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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리바라기 Nov 28. 2022

책들의 시간 12_과학이 과학적이지 않을 수도 있음을

#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_룰루 밀러 지음, 정지인 옮김_곰 출판


  책에 대한 기본 정보가 전혀 없었다. 정말 그냥 제목에 이끌려서 읽은 책. 읽고 나니, 이게 뭔가 싶으면서도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게 된다. 이런 책을 논픽션(허구가 아닌 사실을 바탕으로 써진 산문)이라고 한다. 처음에는 ‘위인전’인가 하면서 읽었더랬다. 하지만 아니었다. 철저하게 작가가 어릴 때 가진 자신의 생각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글이다. 그 과정이 참 좋았다. 작가의 생각을 따라가는 과정. 

  다만, 나는 여전히 작가가 받아들인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명제에 대하여 받아들이지 못하지만, 작가의 깨달음에는 고개가 끄덕여졌다. 


1. 인생의 의미를 묻는 순간.      


  이 책의 작가는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인생의 의미’에 대하여 묻는다. 그때 과학자인 아버지가 작가에게 한 말 때문에 작가의 삶은 끊임없는 갈등과 방황과 그리고 답을 찾기 위한 연구의 연속이었다.


의미는 없어. 

마치 내가 살아오는 내내, 그 질문을 할 순간만을 열렬히 기다려왔다는 듯 아버지는 내게 인생에는 아무 의미도 없다고 통보했다. “의미는 없어. 신도 없어. 어떤 식으로든 너를 지켜보거나 보살펴주는 신적인 존재는 없어. 내세도, 운명도, 어떤 계획도 없어. 그리고 그런 게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그 누구도 믿지 마라. 그런 것들은 모두 사람들이 이 모든 게 아무 의미도 없고 자신도 의미가 없다는 무시무시한 감정에 맞서 자신을 달래기 위해 상상해낸 것일 뿐이니까. 진실은 이 모든 것도, 너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란다.”(54쪽)


  가만히 생각해본다. 나는 인생의 의미를 물었던 적이 있었던가? 왜 사는 거지? 왜 살아가는 거지? 그런 질문에 대하여 생각해보았던 적은 있었던가? 작가가 아버지에게 인생의 의미를 물었던 순간은 아주 거창한 어떤 일을 앞두고도 아니었고, 아주 절망적인 순간 앞에 무기력했던 순간도 아니었다. 작가는 부모님과 놀러 와서 아침에 일찍 일어나 주변을 바라보고 있을 때, 그때 인생의 의미에 대하여 아버지께 물었다.      

  나는 이 순간에 대한 감정, 상황, 또는 정서에 대하여 사실 더 마음이 끌렸다. 우리가 누군가에게든, 또는 자신에게든 ‘인생의 의미’를 묻는 순간. 

  인생을 어떠한 하나의 큰 목표로 바라보지 않는 나에게, 인생의 의미는 순간순간 달라졌으며 그때마다 다른 모습으로 답을 주었다. 책에 나오는 아버지의 말씀처럼 사실, ‘의미는 없어’라고 말하게 되는 순간도 있었으며,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라고 말하는 순간도 있었고, 종교적으로 찬양하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임을 믿었던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인생의 의미를 물어보는 순간들은 보통 일상의 한 장면이었다. 

  작은 농담에도 웃음이 멈추지 않던 때, 아무도 없는 방에서 혼자 울 때, 좋아하는 사람들과 밥을 먹을 때, 바스락거리는 낙엽을 밟을 때. 그 모든 순간에서 나는 나의 삶을 살아내고 있었으며, 나에게는 그냥 그 순간이 의미라고 생각했기에. 그래서 나는 ‘인생의 의미를 묻는 순간’의 ‘감정’에 대하여 더 세심하게 바라보기를 원한다. 그래서 '의미는 없어.'가 사실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작가의 아버지는 ‘인생의 의미는 없어’라는 명제에 대하여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을 즐기며 살아갈 수 있었지만, 작가는 그 후 혼돈을 겪게 된다. 그리고는 잇따르는 질문. “그럼 이건 왜 하는 거지?” 그런 질문을 품고 세상을 살아가다 작가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삶에 대하여 추적하고 관찰하고 살피게 된다.      

   이 책을 조금 읽었을 때, 내가 ‘아하, 위인전 같은 건가 보다’라고 생각했던 이유였다. 인물에 대한 탐구. ‘인생의 의미가 없다’라는 명제에 대하여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고 싶어 한 작가의 선택. 자신만의 삶을 살아낸 어떤 인물에 대한 탐구. 

  그런데 이 책은 나의 생각을 산산조각 내 버렸다. 너무나도 재미있게. 


2. 어떻게 계속 살아가시는 거예요?  


  바로 그때 그 깨달음이 내 머리를 때렸다. 그게 거짓말이 아니라는 깨달음. 애나가 중요하다는, 메리가 중요하다는 말. 혹은 이 책을 읽는 당신(넘어지지 않게 꼭 붙잡으시라)이 중요하다는 말. 

  그 말은 거짓말이 아니라, 자연을 더욱 정확하게 바라보는 방식이다. 그것이 민들레 법칙이다!(226쪽)     

  그리고 인간들, 우리도 분명 그럴 것이다. 별이나 무한의 관점, 완벽함에 대해 우생학적 비전의 관점에서는 한 사람의 생명이 중요하지 않아 보일지도 모른다. 금세 사라질 점 위의 점 위의 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무한히 많은 관점 중 단 하나의 관점일 뿐이다. 버지니아주 린치버그에 있는 한 아파트의 관점에서 보면, 바로 그 한 사람은 훨씬 더 많은 의미일 수 있다. 어머니를 대신해주는 존재, 웃음의 원천, 한 사람이 가장 어두운 세월에서 살아남게 해주는 근원.(227쪽) 


  작가는 어리석다 할 정도로 물고기를 잡고, 명명하고, 집착하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삶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싶었다. 하지만 데이비드의 삶을 추적할수록, 그가 가진 자신에 대한 우월성, 자기기만을 발견하게 되고, 그가 우생학 연구자로서 타인의 삶에 개입하여, 폭력을 저질렀음을 발견하게 된다. 작가는 우생학이라는 이름 하에 일어났던 수많은 폭력으로부터의 시간을 지나온 사람들을 만나 질문을 한다. 

  “어떻게 계속 살아가시는 거예요?”

  사람들의 인터뷰를 통해 작가는 ‘민들레 법칙’을 발견한다. 그리고 깨달음. 우리는 중요하다는 의미. 

  작가가 아버지로부터 들었던 “의미는 없어”의 말에서 벗어나는 순간이다. 우리는 중요하다는 깨달음. 민들레가 누군가에는 잡초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약초가 될 수 있다는 법칙.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그저 사라질 하나의 점일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어떤 원천이 될 수 있다는 법칙. 

  지금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결코 혼자서 살아갈 수 없는 세상임을 깨닫는다. 그것이 상처로부터 우리를 지켜내는 방식이며, 중요하지 않다 말하는 세상에서 중요한 것을 발견하는 방식이다. 관계. 누구에게 있어 중요한 존재이며 누군가를 중요하게 여기는 마음. 그 마음으로 세상을 견디고 살아내고 있음을 이 책은 ‘민들레 법칙’으로 말해주고 있다. 


3. 정리


그 열쇠를 돌리기 위해 당신이 해야 하는 유일한 일은… 단어들을 늘 신중하게 다루는 것이다.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또 무엇을 잘못 알고 있을까? 과학자의 딸인 나로서는 깨닫기까지 오래 걸리긴 했지만, 내가 물고기를 포기할 때 나는 과학 자체에도 오류가 있음을 깨닫는다. 과학은 늘 내가 생각해왔던 것처럼 진실을 비춰주는 횃불이 아니라, 도중에 파괴도 많이 일으킬 수 있는 무딘 도구라는 것을 깨닫는다. (267쪽)


  책을 읽으면서, 결론에 다다르는 과정에 감탄했다. ‘인생의 의미는 없어’에서 출발한 방황이,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삶을 추적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그리고 우생학을 통한 폭력의 시간을 폭로하고, 자기기만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과정에 이른다. 작가는 분기 학자들의 관점에서 과학을 바라볼 수 있음을 통해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명제를 이해한다. 또한 과학적 사고가 완벽하지 않은 무딘 도구임을 인정한다. 세상엔 여전히 인종차별적인 시선을 가지고 자기의 생각이 ‘과학적으로 옳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살아가고 있지만, 그것 또한 과학을 바라보는 여러 관점 중의 하나임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 책은 말해주고 있다. 

 

  나는 여전히 많은 것들을 배워가는 중이다. 보통은 자신의 필터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에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전부인 양 그렇게 살아가는 순간이 많다. 책은 그 순간의 나로부터 한 발자국 앞으로 나아가게 만든다. 오늘, 이 책은 나에게 지식과 더불어, 존재의 중요함이 관계에서 발견될 수 있음을 생각하게 만들어 준다.      


[이야기 나눠 보기]

1) 자신에 대한 긍정적 착각, 또는 자기기만에 빠져 세상을 바라보았던 순간이 있습니까? 언제였으며, 지금은 그 생각에서 어떤 변화가 있습니까?

2) 민들레 법칙과 관련하여, 타인에게는 중요하지 않지만 자신에게는 중요한 어떤 것들, 즉 관계나 사물, 사람, 지식 등 모든 것을 포함하여 그런 것들이 있다면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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