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란 짧은 소설, 임수연 그림_마음 산책
여전히 참 바쁜 일상이다. 책을 읽어낼 수 있을까 싶은 바쁘디 바쁜 평일이 지났다. 기다렸던 주말이 오니, 결국 나는 또 도서관을 향하여 발걸음을 옮긴다.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건, 책이 나에겐 쉼이고 숨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책을 발견하는 것은 선물 같은 일이며, 지친 내 마음이 책 속 한 문장에 내려앉는 기분이 들 때 나는 비로소 다시 한 주간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그래서 책 읽는 일이 어쩌면 나에게는 허둥지둥 서두르는 삶의 속도를 늦추는 일이며 새 힘과 에너지를 채워 다시 한 주간을 나답게 걸어가게 만드는 일이라고, 그래서 포기할 수 없다고 그렇게 되뇌어본다.
이번 주에 도서관에서 만난 책은 이주란 작가님의 ‘좋아 보여서 다행’이란 책이었다. 책 표지가 너무 예뻐 한참을 들고 들여다보았다. 임수연 작가님의 삽화가 들어가 있는 짧은 소설집. 동백꽃일 거라 생각했는데 소설을 다 읽고 나서 봄날의 명자꽃임을 알았다. 언젠가 집 근처 공원을 산책하다가 이 붉디붉은 꽃을 만난 적이 있다. 장미도 아니고, 초록의 잎에 빨간 꽃이 강렬하여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이름이 너무 순박하여 오히려 웃음을 주었던 꽃, 명자꽃이 책 표지 한가득 채워 있었다. 그래서 읽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1. ‘시절 인연’에 대하여
그동안 나는 우리가 같은 마음이 아닐지 수없이 상상해 왔어. 꼭 하나만 물을 수 있다면 그래서 너는 어땠는지 묻고 싶어. 그날 왜 그랬는지가 아니라 그 후로 어땠는지를. 사실 네가 하고 싶은 말은 늘 그렇듯 그 이후의 일들일 테니까. 나는 그걸 들을 준비를 하고 여기 돌아왔어. 지금의 나는 그때 네 진심을 외면하면서까지 꽉 붙잡고 잃지 않으려던 것들을 결국 잃은 사람이 되어 있거든 (118쪽_아주 긴 변명 중)
책을 다 읽고 나니, 살면서 잃어버린 것들이 생각났다. 사실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알지도 못하지만 그냥 뭔가를 잃어버린 채 살아왔구나, 또 무언가를 나는 그곳에 두고 왔구나, 그런 마음이 들었다. 성시경의 노래 중에 참 좋아하는 노래가 있다. ‘난 좋아’라는 제목의 노래. 헤어진 연인을 우연히 길에서 만났을 때, 그냥 가볍게 인사하고 헤어지지만, 끝내 물어보지 못한, 또 묻고 싶었던 질문 하나 ‘너에게 난 따뜻한 사람이었니?’라는 구절이 좋아 나는 그 노래가 좋았다. 따뜻한 인연으로 누군가에게 남고 싶은 마음과, 또 누군가의 따뜻함으로 나는 어떤 시절을 지난 온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그 노래가 좋았는지도 모른다.
책을 덮고 한참을 성시경 노래를 듣고 또 들었다. 이 책이 그런 느낌이 들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책의 제목 ‘좋아 보여서 다행’처럼 한 시절 함께 했던 참 좋은 인연들에 대한 어떤 그리움들이 몰려왔고, 마음이 낮게 가라앉았으며, 그래도 어디선가 잘 살고 있을 많은 이들에 대한 일상의 평온함을 빌게 되었다. ‘시절 인연’은 불교 용어라고 한다. 모든 사물의 현상은 시기가 되어야 일어난다는 의미로 때와 시기가 있다는 말이겠지만 괜스레 지금은 어떤 한 시절을 함께 했던, 하지만 지금은 없는 누군가에 대한 표현으로 쓰이고 있는 것 같다.
‘좋아 보여서 다행’은 그런 시절 인연을 떠올리게 만든 책이다. 단편 ‘아주 긴 변명’은 한 때는 아주 좋아했지만 그럼에도 지고 싶지 않고 싶다는 마음으로 서로의 결점을 건드리며 사사건건 부딪쳤던 어떤 사람에 대한 그리움을 담고 있는 내용이다. 이제는 조금의 시간이 지나 그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준비가 된 채로 돌아왔지만 스스로 꽉 붙잡고 잃어버리고 싶지 않았던 것들을 결국 다 잃어버린 사람의 고백이 먹먹하게 다가왔다.
나는 두려움이 많은 사람이다. 요즘은 특히나 더 그런 마음이 든다. 참 존경하고 좋아하는 분과 함께 일하면서 그분의 신뢰와 기대에 내가 부응하지 못할까 봐 지레 끙끙 앓고 있는 시간이 많다. 그래서 이 단편을 읽으면서 꽉 붙잡고 잃지 않으려는 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헤어져야 하는 순간들이 있다. 함께 일하는 그 시간이 참 감사하고 좋지만 오래 함께 할 수 없음을 잘 알면서도 그 시간을 꽉 붙잡고 잃지 않으려 애쓰는 내 모습에서 결국 다 잃어버린 사람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까 두렵다.
2. 정리
책을 읽으면서 오래전 함께 했지만 지금은 소식조차 없는 많은 이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하지만 알 길이 없다. 함께 나이 듦을 공유할 수 있는 건 어쩌면 축복이라고, 그런 마음도 들었다. 연락처조차 알지 못해 연락할 길도 없지만 이렇게 갑자기 쑥 기억나는 밤이면 시절 인연은 시절 인연으로 그렇게 떠나보내야 하나 보다 그렇게 생각하게 된다. 그럼에도 아주 우연히, 우연히 만나게 된다면 ‘좋아 보여서 다행’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야기 나눠 보기] 1) 시절 인연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한 시절 함께 했던 참 좋은 인연을 소개해 주세요. 2) 꽉 붙잡고 잃지 않으려던 것들이 있었다면 무엇인지, 그리고 지금은 그것을 붙잡고 있는지, 아니면 놓쳤는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