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벼리바라기 Nov 14. 2022

책들의 시간 10_우연한 만남, 그리고 덕질

# 책과 우연들_김초엽_열림원

  학생들이 정말 많이 읽는 책 중의 하나가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김초엽)’이다. 제목부터 매력적이어서 학생들이 읽었다고 이야기를 할 때면, 궁금하기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조금의 편견을 가져, 워낙 학생들에게 인기 있는 책이라 쉽게 손에 들지 못했다. 나중에 책을 읽고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더 빨리 찾아 읽을 것을. 재미있으면서도 몰입하여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나는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과 같은 소설의 장르를 SF라고 부른다는 것도 사실 알지 못했다. 나에게 소설은 다 소설이었기에, 장르에 대한 인지가 없었다. 그냥 과학을 소재로 한 소설이구나 정도. 

  그렇게 김초엽 작가의 책을 참 재미있게 읽었는데, 이번 책 ‘책과 우연들’은 소설이 아니다. 이 책은 작가의 생각 기록이면서 작가의 협업 논픽션 작품의 과정에 대한 서술과 작가가 소설가가 된 과정 가운데 읽은 작법서를 비롯한 다양한 책들의 소개이기도 한 책이다. 재미있었다. 작가의 생각을 읽는다는 것은 설레기도 하고, 내가 읽은 작가의 책이 어떻게 쓰이었는지 발견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최근 나는 김초엽 작가의 ‘지구 끝의 온실’을 읽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이 더 재미있었음을.      


1. 작가를 좋아하는 마음, 작가의 책을 찾아 읽는 마음.      


  내가 다녔던 대학의 후문을 나오면, 서점이 한 곳 있었다. 후문에서 자취를 하는 나에게는 학교를 오며 가며, 그 서점에 들러 책을 구경할 기회가 많았다. 국어국문학과에 다니는 학생으로서는 좀 부끄럽지만, 사실 대학교에 진학할 때까지 책을 많이 읽은 편은 아니었다. 조정래 작가님의 ‘태백산맥’은 읽었지만, 박경리 작가님의 ‘토지’는 읽지 않은. 

  언제부터 책을 열심히 읽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근데, 대학교 2학년 때였나 우연히 들른 서점에서 현대문학상 수상작인 윤대녕 작가님의 ‘빛의 걸음걸이’를 발견하였다. 온통 초록빛으로 정말 빛을 뿜어내는 듯한 책 표지에 이끌려, 그 책을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한 권 사 들고 나와 읽었다. 지금은 기억도 잘 나지 않지만, 그때의 기분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냥 책에 빠져들었던 순간의 그 설명할 수 없는 느낌. 한동안 윤대녕 작가님의 책만 골라서 읽었던 것 같다. 그리고 같은 과의 친구에게 이 소설책이 재미있다고 한참을 이야기하였더니, 그 친구는 자긴 김영하 작가님의 책이 그렇게 좋단다. 친구의 추천을 받아 읽었더니, 나는 그 당시 ‘그다지’이었다. 아주 세월이 많이 흘러, 독서 모임의 책으로 김영하 작가님의 ‘오직 두 사람’을 읽은 적이 있다. 그땐, 20대에 읽었던 김영하 작가님의 책 느낌과는 다르게 다가왔으며, 슬픔이 온몸으로 느껴져 당황하기까지 했었다. 20대 그렇게 우연히 접한 소설책 한 권은 작가에 대한 맹목적인 신뢰로 다가와 그 사람의 책을 찾아서 읽게 만들었다.      


  이렇게 동시대 활동하는 소설가들의 작품을 초기작부터 신작까지 차근차근 따라 읽어가는 것, 그들의 고민과 생각을 조심스레 뒤쫓으면서 소설이 변화해가는 결을 느끼는 것도 내게는 한국소설을 읽는 즐거움 같다

  그렇게 나는 한국소설을 몇 년간 탐방한 끝에 성실한 독자로 남게 되었다. 내가 속한 현실에서 온 이야기이기에 가끔 슬프고 자주 분노하게 만드는, 그러나 이제는 적어도 나를 소외시키지 않는, 사랑과 삶을 끝내 포기하지 않는 이야기들을 기쁘게 읽는다.(168쪽)


  김초엽 작가가 한국소설을 읽으면서 느낀 감정의 표현에 정말 공감한다. 나는 소설가는 아니지만, 한국소설의 성실한 독자이며, 소설을 통해 보는 세상에 자주 슬프고, 자주 분노하며, 자주 웃는다. 그래서 어떤 한 권의 책에 마음이 쏠리면, 작가를 좋아하는 마음으로 작가의 책을 찾아 읽게 된다. 공지영 작가의 책에서 시작하여, 지금은 강화길 작가와 백수린 작가의 책을 좋아하며 다음 책을 기다리는 마음에 설렌다.     


2. 이건, 서평이 아니라 일기. 


 사실 이런 오독의 문제는 작품에 대한 긍정적인 평에도 비일비재하다.

 때로 작품을 정확히 읽어낼 뿐만 아니라, 작가 스스로도 알지 못한 작품의 의미를 짚어내고, 작가의 세계를 선명하게 그려내는 비평들이 있다. (중략) 좋은 비평은 작가의 길을 비추고, 작가가 주저하지 않고 나아가도록 힘을 보탠다. 그리고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다각도로 바라볼 수 있는 해석의 틀을 더해준다. 마음을 읽힌 듯한 비평, 무의식에서 작동한 요소들을 표면 위로 끌어올려주는 비평을 한 번씩 마주치는 것도 창작자로서 누릴 수 있는 큰 기쁨 중의 하나일 것이다.(216쪽)


  김초엽 작가는 좋은 비평을 만나는 것이 창작자로서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라고 말하고 있다. 나는 문득 겁이 났다. 물론 내 글은 브런치에서 읽히는 글이지만, 혹시 정말 혹시 ‘우연히 책의 저자가 나의 글을 읽게 되면 어쩌지’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김초엽 작가가 이야기한 ‘긍정적인 평에도 비일비재한 오독’의 문제에 있어 나는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책을 작가의 의도나 목적과 다르게 정말 내 마음대로 읽어내기 때문에. 그리고는 내 마음대로 생각을 펼치기 때문에, 책의 작가가 내 글을 읽는다면, ‘이건 책의 서평이 아니야’라고 충분히 생각할 수 있다. 그러하다. 나의 브런치 글, ‘책들의 시간’은 나에게 있어 책의 이야기가 아니라, 책을 통해 생각의 물꼬를 튼 나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브런치 작가가 되었습니다.’ 메일을 받고는, 너무 기뻐 차 안에서 여러 번 소리 내어 감사하다고 기도를 드렸고, 다음날에는 자축의 의미로 귤을 사서 선생님들께 나눠 드렸다. 브런치에 올릴 글의 방향을 잡을 때, 난 독서 기록, 서평, 독서 모임 등에 대한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때 가장 머뭇거리게 만들고 고민했던 것은, 너무나도 얕은 나의 지식과 생각을 글로 쓴다는 것이 부끄럽다는 마음과 책을 이해하는 깊이가 다른데 ‘나의 이해가 비난의 대상이 되지 않을까’하는 두려움이었다. 

  하지만 나에게 책을 읽고 글을 쓴다는 것은, 책에 대한 서평이나 비평의 의미가 아니었다. 나에게는 일기 같은 것. 책을 읽고 떠오른 생각들을 적는 일기 같은 것. 그렇게 마음을 먹고 나니, 좋았다. 책을 읽는 것도, 글을 쓰는 것도, 매주 발행하겠다는 스스로의 목표를 지키는 것도. 글쓰기가 가져온 성실한 변화와 스스로에 대한 마음의 위로. 그러면서 동시에 ‘내가 느끼는 것을 사람들도 함께 생각할까’라는 조심스러운 기대와 기다림. 참 좋은 마음이다.      


3. 정리. 


쓰는 일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독자에게도 이 책이 흥미롭게 다가갈 수 있다면 기쁘겠다.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했지만 그 앞에서 충분히 준비되어 있지 않다는 두려움을 겪어본 이들에게, 나 역시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는 말을 건네고 싶었다. 무엇보다 우리가 살며 예기치 못하게 만나는 책들이 우리의 세계를 이전보다 더 흥미롭고 복잡하게 만들어줄 수 있다는 나의 생각을 나누고 싶었다.(11쪽)


  책을 선택하고 책을 읽고, 그리고 책 속의 한 구절에서 떠오른 생각들 그것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또 다른 생각의 파장들. 그러면서 떠올리는 나의 상황과 시간들. 추억들. 그런 것들을 기록하고 싶은 마음. 책은 나에게 잊고 있었던 이야기를 생각하게 만드는 열쇠다. 나는 책이 좋고, 재미있다. 도서관에서 맡을 수 있는 오래된 책 냄새도 좋아한다. 나무의 나이테 같은 책 냄새. 작가의 말처럼 예기치 못하게 만나는 책들이 참 많다. 그 책들이 보여주는 세상에서 나를 발견하는 일. 나는 그것이 좋아 여전히 책을 열심히 읽는다.      


[이야기 나눠 보기]

1) 특별히 좋아하는 작가가 있습니까? 그 작가의 책을 언제 읽었고, 어떻게 좋아하게 되었으며, 지금의 마음은 어떠한지 나눠 봅시다.

2) 많은 장르의 책들 가운데 어떤 내용의 책들을 좋아하는지 소개해 봅시다. 그런 내용을 좋아하는 이유가 있다면 나눠 봅시다. 

작가의 이전글 그 남자의 연애편지 3. 잔소리쟁이 아부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