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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리바라기 Dec 05. 2022

책들의 시간 13_늙어간다 할지라도 괜찮은 행복

#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_백수린 에세이_창비

고향의 기찻길

  도서관에 가면, 책들이 참 많다. 그 많은 책들 중에서 내가 읽을 수 있는 책은 한계가 있다. 사실, 브런치에 글을 올리기 시작하면서 더 많은 책을 읽고 있기는 하다. 책을 읽어야만 글을 쓸 수 있으니, 도서관에 더 자주 가기도 하였고, 글을 발행하는 속도보다 책을 읽는 속도가 조금 더 빨라 여전히 써야 할 글들도 많다. 아직은 책을 읽고, ‘아, 이건 내 이야기를 할 거리가 없어.’라는 책은 발견하지 못했다. 책 속의 구절 하나, 내용 하나에도 마음이 들썩들썩하여, 추억이 되살아나고, 이야기해 보고 싶은 내용이 많기 때문이다. 

  이번 책은 ‘백수린 작가님’의 책이었기 때문에 선택하였다. 할머니를 키워드로 여러 작가의 소설을 엮은 책인 ‘나의 할머니에게(다산책방)’를 읽은 적이 있다. 그때, 백수린 작가님의 단편, ‘흑설탕 캔디’를 정말 재미있게 읽었더랬다. 그 재미와 감동과 여운이 아주 오래 남아, 그 이후 백수린 작가님의 소설을 찾아 읽어왔고, 이번엔 이 산문집을 읽었다. 제목부터 마음에 든다.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     


1. 나에겐 이미 충분한 우리 집.      

  작가는 일상을 살아가다, 마주치는 작은 일들에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크게는 오래된 골목을 간직한 언덕 위의 집에 대한 이야기와 강아지를 떠나보내고 난 뒤의 슬픔에 대한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1부, ‘나의 작고 환한 방’은 작가가 현재 살고 있는 동네에 대한 이야기이다.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 나에게 집이란, 어떤 곳이었나를 생각해 본다. 


주거하는 이와 관리하는 이가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거주의 공간이 아니라 경제적 가치를 지닌 재화로 인식되는 아파트와 달리, 이 동네에서 집은 삶의 공간이다. 동네에서의 하루하루는 집이든 인간이든 간에 만물이 시간과 함께 서서히 마모되는 것은 자연의 섭리이며, 육체적인 노동과 시간 그리고 정성을 쏟는 돌봄을 통해서만 우리가 모든 종류의 소멸을 가까스로 지연할 수 있을 뿐이라는 진실을 내게 알려준다. 그리고 어떤 공간이 누군가에게 특별한 장소가 된다면 그것은 다름 아니라 오감으로 각인되는 기억들의 중첩 때문이라는 사실도. 


  중학교 때 집을 지어 이사를 가기 전까지 나는 기찻길 옆, 주택에 살았다. 작고 낮은 집이었다. 옥상이 있었으며,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실외에 화장실이 있고, 그리고 현관문을 통과해 들어가면 방이 나오는. 그 집에서 나는 어린 시절 연탄가스를 많이 마시기도 했다. 하지만, 집과 집 사이의 골목에서 잘 놀았으며, 사람이 치여 죽었다는 흉흉한 소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기찻길을 잘 걸어 다녔다. 때때로 병따개와 못을 철길 위에 올려놓고 기차가 지나가길 기다렸으며, 뜨거운 레일 위에서 납작하게 눌러진 병따개를 장난감 인양 가지고 놀았다. 비료를 싣고 다닌다는 기차는 자주 다니진 않았지만, 한번 기차가 지나갈 때마다, 요란했고, 시끄러웠고, 오래 바라봤으며, 은근히 기다렸다. 

  그리고 그 작은 집을 떠나, 중학교 때 주택으로 이사를 갔다. 항공법에 따라, 높은 건물은 없는 고만고만한 주택들이 모여 있는 단지에 살았다. 그곳에서 처음 나의 방을 가졌으며, 엄마가 주문해서 만들어 주신 커튼이 오랫동안 마음에 안 들어, 결혼하면, 아주 예쁜 커튼을 단 집에서 살겠노라고 꿈꾸었었다. 다만, 주택이 가진 불편함에 아파트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끊임없이 해 왔다. 

  결혼을 하고 거주지를 옮기고, 그리고 어느덧 20여 년이 넘은 시간. 아주 오래된 좁고 낡은 아파트에서 12년 넘게 살면서, 나는 다시 주택이 그리웠다. 고향의 엄마도 혼자서는 관리하지 못하는 주택에서의 시간을 정리하고 아파트로 이사 간 뒤여서, 친정에 내려가도 더 이상, 비슷비슷한 집들이 모여 사는 주택에서의 생활은 누릴 수 없었다. 

  작가의 말처럼 사람들에게 집이 ‘경제적 재화’로 인식되면서, 자기 집을 갖는 것이 가지는 상징적 의미가 커진 것 같다. 하지만 아파트에 살지 못한다는 것이, 가난의 다른 이름처럼 인식되는 요즘, 나는 그런 어떠한 말에도 흔들림 없이 복층 빌라에 산다. 작고 조그마한 집. 세 명의 식구가 거실에 앉으면, 거실이 가득 차는 그런 작은 집. 하지만, 주방의 문을 열고 나가면, 바로 하늘을 볼 수 있는 외부 베란다가 있으며, 녹색 칠이 벗겨진 베란다의 계단을 오르면, 복층의 베란다를 또 만날 수 있는. 무려, 외부 베란다가 두 개나 있는 그런 작고 따뜻한 집. 

  집을 구할 때, 오래전 친정의 주택이 떠올랐다. 물론 친정의 주택과는 비교할 수 없는 적은 평수의, 작은 집이지만, 빌라인데 주택의 느낌을 가진 집이어서 그랬는지 그냥 정이 갔다. 그리고는 지금까지 살고 있는.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들어오면, 기분이 좋아진다. 작지만 따뜻한 공기가 좋고, 편안한 일상에 감사하다. 날 맑은 날이면, 베란다로 나간다. 베란다에 텃밭을 만들어보겠다 마음먹었지만, 일상의 게으름에 식물들을 다 죽이고 말았다. 그래도 그 작은 베란다에서 마주하는 하늘이 좋고, 달이 좋고, 집들의 불빛이 좋다.

  책을 읽으면서, 조금 더 부지런해지고, 조금 더 성실해지고 싶었다. 나의 집이 좋아서. 이렇게 좋은 집에 정성을 쏟는 돌봄이 필요하겠구나 그런 마음에.      


2. 나이 듦, 때로는 두려운 시간들. 


  최근 몇 년 사이 나는 늙음에 대해서 생각하는 일이 부쩍 많아졌다. 

  어쩌면 내가 마흔에 가까워오면서 노화를 체감하기 시작한 탓인지도 모르겠다. 원고 노동자들이라면 누구나 그렇듯 나 역시 줄곳 허리가 좋지 않은 편이지만 작년에는 허리가 너무 아파서 몇 달 동안 의자에 앉지 못하고 선 채로 원고를 쓰고 밥을 먹어야 했다. 뽑아버리는 게 조심스러울 만큼 빈번히 새치가 보이기 시작하기도 했다. 살이 잘 찌지 않는 체질인 줄 알았는데 날이 갈수록 눈에 띄게 군살이 붙었고 주름이 많아졌으며 잠을 줄이면 좀처럼 체력이 회복되지 않았다.(220쪽)


  작가는 반려견의 죽음을 통해, 슬픔을 체감하는 자에 대한 위로와 늙음에 대하여 사유한다. 작가가 소개해 주는 책을 읽고 싶었다. 사회가 노인을 어떻게 타자해왔는가에 대하여 쓴 책인 ‘노년(시몬 드 보부아르)’. 

  나에게도 ‘늙음’이라는 키워드는 늘 나를 생각에 빠트리고 때로는 좌절과 절망의 감정까지 이끌어갔다가, 다시 받아들여야 한다 생각했다가도 생각의 원점에 이르게 만드는 단어이다. 기억력이 좋지 못해, 어린 시절의 많은 일들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장면 장면 남아있는 기억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 좋은 시간들이 많았다. 청춘. 근데 어느새 45살. 이번에 친정에 내려갔을 때, 엄마가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 나이 때 딱 그 몸무게였어. 지금 엄마는 참 작아지셨다. 예전의 70대와 지금의 70대는 다르다고 하고, 나도 그렇게 여기고 있지만, 나는 나의 늙음에 대하여 준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늘 생각하고 있다. 늙음을 받아들일 준비. 시간이 흐르는 만큼, 나의 신체는 노화를 경험하고 있으며, 젊었을 때 건강을 좀 지킬 것을 후회하곤 한다. 자연스럽게 신체의 노화를 받아들여야 하지만, 정신은 그 신체 나이를 따라가지 못해 간극이 발생하고 있긴 하다. 나는 아직 이렇게 젊은데, 그런 생각들. 

  손을 볼 때면, ‘아, 이렇게 피부가 쭈글쭈글해지는 거구나’를 느낀다. 원래 안경을 쓰고 눈이 좋지 않았지만, 요즘은 그게 더 심해져서, 잘 보이지 않을 때가 많다. 그럴 때 나는 늙어가고 있구나를 실감한다. 사실 젊었을 때보다 더 부지런해져 걷는 것도 좋아하고, 일찍 일어나 이것저것 할 때도 많지만, 그만큼 늦게까지 놀지 못한다. 밤 10시만 되면, 손이 떨려서 카톡도 잘 못하겠고, 핸드폰을 손에 쥐고 있는 것도 힘들다. 잘 잔다. 다행히도. 또, 인격적으로는 더 너그러워질 줄 알았다. 그런데 사실, 아니다. 그나마 타인을 이해하는 폭이 조금이라도 넓어진 것은 전적으로 소설 덕분이다. 


3. 정리. 

  일상 속에서 행복을 찾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늘 생각한다. 결과를 강조하는 요즘의 세상에서, 나를 지키는 방법 중 하나로 나는 아주 작은 목표의 달성으로 작은 성취를 맛보는 기쁨을 누리는 것을 선택하였다. 그래서 아침이면, 오늘 하루의 해야 할 일들을 정리해 본다. 너무 소소하여 이런 것을 목표로 설정한다고 싶은 것도 다 적어 둔다. 하나씩 하나씩 실천할 때, 나는 살아있음을 느낀다.

  나는, 종종 자주 짧은 순간이라 할지라도 행복하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이야기 나눠 보기]

1) 작가의 ‘작고 환한 방’처럼 자신의 방은 어떠한지 생각해 봅시다. 또한 자신이 갖고 싶은 방은 어떤 모습이길 바라는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2) 스스로 늙었다고 생각하는 순간은 언제이며, 어떤 모습으로 늙어가고 싶은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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