를 ‘소중한 존재’로 여기게 만들어 주었던 칭찬이 있다면 무엇인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2) 나의 삶을 이루는 요소는 무엇이며, 말하거나 말하지 않거나 나에게 영향을 주었던 사건이 있다면 무엇인지 이야기를 나눠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