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지영 감독, 염혜란, 신우빈 주연
베를린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았다는 기사를 읽었다. 그때부터 보고 싶었던 영화, 국내 개봉일을 기다렸고, 주말이 되어 영화를 보러 갔다. 집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영화관에 상영 시간을 보니 주말인데도 상영관이 몇 개 없었다. 언제가 상영관 독점 문제에 대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는데, 아마 그런 문제의 연장선인 것 같았다. 결국 집에서 조금 멀지만 조조영화를 볼 수 있는 상영관을 찾아보았다.
제주 4.3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것, 염혜란 배우님이 춤을 춘다는 것, 딱 그 두 가지만 알았다. 그리고 영화관을 들어가면서, ‘울지 말아야지’ 그렇게 다짐하고 영화를 보았다. 제주 4.3 사건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지만, 한강 작가님의 ‘작별하지 않는다’를 통해, 그리고 방송과 매체를 통해 내가 알고 있는 4.3 항쟁을 소재로 하고 있다면, 이미 슬플 것을 알아서 그렇게 마음먹었더랬다. 하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더 슬펐다.
1. 최정순과 김영옥
아홉 살 이전의 기억을 모두 잃어버린 정순은 봄만 되면 햇빛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작은 먼지 같은 일렁임에도 발작을 일으킨다. 정신과 의사의 권유에 따라 기억을 되살려보고자 하지만 사실 정순은 그럴 의지가 없다. 아마 잃어버리고 싶은 시간들이었나 보다.
드라마 도깨비에 나오는 대사 중 ‘망각은 신의 선물’이란 말이 있다. 그 말이 참 좋았다. 모든 것을 기억하지 않아서, 부끄러운 일상이 어느 정도 희석되는 것 같을 때도 있었고, 좋았던 일도 적당히 사라져 뭐든 새로이 시작하는 기쁨을 느낄 때도 있었다. 하지만 정순의 망각은 정말 살기 위한 시간이었다. 잊지 않고서는 살아낼 수 없기에, 그렇게 온전히 잊었나 보다.
영화의 배경 1998년, 고등학교 수업시간 역사 선생님은 제주에서 일어난 4.3 사건에 대하여 이야기하지만 설명하진 않는다. 학생의 질문에도 그냥 중요하지 않다고 그렇게 말하고 넘어간다. 제주 4.3 사건의 시작은 1948년이었고, 무려 7년에 걸친 비극의 역사였지만 1998년도에도 그 이야기는 금기시되었나 보다. 여전히 제주도에서는 4월 3일이면 한 집 건너 한 집이 제사라고 한다. 영화에 나오는 학생의 말처럼 할아버지가 외할아버지를 죽인 일도 있었다.
몇십 년이 흐른 지금도 상처가 온전히 회복되지 않았던 것은 영화의 제목처럼 ‘내 이름은’ 누구라고 말하지 못하는 시간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죽을까 봐, 자신의 이름을 말하지 못했던 영옥, 그래서 정순으로 살았던 시간. 그 시간이 회복되지 않는 한 시간이 흐른다고 상처가 아무는 것은 아님을 영화를 보는 내내 생각했다.
친구의 이름으로 대신 살아남아 그 기억을 온전히 묻어버린 정순의 상처는 이름을 찾고, 죽은 이들을 기억해 내고 그 슬픔을 온전히 느낄 때 조금씩 회복되었다. 상처란 결국 온전히 마주할 때야 나을 수 있음을 영화는 보여준다.
2. 이영옥과 이민종
참 따뜻한 아들이구나, 영화를 보면서 내내 그렇게 생각했다. 엄마가 봄이면 왜 아픈지는 모르지만 엄마를 살뜰하게 챙기는 아들. 다만 이름이 싫었다. 사람들이 영옥 씨라고 놀리는 것도 싫었고, 이름을 바꾸고 싶었다.
자신을 지지해 주는 서울에서 온 경태의 말에 친한 친구였던 민수와 싸우면서 영옥은 깨닫는다. 자신이 싸울 대상은 민수가 아니라 경태임을. 끊임없이 폭력을 조장하고 아이들을 선동하면서 거짓을 만들어내지만 자신은 정작 잘못하지 않았다는 태도로 일관하는 경태의 태도에 휩쓸리지 않을 수 없으면서 또 휩쓸려버린 자신을 상황을 후회하게 된다.
아이들의 질서마저 폭력으로 정립된다는 것이 속상할 때가 있다. 늘 무난하게 학교생활을 해 왔었다. 단짝처럼 붙어 다니는 친구가 한 명 있었지만 그 한 명의 친구만 있어도 학교생활은 참 재미있었고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무리에 소속되지 못할까 봐 또는 잘 어울리지 못할까 봐 걱정되지 않았다. 반장이었고, 언제나 주변에 친구들이 있었으며, 적당히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관계에는 노력이 필요했다. 웃어야 하는 순간을 알았고, 내 말을 하기보다 친구의 말을 들어야 할 때를 알았으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아이의 말에 편을 들어야 할 때도 있었다. 남자아이들 사이의 주먹이 오고 가는 그런 폭력은 아니었지만 그것도 결국 폭력의 질서였음을 안다.
영옥은 원하는 대로 ‘민성’이라 불러주는 경태 앞에서, 경태가 정한 질서를 지키며 반장생활을 한다. 하지만 그런 관계를 끊어낼 수 있는 것은 결국 자신이 가지고 있는 믿음과 행동의 거부이다. 용기가 있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걸 해 내는 사람들이 있음을, 그렇게 조금씩 세상이 달라졌음을.
3. 정리
자신을 살린 정순의 이름으로 산 엄마와, 엄마인 줄 알았던 할머니의 이름으로 산 아들. 누군가의 삶을 빌려 그렇게 살아온 시간들은 4.3 사건의 이름을 찾아가는 시간이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울지 않으려고 했지만 끝내 울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러면서 조심스레 든 생각, 어떤 상처는 끄집어내고 드러내야만 한다는 사실, 오래 생각했다. 모른 척 살아, 잊으면서 살아, 그렇게 위로하는 순간들이 많지만 그건 겪지 않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위로이겠구나, 그런 마음도 들었으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잊히어가는 역사를 똑바로 쳐다보는 것, 그래서 기억하고 그 일들이 어떻게 보상되고 있으며 진행되는지 그렇게 알아보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제대로 살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