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벼리바라기 Dec 12. 2022

책들의 시간 14_죽음 앞에 나는.

#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_비욘 나티코 린데블란드 지음_다산 초당


  대학교 때 심리학과 선배 언니를 따라, 선원에 간 적이 있다. 대학교 근처에서 버스를 타고 내려 조금만 걸어 들어가면 갈 수 있는 곳이었다. 마을 가까이에 있으면서도 완전 마을 쪽은 아닌 곳에 위치한 선원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마을 속의 절 같은 느낌. 포교원이기도 한.

  그곳에 간 건 순전히 심리학과에 다니는 언니 때문이었다. 언니가 좋았고, 언니가 권유하니 한 번 가보자의 마음이 컸다. 선원에 가면, 향이 항상 피워져 있었고, 작은 불상이 몇 개 있었으며 방에서 스님이 말씀을 들려주시고, 우리는 모여 그 말씀을 들었다. 그리고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 같다. 그곳에서의 말씀이 단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 것을 보면, 그 시기의 나는 스님의 말씀을 들을 준비가 전혀 안 되어 있었나 보다. 하지만 여전히 기억나는 건, 내가 더 이상 선원을 가지 않기로 마음먹었던 그 순간이다. 비가 많이 왔고, 버스에 내려 어찌어찌 선원까지는 가서, 같이 밥을 먹고, 이야기도 듣고 그랬던 것 같은데, 돌아오는 길, 물 웅덩이를 세차게 달리는 차에 물벼락을 맞고 난 후, 나는 선원에 더 이상 가고 싶지 않았다. 겉으로는 오가는 길의 험난 함이었지만, 내면 가운데에는 그렇게 물벼락을 맞고 속으로 온갖 짜증이 치밀어 오르는데, 감정을 다스린다는 것이 모순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1. 작가의 깨달음, 내가 틀리 수도 있습니다.      


  이 책은 대기업에서 근무하다가 마음의 소리에 따라 17년간 숲 속 사원의 승려 생활을 한 작가의 이야기이다. 작가는 마음속 소리를 따라, 승려의 삶을 살았고, 다시 속세로 돌아와,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까지 강연과 명상을 전했던 사람이다.  

  작가의 변화와 행동의 실천은 명상에서 시작되었다. 평소 명상을 해 왔던 것이 아니라, 갑자기 시작한 명상, 작가가 자신의 분주한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명상에 들어갔던 15분의 시간에서 작가는 자신의 다음 삶을 준비하게 된다. 대기업 직원에서, 승려로서의 삶. 무모할지도 모를 순간의 결정이, 작가에게 있어서는 삶의 변화를 가져왔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점차 마음이 조금이나마 잠잠해졌습니다. 괄목할 만하거나 종교적이거나 신비한 변화를 느낀 것은 아니었습니다. 바쁜 일정 속에서 잠시나마 급박한 마감에 시달리지 않는 시기가 찾아왔을 때와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급류처럼 휘몰아치는 생각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기엔 충분했지요.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겠다고 미친 듯이 허우적거리지 않아도 됐습니다. 가슴을 짓누르던 압박이 살짝 느슨해졌어요. 갖가지 생각으로 불안해하는 사이사이에 평온을 유지하는 시간이 조금씩 길어졌습니다. 그저 존재한다는 느낌에 다가가게 되었지요.(28쪽)


  작가는 승려로서의 삶을 통해 삶의 가치관들을 하나씩 정립해나간다. 그중 하나가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내가 틀리 수도 있습니다’이다. 수많은 일들 가운데, 내가 틀릴 수도 있는 일은 너무나 많다. 나는 워낙 스스로에 대한 신뢰가 높은 사람이라,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힘들었다. 지금은 많은 책을 읽으면서, 연약한 자아의 고집스러운 행동이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참 좋아하는 선생님의 말씀처럼 ‘상식의 기준이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라는 말에 공감하여 이해의 폭을 넓히려 노력하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일들 가운데 내 생각이 맞다고 느껴지는 순간들이 많다.


우리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직감을 현실이라고 믿습니다. 주변에서 벌어지는 온갖 사건을 정확하게 해석할 수 있다고, 다 간파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상황이 옳은지 그른지, 좋은지 나쁜지를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다고 믿지요. 우리는 걸핏하면 삶이 우리가 원하는 방식대로, 우리가 계획한 방식대로 마땅히 흘러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막연한 관념과 의지대로 삶이 이루어지리라 기대하지 않는 것이 지혜의 시작입니다. 우리가 극히 무지하다는 것을 이해할 때, 지혜가 싹틉니다.(134쪽)


  뉴스를 보면서도, 쏟아지는 기사를 보면서도 나의 생각대로 세상을 바라보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언젠가 백수린 작가님의 글에서 ‘너무 확고한 신념’이 오히려 무섭다고 표현한 부분을 읽은 적이 있다.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이 그러한 것 같다. 너무 확고한 신념으로 타인의 생각을 받아들이지 못해, 자기와 다름을 틀림으로 인식하는 사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정작 어떤 일들 앞에서는 왜 저러는지를 모르겠다고 말하고 마는 것은 아닌지. 나의 생각들을 돌아본다. 책을 읽으면서 내 생각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두려울까 생각하게 되었다. 여전히 두렵다. 답을 잘 모르겠다. 작가는 ‘내가 틀릴 수도 있어’라는 생각에 익숙해지는 것이 확실히 행복해지는 방법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나는 아직, 여전히, 마음 가운데에는 ‘나’만큼은 ‘나’를 중심에 두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2. 죽음의 순간이 온다면.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 삶이라는 문장을 본 적이 있다. 참 역설적이다. 삶의 끝을 죽음이라고 받아들이지는 않지만, 기독교인으로서 죽음이 또 다른 삶일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지만, 그래도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과 해답은 사실 잘 모르겠다. 어렸을 때는 오히려 ‘이렇게 살아야 해’의 가치관이 분명했다면, 나이가 들어가는 요즘은 그 모든 것들이 다 흔들린다. 나이 들면, 세상을 더 명확하게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나는 아니다. 더 자주 흔들리고, 더 자주 우유부단 해지며, 더 자주 결정을 미루게 된다. 확실한 것들에 대한 생각이 줄어들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죽음이라는 것도 그렇다. 친한 친구가 "죽음을 생각하는 것 자체가 터부시 되는 나이었었는데 이제는 매일 죽음을 염두에 두고 살아야겠어"라고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러면서 생각해 보았다. 죽음, 죽음의 순간.

  내가 ‘죽음’을 처음 인지했던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다. 1989년 8월 8일. 그날은 음력 7월 7일이었고 내 생일이었다. 아침에 큰어머니께서 “아빠가 오늘 집으로 오실 거야”라고 말씀하셨다. 1년 넘게 폐암으로 투병을 하고 있던 아빠가 집에 오신다니, 어린 마음에도 기분이 좋았던 것 같다. 아빠는 나에게 정말 다정하신 분이라, 아빠에 대한 기억은 늘 좋았다. 요양을 하시는 아빠를 만나러 갔을 때, 언덕에 앉아 저물어오는 저녁 하늘을 바라보시던 아빠의 모습은 돌아가시고 난 뒤 세월이 많이 흘러 내가 이제 아빠의 그 나이 즈음으로 향해 나아갈 때 불쑥 떠올랐고, 많이, 자주 슬프게 다가왔다. 아빠는 집으로 돌아와 바로 돌아가셨다. 지금은 잘 이해되지 않을 수 있지만, 그땐, 그렇게 돌아가신 분을 집에 모시고, 초상을 치렀다. 내 생일과 아빠의 죽음. 아빠의 산소에서 어린 남동생은 무덤가를 뛰어다녔고 나는 무덤 주변의 푸른 잔디가, 돌들이 예쁘다 생각했었다. 철없는 어린아이. 당시에는 그 죽음이 크게 다가오지 않았지만, 그 이후 끊임없는 부재를 확인할 때마다 아빠의 죽음이 떠올랐다. 요즘은 더 자주 아빠 생각이 많이 난다.


  숨을 거둘 날이 오면, 그날이 언제든 저더러 싸우라 하지 말아 주세요. 오히려 제가 다 내려놓을 수 있도록 어떻게든 도와주길 바랍니다. 제 곁은 지키며 다 괜찮을 거라고 말해주세요. 우리가 감사해야 할 것들을 다 기억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때가 됐을 때 제가 늘 원했던 끝이 어떤 것인지 기억할 수 있도록 당신의 열린 손바닥을 보여주세요.(305쪽)


  작가는 루게릭병으로 2022년 1월 세상을 떠났다. 이 책의 후반부는 작가가 죽음을 알고 받아들이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이다. 명상을 통해, 승려의 삶을 통해 작가는 내려놓음에 대하여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있다. 나는 죽음의 순간에 대한 작가의 말을 공감하고, 나 또한 죽음 앞에 그러기를 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뒤늦게 찾아온 남겨진 자의 슬픔에 대하여 생각하게 된다. 그렇다면 죽음 앞에 있는 사람이 좀 더 싸워줘야 하는 것은 아닌가, 더 많이 생을 붙들어줘야 하는 것은 아닌가. 그것이 남겨진 사람에 대한 사랑은 아닌가. 그런 생각들.      


3. 정리.

  책을 읽으면서 옆에서 누군가 이야기를 해 주는 기분이 들었다. 구어체의 문장들. 스님이 나에게 차분하게 들려주는 이야기들. “삶이 그러하지요? 죽음 또한 그러하지요?”라고 묻는 느낌.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삶의 여정을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질문 하나를 남겨두고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나는 오늘도 살아낸다.      


[이야기 나눠보기]

1) ‘내가 틀릴 수도 있구나, 나의 생각이 틀렸구나’라고 느꼈던 사건이 있습니까? 그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2) 지금 생각나는 죽음의 모습과 순간이 있다면 언제, 누구의 죽음이었습니까? 죽음이 나에게 다가온다면 어떻게 받아들이고 싶은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 어느덧 12월입니다.

저는, 스스로 브런치 방학을 가지려고 합니다.

2023년을 다정하게 맞이하시길 바랍니다^^

작가의 이전글 책들의 시간 13_늙어간다 할지라도 괜찮은 행복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