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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리바라기 Nov 21. 2022

책들의 시간 11_시를 읽는 마음

# 마음 시툰_너무 애쓰지 말고_글,그림 앵무_시 선정 박성우_창비 교육

  단 한 번도 시인이 되고 싶었던 적은 없었다. 그런데, 중고등학교 시절, 백일장만 나가면, ‘운문’ 분야로 나갔고 상을 받아온 경험이 많았다. 고등학교 때에는 지역 글짓기 대회에 나가, 놀고 싶은 마음에 30분도 되지 않은 시간에 시를 적어 제출하였으며, 대회장 곳곳을 돌아다녔다. 봄날이었고, 유난히 벚꽃이 많은 동네였으며, 파릇파릇한 잔디를 밟는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도 높은 순위의 상을 받고 보니, ‘내가 시를 잘 쓰나?’ 이런 마음들이 들곤 하였다. 

  고등학교 때 수업 시간에 배운 윤동주의 시가 좋았고, 자습서에 나온 윤동주의 사진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사진을 오려 지갑 속에 넣고 다니기도 하였으며, 축제 때에는 윤동주에게 바치는 시화를 만들기도 하였다. 단 한 번의 흔들림도 없이 선택한 국어국문학과. 대학교 1학년 때는 <현대 시론> 수업 시간에 교수님이 시를 잘 썼다며, 수업 시간에 읽어주시기도 하셨다. 그렇게 시는 내 삶에 들어왔으며, 오래 머물렀다. 

  다만, 쓰는 것이 아니라 읊는 것으로.      


1. 시가 주는 위로를 안다면.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시는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특히 ‘마음을 울리는 시’ 하나를 만난 사람에게는 꽤나 적극적으로 살아남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에게 이 만화가 ‘마음을 울리는 시’ 하나를 만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습니다.(앵무의 말 중)


  이 책은 짧은 만화와 함께 오래도록 여운을 주는 시가 실려 있는 책이다. 그래서 제목도 마음 시툰. 시 만화. 어렵지 않게 시를 읽어낼 수 있도록 만화가 도와주기도 한다. 마음을 울리는 시 하나를 만나게 되면, 시는 살아남는다는 만화 작가님의 말처럼 나에게도 여전히 남아 있는 시가 한 편 있다. 

  시인 백석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뭐든 아무리 하려도 해도 아무것도 되지 않을 때였다. 이제는 ‘실패’라는 단어를 쓰기에는 삶의 모습은 정말 다양하고, 알 수 없으며 나를 이리저리 끌고 다니며 이끈다는 것을 알아 그 단어를 섣불리 쓰지 않지만, 그때는 그냥 ‘실패’ 같았다. 철없이 한 결혼도, 대학원 공부도, 그리고 엄마를 떠나 먼 곳으로 온 시간들도. 사람들에게도 마음을 잘 주지 못하고, 한없이 외롭고 높고 쓸쓸하던 시간. 그때 읽게 된 시가 백석의 ‘남신의주유동박시봉방(南新義州 柳洞 朴時逢方)이다. 시를 읽고 나니, 마음속에 무언가가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뭔가를 해야만 한다고 끝없이 다그치던 마음도, 지금의 이 막막한 현실도, 차츰차츰 가라앉아 마음의 평온함이 왔다. 그리고는 시인이 바라보던 갈매나무가 눈앞에 보이는 것 같은 느낌. 갈매나무가 어떤 나무인지도 모르지만, 높은 언덕 위에 오롯이 서 있는 갈매나무. 눈이 와도 흔들림 없이 눈을 맞고 서 있는 나무. 

  그리고는 나는 세상을 달리 보기 시작했다.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는 죽을 것만 같은 마음도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여전히, 시를 읽을 때면, 어렵고 잘 모르겠다는 마음이 많이 들지만, 내 마음을 울리는 시를 만나는 그 순간이 있음을 나는 안다. 그래서 여전히 시를 읽는다.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시를 읽다가도, 또는 시를 분석하다가도, 시의 한 구절에 마음을 빼앗겨 몇 번이고 다시 읽어보는 마음. 그러다 보면, 시가 주는 위로를 경험하기도 한다.      


2. 백석, 남신의주유동박시봉방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메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네 집 헌 삿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같이 생각하며,

딜웅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 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우에 뜻 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밖에 나가지두 않구 자리에 누워서

머리에 손깍지 베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새김질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매어 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천정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끓어 보며,

어느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워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3. 정리     


  '시 요일'이라는 앱이 있다. 매일 한 편의 시를 찾아 읽는 것도 쉽지 않은 세상을 살아가고 있지만, 핸드폰을 켜고, 시를 읽는 마음은 나에게 있어 하나의 의식과 같은 마음이다. 오늘도 나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구나. 수많은 사건들 가운데, 나는 시의 마음으로 세상을 들여다보고 싶구나. 시는 여전히 어렵구나. 그래도 한 구절이 남아, 오늘 이렇게 귀에 맴도는구나. 이런 마음들을 가지게 되는. 그러면서 나는 그를 떠올리고, 그 아이를 떠올리고, 엄마를 떠올리고, 나도 모르게 시를 읽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렇게 시를 읽은 날이면, 윤동주 시인의 고백처럼 나의 길을 걸어가겠구나 그런 마음이 가슴 가득 차오른다.      


[이야기 나눠 보기]

1) 스스로의 마음에 적극적으로 살아남아 '마음을 울리는 시'는 무엇입니까? 그 시를 어떻게 만났으며, 지금 그 시는 어떤 마음으로 남아 있습니까?

2) 지금 이 순간 가장 떠오르는 사람은 누구이며, 그 사람에게 시를 선물한다면 어떤 시를 들려주고 싶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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